주일예배

범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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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1-2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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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살전 5:16-18


태풍의 중심부에 의외로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태풍의 눈입니다. 거기에 있으면 고요하고 태풍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푸른 하늘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고난, 문제, 시험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휩쓸리면 방황을 하고 고통을 겪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태풍의 눈 안에 있으면 고요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다면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강을 맛보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영어로 Thanksgiving Day인데 번역하면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누구에게 무슨 감사를 드립니까? 성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만족스러웠습니까 아니면 아쉬웠습니까? 이제는 소망이 보입니까 아니면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습니까? 사도 바울이 범사에 감사하라 하였는데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고 채워지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만족할 때까지 감사를 미루고 있습니까?

바울은 4장에서 시작한 재림에 대한 내용을 5장에도 자세히 서술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바울은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르고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심지어 모두가 평안하다고 안심할 때 주님이 임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시기에 대한 논쟁을 피하고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시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다시 오실 것이며, 주님의 재림이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라 할지라도 일상적인 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사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16절)
기쁨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헬라어가 ‘카라’이고 은혜를 뜻하는 단어가 ‘카리스’입니다. 두 단어의 어근이 같습니다. 즉 기쁨은 은혜의 결과이며 은혜의 증거입니다. 기쁨은 좋은 일을 겪음으로 말미암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신앙의 차원에서 오히려 그 이전의 선택이며 당위입니다. “기뻐하라”는 현재 명령형이니 ‘계속하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말씀하셨는데 이 힘이 부족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기쁨을 소유할 때 하나님 나라를 미리 경험합니다. 기쁨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도 기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기쁨의 회복입니다.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물론 어렵지만 고난 중에도 기뻐하라는 권면이 계속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
바울은 ‘항상’‘쉬지 말고’‘범사에’라는 유사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세 가지 명령을 삶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모두 ‘깨어 있음’과 관련됩니다. 특히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할 때 사용한 위의 단어는 에베소서 6:18에서 ‘깨어 구하기를’이라는 구절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신앙을 가진 성도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있어 하나님과 교제하라는 말입니다. 기도는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탁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능력을 받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0명이 합심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밖으로 뛰쳐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18절)
16-18절은 재림을 성도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삶의 내용입니다. 17절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한 바울은 이제 기도의 다른 표현인 감사를 다룹니다. 감사는 기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또한 감사는 하나님 백성의 중요한 표식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를 NIV로 보면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바울은 give thanks 다음에 이유를 의미하는 “for”를 사용하지 않고 “in”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들이 드리는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경우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에 걸린 것 자체로는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데 감사가 쉽게 나옵니까? 사랑하는 자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죽은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까? 보험금을 노리지 않고야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업하다가 실패한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익을 다투는 경쟁자가 아닌 다음에야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암에 걸리고 세상을 떠나고 실패하는 것들은 하나님께서도 다 싫어하시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 말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비록 암에 걸렸지만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라. 비록 사랑하는 자가 네 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비록 사업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상황을 초월한 감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한국에 계신 선배 목사님이 저에게 감사에게 관한 글을 보내셨기에 인용합니다. 감사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절대감사와 상대감사입니다. 상대적 감사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해본 후, “나는 몸이 정상이라서 다행이야”, “나는 저런 일을 겪지 않아서 참 감사해”, “내가 가진 게 저 사람들보다 많아서 다행이야, 참 감사해”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 감사는 비교 자체를 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상황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감사는 후자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상대적 감사도 감사하는 마음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감사는 하박국의 감사와 같이 조건과 환경에 상관없이 무조건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여 감사하는 범사의 감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니 감사와 관련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감사하는 것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option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4:3). 감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교회에서 보이는 우리의 언어와 표정이 직장과 가정과 학교에서도 같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의 삶 가운데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시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찬양합니다. 내입으로 계속하여 그를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것을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자 우리 함께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입시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였더니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습니다.’다윗이 이 감사 찬양을 드렸을 때는 그의 생애에서 제일 밑바닥을 지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으면 사울이 죽이려고 하고 이스라엘 밖으로 나가면 이방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다윗은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어떤 곤란을 겪고 계십니까? 잘못 내린 결정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까?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인하여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까?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오직 한 가지 때문에 함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7,18).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죄의 종 되었던 상태에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해 감사드릴 것을 권고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은혜만큼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성도들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추수 절기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절기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들은 또한 억압으로부터의 구원을 상징했습니다. 이 절기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가라지와 같은 악인들은 영벌에, 알곡된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예표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의 종말 섭리에 대해 소망을 지니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잃거나 육신의 질병이 있거나 어떤 슬픔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불확실하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니다. 사람은 변하고 친구는 혹시 내 곁을 떠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 하나만을 인하여 일생동안 감사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구약시대에 분향단에 향을 피워 하나님께 올려드렸지만 지금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 전체가 향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귀한 향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 찬송, 기도, 헌금, 봉사, 금식 등을 기뻐 받으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가 아름다운 향을 올려드리는 성도들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색한 자의 삶은 결코 풍요할 수 없습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성전 지을 준비를 하는 다윗의 헌신된 모습이 나옵니다. 그의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보여야 할 감사의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힘을 다하여(2절), 열심으로(3절), 즐거이(5, 6, 9, 17), 성심으로(9), 후하게(14) 정직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힘자라는 만큼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 힘대로’라는 말은 자원하는 심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자원하는 심정이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함을 일컫습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릴 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만 아시면 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가 아름다운 향을 올려드리는 성도들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피워드린 향기 나는 삶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하여 향을 태운 사람은 주님 앞에 면목이 없게 됩니다. 자신을 위하여 풍성하고 다른 사람에게 생색을 내는 데는 열심이지만 하나님께 인색한 자는 삶이 결코 풍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깝고 드리는 헌금이 아깝고 봉사하는 것을 아깝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악취가 납니다.

3. 언제 감사를 드립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녁과 아침으로 향을 사르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음을 인정했고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서 이 향을 사르는 것을 쉬면 안 됩니다. 이렇듯 우리의 감사생활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향을 드리려면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까?
- 말씀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성도의 감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혹은 그리스도가 주신 말씀을 의미합니다. 결국 복음을 지칭합니다. 말씀이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주님의 말씀이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고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배우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교회를 주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 안에 풍성히 거할 때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씀이 풍성하게 되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서로 격려하며 함께 교회를 세워나갑니다.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럴 때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교회에서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교인들도 복음의 진리를 깊이 있게 깨달아 서로 각자 복음을 가르치며 이로 인해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면서도 복음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면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고 싶어 마음이 뜨거울 것이며 전할 때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8-20) 이 말씀을 골 3:15-17과 비교해보면 내용이 비슷합니다. 에베소서에 성령 충만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골로새서에는 말씀 충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 충만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꾼 삼아 주셨습니다. 구원을 얻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일꾼까지 삼아 주신 것을 깨달았기에 그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깨달음에서 옵니다. 깨달음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 고난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고 누구 탓이라고 원망하기보다 기도하면서 영의 눈이 열려 고난의 의미를 발견할 때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고난 중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 중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감사도 습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습관과 같이 감사가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주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눅 17장에는 유대인 아홉 명과 사마리아인 한 명 도합 열 사람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인하여 즉시로 예수님께 돌아와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 하시며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감사하러 달려온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감사드리러 왔다가 영혼의 구원이라는 보너스까지 받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이 그렇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의 근원은 믿음이요 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감사를 드리면 더 큰 감사의 이유가 생깁니다. 감사의 씨를 자꾸 뿌릴 때 감사의 열매들이 더욱 풍성히 열리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감사하는 자를 찾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금부터 402년 전인 1620년 청교도들이 종교를 찾아 미국 땅에 이주한 첫해에 102명 중 절반이나 되는 46명이 첫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죽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도저히 감사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 가을이 되었을 때 청교도들은 옥수수, 콩 등 추수한 것과 들에서 잡은 칠면조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환경을 넘어선 수준 높은 감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가족, 교회, 이웃을 둘러보면서 부지런히 감사의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지속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감사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더 많은 감사의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그 은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인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인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충만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힘입어 섬기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