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전도의 공동체 (행 4:23-31)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8-04 10:01
Views
2865
행 4:23-31 전도의 공동체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별로 동창의식이 없지만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비교적 동창의식이 강한 편입니다. 특히 고등학교 동창은 더 깊은 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저와 같은 반 했던 친구들이 그들의 아내, 자녀들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고3때 담임선생님이 반 전체를 키 큰 순서대로 8-9명씩 나누어 경쟁을 시켰는데 저희는 다른 친구들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7조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저희 7조만은 매달 7일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끈질기게 만났습니다. 73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금년으로 졸업한지 33년이 됩니다. 33년 동안 이렇게 끈질기게 만나는 친구들은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직장이나 사업장을 닿아놓고 아이들까지 데려오기 힘듭니다. 이제는 전부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벌써 자녀들을 결혼시킨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샌디에고에서 그것도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만나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들 중에는 거의 30년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습니다. 7조 친구들이 샌디에고에서 모이기로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래도 저의 관심은 7조 중에 과연 몇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는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집안과 친척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부족한 저는 이렇게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7조가 모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두 가지 제목을 놓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지난주 토요일만 해도 Warner Springs 114도. 어제는 70도 근처. 아직 믿지 않는 친구들의 마음이 주님께 열려지기 원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합니다. 저도 언제부터인가 앞으로 남은 생애가 이미 살아온 날보다 짧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할 때에, 네가 그 악인을 깨우쳐 주지 않거나, 그 악인에게 말로 타일러서 그가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 생명을 구원 받도록 경고해 주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실 때문에 죽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악인을 깨우쳐 주었는데도, 그 악인이 그의 악한 행실과 그릇된 길을 버리고 돌아서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악행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겔 3:18-19)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훈련을 받고 교제를 나누는 것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을 발견하여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명을 잊어버리면 교회는 구원의 방주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life saving station이 아니라 social club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니 예수의 이름으로 귀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도 세상의 분위기는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별을 보고 쫓아온 동방박사들이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로 인하여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왕위를 지키려고 예수와 비슷한 때에 베들레헴과 주변 지역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계속하여 그를 따라 다니며 방해를 하고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성령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료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생겨난 초대교회의 상황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소경을 성령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일어난 표적을 인하여 마침 성전 주변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모인 무리들 앞에서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바로 그 메시야요 예수의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말하며 회개하고 돌이켜서 예수를 믿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 전함을 싫어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투옥시켰다가 공회에서 심문을 합니다. 두 사도는 담대하게 변론을 합니다. 공회원들은 랍비교육도 받지 못한 두 사람들이 기탄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는 것을 들으면서 깜짝 놀랍니다. 사도들을 담대하게 한 것은 오순절에 그들이 경험한 성령 충만 때문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재능과 언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에 달린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회원들은 두 사도들의 처리 방법을 놓고 고민을 합니다. 앉은뱅이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으니 부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 사건을 그냥 내버려두자니 예수 이름이 퍼지겠고.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위협적인 공회의 결정을 거부합니다. 예상치 않은 사도들의 태도에 당황하였지만 그들을 처벌할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해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위협을 하며 놓아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복음 전파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장애물로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떠합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예수님 때나 그의 제자들이 사역하던 때나 오늘날이나 복음에 냉담한 세대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 예수를 믿음으로 인한 박해가 전혀 없다고 안심할 것은 못됩니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지금은 컴퓨터와 유전공학이 발전한 시대, 우주 왕복선이 우주를 다녀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필리핀에 있는 제 딸과도 쉽게 소식을 주고받습니다. 황우석 박사 사건 때문에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들이 줄기세포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며 전에는 불치병이나 난치병들이라 불리던 병들을 정복하려고 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신이라는 철학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이 예수 뿐 아니라 마호멧도 있고 석가모니도 있고 공자도 있다고 합니다. 명상과 자기 수련을 통하여 우주와 하나 될 수 있고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뉴에이지 사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까? 세속주의의 물결은 일주일에 엿새만 일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일주일 내내 일하게 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시간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흐려지는 시대, 비정상적이 더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시대,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바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약 4:4,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바울이나 야고보가 하신 말씀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복음에 대하여 수용적이지 못한 이 세대에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전도의 소리를 농담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대를 향하여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능력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함께 기도에 힘씁니다.

박해가 날로 거세어지는 상황에서 세상적으로 볼 때 약자였던 교회가 택한 것은 열심당처럼 칼을 품고 다니며 대항하거나 사두개인들처럼 로마 정부와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아침 일찍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가 주시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본을 받아 초대 교인들은 기도에 열심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서 풀려나자마자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갑니다. 동류, 일심으로. 무엇을 상징합니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교우들에게 전해줍니다. 그들은 보고를 듣자 일제히 하나님께 소리를 높입니다. 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전에 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을 듣고 더욱 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최후의 방법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도움을 얻는 수단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특히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기뻐합니다.  

  

2.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그들의 기도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1) 창조주 하나님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습니다. (히 11:3) 즉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만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초대교인들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지으신 ‘대주재’로 부릅니다. ‘대주재’는 문자적으로 ‘집안의 주인’을 의미합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손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특히 당신의 백성들을 지켜주시고 돌아보십니다. 그래서 교우들은 박해를 받는 어려운 상황에서 대주재가 되시는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2) 계시하시는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사도들과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고 고백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그들은 시편 2:1-2을 인용하며 다윗의 예언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쓸데없는 계획을 세우는가? 어찌하여 열왕이 일어서며 관원들이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모이는가? 실제로 분봉왕인 헤롯, 로마 총독인 빌라도, 이방인들인 로마 군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 즉 메시아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분노했던 ‘열방’은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인들’을, 허사를 경영했던 ‘족속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던 ‘유대인들’을 지칭합니다. ‘세상의 군왕’은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 ‘관원’은 본디오 빌라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대적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계시한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의 죽음, 부활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었습니다.



3.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드린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의 본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합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립니다.

초대교인들은 교회의 사명이 복음 증거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상황은 복음 전파에 점점 불리해집니다.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인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핍박이 사라지기를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온갖 조소와 핍박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도와 교인들은 그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과 예수님의 이름에 의하여 간구합니다.  

1)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을 구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금신상에 절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다가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지게 될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왕 앞에서 담대히 자신들의 입장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풀무 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우리가 불에 타죽는 다할지라도 우리는 우상들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담대히 선언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담대함’이란 단어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돌아보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은 원수들의 위협과 공격에서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원수들의 악한 계획을 무력화시킵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원수가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극복할 능력을 주시든지 피할 길을 주시면서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2) 사명을 감당하는 능력을 구합니다.

“당신의 종들에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 것을 허락하옵소서.” 사도들과 교인들은 증인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1) 당신의 손을 펴서 낫도록 하여주시고

2) 표적과 기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도록 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병이 고치거나 기적을 일으키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거나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그 모든 사역들이 결국 거룩한 종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초점이 모아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의 상황이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자꾸 뒤로 처지지 마세요. 초대교인들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게도 담대함을 주옵소서’ ‘내게도 힘을 주시고 기쁨을 회복하게 하소서’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 응답의 결과로 성령 충만해지고 신앙생활에 힘이 있고 사업에 활기가 있고 가정에 웃음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응답이 임합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셔서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렇게 구하니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응답하십니다. 네가 스스로를 생각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 갚는 것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재판하는 데에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능력을 요구하였으므로, 이제 나는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너보다 앞에도 없었고, 네 뒤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한, 네가 달라고 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모두 너에게 주겠다.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기도를 드렸더니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는 항상 응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간절하게 기도하니 즉시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1) 모인 곳이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사인입니다.

2) 모두 성령 충만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첫 번째 단계는 구원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고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회개가 필요하지 않으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죄가 나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함을 알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회개 자체가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 전환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다른 이름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로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이 땅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영광스러운 부활로 바뀌는 영생이 됩니다. 이 땅에 영생을 연습하는 장소입니다. 연습을 잘한 선수가 본게임에서 잘하듯이 이 땅에서 영생을 잘 준비한 성도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영광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가장 기뻐하는 연습이 생명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의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한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 이 시대를 살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하기에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함께 기도하던 무리들이 다 성령으로 채워지게 하셨다. 수동태도 되어 있으니 주어는 하나님. 하나님이 성령으로 충만케 하심을 뜻합니다. 사도를 포함한 120명의 무리들은 이미 오순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오순절 이후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자들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성령의 충만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행 2:21)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행 2:39)“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4-15, 19)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은 초대 교인들을 두렵게 만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도제목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안에 있음을 확신했으므로 이 어려움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이나 하고 있는 일이나 인간관계 등이 때로 어렵게 느껴질 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주님의 손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능력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문제가 되는 상황이 도리어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전적으로 의뢰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초대교인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하게 신앙생활 합니까?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는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줄 모릅니다.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한 것같이 세상은 점점 더 복음에 대하여 마음이 굳어집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그럴듯한 논리와 궤변을 가지고 전도를 방해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루살렘 교회 시대 이후 2000년이라는 시간은 흘렀어도 초대교인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제시합니다. 초대교인들과 같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도록 필요한 지혜와 용기와 능력을 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환경을 초월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성도들이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ㅎ란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하던 나의 교만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를 주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한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영적인 능력과 더불어 말과 행실을 통한 복음 증거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많이 인도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상급을 하늘과 이 땅에서 크게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