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건강한 교회 (행 2:42-47)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6-20 06:22
Views
5417
행 2:42-47  건강한 교회



지금은 월드컵 기간 중이라 사람들이 모이면 화제가 축구이야기입니다. 더구나 한국팀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지난주는 토고와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두어 한국민들의 기대가 아주 큽니다. 조금 있으면 프랑스와의 예선 2차전 경기가 열립니다. 오늘 따라 일부 예배에 참석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생각은 축구에 가 있는 분들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세상을 깜박 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이 드신 분들끼리 모이면 대개의 경우 화제의 초점이 건강입니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무슨 음식이 몸에 좋다고 하면 그 음식을 만들어 먹든지 사먹습니다. 무슨 약이 몸에 좋다하면 비싸도 그 약을 구하여 먹습니다. 어떤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하면 열심히 그 운동을 하느라고 땀을 흘립니다. 그러다 보면 건강한 몸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건강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에는 육신적인 건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건강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 영적인 건강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하면서 건강에도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한 영적인 건강을 가지는 것이 모든 건강의 기초입니다. 영적인 건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육신적인 복은 도리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건강이 없이 돈을 갑자기 많이 벌거나 몸만 튼튼하다면 그것을 가지고 죄를 질 기회가 많아집니다.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는데 인색합니다. 자기에게 임한 복이 자신의 지혜와 재주 때문이라고 착각하니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의 주님의 말씀같이 주님께 우선순위를 두면서 무엇보다도 영적인 건강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모든 교회들이 드러내 놓고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 숫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양보다 질이라고 위로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석교인의 숫자가 늘지 않고 몇 년 동안 정체가 되면 왜 우리 교회는 성장을 안 하는가 하는 생각을 교인들이 하게 됩니다. 그러면 담임목사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영적인 건강이 모든 성장의 기초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일까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교회가 제일 건강한 교회입니까?  전 세계 제일 큰 교회 25개 중에 절반가량이 한국에 있습니다. 대단한 숫자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숫적으로 많다고 꼭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께서 복을 부어주시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데 그런 교회 중의 하나가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성장을 멈추고 정체될 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부흥을 사모합니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가 전혀 문제점이 없는 100% 완전한 교회는 아닙니다. 교인들 중에 성령을 속이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부들의 구제 문제로 교인들이 헬라파, 히브리파로 나뉘어 자칫하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가 갈라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선교를 하지 않고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만 전도하다가 스데반의 순교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교회 외적으로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수없이 받았습니다. 안팎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이 날마다 그 믿는 자들을 더하시는 교회였습니다.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우리가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 성령 충만을 받은 120명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아침까지만 해도 신도가 120명이었는데 저녁쯤 되니 312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움직이는 수평성장이 아니라 믿지 않던 사람들이 믿음을 고백하며 모이는 회심성장이 기초가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동사들을 문법적으로 보면 계속적인 동작을 반복하여 사용하면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강조합니다. 몸은 안 쓰면 굳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운동이 몸에 좋은 줄 알면서도 막상 귀찮고 다음에 다음에 미루면서 과식과 불규칙한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건강이 나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속적이고도 활동적인 모습이 우리의 몸이나 교회의 건강의 비결입니다.  



본문을 읽고 있노라면 성장하는 교회, 생동감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성령의 부어지심과 성도들의 헌신과 하나 됨이 어우러져 놀랍도록 성장한 교회였습니다. 42절과 46절에 힘쓴다는 말이 있는데 문법적으로는 계속하여 무엇을 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들이 과연 그들은 무엇에 헌신하였다는 말인지 살펴보면서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은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김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심으로 날마다 그 수를 더하는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의 지체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활기가 있고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힘을 써서 헌신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기특하게 여기셔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는지 몇 가지 언급합니다.



1)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 (gathering)

120명의 무리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면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의 능력 있는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 중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이들 그룹에 참여함으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요즘 표현을 빈다면 교인이 3120명쯤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44) 직역하면 다 같은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음식을 먹고” (46)  한 번 교인된 것으로 만족하고 시간이 나거나 특별한 절기에만 잠시 얼굴을 비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같이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성전에서 모일 때는 다 성전에 모이고 흩어지면 각 가정에서 요즘의 목장처럼 모였습니다. 초기의 신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인지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조상 때부터 내려오던 성전 제사 제도를 대신 한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성전에 모였고 또한 그 당시 건물 구조로 보아 삼천 명 정도를 수용할 장소는 성전 밖에 없었기에 신자들은 자연히 성전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양육을 받았습니다. 요즘도 성장하는 교회는 다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초대 교인들처럼 날마다 모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정기적으로 가지는 모임에는 참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이지 못하는 것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을 수도 있지만 우선순위를 신앙생활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슨 모임이든 사람이 많이 모일 때 참여한 사람들이 힘이 납니다. 지금은 제법 커졌지만 제 친구 목사님이 개척 교회 시절에 교인들이 몇 명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도 몇 사람만 앉아 있을 뿐입니다. 그 교회는 저희 교회처럼 왼편에 출입구가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오늘은 누가 올까 하며 예배 시작 시간마다 왼쪽을 바라보았더니 이제는 고개가 굳어 고개가 오른쪽으로 잘 안 돌아간다고 합니다. 교회의 행사나 활동 등을 고려하여 개인의 스케줄을 잡으면서 어떻게 하든지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2)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 (teaching)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사도들은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이제 막 생겨난 교회였는지라 아직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교인들의 대부분이 유대인들인지라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은 알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당시는 아직 신약성경이 씌어지지 않은 때라 사도들의 가르침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졌습니다. 살아 계셨던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며 듣고 배운 말씀을 증인된 사도들이 전하니 그 말씀은 권위가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는데 오늘날은 어떻게 그런 가르침을 받습니까? 성경을 읽고 배우고, 설교를 듣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르침을 받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단순히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배우며 각자의 삶에 적용합니다. 초대 교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혀 힘쓴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배우기에 힘쓰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3)  교제에 힘쓰는 교회 (fellowship)

교제로 번역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가 신약에서 19번 사용되는데 연합, 교제, 가까운 관계, 구제, 참여, 나눔 등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서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나눔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고난(롬 6:6, 빌 3:10, 골 2:12-13),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롬 6:8, 엡 2:5-6), 그리스도의 겸손한 성격(고전 10:16)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세례와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대표적으로 표현합니다. 바울이 교회의 이미지를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몸으로 언급하였는데 그 기본 원리가 코이노니아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목표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의 교제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제의 산물이요 교제를 연습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는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인식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뿐만 아니라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의 짐을 짐으로써 관계를 돈독히 합니다. 혼자서는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깨닫고 심지어 남에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성도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면 그것은 절름발이 신앙생활에 불과합니다. 다른 성도들과 서로의 삶을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전을 줄 때 우리의 영적 생활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초대교인들은 집에 모여서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처음 만나 서먹서먹한 사이라도 함께 식사를 나누는 동안에 어색함이 풀어지고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식사는 성도의 교제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렇듯 교제하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4)  예배에 힘쓰는 교회 (worship)

초대 교회에서 떡을 뗀다는 것은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의식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눅 22:19,“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사도들은 예수님이 생전에 하신 모든 말씀들을 기억하여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예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찬과 더불어 교제의 표시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도 떡을 뗀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모일 때마다 불러 주시고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힘써 성찬식에 참여하였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날마다 성전에 함께 모이고 흩어지면 집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드리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5)  기도에 힘쓰는 교회 (prayer)

초대 교회는 기도로 시작한 교회였습니다. 120명의 무리들이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1:14). 주님을 배반하고 자살한 가룟 유다의 자리를 메울 사람을 뽑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성전에서는 삼천 명이 넘는 무리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였고 집에서는 가정교회를 이루며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하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활발하게 전파되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의 말씀을 잘 듣고 신앙생활 잘하게 해 달라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옵션이 아닙니다. 기도가 성도의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복의 근원, 참된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기도를 통하여 교회에 생명과 활기가 생깁니다. 새벽기도, 합심기도, 금식기도, 개인기도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교회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예배드리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6)  섬기기에 힘쓰는 교회 (service)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누어주는 공산주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적용하였습니다.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 나누었다는 것은 모이기를 힘쓴 교인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상황을 잘 파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집에 모인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거나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일세기의 팔레스타인 지방의 경제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아와 과부가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생겨난 믿음의 공동체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아주 귀중한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삶 속에서 어려움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곤고한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초대 교회를 본받아 서로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채워주려고 기도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섬기기를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7) 전도에 힘쓰는 교회 (evangelism)

교회의 모든 사역이 궁극적으로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도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교우들이 흩어지면 이웃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보여주었습니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더라.” 그들의 모임은 안 믿는 자들에게 항상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모든 교우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할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잃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목장의 활성화를 강조합니다. 목장이 작은 교회로서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함께 드리고 성경 공부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함께 배우고, 각자의 삶을 말씀에 비추어 함께 나누고 식사도 함께 나누면서 성도의 교제를 하고, 서로의 가진 문제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안 믿거나 교회를 정하지 않은 분들을 초청하여 함께 전도를 하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됩니다. 전도에 힘쓰는 교회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수를 더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은혜 가운데 힘쓰다 보니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1) 사람마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얼마 전 성령 충만하여 방언할 때는 아침부터 술에 취하여 주정을 한다고 하던 무리들인데 이제는 도리어 교회를 두려워합니다. 사도들을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와 함께 하시는 증거가 그들의 삶을 통하여 너무도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탐욕, 정욕을 인하여 서로 싸우고 비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부상조하며 어려움에 있는 자들을 구제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인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교인들을 칭찬하였습니다.

3) 주님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성장을 경험하였습니다.



지난주에 저희 교회에 들렀던 이필재 목사님의 교회에 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섬기는 교회에 나이 든 분들이 모이는 상록회가 있는데 그 회원들 중에 어디가 쑤시고 결린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마침 무용을 전공하신 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율동을 통한 찬양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몸에 좋다는 소리를 하길래 상록회원들을 지도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상록회원들이 나이 든 사람들이 무슨 율동이냐고 펄쩍 뛰고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뼈가 삐걱거리고 어렵다고 불평하였는데 몇 주가 지나자 이제는 상록회원들 중에 어디가 쑤시다고 하시는 분들이 한분도 안 계시고 오히려 건강하게 되었답니다. 건강하게 되니 상록회원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모이기를 힘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 중에 교우들 앞에서 율동을 통한 찬양으로 시범을 보이고 심지어 다른 교회까지 가서 출장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율동을 하면서 온몸을 골고루 쓰게 된 것이 건강의 비결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건강식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먹으면 영양 균형이 깨어집니다.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하여 특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아니한 것만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균형이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건강하십니까? 본인만 건강하다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고 정기검진을 받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작년에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벌였을 때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다섯 가지 목표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예배 다른 믿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교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훈련, 은사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전도 이 다섯 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이루는 삶이 예수님께 헌신하는 진정한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균형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관심 있는 분야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기검진을 통하여 몸의 건강을 검사하듯이 우리 교회도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교회의 건강을 진단하며 그릇된 부분은 고치고 한쪽으로 치우친 부분이 있으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각각의 목적에 동일한 비중과 관심을 두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교회의 전략과 구조를 맞추어 갈 때 그 교회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그 수를 더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이 있는 건물과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잖게 앉아 순서에 따라 예배드리는 모습을 연상하기 쉬우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이 나타나는데 그 모델로 삼으신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가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에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지체들이 되어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비록 예배 장소가 초라하고 모이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될지라도 직접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으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한 주일 동안 땀 흘리며 수고한 것을 감사함으로 드리고, 성도의 귀한 교제를 통하여 서로를 세울 때 참 교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 예배 드리기를 게을리 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엡 3:22) 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저 인간들의 모임으로 착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그들을 무시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성도들의 양육에 충실하고, 성도의 교제가 활발하고, 함께 떡을 떼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 이후에 새로 생겨난 믿음의 공동체에 이와 같이 열과 성을 다한 헌신이 있었기에 비록 교인 수를 늘리기 위한 요란한 선전이나 프로그램은 없었으나 성령이 활발하게 교회에 역사하심으로 온 백성에게 교회가 칭송을 받으며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를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대교회에만 일어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얼마든지 역사는 일어납니다.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여전히 안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이요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 장로, 안수집사 하는 직책이나 특정한 교회 구조가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 아니라 각 그룹에서 성령이 충만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서로 모이기를 힘쓰고 섬겼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고 자연히 양적인 성장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하나님이 복 주시는 교회의 모습의 여전히 같습니다. 예배, 교제, 훈련, 사역, 전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초대 교회 교인들이 가졌던 그 다이내믹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그 기쁨과 능력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까지 흘러 넘쳐 아름다운 열매들을 풍성히 거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