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회개하라 (행 2:37-41)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6-04 20:54
Views
5446
행 2:37-41 구원을 받으라

주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린 무리들에게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순종한 삼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된 부흥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이 되는 날, 즉 부활 후 7번째 되는 주일로 성령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날은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어있던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주님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던 성령강림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신약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부활절,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3대 절기로 알려진 성령강림절을 맞이하면서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이 뜻 깊다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실 때마다 영적부흥운동을 일으키십니다. 미국에서도 조나단 에드워드, 찰즈 피니, 드와이트 무디 등을 중심으로 세 차례에 걸친 영적 대각성운동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한국이나 미주 지역들을 중심으로 현재 준비되고 있으며 ‘1907년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외쳐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소개하는 내용은 ‘성령한국’이라는 web site에서 얻은 것입니다. 저희 교회 web site의 목회 칼럼난에 옮겨 놓았으니 관심 있으신 분 아니 모든 교우들이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평양 대부흥 전에 1904년 선교사 하디는 자신이 학벌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한국인들을 무시하였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원산의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도 길선주 장로가 친구의 돈을 가로챈 것을 공개적으로 회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 Stephen Goforth가 펴낸 “1907년 성령이 한국에 임하셨을 때” 라는 책에서 평양 대부흥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907년 1월 둘째 주일 저녁 약 1500명의 사람들이 평양 장대현교회에 모였습니다. 그 교회를 이끄는 길선주 장로가 서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한 나의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부탁했습니다.‘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나는 ‘걱정마오, 내 그렇게 해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나는 미망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방해했으며, 100달러를 내일 아침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죄에 대한 통회가 청중을 휩쓸었습니다. 예배는 주일저녁 7시에 시작했는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끝나지 않았으며, 그 시간 동안에 약 12명이 죄를 고백하기 위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울며 서 있었습니다.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회개를 통해 그 죄들이 드러나는 순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몇 가지 감동적인 사례들이 웹사이트에 소개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상황을 스왈른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선교사 모두가 6개월 동안 성취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단지 반나절 만에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2개월 남짓한 동안에 2000명 이상이 회심했습니다.”  부흥운동은 평양에서 한국 전역으로 저변확대 되었습니다. 1907년 중엽까지 평양 지역에만 3만 명이 회심했습니다. 1910년까지 부흥운동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그것은 그해 10월에 장대현 교회에 4천명이 한 주에 세례를 받았으며, 이들 외에 수천 명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며 결심 카드를 제출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것이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 풍부한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Goforth 선교사는 적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자랑스런 믿음의 선배들을 가지고 있고 놀라운 영적부흥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00년 전에 한국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뿌리를 오늘 성경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진정한 부흥은 예나 지금이나 회개를 통하여 시작됩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나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자칫 하면 타성에 젖어서 하기 쉽고 양심이 무디어져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면서도 거룩한 척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인기 등을 얻어 세상에서 행복해지려고 점점 더 깊게 세상으로 빠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많이 찾는 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좁아 보이지만 그 속에 진리가 있고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 만족이 아니라 영원한 복과 생명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니 베드로라는 사도는 이미 2000년 전에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무리들에게 그 길을 돌이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외침은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고, 믿지만 하나님과의 흐트러진 사람들은 그 관계를 회복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가 외칩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알던 과거의 어부가 아니요, 겁쟁이 제자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어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설교를 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예수를 하나님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너희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빌라도와 로마 군병들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게 함으로 죽였는데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고 외칩니다. 나귀의 입을 열어서도 돈에 눈이 어두운 거짓 선지자 발람을 책망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입술을 주장하셔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배척한 유대인들에게 논리 정연하고 담대하게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설교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듣는 자들에게 감동을 줄 뿐 아니라 그들의 양심을 찔렀습니다. 베드로가 그동안 보고들은 지식이 그와 같은 용기와 확신을 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하여야 할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 그 비결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그저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메시지를 듣고 나니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마음에 찔림을 경험합니다. ‘마음에 찔린다’는 것은 마치 살을 도려내는 듯 아프다는 말입니다. 심한 가책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은 유대인이니 구원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정말로 죽였다면 이것은 죄 중의 죄를 범한 것이니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요 16:8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증거는 죄인임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뿐 아니라 때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던지는 절박한 질문입니다.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벧후 3:9) 그 자비하심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전도의 도구로 삼으셔서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치고 회개시켜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형제들아 어찌할꼬?” 하나님이 죄인들인 우리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용서를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상반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무리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양심의 찔림을 받은 후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항상 호의적인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거부반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베드로나 스데반이 다 구약 성경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들은 무리들이 다같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찔리고 난 후 무리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양심의 찔림을 받은 후 겸손하게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구원에 참여하였습니다. 스데반의 권면과 도전을 들은 무리들도 마음이 찔리기는 했으나 하나님께 대한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를 갈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더 이상 스데반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고 나가 일제히 돌을 던졌습니다. 스데반은 성난 무리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왜 같은 성령의 역사인데 베드로는 많은 열매가 거두었고, 스데반은 얼마 사역해 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베드로는 수제자이니 호의를 베풀고 스데반은 죽도록 차별하십니까?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아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 보시기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자기들끼리만 은혜를 나누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흩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 하신 대로 복음의 지경이 예루살렘을 넘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기회가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어야 하고 그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말씀의 전하는 자와 받는 자가 다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우들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 말씀에 올바르게 반응하도록 은혜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다가 찔림이나 도전을 받거든 그 말씀에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을 인하여 우리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고 열매가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열리면서 그 방법을 물으려고 접근해 오는데 ‘글세, 잘 모르겠는데’ 한다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벧전 3:15,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베드로는 마음에 찔림을 받고 다가오는 무리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1)  회개하라

믿음의 출발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무리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본격적인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선포하신 메시지도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마음의 변화나 후회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깨닫고 가치관이 바뀌고 삶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죄에 대하여 민감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말입니다. 하박국 1:13, 하나님께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결단을 내리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신약의 표현을 빌자면 과거의 죄악 된 생활을 돌이켜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라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사용한 ‘회개하라’는 문법적으로 과거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당장 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회개하는 것이 좋겠다 혹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나중에 때가 되면 회개하라고 미적지근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배척하고 죽게 한 죄를‘지금 당장 회개하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을 패역한 세대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그 세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란 그런 세대의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께로 삶의 방향을 돌이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물론 회개한다고 갑자기 성격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하여 가던 발걸음을 바꾸어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결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회개의 여부를 확인하려면 1)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지; 2)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였는지; 3) 생활 속에 열매가 있는지 보면 됩니다.



2)  세례를 받으라

두 번째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막 1:4절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요단강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원래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행하던 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외적인 표시로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에 끼어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시면서 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기 위함입니다. 선교사는 사역하는 곳의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그들이 입는 옷을 입고 그들의 삶 속에 함께 어울려야 효율적인 선교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선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대접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 왜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 받는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예수님의 본을 따라 초대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었다는 표시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 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단지 교회에서 베푸는 세례식에 참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회개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확인할 때 믿음의 공동체로부터 세례를 받으며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었음을 공적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한 그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습니다.” (골 2:12) 물에 들어감으로 과거의 삶은 예수와 함께 죽은 바 되고 즉 과거의 모든 죄들은 씻겨지고, 물에서 나옴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세례란 예식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 누가 세례를 받습니까?

1) 너희- 유대인들

2) 너희 자녀 - 유대인의 자녀들

3) 모든 먼데 사람 - 이방인들 다시 말하면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종의 구별 없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향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선포합니다.  



* 언제 세례를 받습니까?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1)

그리스도를 각자의 삶에 모시기로 결심한 뒤에는 바로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합니다. 세례 받는 것을 뒤로 미룰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완벽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면 그런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 회개하고 세례 받는 자들에게는 어떤 약속이 주어집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으므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고 합니다. 물세례는 복음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한 사람들이 믿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표시요,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미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사도행전을 보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상황에 따라 순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세례가 성령세례보다 항상 먼저는 아닙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고 하고 있을 때에, 고넬료 집안에서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일제히 방언으로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자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그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그 자리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즉 고넬료의 경우에는 성령이 먼저 임하고 나중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합니까?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0절)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지금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구약에 예언한 ‘남은 자’들이 되어 구원에 참여합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찔린 무리들에게 당장 회개하라, 당장 세례를 받으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회심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말로 예수님은 누구신가 증언을 합니다. 또“권하여” 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계속해서 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족인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갖은 방법으로 호소하는 베드로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선한 목자의 심정을 가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체험한 베드로는 둘러싼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호소합니다. “구원을 받으라.” 이말 역시 과거 명령형을 사용하여 ‘지금 당장 구원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수동태로 되어 있으니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을 받으라는 말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준비하셨으니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죄 사함의 복음은 악하고 험한 세대로부터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교인들을 많이 얻기 위하여 복음의 내용을 약화시켜 전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도의 능력은 말의 능력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의 여부는 살아 계신 구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각자의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베드로의 이 안타까운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을 둘러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베드로가 설교한 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성령 충만하여 담대하게 외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은 자들이 그날에 약 삼천 명이나  더하여졌다고 합니다. 수동태로 씌어져 있으니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삼천 명이나 생기게 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제 막 생겨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교인들이 전부 몇 명이 되었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120명의 개척 멤버가 전혀 기도에 힘썼더니 그들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에 감동이 되어 설교하는 베드로를 통하여 3000명의 결신자를 얻음으로 하루 사이에 3120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실 때 하신 말처럼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능력 있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숫자적으로 보면 베드로 한사람을 통하여 하루 동안에 얻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삼년 동안 얻은 사람보다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열두 제자와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을 포함한 소수의 그룹만을 제자로 삼으셨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베드로가 예수님보다 더 능력이 많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점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목회는 장차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사역이었기에 열두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순절 이후 제자들의 사역을 통하여 실현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교인 수를 불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성장을 위하여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령에 감동이 되어 잃어버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회심하였습니다. 교회 성장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은혜를 체험하고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다. 오늘 베드로의 설교는 전도의 성격을 띠고 안 믿는 자들에게 증거한 것이지만 믿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도전을 줍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요, 모든 듣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안 믿는 자들은 회개를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 죄용서 함을 받는데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큰 죄든 작은 죄든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입니다.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모두가 죄 씻음 받기를 원하십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면서 믿는 자들에게 죄의 자백을 촉구합니다. 그렇다고 안 믿는 자들은 회개, 믿는 자들은 자백하면서 문자적으로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수시로 그 죄를 주님 앞에 내어 놓고 깨끗함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약 시대의 짐승들 중에 점도 없고 흠이 없는 것만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듯이 지금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성도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 모두가 흐트러진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같은 입장에서 대중 전도는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믿지 않거나 믿음이 불확실한 자들을 사랑으로 대하며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거나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받은 은사가 없는 것 같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부족함이 깨달아질 때 주님을 의지하세요.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였으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보니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주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나 성령의 능력으로 사로잡힐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렘 33:2-3) 예레미아를 통하여 주신 말씀같이 기도에 힘쓰세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하는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세요. 지금은 성령의 시대요 은혜의 시대라고 합니다.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세요. 진정한 회개와 각성이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직분자냐 아니냐를 떠나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쌓인 담들을 허물어뜨리고 막힌 것을 뚫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속에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 교인들이 가졌던 그 생동감을 맛보고 은사를 받고 능력을 얻어 주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둘 뿐 아니라 특별히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추수꾼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목 장 모 임



1단계: 경배와 찬양 (Worship & Praise)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2단계: 친숙해지기 (Ice Breaker)

  한 주일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내용을 나눕니다.

  목자는 목장 식구들 간에 친밀한 의사소통을 가지도록 격려합니다.



3단계: 말씀 나누기 (Word)

1. 행 2:37-41절을 읽습니다.

* 베드로는 마음에 찔림을 받은 무리들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회개하라, 세례를 받으라  



* 회개하고 세례 받는 자들에게는 어떤 약속이 주어집니까?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2. 나눕니다.

1) 죄를 도려내는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언제 그랬습니까?





2) 나를 통하여 예수 믿게 된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은 그 사람과 어떤 교제를 나눕니까?





3) 나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어떤 일을 감당하기 원합니까?





  

4단계: 목표와 계획 세우기

1. 각자의 삶을 나누며 기도의 제목을 (가정, 사업, 교회) 교환합니다.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Body(육체)/Labor(사업/학업/생업)/Emotional(감정)/Social(인간 관계)/Spiritual(하나님과의 관계)  





2. 후원하는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와 헌금을 드립니다.





3. 주변에 전도할 대상을 (불신자나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한 분들) 위하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