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 (행 2:22-36)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5-29 07:47
Views
4063
행 2:22-36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



이번에 뉴욕에서 있었던 교단 총회에 참석한 후 아들과 만나 한밤중에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를 호기심 삼아 보았습니다. 그날의 마지막 상영이었는데도 극장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써서 3000만권을 판매한 초대형 베스트 셀러를 영화로 옮겼다는 매스컴의 요란한 광고와는 달리 영화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이 영화는 문제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니 황당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인이고 그 후손이 오늘까지 존재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를 하였다고 음모론을 제시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오른편에 앉은 제자가 사도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고, 성경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조작되었으며, 인간이었던 예수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하나님이 되었다고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  



영화와 TV같은 연예 오락은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막강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력 그리고 스타라는 전도 전략을 구비한 채 무소불위의 막강 권세를 발휘하며 세상 정복에 나선지 오래다.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재미만 줄 수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든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회의 전통과 가치, 윤리와 도덕의 의미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6월호 ‘목회와 신학’는 다빈치 코드에 대하여 비평합니다.  



다빈치 코드는 상상력을 동원한 추리소설일 뿐입니다. 그 소설은 사실에 입각한 내용이 아닙니다. 본문을 보니 제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입각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하여 일어난 희한한 현상을 보기 위하여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그의 설교는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설교를 통하여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분임을 증거합니다. 그럼으로써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네 가지 분명한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 자신이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2)



예수님 자신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는 증거였습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합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우리가 같은 인간이심을 알려줍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의 의미는 곁에 있도록 부름 받은 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우리 곁에 있도록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시고 인간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하여금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 가운데 하게 하시므로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를 테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서기관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되시는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3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상회의에 모여 있는 수많은 천사들과 사단 앞에서 욥을 칭찬합니다. 욥 1:8,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욥 1:9-10, 욥이 이유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욥에게 엄청난 복을 베푸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많은 재산 때문입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욥이 가진 모든 소유물을 쳐보세요. 내가 장담하건대 욥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할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는 것을 사단은 알지 못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 이유는 그가 가진 많은 소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누리는 복된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 1:12) 욥의 믿음을 입증해 보이도록 하나님은 사단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사단의 술책에 넘어가서 욥의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욥이 이런 고난을 감당할 만 하니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분적으로만 욥의 재산에만 손을 댈 것을 명하시면서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사단이 주는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사단의 활동을 제한하셔서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불의한 자들의 손에 넘겨져 죽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줄 때에도, 종교지도자들이 빌라도에게 넘겨줄 때에도, 빌라도가 로마 군병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줄 때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사역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과 행동은 예수님이 자기 마음대로 혹은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입니다. 그들이 죽인다고 해서 예수님이 죽음에 머물러 있을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 그리고 그분의 선하심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내어 주신 하나님과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복음성가: 예수님 찬양



2) 성경이 증거합니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31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요약해서 선포한 베드로는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고자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시편을 인용합니다. 시 16:8-11,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약속하는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만 무덤 속에서 썩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삼 일에 살아나야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은  일시적으로는 고난을 당할지라도 썩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을 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물이 없어도 길이 험하여도 대적이 있어도 안 죽는다. 광야 제일세대는 하나slam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성도가 가는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앞에는 기쁨이 있고 옆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셔서 그 인자가 다윗의 후손이자 주인 메시야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 22:42-45절)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이신 자신에 대한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 시대의 예언에서나 율법에서 계속해서 영으로 나타나셨고 또 계시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다윗의 일생을 통하여 다윗의 신앙의 주인이신 영으로 나타나서 그의 신앙을 주관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다윗의 일생을 주관하신 영이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심으로 이 땅에 완전한 회복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원수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사도들은 이 구절을 주님의 부활과 승천, 대적들에게 대한 승리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예언대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다윗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모든 나라와 권세자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발 아래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왕으로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것이 복이요 평안입니다.



복음송:내게 강같은 평화



3) 사도들이 증거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2절)

martus martyr: 주님의 증인으로 사역하다가 순교



베드로는 성경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생명 되심을 증거하는 부활을 전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자기들이 그 증인이라고 선언합니다.  



고전 15:5-8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이 열거됩니다.

1) 베드로

2) 열두 제자들

3)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적으로

4) 야고보 (예수의 동생)

5) 모든 사도들

6) 사도 바울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부활을 제대로 믿지 못했던 제자들,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며 오해했던 예수의 동생 야고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사도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열심히 박해하던 바울에게까지도 나타나셨다. 이렇게 이름을 열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몇몇 제자들이 모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수백 명의 증인들에 의하여 입증된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4) 오순절 성령 강림이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3절)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신다고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왕으로 즉위하셔서 처음 행하신 통치는 새 언약 백성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일이었습니다. 두려워 떨던 사도들이 지금 사람들 앞에 어떻게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령을 넘치도록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해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6:7,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 성령을 받아 사람들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누리시는 왕이심을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 예수님이 꼭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요,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그러니까 죄를 지면 누군가 그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는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이기에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피흘림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자동적으로 보장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약을 먹지 않고 곁에 놓아두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약을 먹어야 그 약효가 우리 몸 안에서 작용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하여 하신 것을 믿지 않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믿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구세주로 영접할 때만이 비로소 구원의 효력이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됩니다.



*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이 모든 증거를 제시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주와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가지신 소원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주와 그리스도가 되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희가 못박아 죽였으나 ... 하나님께서 ... 살리셨으니” (23-24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너희들은 예수님을 죽였고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다. 베드로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선포하는 이유는 듣는 이들로 믿음과 회개에 이르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대로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왕과 약속하신 구원자로 믿고 그분의 통치를 받겠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게 됩니다.



* 그분의 이름의 의미

1) 주 (Lord): 만물의 다스리는 지배권을 가진 왕으로서의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행동합니다.



2) 예수 (Jesus): 인간으로서의 그분의 개인적인 이름입니다. 직역하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고 하며  ‘구주’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난 구주입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구주입니다.



3) 그리스도 (Christ): 공적인 이름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그분을 우리의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죄의 길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만일 당신이 죄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성령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당신이 죄인이며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그분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그분이 당신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초청함으로써 당신은 그분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마음속으로 초청할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1)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당신 마음속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갈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2) 죄를 용서 받습니다

엡 1:7,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서, 그분의 피로 구속 곧 죄의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4)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5) 성령께서 마음속에 거하십니다.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그것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분이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임을 날마다 상고하며 배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의 의도대로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으로 요약이 되며 더 줄이면 십자가와 부활로 귀결됩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으로 만남으로 시작이 됩니다. 참 신앙은 복음의 역사적 사실을 알뿐 만 아니라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이 구약을 통하여 계시된 것이고, 또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이 복음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알뿐 아니라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야 주님을 직접 보고 그가 하는 이야기도 직접 듣고 또 부활하신 후에 직접 만나기도 하였지만 그 후의 성도들은 주님을 직접 대하는 경험 대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마음 가운데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주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데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혜롭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영원을 위한 투자요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우리에게 상급이 있게 됩니다. 또한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는 예수님을 삶 속에서 제대로 전하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주와 그리스도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섬기면서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과 열매를 보여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