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새시대의 징조(행 2:14-21)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5-23 21:26
Views
3380
행 2:14-21 새 시대의 징조  



어떤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개의 경우 징조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배가 쥐가 많은데 쥐들이 갑자기 없어지면 그 배는 머지않아 침몰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쓰나미 속에서도 들짐승들은 생존 본능을 작동하여 갑자기 높은 곳으로 피하였기에 몰려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났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징조가 나타날 때 사태를 주시하고 대비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가 낭패를 당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AD 70년이 되었을 때 티토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가 로마 황제의 형상을 새긴 깃발을 앞세우고 쳐들어와 예루살렘 성 주위를 포위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 군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포위망을 풀고 잠시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가지 않거나 다른 일로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예루살렘 성을 빠져나와 산으로 피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설마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그대로 남아 있다가 전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아내도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곧 망하게 되었는데 빨리 피하라는 천사의 경고를 듣고도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가 신앙적 혼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짜 기독교 진리에 현혹될 것입니다. 사 복음서 외에 ‘유다 복음서’가 발견되었다고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떠들썩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기여한 사람인고로 다른 제자들보다 훌륭하다고 주장합니다. 지난주에는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을 소재로 영화가 나와서 세간의 이목을 끕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자녀들은 프랑스에서 양육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그런 가짜들이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마치 진짜인양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깊이 빠져 살아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살아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장차 있을 여러 가지 일들을 계시하는 일반적인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소문을 들을 때 성도들은 시대의 징조들을 보며 두려워하기보다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인내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각자를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달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끝까지 그를 따르던 120명의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위에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다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부으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에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였고, 급한 바람 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담대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열어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나타난 성령의 임재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니 예루살렘 성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무리는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그 술기운에 취하여 두서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비방하고 조롱합니다. 주의 일에도 방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방해가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신기한 일을 인하여 제자들 주변에 많은 무리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다른 열한 명의 동료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서 모인 무리에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모두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맛디아를 포함한 열두 사도들이 무리들에 대하여 증인의 역할을 주로 감당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의미를 매우 담대한 어조로 말합니다.  



“유대 사람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가 연설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유대 사람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유대 사람은 팔레스타인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 주민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태어나지는 나지는 않았지만 조상의 땅에 돌아와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부활에 근거한 사도적인 메시지를 증거하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모으게 한 현상에 대하여 먼저 설명을 하면서 제자들이 술 취하여 이상한 소리를 주절거린다고 조롱하는 무리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제 삼시 즉 아홉시면 보통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인데, 술 먹고 취하여 떠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요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14) 이것이 복음과 생명의 길을 알고 있는 우리가 무지한 세상을 향하여 보여주어야 할 자세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비추어야 할 빛은 단지 선행만이 아닙니다. 만일 선행만이 목적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착한 행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지닌 빛은 무엇보다도 구원의 길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16절)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어떤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기보다 성령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충만한 정도에 따라 순종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베드로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이해시키려고 요엘서 2:28-32절을 인용합니다. 베드로가 확신을 가지고 요엘의 예언을 인용한 것은 오신다고 한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임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하셨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 시간을 택해 이곳에서 성취하시는데 이 구원의 진리를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인용하고 있는 요엘의 예언도 베드로 때와 비슷한 상황에서 선포된 것입니다. 이런 재앙을 당하고서도 유다 백성들이 과연 살아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요엘은 무서운 재앙이 반복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요엘은 유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회복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주의 날이 올 것을 예언하며 메시야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는 희망을 전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실제로 이 재앙들을 다 당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듣도 보도 못한 메뚜기 재앙을 거듭해서 겪었을 뿐 아니라 기근과 가뭄과 들불에 모든 것을 빼앗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고 성전은 불에 탔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채 가난하고 병들고 압제를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부으심은 이 모든 설움과 눈물과 고통을 다 갚고도 남을 만한 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성령의 부으심이 언제 누구에게 임합니까?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17-18절)

하나님은 요엘을 통하여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어떤 복된 시대가 올 텐데 그때가 오면 남자나 여자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신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내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우리 안에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미 이사야가 오순절 강림 사건 700년 전에 예언합니다. 사 44:3, “내가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네 자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고, 네 족속에게 나의 복을 내리겠다.” 그 복된 시대가 바로 신약 시대입니다. 오순절 사건은 교회가 집단적으로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사건입니다. 위대한 성령의 시대가 임한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기에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독립된 인격을 가지신 분으로 성경에서 묘사가 됩니다. 성령은 인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물처럼 우리에게 부어질 수 있으며 우리를 충만히 채우실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인간이 법적인 죄인이었기 때문에 성령이 부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법적인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 아닌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성령을 물처럼 부어주셔서 믿는 자들 안에 신성이 넘쳐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1) 마지막 날에

성경에서 말세란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말세는 교회 시대입니다.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 약속된 시대, 교회에 모든 능력과 역사가 맡겨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2) 모든 사람에게

* 오순절 이전의 성령 충만

구약 시대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삼상 16:13에 의하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주의 영이 그날부터 다윗을 감동시켰다.

슥 7:12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율법과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출 31:3-5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브사렐에게 성령을 채워 주어 지혜와 총명과 기술을 갖추게 하였다.

삿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사자를 염소 새께 찢음 같이 찢었다.

왕을 세우거나 선지자로 부르실 때 혹은 은사를 주시고 힘을 강하게 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라 해도 항상 말씀이 임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신들에게 임한 예언의 뜻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실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지속적으로 부으심을 받지 않았기에 삼손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신이 떠났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머리털이 밀리고 눈알이 뽑히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 신약 시대의 성령 충만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됩니다.



3) 남종과 여종에게

남종과 여종은 유대인 가운데서 종의 신분으로 살고 있던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나 나실인과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예외적으로 하나님의 신이 부어졌을 뿐 일반인은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부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신을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의 대상이 단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방인의 선교의 징조로 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지금도 전파되고 있습니다.



* 성령이 부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1) 놀라운 깨달음이 있습니다.

“아들과 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나이 든 사람들은 꿈을 꿀 것이다.” (17절)

구약 시대에는 선지들이 꿈이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장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는 때가 오면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과 지각이 생긴다고 합니다. 신약 교회에 성령이 부어졌을 때 나타난 현상도 진리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지의 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단의 노예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대적하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에 매여 있습니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피곤하게 살아갑니까? 과거에 저지른 일의 죄책감에 매여 있습니까? 소중한 인생을 불평이나 원망하면서 살아갑니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모든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비추어 모든 죄악된 것을 몰아낼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의 결과가 환상과 꿈과 입술의 말로 표현되는 예언의 은사.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이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약 시대에 예언은 미래 일을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말씀을 가리킵니다.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2) 놀라운 표적이 있습니다.

“또 나는 위로 하늘에서는 기이한 일을 나타내고,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을 나타낼 것이니, 그것은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오기 전에, 해는 변해서 어둠이 되고, 달은 변해서 피가 될 것이다.” (19-20절)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은 출애굽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피 -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그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출 12:7, “그 피는 받아다가, 잡은 양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야 한다.”

불과 연기 -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상황: 출 19:18, “그 때에 시내 산에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곳으로 내려오셨으므로, 온통 연기가 자욱했는데,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피, 불과 연기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씻어 내고 태우는 불이요 연기기둥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두 번째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단의 종노릇 하던 자들이 하나님께로 탈출하게 됩니다.



* 어떻게 하면 이 구원에 참여합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1절)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곧 주의 날이 다가왔다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순절 성령을 보내심으로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임하였음을 알려주십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것”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기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불과 50여일 전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 오후에 해가 가려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어두워진 가운데 유월절 만월이 붉은 핏빛을 띠고 뜨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성령 강림과 함께 임한 구원의 날입니다. 이제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경계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는 시대가 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크고 영화로운 새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율법 시대의 백성들처럼 심판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른다면 지금 여기서부터 구원을 누리며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자기에게 찾아온 구원의 기회를 붙들기 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히 12:1)



*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는 종들을 통한 예언과 기사와 징조들입니다. 그 기사와 징조들은 장차 하나님이 크고 영화로운 날,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올 것을 보여줍니다. 요엘은 주님이 오실 때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의와 자비로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이 이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요엘이 에언한 장차 임할 시대의 징조가 바로 성령의 임재입니다. 또한 요엘의 예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보며 회개하라는 요청입니다. 베드로는 모인 무리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것이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담대하게 외치니 그 말을 듣고 하루에 삼천명이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았습니다. 행 2:38-29,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성령이 임하시면 민감해집니다. 그 죄들을 토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요 16:8,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이 같은 성령의 부으심을 통한 회개의 역사는 교회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1907년 평양의 장대현 교회를 필두로 시작되었던 성령의 부으심은 전교회적으로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나아가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만 하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참다운 예배가 드려지지 못하고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을 통한 교제가 소홀해질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일시적으로 거두어가십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다툼이 생기고 분열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이 부어지는 역사를 경험하면 교회는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양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교인들은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성령님의 사역

1) 구원 받은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고전 12:3, “성령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2) 구원 받은 삶을 지속하게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합니다. 지속적인 영적 성숙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도록 일하십니다.

갈 5:16,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3) 삶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 인도하십니다.

요 16:13,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 가르치십니다.

요 14:26,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 격려하십니다.

행 9:31, “그러는 동안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 들어선 교회는 안정이 되어 터전을 튼튼히 잡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 교회를 위한 성령의 사역

1) 교회의 핵심 전략: 성령 충만

행 1:8,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2) 교회의 핵심 구조: 성령의 전

고전 6:19,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그것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요엘의 배경은 회개에 대한 부름이요 그에 따른 용서입니다. 주의 날이 오심으로써 새 시대가 도래합니다. 누가에게 성령의 임재는 바로 그 새 시대의 도래를 예고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key word는 성령, 말씀, 구원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선포할 수 있는 증인이 되려면 우리가 먼저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 부으심을 소원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성령에 충만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베드로는 원래 많이 배우지 못한 어부였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 능력 있는 설교를 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나서 성령이 임한 표적의 뜻을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하고도 부인했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결심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이미 임하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라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능력을 받으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 자체가 살아있는 간증이 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