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령충만을 사모하라(행 2:1-13)

Author
Myung Myung
Date
2006-05-15 09:04
Views
5760
행 2:1-13  성령 충만을 사모하라



믿는 성도 치고 성령 충만을 원치 않는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내어놓으라고 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성령 충만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으려는 이유를 물어보면 답변이 제각각입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기도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분도 있고, 말씀을 더 잘 깨닫기 위함이라는 분도 있고, 신앙생활을 좀더 잘하기 위함이라는 분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대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성령 충만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 혹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예루살렘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그 당시 상황에서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지 성령 충만을 받을 때마다 보편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성령 충만은 초대교회 사람들에게만 임하고 오늘날은 존재하지 않는 일회적 현상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에게 나타났던 현상은 특이한 것이지만 성령 충만은 오늘날도 하나님이 뜻하시는 성도들에게 임합니다. 또한 교회 직분이 있고,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저절로 성령 충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활기 있는 신앙생활, 열매 있는 신앙생활, 능력이 있는 신앙생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고, 어떤 변화를 경험하였는지 살펴보며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다이내믹한 역사에 동참함으로 기쁨과 담대함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가정을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삼대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세를 지도자로 앞세우고 43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을 나온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출애굽 전 날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른 집은 하나님의 천사가 그냥 넘어갔다고 하여 유월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정월 십사 일이 되면 유월절로 지키고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은 무교절 기간으로 발효되지 않은 떡을 먹으면서 하나님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이 일주일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였습니다. (레 23:5-6) 유월절 다음에 오는 안식일 이후 첫날을 초실절이라 합니다. 추수한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드려서 요제로 하나님께 드리고 수양을 번제로 드리고 또한 소제와 전제를 드렸습니다. 유월절에 어린양이 죽었듯이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초실절에 추수한 곡식의 첫 이삭 한 단을 드리듯이 예수님은 삼일 째 되는 초실절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고 부르는데 맥추절(출 23:16) 혹은 칠칠절 (34:22,23)이라고도 하며 밀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레 23:15,16) 이 절기에는 떡 두 개를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는데 이는 추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요, 떡을 바침으로 그해의 추수 전체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더구나 오순절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하여 주신 지침이기에 율법의 말씀대로 살면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성령을 허락하신 것도 율법의 주신 것의 연장선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로 주신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뜻깊은 절기인 오순절에 성도들에게 택하신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사역들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을 통하여 미리 예언된 절기와 의미에 따라 정확하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한 승천하시면서 행 1:4,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기에 가롯 유다 대신 제자가 된 맛디아까지 포함하여 열두 제자, 평소에 예수를 섬기던 여자들,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 어머니 마리아와 그 동생들 모두 합하여 120명 정도가 다락방에 모여 베드로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 성령은 누구나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와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을 받을 때와 상황이 비슷합니다. 강한 ‘바람 소리’나 ‘불의 혀’들은 시내산에서 벌어진 광경을 생각나게 합니다. 출 19:16-18, “마침내 셋째 날 아침이 되었다.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나며,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산양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자 진에 있는 모든 백성이 두려워서 떨었다. 그 때에 시내 산에는 주께서 불 가운데서 그 곳으로 내려오셨으므로, 온통 연기가 자욱했는데,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여기에서 바람과 불은 성령의 능력의 상징들입니다.



성령에 해당하는 헬라 말은 프뉴마인데 이것은 성령이란 뜻 외에 바람, 호흡이라는 뜻도 가집니다. 아주 강한 바람이 휘익하면서 집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소리를 누구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창 15:17, 출 3:2-6, 13:21-22) [아브라함에게는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게 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심/ 모세는 가시 떨기에 불이 붙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남/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를 때 화염의 끝 부분이 여러 방향으로 퍼진다.  불의 가지 하나 하나가 모여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라고 하였습니다. (눅 3:16-17)  요한의 예언이 그 다락방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장차 오실 그이'께서 자기 백성들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고 계셨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강한 소리를 내었고 불이 임하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분명한 사인이 없었으면 어떠하였겠습니까? 성령은 영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고 그분이 움직이는 것을 들을 수도 없기에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없기에 모여 마냥 기도하다가 지쳐 버렸을지도 모르고 낙심하여 흩어져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귀로 들을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임재를 느낄 수 있고, 자기들의 입이 성령의 인도대로 움직여지는 이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표적을 통하여 모인 120명의 무리들은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 성령이 시키는 대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4절)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입니까? 방언, 능력 행함, 기도, 예언. 물론 그런 현상이 사람들에 따라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이 시키는 대로”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제자들은 성령께서 시키는 대로 말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령의 임재는 120명을 압도하였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었고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니 더 이상 다락방에만 앉아 있지 아니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자기들이 전에 알지 못하던 각국 언어들로 일제히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마침 오순절을 맞이하여 전세계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이들의 방언을 듣습니다. 모인 무리들은 어디 출신들입니까? 소아시아, 로마,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등 지중해 연안을 둘러싼 그 당시의 로마 제국의 유대인들과 또 이교 사회에서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입니다. 2:14-41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것을 미루어 다락방은 성전 근처에 있었던 것 같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면서 성전으로 향하였을 것입니다.  

  

이들의 방언을 듣는 무리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1) 놀라는 무리

듣고 소동하여 (6). 놀라 기이히 여겨 (7) 놀라며 의혹 하여 (12)

이 말하는 사람들은 다 갈릴리 촌놈들이 아니냐 그들이 언제 우리의 언어를 배웠지?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이유를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2) 조롱하는 무리

하나님의 일을 할지라도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배척하는 무리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심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도리어 예수의 사역을 방해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방언하는 들은 일부는 제자들이 새 술이 취하였다고 조롱합니다. 무식한 예수의 제자들이 외국어를 제대로 할 리가 없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그 술기운에 취하여 두서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자들이 취하기는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하였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을 사로잡으니 능력이 생기고 그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제자들이 무슨 내용으로 말합니까?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모든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다시 사셨습니다. 120명의 무리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율적으로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회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 하는 무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성령 충만의 본질적 의미는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눅 1:20,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눅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내려오셨다.”

눅 4: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행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받습니까?

1) 성령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성령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하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행 1:8) 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2) 적극적인 기도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제자들이 기도하다 보니 우연히 성령 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 받을 것을 목표로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약속을 붙들고 열흘 동안 간절히 기도에 힘썼습니다.  

결국 성도의 성령 충만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1)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나서, 그에게 "우리를 보시오"하고 말하였다.” (행 3:4)

2) 비전의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환상을 보고 마게도니아로 건너감으로써 유럽 복음화의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행 2:39)

3) 성령과의 인격적 교제가 생깁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 몇 가지 필수 사항 밖에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여러분에게 지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행 15:28)

4) 언어의 권능이 생깁니다.

남자가 여자가 다 빌립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행 8:5,10)

5) 담대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행 2:36)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는 동안 제자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도망가거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잡힐까봐 자기들끼리 모인 집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종교지도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거나 더 이상 제자들을 박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으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고 그 입술을 주장하고 그 발걸음을 주장하니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닙니다. 담대히 나아가서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증거하였습니다.

6) 사역의 리더십이 생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행 6:3)

7) 기적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행 2:43)



8)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의회에서 물러 나왔다.” (행 5:41)

9) 능력의 찬양을 드립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엡 5:18-19)

10)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행 2:42)

  

새 술이 취하였다.  누가 한 말인가?  사도들이 한 말이 아니라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 말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무슨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면 실상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신을 돌아 봅시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무엇에 취한 자라고 부르겠습니까?  무엇이 나의 생을 주관한다고 생각합니까?  성령에 취한 삶입니까?  자기의 스케줄에 분주한 삶입니까?  



다락방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우리 교회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여야 합니다.  병을 고치고 방언을 많이 함으로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고 우리가 하는 사역을 보고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보고, 우리의 아이들이 지혜롭고 아름답게 경건한 아이들로 자라는 보고, 우리의 가정이 주 안에서 화목하게 변화된 것을  보고 놀라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고 그에 따른 성령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성령의 강림 사건은 초대 교회에서나 있었던 일회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제한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그런 현상들을 나타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신비스런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에 나타난 성령의 임재요, 성령의 능력을 사용한 결과로 인한 열매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순간에 한 번 일어나는 것이나 (행 11:15-16) 성령의 충만함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계속적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행 4:8, 31; 6:3,5; 7:35; 9:17; 13:9,52).  



* 오늘이 아버이 주일인데 성령의 충만함을 우리의 가정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엡 5:19-21에 의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의 변화된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주인과 종 사이에 서로 섬길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섬기라는 것은 각자의 고유한 역할은 감당하되 자기주장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유익을 세워줄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을 삶의 기초로 삼아 자발적인 섬김을 공동체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발적인 섬김이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기에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 권하면서 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관계가 제대로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성령의 충만임을 강조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을 때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바로 주님에 대한 순종을 반영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권면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표현되어야 합니다.  

신앙 훈련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 신앙훈련의 훌륭한 연습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은 하나님의 새 언약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시작된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이자 하나님의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은 전무후무한 독특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성령의 사역은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입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서로 섬길 때 가정과 직장에 화목과 평화가 오며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귀한 부모를 갖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어버이 공경은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사랑으로 양육해 주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은 주께 하듯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자손으로 키워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성령께서 시키시는 삶을 살며 특히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기려는 자세로 살면서 성도들이 속한 가정마다 화평과 희락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