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느 2:1-10)

Author
Myung Myung
Date
2006-12-31 14:2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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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2:1-10   선한 손이 도우심으로



2006년은 12월 31일이 주일인지라 오늘은 2006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늘 밤에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금년 한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사다난했던 한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핵 사태로 인하여 한반도 정세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느낌입니다. 이라크에서는 지난 주 후세인 전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교수형을 처하며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는 금년에 장로, 안수집사, 권사님들이 세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내년에 있을 교회당 건축을 앞두고 지난 4주 동안 가졌던 특별 기도회를 어제로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회복하게 된 분들도 있겠고, 특별기도회에 참석하는 동안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받은 분들도 있겠습니다. 2006년을 보내고 2007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느헤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메시지를 받고자 합니다.  



느헤미야 때의 시대적 상황을 먼저 살펴봅니다. '바벨론에서 70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지 70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세 번에 걸쳐 왔습니다. 스룹바벨의 인도로 1 차 귀환을 했으며 (B.C. 536), 그로부터 약 80 년 후에 에스라의 인도로 2 차 귀환을 했으며 (B.C. 457), 13 년 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오게 됩니다.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의 훌륭한 리더십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고 백성들에게 영적인 개혁이 일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안팎으로 산재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과 52일 만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는지 네 가지로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1. 간절하고도 지속적인 기도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항상 기도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그가 이방 땅에 있으면서도 여호와 앞에 경건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무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아닥사스다 왕이 순순히 그의 부탁을 들어준 비결은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수많은 대적들의 반대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52일이란 짧은 기간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왕에게 술을 따르면서도 근심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왕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느헤미야가 왕으로부터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입니까? 왕정제도에서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왕의 한 마디는 백지수표와 같습니다. 절호의 기회에 느헤미야는 어떤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흥분해서 자기의 심중에 있던 바를 털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순서를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 소원을 아뢰기 전,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중대사를 눈앞에 두고 느헤미야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짧은 동안에 그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였겠습니까?  하나님, 저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성벽 재건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들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문제가 없을 수 없으나 그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믿음을 동반한 기도입니다. 지속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간절함으로 진실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2. 성실하게 맡은 일을 잘 감당함으로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의 직업은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 (1:11) 왕이 마시는 술을 미리 맛봄으로써 혹시라도 왕을 독살하려는 일을 막는 역할입니다. 이로 미루어 느헤미야는 왕으로부터 아주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왕과 함께 있습니다. 왕 앞에서 술을 따르는데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이 가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박해를 당하고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마음이 너무도 아팠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자신이 포로의 자손으로서 이방 땅에서 살아가는 처지에 있었지만 고국을 사랑했고,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금식을 하면서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1:6,7), 회개하면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며 (1:8,9)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였는지 얼굴이 못쓰게 되어 그가 섬기던 왕이 눈치를 챌 정도였습니다. '어찌하여 네 얼굴에 근심이 있느냐?'는 왕의 질문을 받은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페르샤의 법에 의하면 모든 백성들은 왕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습니다. “네가 병이 없는데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놀랍게도 왕은 느헤미야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염려해 줍니다. 신하가 왕의 표정을 살피며 보살펴야 할 텐데 황송하게도 왕이 신하의 형편을 염려합니다. 느헤미야의 형편을 자상히 묻는 왕의 태도로 미루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는 평소부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왕에게 인정을 받은 자요, 왕과 자주 접촉함으로 인하여 그의 개인적인 형편까지도 왕이 잘 알고 있습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근심하던 느헤미야는 왕이 신경을 써줄 만큼 왕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도 나와 함께 아파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려운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과부를 돌보는 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사도들을 대신 하여 구제사역을 감당할 일곱을 뽑는데 그때의 선정 기준을 보면 성령이 충만하고, 맡겨진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지혜가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그때만 임기응변으로 적당히 넘어가려한다면 잠시는 통하는 것 같지만 결국 들통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신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세로 가지고 맡은 사명을 갈 감당해야 합니다. 더구나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어도 불꽃같은 눈으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생활 가운데 열매를 맺는 신앙인을 하나님은 들어서 큰일을 맡기십니다.



3. 기회를 잘 활용하는 분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 가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왕비도 함께 있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아닥사스다 왕은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며 묻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나 느헤미야는 간신히 그 마음을 억누르고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렇다고 왕 앞에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 소리를 내어 기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왕의 얼굴은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으로 하여금 그 성을 다시 짓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내친 김에 성격 재건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왕에게 통행증과 자재 사용 허가증을 부탁합니다. 만약에 왕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글쎄요 나무도 필요할 것 같고 벽돌도 필요할 것 같고 그냥 적당히 알아서 주세요. 이런 식으로 왕 앞에서 우물쭈물 했다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대답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골방에 들어앉아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페르샤 사람들의 관습, 예루살렘 주변 정세, 자재 보급 경로, 공사 기간 등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며 성벽의 재건에 관한 구제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자 평소에 생각해오던 바를 왕 앞에서 하나하나 조리 있게 제시합니다.

1) 성 중건 계획을 말합니다.

페르샤 사람들도 조상들의 무덤을 존중하는 것을 느헤미야는 잘 알았기에 직접적으로 예루살렘 성이라 언급하지 않고 나의 열조의 무덤이 있는 성읍을 중건하게 해달라고 그들의 관습에 호소하여 도움을 구합니다.  

2) 돌아올 기한을 정합니다.

왕이 언제 돌아오느냐 물을 때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기한을 말하였습니다. 5:1에 의하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총독으로 12년을 있었는데 왕 앞에서 처음부터 12년을 예루살렘에 있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연기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질문하는 왕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합니다.  

3) 통행증을 요구합니다.

강 서편 총독들이 왕의 조서가 없다면 자기 지역을 지나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통과시켜 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유다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통행을 보장하는 왕의 조서를 요구합니다.

4) 자재사용 허가증을 요구합니다.

삼림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서 성문, 성곽, 자신이 거할 집에 사용되는 건축자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느헤미야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모든 일을 무계획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하는 기도생활과 더불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하며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야 합니다.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영적인 사람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며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실제적인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입었으면 마땅히 감사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복을 간직하고 누리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일이 잘 될 때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왕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기꺼이 허락합니다. 관직에 있는 자로서 왕 앞에서 근심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시적으로 관직을 떠나 황폐하게 된 자기 조상의 성을 수축하도록 보내달라는 용납될 수 없는 부탁을 하였지만 왕은 흔쾌히 허락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던 때가 우기가 시작되는 가을인데 왕이 공사를 하도록 허락한 때는 3월-4월인 니산월로서 공사하기에도 적합한 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환경적인 조건까지도 배려해 주십니다. 예루살렘까지 통과증과 자재사용 허가증도 허락합니다. 보너스로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가도록 병거와 마병을 붙여줍니다. 사실 왕이 느헤미야의 요구를 흔쾌히 다 들어준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곁에서 보좌하던 사람이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그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더구나 아닥사스다 왕은 성벽 재건 사업을 중단하는 조서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성벽 재건을 허락한다면 자기가 내린 조서를 취소해야 합니다.(에스라 4:21) 왕의 체통도 있고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왕은 느헤미야가 요구한 대로 다 들어주었습니다.



왕이 그렇게 쉽게 허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평소에 느헤미야가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왕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며 민족을 사랑하며 간절히 드린 느헤미야의 금식을 보시고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3)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회복함으로 장차 메시야가 임할 여건을 준비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느헤미야는 어떻게 보았습니까?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였다고 확신합니다. 자기가 열심히 기도하였기 때문에, 운이 좋아서, 자신이 계획을 잘 세우고 왕을 잘 설득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형통할 수 없고 설령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제대로 되지 못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더라도 기도로 시작하고 하는 중에도 기도해야 하고 마무리 지을 때도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내게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때 내가 잘해서 운이 좋아서 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다가 그것이 이루어지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입을 씻으며 마땅히 드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감사드리는 것 게을리 하지는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 (출 20:5)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될 영광이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비결입니다.



* 하나님의 일에도 방해는 있게 마련입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 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 일로 인해 심히 근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곽 건축으로 인하여 근심한 이유는 그들이 성전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이후 (스 4:1-6) 유다 백성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사마리아인들이 여호와의 전 건축에 참여하는 일을 거절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예루살렘 성이 다시 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그 지역에서의 자신들의 정치, 군사적 우월성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는 무리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도리어 근심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기뻐합니까? 아니면 근심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반대하고 마지못하여 끌려옵니까?  



*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성벽 재건이라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많았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정치적인 여건, 지리적인 여건, 경제적인 여건, 어느 것을 보아도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의 경험과 직위와 권력을 의지하지 않고 먼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어제까지 4주간을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넉 달이 지나도록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실 때까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응답이 왔다고 생각될 때는 아주 신속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지혜롭게 대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없애주시기 보다 기도하는 느헤미야에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물론 느헤미야의 당면 문제는 성벽 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성벽 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앙과 삶의 개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치유와 회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느헤미야가 생각했던 이상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문제를 앞에 두고 잠깐이라도 하나님께 먼저 기도할 만큼 영적이었으며 왕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만큼 주도면밀한 사람입니다. 그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이런 지혜는 지속적인 기도를 통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지혜를 주셨기에 기회를 잘 포착해 활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감각과 더불어 일을 수행하는 추진력을 가진 균형 있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들과 일하기 원하십니다.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베푸신 좋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007년도에 교회당 신축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볼 때 결코 만만한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단지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온 교우들이 하나가 되어 믿음을 표현하는 기회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엄마 아빠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도 기도하며 힘으로 모아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원합니다. 건축을 하면서 성도들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다는 간증을 갖기 원합니다. 기도로 시작하였고 기도로 마쳤다는 고백을 하기 원합니다. 건축을 하는 동안에 각 가정에 역사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갖기 원합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 원합니다.  



성전이나 성벽의 재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의 회복입니다. 외적 부흥을 넘어 내적 부흥을 있어야 하며 물질적인 것보다 영적인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2006년을 보냅니다. 한해를 돌아봅시다. 성령의 전인 내게 무너진 부분은 없습니까? 내가 속한 가정, 사업, 교회, 사회에서 무너진 부분, 불탄 부분, 중건해야 할 부분, 개혁될 부분은 없습니까? 사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을 모든 성도들을 다 세우는 자, 개혁하는 자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무너지고 황폐해지고 mess-up 된 것을 우리를 통하여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겠다는 말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기도로 교제하며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미래를 향한 주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너진 부분을 다시 고쳐주기 원하십니다.  



2006년을 보냅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철저하게 민족과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007년을 맞이합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 느헤미야와 같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성도들이 느헤미야와 같이 자기의 삶에 충실하며, 항상 기도하며, 쓰임 받을 준비를 하며, 받은바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한 손을 경험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