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탄을 맞는 사람들(3): 목자들 (눅 2:8-20)

Author
Myung Myung
Date
2006-12-24 15:12
Views
5167
눅 2:8-20  성탄을 맞는 사람들 (3): 목자들



영화나 TV 드라마를 제작할 때 이름이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흥행을 보장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얼굴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구속 드라마 중 ‘탄생스토리’ 편에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역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너무 절묘한지라 배역들이 아주 충실하게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메시야의 사역을 예비할 요한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이 지났을 즈음에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1:38) 라 대답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낳은 지 반년쯤 지나 마리아도 해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카메라의 초점이 베들레헴 들 밖으로 옮겨집니다.



당시 로마황제였던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 사람들은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호적을 하기 위하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중에 요셉도 끼여 있었습니다. 요셉은 유다 지파 사람이라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세금 징수와 징집을 위한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할 수 없이 베들레헴으로 간 것 같으나 그 뒤에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신 것임을 의미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미 700년 전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요즘처럼 교통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 성읍에서 남쪽으로 약 8km 쯤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가자면 보통 사람도 삼일은 걸리는데 더구나 만삭이 된 마리아를 이끌고 베들레헴까지 가려면 아마 며칠은 더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만삭이 되면 서 있어도 힘들고 앉아 있어도 힘듭니다.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힘이 듭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제 아내가 해산을 앞두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세 차례에 걸쳐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 부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하기는 하였지만 있을 곳을 미리 정하고 온 것이 아닙니다. 호적하기 위하여 각처에서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빈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를 데리고 이 여관 저 여관을 다니는 요셉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를 점점 힘들어 하는데 머물 곳이 없으니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나마 다행으로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는 냄새나고 불결한 헛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마리아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보통 사람들도 있기 꺼려하는 누추한 곳에서 나셨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특권과 영광을 버리시고 구유에 누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시며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은 ‘성탄을 맞는 사람들’ 시리즈 세 번째로 아기 예수를 영접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목자들의 모습 속에서 성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 목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1)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그 당시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그룹입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입니다. 당시 지도층으로부터 멸시 받는 사람들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양들 곁에 있으니 그들에게는 좋은 냄새가 났을 리 없습니다. 목자들은 유명한 사람, 부유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 종교적인 사람,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그들을 선택하셨기에,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다는 너무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2) 사명에 충실한 자들입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 마을 밖 들녘에서 자기의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처소에서 편히 쉬거나 잠자는 시간에 목자들은 쓸쓸하고 적막한 들에서 양들을 돌보는 책임을 수행합니다.  만일 목자들이 양들을 내버려두고 따뜻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 마을로 들어갔다면 주의 사자를 만나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목자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요, 그저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스토리와 관련되어 천사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이 무서워 떱니다. 목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밤중에 천사가 그들 곁에 섰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비추자 처음 당하는 이 광경에 목자들은 너무도 놀랐습니다.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소식을 전합니다. 2:10,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기쁨을 잃은 민족, 소망을 잃은 민족, 영적으로 갈급한 유대민족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 소식의 내용은 지금 다윗의 동네 즉 베들레헴에 백성들을 위하여 구세주요 메시야요 주님 되시는 분이 나셨는데 그가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예수라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자기들을 건져줄 메시야를 기다려 왔으나 예수님은 죄와 심판으로부터 건져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천사가 말할 때 적막한 베들레헴 밖들에서는 기쁨의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허다한 천군천사들이 장엄하게 찬송을 부릅니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평화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보혈로 씻김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 로마황제들은 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힘으로 빼앗는 로마 입장에서 본 일시적인 평화였습니다. 침략을 당하고 빼앗기는 나라 입장에서 볼 때는 고통과 슬픔과 좌절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목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들의 모습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저희 모두에게 좋은 본을 보여줍니다. 목자들이 가진 모습을 우리가 가진다면 성탄절을 준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싶어 했습니다. (They were curious)

천사가 목자들에게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천사들이 찬송을 부른 후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났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잖아.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야. 빨리 베들레헴으로 가서 일어난 그 일을 보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의심하거나 진짜인가 확인하기 위하여 간 것이 아닙니다. 천사를 통하여 주신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목자들은 베들레헴 성내로 달려가서 하나님의 큰 이적을 직접 눈으로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고 그분이 하신 일을 알고 싶어 해야 합니다.

호 6: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바울은 신앙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알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할지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대상 28:9b,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신앙생활의 연륜이 길어질수록 타성이 젖기 쉽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 빠져본 적이 없어. 내가 왕년에 교회일은 도맡아 했어. 예배부, 선교부, 교육부 안 해본 것이 없어. 나도 할 만큼 했어. 그런데 지금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역에 참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 내는 사람에게 몇 마디 툭툭 던지면서 낙심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세를 가진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 하십니까? 예수님을 더 닮고 싶어 하십니까?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자세입니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보다 주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성탄절에 주님을 더욱 알려 하는 구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습니다. 신앙의 연륜에 상관없습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특히 삶에 위기를 맞이할 때 우리는 더욱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풍성하여집니다. 고난을 헤쳐 가는 비결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과 성도의 교제를 통한 격려와 위로입니다. 목장이 바로 그런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목장이 삶을 함께 나누며 고민하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복을 받는 삶입니다.  



목자들은 양떼를 치며 함께 삶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의 하였습니다. 목자들은 대화를 나누면서 천사를 통하여 전해주신 내용을 직접 보러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 것을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그들이 모르는 것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아는 것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기들이 경험한 것만을 나누었습니다. 요일 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연히 믿는 사람들과 주로 교제하게 됩니다. 불신자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교인들끼리 교제를 나누는 것을 편안해 합니다. 누가 가장 효율적인 전도자입니까?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재능이 있는 전도자는 누구입니까? 이야기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무엇을 말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전도에 관한 교육을 더 받아야 합니다. 전도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도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나면서 소경된 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죄인이라는 좁은 틀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지 못합니다. 소경이 눈을 뜬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그들은 소경이 눈을 뜨지 말아야 하는데 눈을 뜬것처럼 그를 심문하고 몰아세웁니다. 그의 부모까지 소환하여 대질 심문합니다.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요 9:24)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를 죄인으로 몰고 가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소경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One thing I do know: I was blind but now I see. 전에는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얼마나 powerful한 간증입니까? 종교지도자로 자부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기의 경험을 담대하게 말합니다. 소경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것을 말했습니다. 소경은 바리새인들이 가졌던 종교적 지식은 없었으나 예수로 인하여 눈을 뜨게 된 부인 할 수 없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전에는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대로 행하였으나 이제는 주님 뜻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예수를 믿음으로 변화된 저희 모두에게 듣기 원하시는 말이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기 원하시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이야기해도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바꾸신 경험이 바로 ‘나의 이야기’(my story)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나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주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살아 계시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연관되어 실제 일어난 이야기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신 경험이 ‘우리 이야기“ (our story)입니다. 내년에 있을 교회당 건축을 통하여 ’우리 이야기‘를 많이 갖기 원합니다. 건축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역사하신 풍성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에 관한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무슨 내용이었겠습니까? 구세주요, 메시아요 주님으로 오신 이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에 대하여 말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듣는 자들 중에는 목자들의 전하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표현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찬양이 여러 번 나옵니다. 사가랴가 찬송을 부릅니다. 엘리사벳이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자기에게 된 일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천사가 전하여준 말들이 다 이루어진 것을 깨닫고 목자들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들이 자기들의 삶의 현장인 양을 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목자들은 그 밤에 양을 돌보면서도 피곤하지도 않고 신세타령도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드리는 가장 귀한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성령 충만할 때, 말씀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1) 성탄절은 삶을 변화시키는 이벤트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십니다. 성탄절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단순한 휴일이 아닙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event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셔서 인간이 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으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며 자신들이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본질입니다.



2) 우리는 구도자, 전도자,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구도자들이었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들이었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들도 목자들을 본받아 진정한 구도자, 전도자,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질 때 저와 여러분은 성탄절을 축하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축하할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경배했던 그 아이는 누굽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자들이 만났던 그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나실 때는 천사들이 그 소식을 알려주었으나 이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전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이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한때 번영했던 로마제국의 영화는 오늘날 유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구유에서 나심으로 시작한 예수님의 역사는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가장 크고 좋은 소식이요 기쁨이 됩니다. 주의 나심을 기념하는 이 계절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누리는 그 위로와 평화를 누리시며 하나님께 구원의 찬송을 부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