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탄을 맞는 사람들(2) 마리아 (눅 1:26-38)

Author
Myung Myung
Date
2006-12-17 16:59
Views
4147
눅 1:26-38 성탄을 맞는 사람들(2): 마리아

  

성탄절이 한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절 바로 전날인 23일 토요일은 금년 들어 최대의 shopping 날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한주 동안 shopping mall들마다 사람들로 넘쳐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 shopping을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계획하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느라 분주할 것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계절인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과연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벳의 태의 문을 열어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갖게 하셨습니다. 사가랴 스토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무서워 말라 너의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사가랴에게 말씀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낙심하거나 염려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사가랴와 같이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 문제를 가지고 담대히 나아가며 끝까지 기다릴 때 사가랴와 같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가랴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본다면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성탄절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자세를 또 다른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됩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주는 이 사건을 살펴보면서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입으며 마리아가 경험했던 기적을 삶 속에서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가브리엘 천사는 나사렛을 방문합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도 많이 살고 있고,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신 지역이지만 정통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방의 갈릴리라고 (마 4:15) 불릴 정도로 무시를 당한 곳입니다. 더구나 나사렛이란 동네는 갈릴리 남부에 위치한 아주 조그만 산동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사람들이 별 볼일 없이 여기는 촌 동네에서 역사하십니다.



*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던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본문을 볼 때 마리아는 신앙이 있는 유대 여인입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나사렛의 헬리였고 어머니는 베들레헴의 안나였습니다. 마리아는 십대 소녀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마 14살에서 17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고등부 학생들 나이에 해당됩니다. 천사가 찾아왔을 때 마리아는 다윗의 가문에 속한 청년인 요셉과 정혼한 상태였습니다. 어린 소녀인지라 아마 마리아의 부모가 그의 정혼을 주선했을 것입니다. 정혼을 하면 결혼할 때까지 보통 1-2년 정도 걸립니다. 또한 그 당시 유대인들의 약혼은 오늘과 달라 결혼과 같은 법적인 구속력을 갖습니다. 정혼을 하면 법적으로는 결혼을 한 것이고 사정이 있어 파혼하려면 이혼 수속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마리아가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내였지만 실제로는 처녀였습니다. 본문에는 마리아 앞에 처녀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는 도구로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왜 처녀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는 구원 사역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의 죄를 완전히 책임지시려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녀인 마리아를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그릇으로 선택하시고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은 법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십니다.

  

*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수님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 구속 드라마의 각본을 쓰시고 연출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원시복음이라고 불리는 이 구절에서 메시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나실 것을 예언합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면서 메시아가 처녀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실 것을 이사야는 주님 오시기 700년 전에 예언하였습니다.



사가랴에게 찾아가신 주님께서 마리아에게도 찾아가십니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6달 전에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났을 때 사가랴는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심히 당황합니다. 이 인사가 무슨 뜻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그 일로 인하여 영광을 받기 원하십니다.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엘리사벳을 선택하여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메신저를 낳는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를 선택하여 메시야를 낳는 도구로 삼고자 하십니다. 엘리사벳이 경험한 기적은 마리아의 초자연적인 임신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 년이 가고 십 년이 가도 그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바심을 내고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아브라함 부부가 가나안에 도착한지 25년째가 되는 해에 약속의 아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24년이 될 때까지도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자 사라는 이삭을 낳았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5)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오십니다. 그런데 오는 순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사가랴에게 먼저 나타나 엘리사벳이 애를 가지게 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본문은 “여섯째 달에”로 시작합니다. 나이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한지 여섯째 달이 되자 가브리엘이 두 번째로 나타나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3)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성경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안타까워 하는 여성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여시니 아이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대표적인 여인이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입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말씀은 지난 24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을 듣고 잠잠합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분량만큼 되지는 못하였다. 사실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도 사라를 만나서 약해져 가는 그의 믿음의 붙들어주려는 데 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대화 내용을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에그 망칙해라 내 나이 몇 살인데 아이를 가질까? 그것이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에 대한 사라의 반응. 90세가 된 할머니로서 자기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일 년 뒤에 아들을 품에 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라의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사라는 문 뒤에서 몰래 웃었지만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자기의 불신앙적인 행동을 들킨 사라는 두려움 속에서 자기가 웃은 사실을 부인합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사라의 얼굴이 무안해서 빨개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왜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안 웃었다고 우기는 사라의 잘못을 지적하십니까? 사라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지 않는다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동침하여 이삭을 낳을 수 없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임을 사라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원하십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할머니가 아이 낳는 것을 왜 못하시겠습니까? 말씀의 도전을 받고 사라도 아브라함처럼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히 11:11, “믿음으로 사라는 나이가 지나서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속해 주신 분을 신실하신 분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이었을 때는 속으로 웃었으나 믿음으로 이삭을 낳은 후에 사라가 감격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천사는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증거로 엘리사벳의 예를 듭니다. 나이 많아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도 이미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마리아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1:39,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어떠한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그 일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 능력이 나타납니다.

  

* 하나님께서 어떻게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까?

1) 은혜로 선택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세상적으로 볼 때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골 산골짜기 작은 동네에 사는 평범한 십대 소녀일 뿐입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까?

마리아가 이 같은 영예를 얻기 위하여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마리아가 이 같은 영예를 얻기 위하여 간절히 바라고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마리아는 이 특권을 받을 만한 어떤 자격도 그것을 갖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공짜로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내년은 돼지해인데 특별히 60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 해라 하여 많은 가정에서 내년에 맞추어 애를 낳으려고 법석을 떤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황금돼지해에 아이가 태어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행복하게 됩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자로 선택된 것은 세상적인 면에서 볼 때 대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마리아가 남보다 특별히 더 높은 신분을 가졌다거나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거나 전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만한 그릇으로 보셨기에 마리아를 선택하셨습니다.



2) 사명을 주기 위하여 선택하셨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 대하여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1) 장차 태어나게 될 아이는 보통 여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잉태됩니다.

보통 여자의 임신은 남녀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나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임신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합니다.

2) 장차 태어나게 될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일컫게 될 것입니다.

3) 아이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장차 태어나게 될 아이의 이름은 예수인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이름처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조상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아 육신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초월하여 영적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메시야라고 합니다. 그가 다스리시는 땅은 팔레스타인 지방 뿐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요 영원한 세계까지입니다.



3) 축복하기 위하여 선택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의 모친이 되는 복입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를 위하여 마리아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천사가 전해 주는 말을 듣고 믿음으로 받고 순종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리아의 순종을 기뻐하셨기에 엘리사벳의 찬송을 통하여 마리아에게 영광스러운 ‘주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사랑받는,’ ‘높여진’이란 이름의 뜻을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어 성경에 나오는 여인 중에 가장 큰 복을 받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1)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천사를 보는 것이나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듣는 것이나 전혀 예상치 못하였던 일인지라 처음에 당황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으나 그 말씀은 믿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을 몰랐기에 가브리엘 천사에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고 방법을 묻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장차 태어날 아이는 요셉과의 결합을 통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막을 덮은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마리아에게 덮일 것을 말씀합니다.  



2)  겸손하게 말씀에 반응합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제안에 대하여 1:38, “주의 계집종이오니”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부릅니다. 종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주인의 뜻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자신을 굴복시킵니다.



3)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는 때로 커다란 결단이 필요합니다.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에 아낌없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결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왕의 부름이 없이 왕의 앞에 나아가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몰랐으나 에스더는 삼일을 금식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다” (에 4:16) 라는 각오를 가지고 아하수에로왕 앞에 담대하게 나아갔을 때 유대민족을 멸망 직전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풀무 불에 던져질 상황에 처했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설령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풀무불 가운데서 죽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데서 나오는 결단의 행동을 보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쓰임 받은 사람들은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전에 들어보지 못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임신해야 합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 전에 임신한 것이 밝혀지면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자기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1) 남편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2) 사람들에게 부정한 여자로 취급받아 돌에 맞아 죽을 지도 모릅니다. 3) 설령 산다 해도 평생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지 모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다는 너무나 엄청난 말을 인하여 생각할 시간을 달라든지 아니면 허락을 함으로 자기에게 닥칠 불이익을 생각하며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동일한 능력의 말씀으로 마리아에게 전하였을 때 마리아는 믿음으로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비천한 나를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의지적 표현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은 앞으로 당할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초월합니다. 그 결과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1)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체험한 마리아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2) 우리에게 사명을 주기 위하여 선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지으신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소녀인 마리아를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행위로 부름 받고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본인 말마따나 비천한 계집종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기 위하여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베푸는 자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듯이 우리 각자를 향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를 축복하기 위하여 선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과 겸손과 순종을 통하여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실 왕을 낳았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위하여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진정한 헌신은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십니다. 그런데 주어진 임무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내 능력 밖인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슥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아무 것으로나 우리의 인생을 채워서는 안 됩니다.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성령은 아무리 충만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가장 큰 도전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할 때 불가능이 없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십니다. (슥 4:6)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메시아는 마리아의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믿음의 바탕 위에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이름대로 그 백성을 구원할 구원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루시고 다스릴 왕으로 오셨습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생애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의 구주가 되시며 왕이 되십니다.  



교회적으로 건축을 준비합니다. 새 교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싶기는 하지만 누가 물질을 드려 교회당 건축을 할 것인가 한다면 선뜻 나서기를 주저합니다. 주일예배 꾸준히 참석하는 가정이 7-80 가정인데 600만불 project. 부담이 너무 큰데. 우리 교회 형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번에 모금이 부족하면 phase 1, phase 2 로  나누어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육관과 친교실을 먼저 짓고 본당을 나중에 지을 것입니다. 그 사정도 여의치 않으면 상황에 따라 건축을 조금 늦출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 자세입니다. 형편이 좋아서 아무 문제없이 건축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에 건축이란 문제를 주셨습니다. 주신 문제를 믿음으로 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4주간 특별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교회당 건축은 단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을 통하여 그 뜻을 이루신다는 자체가 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고 순종하는 신실한 자들, 경건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순종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십니다. 우리 모두가 문제에만 빠져있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기 원하십니다. 능치 못함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기도합시다. 주님을 붙잡으세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서 기쁨으로 주님을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고 어두움을 빛으로 만드시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소망을 두고 그분과 동행하면서 날마다의 삶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기적이라 부르는 놀라운 일들을 때마다 시마다 경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