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탄절의 사람들(1): 사가랴 (눅 1:5-13)

Author
Myung Myung
Date
2006-12-10 14:26
Views
6598
눅 1:5-13 성탄절의 사람들(I): 사가랴  



2007년 2월 15일부터 발행될 예정인 1달러짜리 동전에서 미국의 공식 국가구호인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는 문구가 삭제됩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Out of Many, One)라는 뜻의 라틴어인 ”E Pluribus Unum'이란 문구를 집어넣습니다. 청교도의 신앙을 토대로 출발한 미국이 점점 세속화의 물결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도 예수님 때문에 생긴 절기이고 예수님만이 주목을 받아야 할 절기인데도 예수님이 점점 사라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교회 찬양팀이 shopping mall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성탄절이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계절인데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과연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성탄 준비는 아는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가질 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 준비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할 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나의 삶 속에 깊이 맞이하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가랴에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역사를 보고 그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이번 성탄절에는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부터 ‘성탄절의 사람들’ 시리즈를 3번에 걸쳐 다루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봅니다. 그 과정에 그들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사실 사가랴라는 이름은 성탄절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아닙니다. 성탄절하면 마리아와 요셉, 동방박사 그리고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소개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에 앞서 사가랴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먼저 언급하면서 누가복음을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오시기전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백년 동안 구속 사역을 준비하셨고, 때가 되니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는데 그전에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하는 메신저를 보내십니다. 그가 바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세례자 요한입니다.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어떤 사람들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1)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그리고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론의 후손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요 모세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첫 번째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듯이 제사장은 희생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자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를 가야하는 것처럼 제사장이 되겠다는 감동을 받았다고 제사장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아론의 직계손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선택하는 직업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누가복음 1:36절을 보니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친척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친척 지간입니다.



2)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가는 사가랴 부부를 가리켜 노아, 아브라함, 욥과 같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로운 (upright) 사람이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사람을 뜻합니다.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의로움을 눈으로 보고 인정합니다. 흠이 없는 (blameless) 것은 사가랴가 전혀 죄가 없고 완전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마음에 품은 생각, 동기, 그에 따른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 사가랴를 둘러싼 상황은 어두웠습니다.

1) 시대적 상황이 어두웠습니다.

그 당시 유다 왕은 통상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라 불리는 헤롯으로서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로마 정부의 비호 하에 유다 왕으로 재위하며 폭정을 행하였습니다. 또한 세리들의 과도한 세금 징수를 인하여 일반 백성들은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로마의 속국인지라 군병들의 압제에도 시달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도 로마의 통치자들에 의하여 임명되거나 면직될 정도로 종교적인 자유를 상실하였습니다.  

2)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사가랴 부부가 살던 당시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들리지 않던 영적인 암흑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된 백성을 아직도 사랑하시는가? 언제까지 로마의 압제에 시달릴 것인가?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는 언제 나타나실 것인가?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였습니다.

3) 가정적으로 어두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흠이 없이 산다면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아 걱정 없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 부부는 노년이 되어도 슬하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다는 것이 사가랴 부부에게 커다란 아픔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하나님의 종으로 진실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의 의무를 게을리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문제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잘 섬겨도 소용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지라도 때로는 문제에 부딪치거나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운데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거룩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사가랴에게 찾아오십니다.

8절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마침. 인간적으로 볼 때는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십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엘리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을 24 반차로 나누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도록 한 것은 다윗 왕 때부터였습니다. 누가가 이 복음서를 쓸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25000명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예배에 관련된 모든 일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 24 반차 가운데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은 여덟 번째 반열이었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 때에는 제사장 전원이 참여하였지만, 그 이외에는 일 년에 두 차례씩 한 주간 동안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할당되었습니다. 이들의 수가 많았으므로 제비를 뽑아 임무를 배당하였는데 임무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성소의 향단에 분향하는 일이었습니다. 분향의 직무가 워낙 거룩한 것이어서 이 직무를 맡았던 제사장에게 평생의 영광이 되었으며 일단 분향의 임무를 담당했던 제사장은 평생 동안 그 임무를 다시 맡을 수 없었습니다. 사가랴가 속한 아비야 반열이 분향을 드릴 차례가 된 것이나 성소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야 했는데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기회에서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분향을 드릴 자로 제비에 뽑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가랴가 규례에 따라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합니다. 분향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계 5:8,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분향은 하나님께 기도드림을 상징합니다. 사가랴는 성전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기도하고 백성들은 성전 밖에서 기도합니다.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만 초점이 맞추어진 그 경건한 시간에 하나님이 보낸 사자가 향단 우편에 섭니다.  지난 400년 동안 아무 응답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니 사가랴가 분향하고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약속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메신저가 사가랴 부부 사이에서 태어날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치고 갈등하고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며 절망해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을 끈질기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금대접에 담겨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특별기도회를 통하여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각 가정을 위하여, 믿음의 지체들을 위하여,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는 천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무서워 떨었습니다. 사가랴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두려워 떠는 사가랴에게 천사가 “무서워 말라”고 합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your prayer has been heard. “너의 기도”라 함은 백성을 위하여 드리는 중보기도 이외에 사가랴 자신의 기도를 말합니다. 사가랴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간절한 마음으로 주께 드린 기도를 말합니다. 평소부터 가장 마음에 두고 있던 기도를 말합니다. 또한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료형입니다. 성소에 들어와 지금 한번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기도해왔습니다. 또한 사가랴가 드린 그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계속 들으셨습니다.



사가랴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지 전날 아마 엘리사벳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여보 내일은 당신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당신의 생애에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리고 당신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보, 당신이 기도할 때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지 않으시겠어요? 하나님께 우리의 아픔을 가져가지 않으시겠어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 아닙니까?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시겠어요? 나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시겠어요?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니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응답이 임하였습니다. 우리를 기도를 드리면 당장 응답이 와야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 생각보다 지체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wait 기다려 하는 것도 응답입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 그 아들은 네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많은 사람이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그는 포도주와 독한 술을 입에 대지 않을 것이요, 어머니 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의 선구자로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 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라고 천사는 말합니다.  



아이를 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요한의 뜻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사가랴 부부에게 하나님의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길을 예배한 세례자 요한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왜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를 먼저 기록하였을 까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요한은 구약에 약속된 메신저입니다. 그의 사명은 약속된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예수님보다 먼저 나타나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장성하여 사해 가까운 유다의 광야에서 그의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가 광야의 예언자로 나타났을 때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엘리야를 생각했습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 영적인 암흑시대에 세례자 요한의 출현은 유대 사회에 큰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며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베풀다 예수님이 본격적인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임무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성탄절이 다가와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을 인하여 염려하거나 낙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동안 해온 신앙생활에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가 오늘까지 교회에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했는데 과연 이게 가치 있는 일일까? 주님을 섬기면 향편이 나아져야 할텐데 공연히 헛수고 한 것은 아닌가? 때로 낙심이 됩니다. 좌절감이 생깁니다.  당장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질병의 문제, 직장의 문제, 관계의 문제 그 문제를 인하여 고통을 느낍니다.

이락에서 매일 여러 명의 사상자가 생기는데 내 남편은 안전한가?  

직장에서 lay -off 당했는데 당장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다음 달이면 비자가 만료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는가?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한가하게 교회에 가서 기도만 할 것인가 누구라도 찾아가서 이 안타까운 사정을 호소해야 할 것은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우리는 다양한 수준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택하신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당신의 백성을 돌아보시고 고민과 수치를 말끔히 씻어주시고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십니다. 백성들의 안타까움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 한번 택한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그 하나님을 대해야 합니까?

본문은 이 아침에 우리에게 귀한 도전을 줍니다.

우리 자신을 사가랴와 동일시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21세기의 사가랴입니다.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습니다. 사가랴가 그의 가장 큰 관심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았던 것과 같이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를 주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의 대제사장,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다시 사신 주님께서 지금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옆에 계십니다. 거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롬 8:34,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계십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히 4:16)



사가랴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고통, 좌절, 슬픔,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비자의 문제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고쳐주소서.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소서. 주님께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히스기야의 통곡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께서 또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우리 각자를 향한 주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고, 우리는 환경에 눌리지만 하나님은 그런 제약을 넘어서 역사 하십니다. 주 안에서 승리의 비결은 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붙들려서 사용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있으며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있던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니 일어나 하나님의 큰 군대를 이루었던 것 같이 우리는 약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실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도 창조적인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바울은 복음이 전파되어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되기만 하면 살든지 죽든지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초월한 신앙,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간절함이 그의 마음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에 한번 주님과의 돌아보며 점검하며 새롭게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내게 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저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나의 삶을 오늘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내가 그분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금년 한해를 돌아보며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경건한 자를 찾으십니다.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본성을 깨뜨려 주시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능력,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저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 말라 너의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현재의 환경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사가랴와 같이 문제를 가지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으신 주님,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며 사가랴와 같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