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바울의 일차 선교여행(1) (행 13:1-12)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1-14 14:27
Views
4084
행 13:1-12 바울의 일차 선교여행(1)  



저희 교회에서 선교팀이 다음 주 월요일인 22일부터 28일까지 도미니카를 다녀옵니다. 그동안 도미니카에서 사역하시는 전영구 선교사님을 후원하였는데 그 사역의 현장을 방문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아울러 교우들이 정성껏 마련해준 물품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는 선교사가 있고 보내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두 그룹이 다 필요합니다. 지금은 이미 파송된 선교사들을 주로 후원하지만 언젠가는 교우들 중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교의 현장으로 떠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본문에 보니 안디옥 교회가 온 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선교사를 처음으로 파송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로 일어난 환난을 인해 흩어진 성도들의 전도를 통하여 세워졌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데 그중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고 그들이 모인 교회가 안디옥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헌신적인 사역을 통하여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고생할 때에 교회 차원에서 헌금을 모아 바나바와 바울 편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장은 사도행전 전체의 흐름 속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대표적인 선교사가 베드로에서 바울로, 선교 대상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선교지가 팔레스타인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바뀝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로 부르심을 입은 교회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하고 파송한 선교사들을 통하여 어떤 선교의 열매를 거두는지 살펴보면서 저희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선교와 사역의 열매를 풍성한 거두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안디옥 교회의 특징

1)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지도자들이 리더십을 이루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이끌고 있는 사역팀이 소개됩니다. 누가는 그들을 예언자와 교사로 소개합니다. 즉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은 예언과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장차 있을 일을 말한다는 의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 헬라파 유대인으로 레위지파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파송한 안디옥 교회의 가장 주도적 인물입니다. 시므온은 ‘검다’는 의미의 니게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까지 지고 갔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므온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루기오는 구레네 출신입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리비아이므로 시므온과 루기오는 아프리카 출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나엔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와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난 귀족 출신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나바의 권유를 받고 다소에서 온 사울은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이들의 면모를 보면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준비시킨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들의 출신이나 배경은 다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교인들을 가르치고 돌보며 교회를 성장시켰습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합니다.

안디옥교회는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주을 섬기며 금식하니 교회는 든든히 서 갑니다. 그러다가 그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에서 기둥과 같은 사역자들입니다. 그러자 교회가 다시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금식을 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기 위함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안디옥 교회는 이방선교의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택하신 두 사람이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예비하신 사람들인 줄 알고 그들에게 안수한 후에 파송합니다. 개척된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은 교회에서 두 사람의 능력 있는 사역자들이 빠지는 것이 큰 손실이지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비전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에는 이와 같은 희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 키프로스에서 첫 선교를 시작합니다.  

바울은 일생에 세 번 선교 여행을 했는데 이번이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안디옥에서 북서쪽으로 약 16마을쯤 떨어진 항구도시 실루기아로 갑니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바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마가를 수종자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동부 해안에 위치한 살라미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말씀을 주로 전하는 무대는 유대인 회당입니다. 여러 회당을 순회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러 회당이 있는 것을 보면 키프로스 섬에 유대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팀은 섬 중앙부를 지나 서쪽 끝에 있는 바보에 이릅니다. 바보하니까 어감이 이상한데 멍청이들만 사는 동네가 아니라 헬라어 원어로 ‘Paphos’ 입니다. Paphos는 키프로스의 수도인지라 지방 총독(proconsul)이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총독은 로마황제가 임명하지만 지방 총독은 원로원에서 담당합니다.



*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 당시 키프로스 지방 총독의 이름이 서기오 바울입니다. 스페인 출신 프로골프 선수 중에 Sergio Garcia 라는 젊은 선수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헬라어로 Sergius Paulus입니다. 누가는 서기오 바울을 총명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는 선교팀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들으려고 할 때 방해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예수(Bar-Jesus)라 하는 유대인 거짓 예언자이자 박수 무당이었습니다.  히브리 이름에 bar이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대신에 풀려난 사람이 바라바인데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렇다면 바예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아들, 즉 구원의 아들이라는 좋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악합니다. 그는 총독의 밑에서 거짓 예언을 하면서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팀이 등장하자 그가 위협을 느끼고 총독으로 하여금 어떻게 하든지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힘을 썼습니다. 총독님은 저런 친구들과 같이 계시면 시간 낭비 하십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은 전혀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그때 사울이 성령이 충만해서 마법사를 주목합니다. 주목한다는 단어가 언제 나왔습니까? 행전 3장에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성전 미문을 지나다가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를 볼 때 주목하였습니다. 사울은 바예수를 조종하고 있는 마귀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라는 이름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까?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Saul who is called Paul).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고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고 파송 받을 때까지 사울이라는 히브리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지금부터 이방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울을 가리킬 때마다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예수를 무섭게 책망합니다.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길을 굽게 하는 일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10절) 너는 각종 술수를 쓰며 거짓을 행해왔다. 너는 마귀의 하수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수야 원수. 하면서 바예수의 정체를 밝힙니다. 내친 김에 그에 대한 저주가 선포됩니다. 그 저주는 바울 개인이 하는 저주가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저주입니다.



보라: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능력의 손으로 바예수를 벌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주의 손이 너를 내리치실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11절) 바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개와 어둠이 바예수를 덮었기에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바예수는 앞을 더듬으며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총독은 주를 믿게 되었고 바울 일행이 전하는 주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예수가 소경되게 하는 이적을 총독의 목전에서 행하게 한 것은 두 선교사가 믿고 전하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할뿐더러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 앞에 굴복하게 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선교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발견됩니다.

* 성령께서 선교를 계획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성령의 선교의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는지라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어머니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선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유대인들이 전도의 대상이었으나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 팔레스타인을 넘어 수리아 안디옥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됩니다.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바울을 불러 회심시키신 하나님은 고넬료의 회심을 통하여 이방인 선교의 시작을 알립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을 통하여 성장을 한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 선교의 전진기지가 되어 그곳에서 바울의 제일차 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선교사를 세웁니다.

-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역지와 사역을 결정합니다.

-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사역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불러 세우시고 교회를 통하여 파송하십니다.



* 바울의 선교 전략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1) 그 지방의 수도나 제일 큰 도시를 방문합니다.

바울의 이방인 선교사역은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안디옥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의 세 번에 걸친 선교여행의 행선지를 보면 수도나 교통이 발달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 도시를 반드시 방문합니다. 마게도냐의 수도 데살로니가,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 궁극적으로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를 방문하게 됩니다. 본문에도 보니 바울은 키프로스 섬을 방문하면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살라미를 거쳐 키프로스 섬의 수도이며 총독이 머물고 있는 바보로 갑니다.



2)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갑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그 원칙을 고수하며 먼저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듣지 않으면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선교팀은 살라미에 있는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가서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선교합니다.

고대 계층사회에서는 높은 계층의 사람이 낮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바울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회심시킴으로 많은 복음의 열매를 거두려고 하였습니다. 총독의 회심은 키프로스 섬 의 복음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 선교는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이란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전쟁터에 있습니다. 사단이 침투할 수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단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교사역도 예외가 아닙니다. 선교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는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선교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도를 전한다는 전도의 개념이 선교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우리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돕는 하나님의 일꾼들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구원의 열매를 계속 거두기 원하십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다른 교회를 계속 세우기 원하십니다. 구원 받은 민족을 통하여 다른 민족을 계속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대적하는 것이 마귀의 사명입니다. 따라서 선교할 때 반드시 영적 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 중의 한 원리가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반드시 이긴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의 대적인 사단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소홀히 여길 수 없고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 마귀라고 불리는 사단의 특징

1) 사단은 유혹하고 속입니다.

사단은 성경에 보면  `시험하는 자'(마 13:16, 요일 5:18), `참소하던 자'(계 12:10), `원수'(마 13:39, 눅 10:19), `대적'(벧전 5:8), `귀신의 왕'(마 9:34, 12:24, 막 3:22, 눅 11:15), `이 세상 임금'( 요 12:31, 16:11),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로 불립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간시켜 불순종의 길로 타락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또한 예수님까지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순종의 길에서 실족시키기 위하여 광야에서 유혹하였습니다. 교회의 싸움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바울은 말합니다.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사단의 본질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하고, 인간(과 세계)을 죄와 죽음 속으로 떨어뜨리려는 것입니다.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빛의 사자'로 가장하므로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2) 부지런히 삼킬 자를 찾습니다.

사단의 특징이 욥기에 잘 나옵니다. 욥 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삼킬 자를 찾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쏜살같이 매와 같이 달려듭니다. 그렇기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약 4:7) 하는 야고보의 말처럼 마귀를 바로 알고 대적해야 합니다.



3) 사단의 공격은 집요합니다.

눅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유혹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랬더니 잠깐 동안 물러갔습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여러 가지 형태로, 특히 종교지도자들을 통하여 공격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그랬더니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사단이 아니라 잠시 사단에게 이용당한 것을 말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이런 유혹을 하였다면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번 유혹을 이겼다고 방심은 금물입니다.



* 구약에도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설교 중에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구약을 보면 ‘누가 참신인가’(who is true God?) 하는 주제로 이야기가 많이 진행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는데 그 재앙의 소재로 삼으신 것들이 대부분 나일 강, 태양, 개구리 등등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존재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무엘상 5장을 보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이기고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빼앗아 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 다곤이 여호와보다 더 강하여 이긴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빼앗은 것은 그들이 강해서도 그들이 섬기는 신이 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셨을 뿐입니다. 법궤가 블레셋에 머무는 일곱 달 동안 블레셋은 재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다곤 신상 앞에 두었는데 아침에 보니 궤 앞에 다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우연히 쓰러진 줄 알고 일으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에는 엎드러졌을 뿐 아니라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다곤은 몸뚱이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법궤가 있는 블레셋의 수도 아스돗 성에 독종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손이 우리와 우리의 신 다곤을 친다” 면서 법궤를 다른 도시로 옮깁니다. 그러나 아스돗에서 가드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법궤가 옮겨질 때마다 그 성들은 독종으로 인하여 엄청난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제야 블레셋은 정신을 차리고 법궤를 이스라엘에 돌려보내면서 여호와가 참신 것을 알게 됩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에 바알을 섬기고 아세라는 섬기니 엘리야 선지가 담판을 내려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모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왕상 18:20) 바알 선지자들이 별짓을 다해도 하늘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아 버렸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다 쳐 죽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영적 전쟁은 계속됩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마귀는 종교지도자들이나 무리를 선동하여 계속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경고하였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이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 어떻게 가능합니까? 영적 전쟁의 승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1)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십니다. 태어날 때도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에 충만하여 광야에 나가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오셨습니다. 기도를 통한 성령 충만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주변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위하여 기도하여야겠습니다. 안디옥 교인들은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 언급된 하나님의 전신갑주.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에다가 유일한 공격무기가 있는데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하나님을 많이 읽고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잘 이해하였고 암송하였기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면서 가장 적절한 말들을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단으로 인하여 닥치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믿는 자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도록 허락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미쁘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고전 10:13)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세상의 어느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음을 기억하면서 담대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의 사역팀은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고 다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고 선교사로 안수하고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키프로스로 갑니다. 선교현장에서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마귀를 대적하여 이깁니다.



바울의 선교 여행은 영적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첫 사역지부터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바울과 바예수의 이 만남은 바울을 인도하는 성령과 바예수를 조종하고 있는 마귀와의 영적인 대결입니다. 사단은 바예수를 내세워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능력으로 제압합니다. 오늘날도 영적 전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누구든지 마귀의 하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믿는 자들의 개인적인 경건생활을 방해합니다. 가정의 행복을 방해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방해합니다. 선교 사역을 방해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을 빼앗고 시험에 빠지게 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했느냐’ 또는 ‘얼마나 배웠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사는가,’ ‘얼마나 성령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는 자들에게, 특히 복음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려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부어주십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의 비결을 각자에게 적용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한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 이기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