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 (느헤미야 3장)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1-07 14:33
Views
12836
느헤미야 3장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교우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 지난해를 어떻게 보냈든지 새로운 꿈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까? 이왕이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한해를 보내야겠습니다. 전 9:10,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금년이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도 교회당 건축 project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흥분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라는 말을 입술로는 하지만 그것을 막상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려면 주춤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합니까? 느헤미야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중의 일부가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 와서 '여호와의 새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짓는 일과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몇 차례에 걸쳐 성벽을 수축하려고 하였지만 그때마다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였고 백성들의 사기 또한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하여 아닥사스다 왕이 성벽 재건을 허락함으로 느헤미야가 주전 444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감동으로 주신 비전을 제시하면서 소집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성벽 재건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들에게 성전 재건의 필요성과 더불어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확신을 불어넣으며 무리들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곤경은 너희 눈에 보는 바와 같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성문은 불에 탔다면서 먼저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무리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합니다. 성벽 재건은 단순히 무너진 성벽에 대한 개축 공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대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identity)을 회복하기 위함이라. 나라를 세우자. 역사를 만들자. 미래에 도전하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페르시아 왕조차도 이 사역을 돕는다는 느헤미야의 설명을 들은 지도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마음이 뜨거워지며, 오랜 동안 잊어왔던 선택된 백성들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성벽 재건이라는 사명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Let us start rebuilding.  모든 거민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벽 재건의 선한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성벽의 둘레는 4 마일, 두께는 1 m, 높이는 5 m 이상 되는데 느헤미야는 불과 52일 만에 성벽 재건에 성공합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이 일을 수행할 수 있었는지 성경적 형통의 원리를 살펴보고 교회당 건축을 앞둔 저희 교회에 적용하면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고자 합니다.



1) 리더들의 솔선수범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 제사장들이 먼저 일을 시작하면서 백성들에게 본을 보입니다. 제사장들이 북쪽 성벽을 맡아 공사에 임했던 것은 그 곳이 성전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양문의 기둥을 놓고 문짝을 달았으며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넬 망대에 이르는 구간에 돌을 쌓아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다른 문에는 '성별한 후에'라는 말이 없이 그냥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양문에 대해서는 '성별하고 문짝을 달았다고 언급한 것은 이 양문이 다른 문과는 달리 성전과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생 제사에 사용되는 양들이 이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가 인접한 베다스다 못(참조, 요 5:2-9)에서 깨끗이 씻은 후에 이 문을 통하여 성전 구역으로 운반되었기에 양문이라고 불렸습니다. 제사장 가문의 사역을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예루살렘 성벽 중수 사업의 종교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성으로 새 예루살렘을 예표하였기 때문입니다.



2) 역할의 분담

성벽 재건은 성벽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장은 성벽 중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맡은 관할 구역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각 집안별로 작업량과 장소를 할당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하였는데, 이는 일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의 신앙적인 자세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각 지역별로 분할하여 해당 지역의 거주자들이 자기 지역을 할당하여 성벽 중건 작업을 책임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1) 자기 집 부근의 성벽을 쌓도록 할당된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열심히 참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시간을 낭비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3) 성벽 건축에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을 하는 자세는 "그 다음은"이라는 단어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3장에만 28번이나 ‘그 다음에’라는 표현이 반복하여 사용됩니다.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는 것은 크고 힘든 일이지만 각 사람이 자기의 몫을 감당하였을 때 가능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고, 그 다음 사람이 그 다음 부분을 잘 감당하면 결국 전체가 이루어집니다. 느헤미야는 이 공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성벽 공사를 42 개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38개 가문에 분담시켰습니다. 역할을 분담함으로 일을 능률 있게 하고, 책임 의식을 고취합니다.



교회의 사역도 목회자가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엡 4:12에 의하면 목사의 하는 일은 성도들을 잘 훈련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감당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찬양대, 교사, 친교, 청소, 비품 관리, food bank에서 음식 분배 등등. 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금년에 어떤 사역부서에서 섬기기 원하십니까? 아직까지 결정하지 않으신 친교실 분들은 벽에 붙여놓은 신청서에 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3) 공동 참여

본문에는 대제사장 가문으로부터 시작하여 평민에 이르기까지 각기 한 부분씩을 담당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한 책임자들의 명단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각계각층에서 참여합니다.

이 공사에는 유다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앞장서서 일합니다. 성전에서 가장 천한 일을 담당하는 느디님 사람들이 자기들이 거주하는 성전 망대 주변 지역을 재건합니다. 각 지방의 통치자들 즉 예루살렘 지방, 벧학게렘, 미스바, 벧술, 그일라 지방을 다스리는 자들의 아들들도 성벽 중건에 참여합니다. "금 장색, 향품장사"들은 힘든 육체노동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비교적 고급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자기의 일들은 잠시 접어둔 채 성벽 중건에 참여합니다. 레위인도 일반 상인들도 참여합니다. 이들 뿐 아니라 개인들도 참여합니다. 관리의 아들 르바야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일할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수고하였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자기에게 할당된 직임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 특히 여성들이 참여합니다.

예루살렘의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인 살룸이 자기 딸들과 함께 성벽을 보수하는데 참여하였습니다.  여성들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여성들의 헌신이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물질적으로 도운 사람들도 주로 여인들이었습니다. 눅 8장에 보면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경건한 여성들의 수고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남녀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 원근각처에서 참여합니다.

성안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 밖에 거주하는 자들도 이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밖에 사는 자들은 성벽 부근에 사람이 살지 않은 지역에 할당되었습니다. 여리고(2), 드고아(5, 27), 기브온(7), 미스바(7)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속여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던 족속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일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20km 쯤 떨어진 드고아에서 온 평민들도 동편 성벽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일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분문은 성읍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시중의 쓰레기와 오물을 실어 나르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와 아들이 그쪽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였습니다. 교회에서 누군가 화장실을 청소해야 하고, 어지럽혀진 방을 깨끗이 해야 하고, 친교 후에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 주보를 접어야 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일을 하고 싶어도 육신의 연약함을 인하여 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큰 것, 작은 것, 더러운 것, 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4) 사역에 대한 열정

생물 시간에 리비히의 ‘최소율의 법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널빤지로 만들어진 통이 있는데 그 높이가 다르다고 가정합시다. 그 통에 물을 부어 넣을 때 어디까지 물이 차겠습니까? 길이가 가장 짧은 널빤지까지 물이 차오를 것이요 그 이상은 아무리 부어도 물은 다 새어 나갈 것입니다. 성벽 건축은 모든 구간에서 튼튼히 잘 지어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열심을 내어 성벽의 99%를 잘 지었다 할지라도 1%가 여전히 무너진 상태로 있다든지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다면 대적들이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올 것이요 그렇게 되면 99%를 짓는데 들인 노력이 헛수고가 됩니다.



일부 미온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자기가 맡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이 어려운 곳이나 쉬운 곳이나를 막론하고 불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건축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3:20절을 개역성경에서는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였다고 나옵니다.  '한 부분'이라고 번역된 말은 '둘째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제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바룩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먼저 한 공사를 끝내고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까지 또 다른 부분을 맡아 일하면서 여호와께 대한 열심 있는 신앙의 모습을 나타내 줍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배당된 공사를 먼저 마치고 또 다른 일에 투입된 경우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 19, 24, 27절).  



하나님의 일은 특정 개인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마음이 될 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한마음이 될 때 인간적인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열과 성을 다하여(20절) 참여해야 합니다. 한 마음으로 그들이 가진 달란트와 자원을 합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협동의 유익입니다.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남을 돕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뜨거운 열성을 불어넣습니다. 성도 모두가 각기 한 분야씩을 분담하여 그 일을 책임지고,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에 참여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거둡니다.  



* 하나님의 일에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드고아  집안의 어떤 유력자들은 공사 책임자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협조하다'라는 말은 ‘어깨를 들이대다’는 뜻이므로 그들이 비협조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기록이 3장에 포함된 것은 백성들 모두가 공사를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많은 역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꾼으로 남았습니다. 성벽 중건 사역은 느헤미야 개인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모두 힘을 합하여 참여하는 사역에 그들이 어떤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계속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하다보면 드고아 귀족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도리어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그 성벽 중건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원근각처에 사는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성벽 중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3장에 나타난 성경적인 원리는 솔선수범, 역할 분담, 공동 참여, 그리고 열정입니다. 이 원리는 모든 공동체에서 필요한 업무 수행 방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원리를 우리의 사역에 적용할 수 있습니까?



1)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지으려면 시간도 들여야 하고 물질도 바쳐야 하고 육신의 힘도 써야 합니다. 이 일은 느헤미야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지 생각한다면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고아 귀족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리만 찾을 줄 알았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는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인의식이 있었기에 힘들지만 성벽 중건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성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이 성을 지으면 우리가 대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성은 제사장들의 성도 느헤미야의 성도 아니요 하나님의 성이요, 우리의 성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요단강물을 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을 향하여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서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말씀에 순종한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잠기자마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 흐름을 중단하고 멀리 밀려올라가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실하심을 믿고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믿음의 발을 내디딜 때 길이 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발을 디뎌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그 발을 먼저 내디디려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는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는 목사나 어떤 특정인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교회요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섬겨야할 우리 교회라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 의식을 가질 때 자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도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출 35:21) 참여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진대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하면서 자원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더불어 일한 사람들은 사방에 대적들이 여전히 존재하여 안전을 위협받고 포로에서 귀환하여 아직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던 시절에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하였습니다. 그들이 성벽 중건공사를 할 때에 일에만 몰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 대적들이 쳐들어와서 방해할지 알 수 없었기에 한 손으로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습니다. (4:17) 겪은 고통이 클수록 성취한 사역은 위대하며, 고난이 클수록 영광도 더욱 빛납니다.



when you are comfortable, you don't really grow.

편안할 때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 있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의식을 가질 때 우리의 신앙은 그대로 있는 것이 뒷걸음을 치게 되어 있습니다.



2월부터 본당 사용료를 3700불에서 5000불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건물주로부터 받았습니다. 게다가 교육관을 쓰려면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건물주의 처사가 지나치다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난 10년 동안 이 장소를 사용하였으니 이제는 주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는 사인으로 생각됩니다.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 속에 발전해왔다고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습니다.

우리 앞에 건물 사용료 인상이라는 당장의 도전이 있습니다. 교회당 건축이라는 더 큰 도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무 부담스러워 이미 건물이 마련된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한 번 해보자는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도전해보시겠습니까?



하만이 페르샤 제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만의 요청에 따라 어인을 찍어 유대인을 죽이라는 조서를 내립니다. 민족의 위기 앞에서 모르드개는 왕에게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에스더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그 앞에 나아갈 경우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공포된 조서를 거두도록 왕을 설득하는 일도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왕비의 자리에 연연하여 편안하게 있기보다 민족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담대하게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에스더의 희생이 있었기에 유대인은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막 8:35)  (If anyone wishes to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자기를 당장 부인해라. 네 십자가를 당장 져라.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따르라. 이것이 주님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뿐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하여 고난 받기를 기뻐합니다. 고난을 당한다고 육신적인 박해를 받는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때로 자기의 계획이나 일을 유보하거나 희생하는 것도 고난입니다. 고난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3장에 나타난 성벽 공사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그 이름들은 성벽 재건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한 것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이름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이름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후세에 그들의 이름을 후손들이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반면에 드고아 귀족의 자손들은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교우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원하여 주의 일을 감당하고, 주님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자세로 주님의 몸 된 이 팔로마한인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이 교회역사를 보면서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일어나 성전의 기초를 놓고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어떤 교우들이  음향시설을 기증하였고, 그 다음은 어떤 교우들이 페인트를 칠하였고, 그 다음은 어떤 교우들이 실내장식을 하였고, 그 다음은 어떤 교우들이 조경을 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52일간의 예루살렘 중건 역사를 통하여 공동체적 참여의 위력을 경험하였습니다. 비록 포로에서 귀환한 별로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이었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얻어진 느헤미야의 영력,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계획, 낙심한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역사 세우기에 동참하자는 느헤미야의 호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지음으로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을 원하는 백성들의 결단과 헌신 등이 합쳐져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2007년도 저희 팔로마한인교회에서 벌이는 귀한 역사에 한 마음이 되어 참여합시다. 성벽을 재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어깨를 서로 들이대고 참여합시다. 팔로마 공동체의 하나됨의 위력을 보여줍시다. 우리가 드린 모든 수고를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건축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로 참여하는 사람들, 물질로 참여하는 사람들, 손과 발을 움직여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마리아의 고백을 각자의 고백으로 삼으며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팔로마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되어 나아가면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