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행 19:21-41)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6-18 08:40
Views
5618
행 19:21-4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에베소는 아르테미스(Artemis 또는 Diana) 여신을 섬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르테미스 신상의 특징은 살이 쪄있고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르테미스가 다산과 번성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추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아르테미스 신전의 사진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지금은 원형이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지만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들을 토대로 신전의 모습을 재현하였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오니아풍의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이 신전은 완성되기 까지 12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신전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디노크라테스가 불타 버린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아시아 원정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완성 중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만일 에베소인이 아르테미스 신전을 자기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에베소인들은 거절하였습니다. 에베소인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지금까지 어떤 신전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했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m. 폭이 30m, 높이 10m정도로서, 대리석 기둥을 58개나 사용한 신전이었는데, 에베소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모든 제원에서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습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습니다.



바울이 선교에 헌신한 기간의 거의 절반을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보냈습니다. 그만큼 선교차원에서 두 도시가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울은 마술과 우상으로 가득한 어둠의 도시 에베소에 삼년 가까이 머물면서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말씀 가르치는 것을 집중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훈련된 헬라인 제자들이 소아시아 각 지역을 다니며 복음의 씨를 뿌렸기에 많은 결신자가 생겼고,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에베소와 인근 지방을 뒤흔들면서 영적 각성이 일어납니다. 에베소의 많은 마술사들이 회심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사용하던 마술책을 태워버렸습니다. 그 가치가 은 5만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5만 명이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미화로 약 250만 불 정도나 되는 것들이 재가 변하였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했다는 것이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보는 사단이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울의 사역을 방해함으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택하신 전도자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복음이 전파되어 가는 과정을 적고 있을 뿐 아니라 마귀의 방해도 계속됨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에베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대항하여 마귀가 어떻게 대적하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간섭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려는 선교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19장은 "이 일이 다 된 후" (after there were fulfilled)로 시작됩니다. 바울이 3년 가까이 머문 에베소의 사역을 통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기에 누가는 이루어졌다는 완성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의 선교계획을 세웁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경영하여"로 번역된 헬라 원문에는 “purposed in the spirit”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말 번역에는 성령이 빠져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계획이 사사로운 감정이나 즉흥적인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3을 보면 성령 충만을 받을 때 성령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특히 바울의 전도계획에는 로마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이 있습니다. 언제 실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꿈을 생각할 때 소망이 생기고 용기가 생깁니다. 한국 민족이 남과 북의 구별 없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중의 하나가 ‘꿈에도 소원은 통일’입니다. 바울의 꿈은 무엇입니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 그러기 위하여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반드시 가야 합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중에 들렀던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갈 계획과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로마로 가면 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운데 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합니까? 로마서 15장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에 있는 교우들에게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데메드리오가 소요를 일으킵니다.

효율적인 선교를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기에 바울은 동역자들 중에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먼저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야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다른 도시에서와 같이 바울은 다시 한 번 거센 저항에 부딪칩니다. 바울의 사역으로 인하여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우상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비즈니스가 위협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돈줄이 막히는데 참을 수 있겠습니까? 죽기 살기로 달려듭니다. 소동의 주동자는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입니다. 은장색은 은으로 세공하여 신전 모형이나 신상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월남국수집에 가면 입구 쪽에 작은 불상을 넣어두는 모형신당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은감실은 아데미 여신의 신상을 넣어두는 모형 신당입니다. 데메드리오는 그동안 아데미의 신당 모형을 만들어 짭짤하게 돈을 벌었는데 바울 때문에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게 되니 은감실의 판매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기가 데리고 있는 직공들과 은감실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을 모아 놓고 선동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 사업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바울이라는 친구가 에베소에서 뿐만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 걸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다 보면 우리의 이 사업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당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여신을 들먹거리며 종교적인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바울의 전도로 인하여 입은 경제적 손실 때문에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아데미 여신이 무시를 당한다는 데메드리오의 연설을 듣고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들의 분노는 아데미 여신에 대하여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번져 졸지에 수많은 사람이 소요에 참여합니다. 무리들은 바울을 발견하지 못하자 대신 그와 더불어 사역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야외 연극장은 2만 4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이었습니다. 대중들이 무리를 지러 소란을 피우고 있었고 여기에 많은 구결꾼들이 합세하여 그 중에 모인 사람들 중에 태반이나 왜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군중심리에 이끌려 두 시간 동안이나 아데미 여신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구호를 외쳐대다가 서기장의 말을 듣고 해산하였습니다.  



*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영혼구원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구원받은 것을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통해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나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향하여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위대한 계명 (great commandment)라고 불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막 12:31-32)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혼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이웃을 도우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문장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그저 윤리적인 가르침으로만 축소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6:4-9절에도 이 말씀이 나오는데 신명기 5장에 기록되어 있는 십계명을 직접 배경으로 하여 주어졌습니다. 주시는 교훈은 ‘유일하신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항상 그 말씀을 강론하고 개인의 손목과 미간 그리고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해둠으로써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잠시도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듯이 이웃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들도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 복 받은 자들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7)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였기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전도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주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모든 일에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7절에서 각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누가는 바울의 사역이 나오지도 않는 이 소요사건에 무려 20절이나 할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두움의 영이 지배했던 에베소에 선교팀이 들어와 3년 가까이 사역을 하다 보니 도시 전체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의 사역을 통하여 제자들이 길러지고 그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함으로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을 다시 둘러보며 그곳 교회들은 든든히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로 갈 계획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에베소에 얼마 동안 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데메드리오의 소요 사건을 통하여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3년 가까이 머물면서 정도 들고 많은 사역의 열매를 거둔 에베소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야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로 나오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세우신 전도자들을 계속 이끌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것에 매이지 않고 바울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영혼구원을 위한 사역에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다음 주간에 대학부 소속 학생들 중 12명이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이번 여정으로 학생들마다 바울이 품었던 선교열정을 가지기 원합니다. 비록 직접 선교지를 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학생들을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면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주의 일에도 고난은 있지만 하나님은 피하거나 이기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예수님을 전하다 공회에서 채찍에 맞았던 베드로도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사도 바울도 빌립보 1:29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일하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성난 군중들에 의하여 바울 대신 붙잡혀 갔습니다. 자칫하면 그들 손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사도들이 공회에 끌려가 심문을 받는 험악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뜻하지 않은 도우미를 준비하셨습니다. 율법의 선생이요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이 일어나 발언합니다. 그는 비록 예수를 믿지는 않았으나 율법에 대한 지식과 양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신중함이 있었고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잠시 밖에 내보내고 자신의 견해를 공회원들 앞에서 말하면서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도록 지혜로운 충고를 합니다.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공회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도록 위협을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에베소시의 서기장에게 도우미의 역할을 맡깁니다. 군중들의 모임은 로마의 처벌을 초래할 만한 불법 집회였습니다. 로마 정부는 ‘Pax Romana’(로마의 평화)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도시에 폭동이 일어나 평화를 깨뜨리게 되면 도시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그 도시의 자치권을 빼앗아버립니다. 이를 염려한 서기장은 연극장에 모인 무리를 설득합니다. "에베소 시민 여러분, 우리의 도시 에베소가 위대한 아데미 여신과 하늘에서 내린 그 신상을 모신 신당 수호자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여러분은 마땅히 진정하고,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서기장은 사람들 앞에 나와서 무리를 조용하게 한 후에 뚜렷한 근거 없이 바울을 고소한 것에 대한 부당함을 말합니다. 아데미 여신에 관한 죄라고 하는데 바울은 신당 물건을 도둑질하지 않았고 아데미 여신을 모독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온 것은 부당하다고 합니다.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송사할 일이 있으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재판해야 하고 또 그 외 다른 재판 건은 민회에서 결정을 내리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기장은 오늘 일어난 이 일 때문에, 소요죄로 문책을 받을 위험이 있고, 소요를 정당화할 수 있는 아무런 명분이 없다고 하며 책망합니다. 합리적인 서기장의 말을 듣고 군중들은 이 집회가 전혀 근거가 없는 고소에 의하여 발생한 소요임을 알고 흩어짐으로 바울의 선교팀은 위기를 모면합니다.



복음을 대적하는 세력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시기하고 분노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하나님의 일에도 방해가 있음을 깨닫고 여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3) 주의 일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동역자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바울이 군중 속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말렸습니다.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과 복음의 교제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였습니다. 아시아 관원(Asiarchs)은 황제 숭배와 관련된 일을 관리하는 로마고관들입니다. 바울이 이들과 교제를 나눈 것을 볼 때 그의 복음전파가 각계각층에 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변의 조언을 따라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그들을 구하겠다는 열정만 가지고 연극장에 들어갔다면 이성을 잃은 무리들과 부딪쳐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나서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바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서기관을 통하여 이 소요를 해결하셨습니다.



또한 에베소의 서기장이 연극장에 모인 무리들을 설득할 때 바울의 전도팀에 대한 평가가 어떻습니까? 아데미 신전과 그의 숭배에 대하여 어떤 흠 잡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원들에게 호의적으로 비쳤기에 전도팀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열정만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대처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고 말씀하셨습니다.



4) 주의 일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아데미가 살아있는 신이라면 자기를 섬기고 따르던 자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고 자기를 떠나가는데 왜 가만히 있습니까? 사람들이 만든 우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헛된 우상을 섬깁니다.“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 42:17)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 그리고 그것을 확증시켜주는 성령의 역사는 복음 전파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조합이 되니 그것이 큰 힘을 발휘하여 어두움의 영이 지배하던 도시인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방에 복음의 물결이 퍼져 나갔습니다. 세월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일어납니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뜻하지 않은 방해나 걸리는 것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단의 방해는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피할 길을 마련해주시든지 극복할 능력을 주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면서 (롬 1:16) 주님 주시는 지혜와 능력에 힘입어 많은 영혼들을 인도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한 믿음의 종들이 되어 베푸시는 상급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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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장 모 임



1단계: 경배와 찬양 (Worship & Praise)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2단계: 친숙해지기 (Ice Breaker)

  한 주일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내용을 나눕니다.  지난 주 기도제목을 점검합니다.



3단계: 말씀 나누기 (Word)

사도행전 19:21-41절을 읽습니다.

1)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대적하여 소요를 일으킨 근본동기가 무엇이며 (24,25) 소요를 일으키는 명분은 무엇입니까? (27)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가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28-32)





* 사람들은 개인의 이익을 찾기 위하여 그럴듯ㅎ나 명분을 찾으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 수 있습니까?





2) 만약 데메드리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는 이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유는?





3) 이 소요 상황에서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0, 31)





적용: 성경적 교훈을 각자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1) 영혼구원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2) 주의 일에도 고난은 있지만 하나님은 피하거나 이기게 하십니다.

3) 주의 일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4) 주의 일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4단계: 목표와 계획 세우기

1. 각자의 삶을 나누며 기도의 제목을 (가정, 사업, 교회) 교환합니다.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2. 후원하는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와 헌금을 드립니다.



3. 주변에 전도할 대상에 (불신자나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한 분들) 대한 정보를 나눕니다.

전도방안을 세우고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