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가나안의 첫 정복 (수 6:1-7)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5-20 16:12
Views
3313
수 6:1-7  가나안의 첫 정복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진한 감동이 있습니다. 한국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밤잠을 설치면서 응원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내로라 하는 강팀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4강에 오르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선후배 관계를 깨뜨리며 파격적인 리더십을 운용한 히딩크, 그의 지시대로 잘 따라 열심히 뛴 선수들, 전폭적인 지원을 한 축구협회, 그리고 붉은 옷을 입고 열광적인 응원을 하면서 독특한 응원문화를 만들어낸 국민들이 하나가 되었기에 기대 이상의 열매를 거두었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에게 세대를 뛰어넘어 자긍심을 갖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전력이 좋아야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이 우세하다고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전력은 다소 처질지라도 전략을 잘 세우면 얼마든지 이기거나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무한 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을지 성경에서 원리를 찾아서 우리의 삶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신인 것을 온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믿음이 좋거나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저 많고 많은 족속 중에 하나를 택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2-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agent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이유도 우상이 만연한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가 참 신인 것을 알게 하고 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의 반열에 들어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축복의 agent로서 사명을 그동안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부터 믿음에 온전하게 서지 못하였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광야는 물이 없고 길이 험한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곳을 지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침마다 맛나를 먹이시고 고기를 먹고 싶다하니 메추라기까지 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이끌던 출애굽 제일세대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역하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는 광야에서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이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다고 먹을 양식이 없다고 죽지 않는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을 때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출애굽 제2세대를 통하여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십니다.



여리고 성은 요단강을 건너면서 나타나는 첫 번째 큰 성읍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성이 여리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둑까지 넘쳐흐르며 도저히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같이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까? 여리고 성처럼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장애물이 앞에 가로막고 있습니까? 그것만 넘으면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마지막으로 발목을 잡고 숨통을 막는 것이 있습니까? 본문을 통하여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합니다.



* 총사령관이신 하나님께서 약속과 더불어 작전 지시를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족속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이제는 요단강을 건너 길길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여리고 성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졌습니다. 여리고 성의 주민인 라합이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10) “요단 서쪽 지방의 모든 아모리 사람의 왕들과 지중해 연안의 모든 가나안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강물을 말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며 당황하였다.”(5:1) 여리고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겁을 먹어 성문을 굳게 닫았고 성에서 나오는 사람도 들어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에게 임합니다. “내가 여리고성과 그 왕과 모든 군인들을 이미 네 손에 넘겨 주었다.” 아직 이스라엘은 여리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미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주었다고 완료형 시제를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싸워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 결과를 미리 압니까? 가나안 정복 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넓혀가는 땅 따먹기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가나안은 언약의 땅으로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졌음과 하나님은 가나안에 대하여 주도권을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작전 지시를 내립니다.

이 거룩한 전쟁에서 총사령관은 여호와 하나님이요 여호수아는 충성스런 참모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1) 너와 너의 모든 군대는 여리고성 주위를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아라.

2)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어야 한다. 제사장은 나팔을 잡아라. 성을 일곱 번 돌라.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라. 계속하여 하나님은 지시를 하십니다. 특히 4절에는 일곱이란 숫자가 네 번 나옵니다. 6은 인간의 숫자요 7은 하나님의 숫자를 상징합니다. 4절의 핵심 단어는 제 칠일입니다. 제칠 일은 여호와의 날이기에 제칠 일에 나팔을 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실 것을 암시합니다.  

3) 제사장들이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모든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게 하라. 그러면 그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 그때 너희 모든 군대는 곧장 성 안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전합니다. 제사장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7명의 제사장들이 각자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법궤는 그 뒤를 따랐다.” 6절에서 ‘언약궤’로 불렀다가 ‘여호와의 궤’로 호칭이 바뀝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 앞에서’로 다시 바뀝니다. 언약궤는 단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있는 상자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백성은 법궤를 중심으로 앞뒤에서 행진합니다.



7절에서 ‘나아가서’ ‘행할지니라’ ‘8절의 ’진행하며‘는 다 히브리어 ’아바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는 4장 1절에 나오는 요단 강을 건널 때와 같은 동사를 사용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이나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사건이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을 건넌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를 정복할 것을 암시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 중에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1) 성을 도는 행렬은 전투 대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행진 대형을 일러주십니다. 무장한 자들과 제사장들과 언약궤는 길갈을 떠나 예배 행렬을 지어 여리고 성 주위를 행진한다. 행진 대형을 보면 무장을 한 자들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로는 양각 나팔을 잡은 제사장들이 따르고, 다음은 여호와의 궤가, 맨 마지막에는 백성과 무장한 후군이 따릅니다. 언약궤를 중심에 두고 성을 도는 그들의 모습은 전투대형이 아니라 행진대형입니다. 이 대형을 보면 앞뒤 군사들과 백성들의 중앙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신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거대한 성벽 주위를 매일같이 일주일을 도는 동안 성위에서 내려다보는 여리고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군대의 위치, 규모, 무장 상황 등 전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전력을 분석한 후 여리고 사람들이 성벽 위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화살을 쏘거나 취약부분을 향하여 공격해 온다면 이스라엘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말하는 날까지 백성들은 침묵해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행군하면서 침묵하지 않고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 놓는다면 여리고 성 정복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돌아야 하나. 성벽을 돌기만 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나. 이러다가 여리고 사람들이 성문을 열고 쳐 내려 오든지 성벽 위에서 화살이라도 쏘아대면 어떻게 하지. 싸우러 왔으면서 언약궤는 왜 가지고 나오지.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10절) 외치지 말라.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라. 아무 말도 내지 말라. 비슷한 말을 세 번이나 연거푸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외치라고 말하는 날까지 이스라엘이 행군하면서 침묵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의 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가운데 실현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싸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무기로 삼는 싸움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달할 때 백성들은 이 작전이 너무 무모하다든지, 위험하니까 다시 작전을 세워보자고 하는 건의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명령에 따릅니다. 첫째 날 이스라엘 백성이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날 또 다시 한 바퀴를 돕니다. 이러기를 무려 엿새 동안 돌았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에게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입을 다물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여리고 성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도 지켜볼 뿐입니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칠일 째 하나님은 일곱 바퀴를 돌고 일곱 명의 나팔수들이 나팔을 불 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날, 여섯 바퀴를 돌 때까지도 미동도 하지 않던 견고한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일곱 바퀴를 돌고 난후 나팔 소리에 따라 함성을 지르자 무너져 내렸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기적을 만듭니다.

약속된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하여 가나안 일곱 족속과 싸우는 과정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온 땅의 주님이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가나안 정복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과 얼마나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장애, 전에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할 것이 있지 않습니까?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그의 뜻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이적을 일으키시고 우리로 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쳐지지는 않을 까 하는 염려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시험이 됩니다. 끝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왜 엿새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씩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게 하였을까요?

1) 가나안 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2) 광야 제이 세대의 믿음, 인내, 순종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 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일곱째 날에 사람들이 일제히 지른 소리 때문에 그 진동으로 성벽이 무너졌습니까? 그들이 소리를 질렀을 때 마침 그곳에 지진이 일어났기에 무너졌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도 별난 짓을 하니까 여리고 성 사람들이 호기심 삼아 성벽 위에 너무 많이 모여 구경하다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성이 무너졌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리고 전투의 핵심은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왜 그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따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순종하니 하나님이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분명히 깨달아야 했습니다.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 편에서 서서 승리를 일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 승리를 얻는 성경적 원리:

1)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3-4절) 여호수아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한 바를 따라 당신이 주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가나안 정복이란 하나님의 약속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광야 제2세대의 삶의 목표가 되었고 비전이 되었습니다. 고달픈 가나안 정복을 해가면서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위로와 용기를 삼았을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기 원하시는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성경적인 원리를 사역에 적용함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소그룹을 통하여 삶을 나누며 섬기는 훈련을 하고, 구제와 전도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세상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교회당 건축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는 이런 비전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2)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아울러 주셨습니다. 하나님 없는 계획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자세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편에서도 주어진 역량을 총동원하여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소원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감당할 능력도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기라고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에는 이적과 능력이 많이 나타났지만 이제 여호수아가 인도할 때부터 믿음이 더 강조되었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백성을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 발을 들여 놓자 물이 마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적이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니 이적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표현이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시겠다고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성을 정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까지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상식을 벗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 작전대로 했다가는 커다란 위험을 당할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작전은 하나님의 작전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이 요구되었습니다.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그들의 온전한 순종은 침묵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히 11:30,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칠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돌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역사, 권능, 손길을 확신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때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길이 이 시대에서 승리하는 확실한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역사의 현장마다 갈등과 고통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대를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갈등과 고통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자신의 생각을 절제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능하신 엘 샤다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기적을 이루어 주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믿으십니까?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순종해야 합니다.



4) 침묵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간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출애굽 하였을 때 일입니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 주었다가 후회하고 모든 철병거를 동원하여 추격전을 벌입니다. 자기들 뒤까지 따라온 애굽 사람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출 14:13-14,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대한 홍해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우성치는 소리가 상황을 바꾸지 못합니다. 시 4:4-5,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시 37:7-8,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항상 우리의 생각과 표현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침묵할 때 그 시간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기회가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며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에 조용히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고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홍해를 갈라주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삶의 현장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5) 공동체의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함께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았습니다. 성을 도는 동안 함께 침묵하였습니다. 일곱째 날에는 그들이 함께 일곱 번을 돌고 함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하나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영적 승리를 거두려면 성도들의 연합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특정한 몇 사람들에게만 순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를 돌며 한마음으로 외치기를 요구하셨습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돌기 시작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집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에 사실 여부를 떠나 더 귀가 솔깃해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곁에서 건설적이지 못한 말을 자꾸 할 때 그 말을 제지해야 합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면서 동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문제점만 들추어내고 비판한들 그 자체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함께 나아가려는 자세를 가진다면 건설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영적 전쟁이 날마다 벌어집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단은 각종 이론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어지럽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하나님의 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 가운데 실현되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싸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무기로 삼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믿음으로 가지고 확실하게 서야 합니다. 그런 확신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행군이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멸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삶의 현장에서 때마다 시마다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