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 안에서 순종하라 (엡 6:1-4)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5-13 18:41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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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6:1-4  주 안에서 순종하라

미국 공립 고등학교 중 명문으로 꼽히는 버지니아주의 토머스 제퍼슨 고교에서 성적 조작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2학년 한인 학생 2명이 교사의 컴퓨터를 해킹,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적발돼 퇴학을 당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두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조작한 학점 중엔 이미 받은 A 학점을  A+로 올린 것도 있습니다. 이민 2세인 두 학생은 학교 당국에 "부모님은 우리가 항상 최고의 점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심리적 압박에 짓눌려 이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우수한 학생들만 모이는 토마스 제퍼슨 고교에선 B+ 학점만 받아도 대단히 좋은 성적"이라는데 상당수 한인 학생은 B+를 받으면 성적이 좋지 않다며 스트레스를 받곤 하였기에 그 학교에 다니는 백인 학생들은 B+ 학점을 '코리안 F'라고 부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인 학생의 성적 조작 사건은 학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너무 큰 데다 1등만을 강조하는 한국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미국에 이민 온 가정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부모들이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부모일수록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주기만 하면 좋은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고,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하던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을 자녀들이 겪습니다. 그것을 잘 견뎌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힘들었던 이민생활이 다 보상 받은 듯 대리만족을 느끼는 어른 세대로 인하여 자녀들은 갈등이나 불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둡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시간이 흘러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불만을 토로해도 ‘피곤해, 귀찮아’하며 일축해 버리면서 자녀들과 대화할 기회를 같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부모와 대화하려 하지 않고 혼자라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설교 서두부터 좀 어두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남의 이야기, 다른 동네 이야기로만 들리지만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이런 상황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경우에는 오히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제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부정적인 문제만 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사례들이 너무 많습니다. 긍정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주류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가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부모들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섬기는 자랑스러운 자녀들도 많습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히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믿음의 가족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면 삶을 통하여 세상과는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권면은 출애굽기 20:12절을 토대로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물론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오늘날의 상황과 다릅니다. 그 당시의 가정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심지어 일가친척들이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살 때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모여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자연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였고, 윗사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주, 친척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배울 수 없는 정서적인 안정감, 소속감과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시대의 히브리 가정은 종교적 공동체로서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교육의 살아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현대 가족은 이런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오늘날의 전형적인 핵가족을 말하면서 아빠와 엄마, 아이 하나,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TV라고 합니다. 이제는 전과 같이 시골에 살면서 먹고 살기 위해 함께 모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도시에서는 한 집에 평균 3년 정도 밖에 살지 않을 정도로 이동이 심합니다. 요즈음은 통신이 발달하여 방에 혼자 앉아서도 바깥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 정보는 부모들도 제대로 알려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가족들 특히 부모와의 대화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듭니다. 부모보다는 친구가 배우자 선택이나 삶의 방향 등을 선택하는데 더 영향력을 미칩니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부모가 중매해주는 것을 자기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며 도리어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니 부모들이 자식들의 결혼을 위하여 더욱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가르침은 21세기에는 별로 쓸모없는 시대와 동떨어진 낡은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상황에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어떻게 지혜롭게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정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가정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설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정도 함께 만드셨습니다. 가정은 남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인격적, 육체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형성되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입니다. 가정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일 뿐 아니라 인격 형성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곳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모든 면에 성장 발달이 급속히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가정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탄생 의미를 마음판에 새기고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2) 가족은 하나님의 질서를 반영합니다.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되 가정의 신격화는 피해야 합니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마 10:37)  가족을 일차적인 관심으로 삼지마라. 네 자녀가 하나님이 아니다. 네 가족이 하나님이 아니다. 네 결혼생활이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네 자녀의 하나님이 되고 네 집안의 하나님이 되며 네 결혼생활의 하나님이 된다. 그러니 나는 네 하나님 됨을 누구에게도 결코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출 20:5)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섭섭하게 여기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사 29:13)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척만 했습니다. 가족의 질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로부터 공경을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부모가 당연히 존경받을 만하고 배려 받을 만하고 순종 받을 만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가정에서 보호자, 지도자, 필요를 공급하는 자로 세우셔서 자식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3) 가정은 섬기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가정은 어떻게 합니까? 식구 중에 누가 잘못 행함으로 풀리지 않는 감정, 상처, 분노, 아픔을 식구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일로 인하여 식구들 간에 커다란 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없었던 것으로 하고 각자 새로운 가정을 시작합니까? 물론 새 출발 함으로 어느 정도 상처와 고통을 덜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용서를 경험하였기에 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식구들 사이에도 예수 이름으로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섬김의 기회를 잘 수행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과 지체 안에서 섬김이 필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의 권면을 살펴봅니다. 바울은 성경적인 가정이 되도록 네 개의 명령형을 사용하여 자식과 부모들에게 권면합니다. 이 말씀들을 온전히 지켜 행할 때 부모와 자식 간의 아름다운 관계가 가지며 주 안에서 복된 가정을 이루어집니다.



1)  주 안에서 순종하라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향한 자녀의 지침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자녀들아. 바울의 권면은 단지 어린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모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자녀들이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특히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를 주로 경외하는 자녀들답게 자신들의 부모를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5장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복종 (submission)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려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권면의 말씀으로 자발적인 의미의 복종 대신 강제적인 의미가 담긴 ‘순종’(obey)을 사용합니다.  비록 6장 4절에‘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하며 아버지의 권위를 제한하고는 있으나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과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며 순종하려는 것과 같이 자녀들도 자기의 부모들에게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이 순서가 바뀌면 가정의 질서가 안 섭니다.  



전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았지만 요즈음은 보통 하나 많아야 둘을 낳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집에서 우상이 되고 상대적으로 아빠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납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식사를 하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먹거나 맛있는 반찬만 먹으려하면 엄마가 자식에게 ’아빠 드셔야지‘ 하며 야단을 쳤습니다. 아빠가 쉬는데 아이들이 떠들면 ’아빠 쉬게 조용히 하라‘고 엄마가 아이들을 책망했습니다. 요즈음은 세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히 고삼 수험생이 집안에서 왕입니다. 아이 공부하는데 당신은 TV volume 낮추고 조용히 해요. 아빠를 책망합니다. 아이 영양 보충시키려고 이 반찬을 준비했는데 왜 당신이 먼저 먹으려고 해요. 엄마들이 더 야단입니다. 아이의 교육 때문에 수많은 기러기 아빠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기를 섬겨야 하는 존재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아이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쉽게 좌절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28-30절에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죄들이 나열되는데 그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라는 언급이 나온다. 딤후 3:2,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언급되는데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마땅한 도리입니다. 부모의 권위가 인정되는 가정이 건전한 가정이요 그런 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건전한 사회입니다.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자녀와 더불어 연세가 많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나이가 드셨고 거동이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식사 때마다 국이나 음식을 여기저기 흘리곤 했습니다. 그 부부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아버지에게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방에 홀로 앉아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노인이 전혀 먹을 수 없게 될 때까지 따로 떼어 놓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부부는 아버지의 음식을 아예 여물통에 주었고 수저, 포크, 나이프를 모두 치워 버렸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거나 직접 입을 대고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헛간에서 놀고 있는 것을 부부가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나무, 톱, 망치, 못 등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뭘 만들고 있니?” 아이들은 대답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늙으면 쓸 여물통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부모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늙은 아버지는 다시 그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음식을 여전히 흘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예화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왜냐하면 네가 늙었을 때에 자녀들이 똑같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할지에 대하여 자신의 부모님이 그 조부모님을 어떻게 공경하는 가를 보고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2-3, “너희는 거룩하라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공경하는 것에 포함이 됩니다.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딸린 아주 중요한 계명이라고 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며 상급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으로 인하여 태어났으며 양육되어 성장하게 되므로 자녀에게 있어 부모는 세상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분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훈계를 잘 들어야 하는 부모의 훈계와 법은 자녀에게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며 목의 금 사슬이라고 하였습니다. (잠 1:8,9).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며 순종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자이며 이는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장수하는 비결이 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는 또한 그 자녀들 역시 본을 따라 자신을 잘 공경하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하여 존경을 가지는 태도 뿐 아니라 나이가 든 부모를 육신적으로 돌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의 전통적인 질서는 무너져갑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대신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점차로 퍼져 가는 이때에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건전한 가정에서의 질서를 우리부터 회복하며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주 안에서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부모를 섬겨야 합니다. 물론 부모님이 존경 받을 만하게 행동하면 아이들은 부모를 공경하기 더욱 쉬울 것입니다.

    

3)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do not provoke your children)

그래서 바울은 세 번째 권면을 부모에게 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여기서‘아비들’은 문자적으로 아버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1세기 로마시대에 아버지는 자녀에 대하여 법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주관 하에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철저한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하는 바울의 가르침은 아이들이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아버지들은 권위적이거나 독재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분개하고 원망을 일으키게 하는 자세, 말, 행동들을 피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부모의 권위만 내세워 윽박지르기만 한다면 아이가 그 앞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 분노가 상처로 남습니다. 머리가 크면서 부모를 상대하려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제대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였기에 커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향하여 자신들의 법적 사회적 권한이나 특권만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로서의 관계가 온전한 성도들은 반드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가정이어야 합니다. 이때 부모들은 자신들의 지나친 요구나 욕심에 의하여 때로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자녀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bring them up in the nurture and admonition of the Lord)

바울은 부모에 대한 또 다른 권면에서 부모의 권위보다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효도와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반 사회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주 안에서” 순종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육은 교회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실천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신앙적인 본을 보여야 합니다. 말이나 행실이나 경건의 훈련하는 모습들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자녀들에게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은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가 교훈이요 둘째가 훈계입니다. 교훈이라 번역된 ‘파이데이야’는 교육, 훈련이란 의미도 있고 체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올바른 징계와 교훈은 성경적이요 참다운 사랑의 표현이요 아이들을 바로 세웁니다. 둘째가 훈계인데 주로 말로 타이르면서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11일 한국에서 재벌 총수로서는 처음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폭행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매를 맞고 들어왔다 하여 사람들을 동원하여 아들을 때린 자들을 끌고 가서 김 회장이 그들에게  직접 폭행하는가 하면 그 아들에게 보복하도록 하였습니다. 김 회장은 29살의 젊은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대기업의 총수가 돼 온갖 도전에 맞서게 된 결과 아주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되었고 반면에 개인적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자식들을 유난히 사랑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유별나게 애틋한 그의 자식사랑이 최악으로 조합되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킨 보복폭행을 낳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지혜롭지 못하게 그 사랑을 표현하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탓하고 분노하기 이전에, 자식에게 먼저 회초리를 들어 꾸짖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도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감옥에 가기 전에 그가 한 말입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부모는 낳은 자녀를 잘 양육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사무엘과 디모데 같은 훌륭한 자녀가 자라나지만 헤롯왕의 아내인 헤로디아는 오히려 딸에게 범죄를 종용하였습니다. 잠 29:15, “꾸짖고 때려서라도 교육을 시키면 지혜를 얻게 되지만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 자식이 어머니를 욕되게 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훈계하여야 하며, (잠 31:1) 경건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딤후 1:5).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습니다. 부모의 올바른 가르침은 평생 자녀의 삶의 척도가 됩니다.  



급변하고 성경적인 가치관이 더욱 심하게 도전받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성경적인 원칙을 붙들고 실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독교인의 가정은 사회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참으로 회개하여 구원의 놀라운 은총을 맛본 성도는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가정과 이웃에게 섬김과 사랑의 삶을 나타내야 합니다. 화목과 용서가 있는 가정은 하나님을 아직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죄 용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온전한 성도의 가정은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들은 부모의 권위로 자녀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기독교인의 가정교육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권면에 포함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닮아 서로 복종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눅 2:51, “예수께서 ...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부모에게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부모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의 관점에서 볼 때 건전한 인간관계를 갖기 위한 전제 조건이 5장 18절에 나오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을 때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습니다. 가정이 신앙훈련의 훌륭한 연습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어버이 공경은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동안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시다.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자녀들은 주께 하듯 부모를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자손으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기려는 자세로 가정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경하고, 이해하면서 주님의 위로와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며 화평과 희락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