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당신의 종입니다 (엡 5:21-33)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5-06 21:47
Views
3329
엡 5:21-33  당신의 종입니다



어느 분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철이 들 때부터 계속하여 세뇌를 시켰습니다. 너는 금발여자는 데리고 오지 마라 너는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 세태가 점점 이상해집니다. 미국 내 여러 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아들에게 말하는 내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너는 제발 남자는 데리고 오지 말아라.



가정은 창조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입니다. 가정은 남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독립해서 애정과 책임감을 수반한 인격적, 육체적 연합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가정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일 뿐 아니라 식구들의 안식처요 인격의 형성장이요 신앙의 훈련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가정이 건강하려면 특히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큽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건강한 가정에 관하여 시리즈로 설교를 하려는데 어떤 본문이 좋을까 기도하다가 다시 한 번 에베소서를 택하였습니다. 에베소서만큼 가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잘 요약한 부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5장과 6장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주인과 종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본문을 종합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22절) 경외해야 (33절)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25절과 33절)

문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복종하고 경외하는 것이 더 강하게 여겨집니다. 반면에 사랑하는 것은 그 정도에 있어 약하게 여겨집니다. 본문은 잘못 해석하면 남용하기 쉬운 구절입니다. 여성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21세기에 사는 여성들이 볼 때 몹시도 자존심이 상하는 구절이 될 수가 있고 성경은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남편과 아내의 자세를 살펴보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가정, 행복한 가정,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핵심 단어 중의 하나가 ‘복종’입니다. 복종은 원래 노예에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자기의 형편에 상관없이 주인의 뜻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노예는 매를 맞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합니다.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자세인 ‘복종’이란 단어를 사도 바울은 기독교에 적용합니다. 아가페 사랑을 섬김의 개념에 포함시킵니다. 바울이 살던 로마제국은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눕니다. 자기 하고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자와 주인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종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하며 자신을 종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에게도 서로 종이 될 것을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 5:13)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를 상대방을 위하여 쓰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유인으로서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복종은 누구의 강요에 의하여 마지못해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미 에베소서에서 사랑으로 행할 것을 여러 번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기반을 다져” (엡 3:17)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 5:2)  



바울은 사랑의 개념을 가족관계 특히 부부 사이에 적용합니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에게 각각 권면을 합니다.

1.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1세기 로마 시대에서 당연한 규점입니다. 아무도 그 말에 이의를 제안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당시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개역성경과 헬라 원문을 직역한 것을 비교해 봅니다.

(개역)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원문)         21 그리스도의 경외 안에서 서로에게 복종하라.

              22 아내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무엇을 관찰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편에게. 주님께 어떻게 하듯 하란 말입니까? 성도들이 주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연결시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 복종은 구약 시대나 그 당시 사회 관습에서 이해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그 복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함을 입은 교회가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자발적으로 섬기는 사랑의 복종입니다. 갈 3:28,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므로 유대인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 복종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창조의 원리’와 복음에 입각한 ‘사랑의 규범’에 의하여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여러 차례에 걸쳐 비유합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도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설명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셨고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희생적 사랑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남편이 자기의 생명을 바쳐 아내를 구하는 구세주의 역할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며 아내에게 복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머리됨’의 뜻이 무엇입니까? 머리됨이 보통‘주관한다’ 또는 ‘지배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뜻대로 교회를 주관합니다. 그분은 주관할지라도 형편과 처지에 따라 기복이 심하고 혈기를 부리고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주관하십니다.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다음 절에 살펴보겠지만 사실 남편이 아내의 복종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복종보다 훨씬 큽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복종’의 의미에서 말씀한 바울의 권면이 그런 상황에서 해당되지 않습니다.  



아내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배필로서 남편과 아내는 주종 관계가 아닌 서로 돕는 사랑의 관계여야 합니다. 아내를 이해하고 보살피며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사랑한다면 아내들도 스스로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며 따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내를 연약한 그릇이요, 귀히 여길 자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3:7). 또한 아내의 도리를 다하는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한 것이며 (잠 31:10), 이러한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잠 14:1). 결론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에게 교회가 복종하듯이 아내는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2.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데 이미 본을 보이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분은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심지어 자기 생명 전부를 교회를 위하여 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25절)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바치셨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쳐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현대, 엡 5:2하)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신 후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삼년 동안 12사람을 부르셔서 제자 훈련을 시키신 이유는 장차 생겨날 교회를 예수님처럼 섬기라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흠없고 순결한 신부로 준비하여 자신과 결합하는 거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성화의 과정, 즉 거룩하게 되어져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죄로 얼룩졌던 삶은 물세례와 말씀을 통하여 깨끗하여지고, 옛 사람의 모습은 벗어버리고 날마다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은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영광스럽고 정결한 신부로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들이 그리스도의 본받아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에 보여준 사랑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자기 몸을 드려 죽기까지 사랑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목숨 바쳐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들이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레위기 19:18을 권면에 인용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남편들도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를 제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살피듯이 남편들은 아내를 양육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남편의 책임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며 다스림이 아니라 돌봄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명령을 인용합니다. 창세기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취하여 신부로 취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가 연합하여 온전하게 한 몸을 이루었기에 모든 것을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33절)  

  

주님이 기뻐하시는 부부가 되려면

1) 부부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의 대전제는 21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자발적으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79년에 아내의 대학 동창이 결혼했습니다. 남편과 나이 차이가 제법 났는데 신혼 초부터 만만치 않은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결혼 초부터 아내를 꽉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남편과 지금 잡히면 평생 잡힌다는 배수진을 친 아내의 기 싸움이 제법 갔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여성들이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많은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북어 패듯 사흘에 한 번씩 패라는 끔찍한 말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남성들의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조사를 보니 혼인을 앞둔 여성들의 절반 정도가 연하의 남편을 원한다고 합니다. 결혼 생활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함이 그 이유입니다. 반면에 남자는 멸치 볶듯이 매일같이 볶아야 맛이 있다고 하는 엄청난 생각을 하는 아내들도 있다고 합니다.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 문제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내 사랑’ ‘honey' 하던 부부가 갑자기 '저 인간'으로 호칭이 바뀌면 곤란합니다. 부부가 한 침대에 있는 것이‘적과의 동침’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전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본문은 남편들에게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을 가르칩니다. 아내도 남편을 경외하고 복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서로 참고, 서로 섬기는 가운데 그리스도가 머리됨을 나타내는 신실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2) 부부생활이 신앙훈련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랑 임인식 군은 고현지 양을 아내로 맞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남편된 책임을 다하며 이 신부를 늘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고 보호하여 오직 이 신부로만 아내를 삼아 평생토록 오늘의 이 약속을 지키기로 확실히 서약합니까? 지난 3월에 있던 결혼식에서 목사가 질문을 하였습니까? 그때 임인식 집사는 ‘네’ 하고 군인답게 힘차게 대답하였습니다. 누구 앞에 한 서약입니까? 하나님과 여러 믿음의 증인들 앞에서 굳게 다짐한 서약입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서로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순종하여 결혼 서약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잘 안하니까 명령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이 때로 눈물의 씨앗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러한 일시적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가 되고 서로를 여전히 섬기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서로 섬기려면 때로 상대방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혼인관계는 일평생 함께 가는 언약의 헌신이며 그 헌신을 이끄는 것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부생활은 신앙훈련의 일부입니다. 그 과정을 거친 부부들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3) 부부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아내를 위하여 죽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내들보고 남편 위해 죽으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 정도만 하면 됩니다. 22절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보다 21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복종하라는 명령이 우선입니다. 또한 ‘복종하십시오’라고 명령형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사실 헬라 원문에는 분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 동사가 무엇입니까? 18절에 나오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입니다. 세상에 취하지 않고 성령에 취해야만 비로소 서로 복종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서로 복종하라는 권면 속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행복하고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하려면 부부가 함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내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남편입니다. 여태까지 말했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의 주인이오’라고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면 본문의 의도와는 정반대가 되어버립니다.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며 섬길 수 있으나 ‘내가 당신의 주인이오’하면서 섬김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를 섬기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남편들에게 묻겠습니다. 남편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아내입니다.

  

정용진 장로님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어떤 장로님과 마침 한 테이블에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너무 감동을 받았기에 이 시간 잠깐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 사는 곳과 거리가 가까우면 직접 찾아뵈고 비데오 카메라로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분은 LA에 있는 교회 은퇴장로. 17년 동안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뒷바라지 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내외분이 LA지역에서 15년간 경영하던 커피샾을 89년에 정리하고 한국에 한 달 동안 방문한 뒤 다른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커피샵은 건물 지하실에 있었기에 15년 동안 햇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햇빛도 보고 일하는 시간도 융통성 있는 직업을 찾다보니 풀장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89년 12월 1일 아내를 옆에 태우고 가는데 사업할 곳을 찾아 가고 있었는데 좌회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아내가 그때는 별 외상이 없었는데 2주 후인 14일에 내출혈이 있었다. 16일 일차 수술을 하였는데 CT scan을 해보니 오른 쪽에도 anulism이 있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니 그것을 제거하자는 식구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2차 수술을 하였다. 이마 위에 굳은 뼈를 치며 수술을 하다가 그 진동으로 오른 쪽 것마저 터졌다. 뇌에서 생긴 분비물이 척추를 통하여 내려가야 하는데 핏덩어리가 그 통로를 막으니 압력이 커져서 Shunt라는 수술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 번째 뇌수술을 하게 되었다.

108일간 병원에 나왓는데 오랫동안 누워있다 보니 제대로 걷지 못하니 재활원을 다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말하는 훈련도 받았으나 별로 진전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다치게 한 죄의식도 있고 하여 처음 7년 동안 꾸준히 간호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97년에 접어들면서 아내에게 치매기가 생겼다. 치매가 걸리니 아내가 엉뚱한 일을 자꾸 하였다. 몇 달 동안 치매 걸린 아내의 수발을 하다보니 치매 환자 돌보는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 관광을 갔다가 치매 걸린 노모를 내버리고 온 자식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랍니다. 이제 살만큼 살았고 아내는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으니 동반자살을 계획하였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질까, 방에다 프로판 개스를 틀어놓을까, 동맥을 자를까 여러 가지 궁리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딸의 결혼날짜가 정해지니 죽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네가 환자이고 아내가 너를 돌본다면 아내가 너와 같이 하지는 안 할 것이다’는 깨우침이 왔습니다.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아 내 사랑이 부족했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날이 97년 9월 9일. 잊어버리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치매에 걸려 앞뒤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모든 것을 사랑으로,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아내를 돌보는데 너무 마음이 편하였습니다. 아내는 똑같은 실수를 여전히 되풀이하지만 불평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를 돌보는 것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한다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게 사랑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기쁘게 아내를 돌보다 보니 하나님께서 그 장로님에게 건강을 주셨다고 합니다. 지난 4월로 만 81세인데 약간의 빈혈이 있는 것 외에는 아픈 곳이 전혀 없이 아주 건강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수고하였다고 건강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장로님의 삶은 보기에 딱합니다. 아내가 아픈 이후로 지난 17년 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 한번 못하고 영화도 못가고 골프도 못 쳤습니다. 지금 아내와 유일하게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한인타운에 가서 비데오 빌려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장로님이 비디오 therapy라고 불렀는데 그 비데오를 보며 같이 웃고 같이 울먹이고 한답니다. 아내가 화장실을 시도 때도 없이 가야하니 교회를 자주 갈 수 없어 그저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에 함께 간다고 합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는 두 시간만 떨어지고 일주일 내내 아내와 같이 있습니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아내를 맡기지만 오래 있을 수 없어 금방 집에 돌아옵니다. 교회 활동도 못하고 사회활동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감사함으로 아내를 돌본다고 합니다.

  

장로님도 젊었을 때는 몇 차례 말다툼도 하였고, 사네 안 사네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다 살다보니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새삼 깨달아진다고 합니다.

자기의 부족 인정, 상대 존중하고, 사랑으로 덮으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내가 환자인데 아내가 나를 돌본다면 나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욱 성심껏 아내를 돌보게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믿지 않는 선배를 만났다고 합니다.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느라고 얼마나 힘드냐 묻기에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덕을 보았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기에 상황은 어려운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감사하고 있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선배도 예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장로님의 기도제목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2011년 4월 5일 금혼식을 갖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어린아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내의 건강이 많이 좋아졌기에 4년만 더 버틴다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 장로님을 위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복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다 요구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관심과 헌신입니다. 서로 복종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아가페의 사랑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직 함께 있을 때, 건강 있을 때, 아내와 남편이 서로 아끼고, 서로 참고, 서로 섬기면서 서로를 향하여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가정,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건강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