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찬의 의미 (고전 11:23-26)

Author
Myung Myung
Date
2007-11-11 22:37
Views
9026
고전 11:23-26  성찬의 의미



인터넷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나 보았기에 소개합니다. 제가 한국에 머무르고 있던 지난 3일 인천 간석동 로얄 호텔에서 있었던 인천동산고 사은회 행사 때 있던 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가난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날이 더 많았던 그 학생은 이를 알게 된 당시 교장선생님이 사주신 쌀 한 가마니가 너무 고마워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선생님과 모교에 꼭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졸업식을 마치고 홀로 남아 3학년 전체 교실을 청소하고 갔습니다. 그 학생은 졸업 후 선생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열심히 살아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졸업한 지 30년이 되는 날, 그 학생은 50세 중년의 나이에 동창회장이 되어 현재 살아계신 동산고 전체 선생님들을 위한 사은회를 개최했습니다. 가난했던 한 학생이 선생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만들어 낸 잔치였습니다. 현 교장선생님이 학교 내에 전해져오는 이 학생의 이야기를 말씀하실 때 사은회장은 눈물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특히 이날 사은회에는 ‘자랑스러운 동산인’으로 선정된 탤런트 박상원씨가 은사들에게 양복을 한 벌씩 선물해 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도 훌륭하시고 그 선생님의 마음을 30년 동안 담고 있다가 잔치를 베푼 그분도 훌륭합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이런 훈훈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아직도 소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추수감사절은 11월의 넷째 목요일이고 그 앞의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금년에는 11월 1일이 목요일인지라 예년보다 거의 한주 빨리 감사주일이 옵니다. 감사절을 영어로 Thanksgiving day라 하는데 감사를 주는 혹은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변의 이웃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절기입니다. 감사하다는 히브리말의 hodah는 '고백하다, 인정하다, 찬양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인정하고 그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히브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감사의 의미입니다. 설교 후에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성찬식을 Eucharist라고 합니다. 그 단어는 ‘은혜에 기쁨을 느낀다’는 의미를 가진 eucharisteo라는 헬라어 동사에서 왔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니 감사의 달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뜻 깊다 하겠습니다. 본문을 기초로 성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봄으로써 바른 자세를 가지고 성찬식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성찬은 주님이 직접 만드신 의식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찬식을 고린도 교우들에게 베푸는데 이 예식은 바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성찬이 중요한 이유는 주님이 직접 만드신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구약에 나오는 전통이나 의식들이 달라졌습니다. 성전이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셨기에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에서 짐승을 바치는 제사나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들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대신에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의식들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언약으로 성찬만 지키게 하셨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하늘나라의 포도주로 주님과 교제할 때까지 계속 수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 만찬이 미리 마련된 예루살렘 성안의 어떤 집 다락방에 올라가셨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뜻밖의 발언을 하십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아무도 모르게 제사장들과 거래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유다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제자들도 깜짝 놀랍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을 번갈아 보았을 것입니다. "나는 아니지요?"  저마다 근심하면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태연하게 묻습니다. “랍비여 내니이까” 자신을 배반하려는 유다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그저 “네가 말하였도다” 한 마디만 하십니다. 물론 한상에 둘러앉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빵 한 조각을 받고나서 그에게 사단이 들어갔고 곧 만찬자리를 떠났다고 요한복음 13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나가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성찬식이 시작됩니다. 성찬식은 구원받은 백성만이 참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성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까?

1. 하나님께 대한 감사

예수께서 떡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감사를 드렸을까요? 제자들이 많아져서? 건강 주셔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됨을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한 뜻이 무엇일까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들어 감사하고 있는 때가 언제입니까?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밤입니다. 잠시 후면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하속들에게 체포가 되어 심문을 당하시고 그 다음날 아침이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됩니다. 자기의 생명에 대하여 애착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느 사형수가 사행집행을 위하여 교수형을 받는 단위에 올라가다가 계단에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형수가 ‘어휴, 죽을 뻔했네!’ 하더랍니다. 죽으러 가는 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은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 년이나 함께 먹고 마시고 지냈던 제자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태연하고 담대하셨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억.

26절에 보면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이라 되어 있는데 그 짧은 구절에 복음의 요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1) 죽으심: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구운 양고기와 무교병 (Matzoh)과 쓴 나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은 애굽을 나오기 전 문설주에 발랐던 양의 피를 생각나게 합니다. 무교병은 미처 반죽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애굽에서 급히 나오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쓴 나물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며 고생하던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거기에다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는 전통을 추가했습니다. 예수님이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는 모습은 앞으로 교회가 성찬식을 통하여 어떻게 주님과 교제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으라는 말의 의미는 구원이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가능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잔을 가지고 감사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들이 다 마시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최후의 만찬석에 참석한 제자들은 유월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 이후로 유대인들은 천년 이상 유월절 만찬을 들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킨 하나님을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전통적인 유월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찬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합니다.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을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언약서를 낭독하니 온 백성이 한 목소리로 주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지키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짐승의 피의 절반은 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리며 "이것은 주께서 이 모든 말씀을 따라 너희에게 세우신 언약의 피다."  (출 24:8) 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을 전제로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1) “내가 이스라엘 집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렘 31:33) 새 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순종 즉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을 전제로 하며 예수님의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시내 산의 언약은 육신적인 이스라엘과 맺었으나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은 영적인 이스라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과 맺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한 지 600년 후에 나타나신 예수님이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14:24) 하셨고 사도 바울도 25절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하시면서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최후의 만찬을 드실 때 성찬용으로 특별한 음식을 주문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만찬에 사용한 음식은 보통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였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평범한 것을 들어 거룩하게 하시고 깊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 대신 어린양이 죽어 피를 흘렸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성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가리킵니다.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죄악 된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과 아낌없이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2) 부활: 오신다는 것은 무엇을 전제로 합니까?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옵니까?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3) 재림: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그날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믿는 자에게는 승리의 날, 영광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와 부활, 재림의 주를 기억해야 합니다.



3. 주님의 구원을 선포

그동안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만찬을 들면서 빵과 포도주를 들었는데 주님이 축복하시니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거룩한 빵, 거룩한 포도주가 됩니다. 평범한 것일지라도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거룩해집니다. 우리가 있는 곳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거룩해지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을 뿐 아니라, 그 복음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죄인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분명히 알아 그것을 기념하고 주의 죽음의 구원적인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성찬은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가 인간을 위하여 죽으심을 그가 다시 올 때까지 전하므로 성도들은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을 바라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 성찬의 의미를 깨달은 성도들은 어떤 자세로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까?

1) 성도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만이 참여하기에 주님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귀한 성찬식에 온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은 주의 몸 된 교회의 각 성도들이 함께 떡을 먹고 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하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회에는 연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자들을 찾아 서로 위로하고 용납하며 사랑을 베풀 때 거기에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치유가 있고 진정한 코이노니아, 그리스도 안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엡 4:3) 반목과 질시와 오해를 떨쳐버리고 이해와 관용으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가져야할 바른 자세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온전한 경배로 진행합니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만드신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뜨거운 감사와 온전한 경배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성찬식이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행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이 성찬식에서 포도주와 떡을 먹는다면 그것은 예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피고 나서 성찬에 참여할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성찬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약한 자, 병든 자, 심지어 죽은 자까지 있다고 말하면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마음가짐을 일깨워 줍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성찬에 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해야 합니다.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죄를 자복한 후 회복된 심령으로 성찬에 참여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절실히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3) 성찬을 받은 후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려는 결단을 합니다.  

성찬을 받은 후에는 감사하는 마음과 아울러 영생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주님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결단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찬이라는 의식을 통하여 과거를 돌아보며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요, 현재에 자기의 부족한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요, 미래에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되었고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까?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은 나를 살리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하신 것을 보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동편의 창문을 열고 기도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온갖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향한 믿음을 지키며 한 해 동안 거둔 열매로 눈물의 감사를 드렸습니다. 조국을 떠나 낯선 미국 땅에 이민 와서 비록 언어의 장벽이 있고 문화적 이질감이 있는 곳에 살지만 인도하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한 감사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빵을 들면서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새롭게 느끼고,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게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빵과 잔을 함께 나눔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며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섬기는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주님 앞에 섰을 때 선한 청지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듣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감사의 씨를 부지런히 뿌리며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거두시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