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누가 전을 건축하리요 (대하 21:1-6, 11-12)

Author
Myung Myung
Date
2007-10-21 13:53
Views
3081
역대하 2:1-6, 11-12 누가 전을 건축하리요



역대상과 역대하를 새벽기도 시간에 본문으로 삼고 말씀을 전하다가 하나님께서 마음에 부담을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당 건축을 앞두고 먼저 우리 안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성전이 먼저 지어지고 있는지, 우리의 기도생활, 말씀생활, 헌신의 삶을 점검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셋째 주일부터 “예수님으로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까”하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목장모임을 매주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수요일로 마무리 지으면서 목장별 간증 및 찬양대회를 가집니다. “누가 전을 건축하리요”라고 묻는 솔로몬의 의도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인도함을 받을 때 가능합니다. 또한 그런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큰 영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르심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동참하여 귀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결심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결심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지으려는 것입니다. 그가 결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 뒤에 있다니 부담스럽다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 건축에 필요한 많은 재료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가는 곳마다 이겼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이길 때마다 거둔 수많은 전리품들을 모아 성전 건축할 재료로 준비하였습니다. 전쟁에 이긴 결과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에 전쟁이 그치고 화평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방에 두려움을 주신 연고로 감히 이스라엘을 침략하려고 넘보는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그랬을 때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달리 전쟁의 사람이 아닙니다. 왕자로서 궁궐에서 얌전하게 자랐을 뿐입니다. 다윗 휘하에 얼마나 많은 역전 노장들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그들을 통솔하며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대하 1:1)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 짐꾼 7만 명과 작벌자 8만 명 그리고 감독관 3600명을 징집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의 공사를 위하여 많은 노동자들을 강제적으로 징집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지만 레위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17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인’들을 징집했음을 언급함으로써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습니다. 성전 건축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시고 부귀와 존영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수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합니다.

  

* 본문에 나타난 솔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과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대하 1장을 보면 솔로몬은 예배를 잘 드렸다가 수지맞은 사람입니다. 그가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지도자들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 마리의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 흠이 없는 제물들을 공동체가 함께 전심으로 드렸을 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보시면 그냥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번제를 드린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대하 1:7)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가 왕이 되어 해결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했더니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가 구한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주셨습니다. 후히 주시되 넘치도록 주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솔로몬은 초월적 하나님의 위대함과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역설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그가 사용한 수사적 질문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다고 합니다. 또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고 하나님을 용납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기에 크고 웅대한 집을 지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공간에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기에 자기는 그저 하나님께 분향할 장소를 만들 뿐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예배 드리는 장소라고 말하는 솔로몬의 발언은 신전을 신의 물리적 거주지로 이해했던 고대 근동의 사고를 배격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에 대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이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누가 건축할 수 있겠는가’‘내가 누구관대 어찌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것은 초월적 하나님 앞에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며 동시에 부족한 인간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은 큰 영광임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솔로몬이 편지로 밝힌 것은 신명기에 제시된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신명기는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을 (신 12:5) 강조하고 그곳이 예배와 기쁨의 장소라고 합니다. 이 토라의 명령을 솔로몬은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 개념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의 또 다른 이유인 정규적 예배와 연결됩니다. 그는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대하 2:4) 고 합니다. 성전의 예배의 자리이고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의 섬김을 표현하는 절정의 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름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예배를 충실히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런 자세를 기뻐하시고 그를 통하여 성전 건축을 이루십니다.



2. 열린 마음으로 일을 추진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만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이 귀한 사역에 동참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후람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2:3-10절은 솔로몬이 후람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아주 전략적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건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성전 건축의 목적을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과 함께 행했던 것처럼 이라는 어휘를 통하여 후람의 2차적 행동의 필요성을 은근히 제시합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궁전을 지을 때 백향목을 보내 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백향목을 보내 주십시오. 이제 당신은 조각에 능하고 금과 은과 동과 철을 다룰 줄 알며 자색, 홍색, 청색 실로 천을 짤 줄 아는 기능공 한 사람을 보내 주십시오. 그는 내 아버지가 선발해 놓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기능공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레바논 숲에서 생산되는 백향목과 잣나무와 백단목도 좀 보내 주십시오. 내가 알기에도 당신의 종들은 벌목을 잘하므로 그들을 도울 사람만 보내겠습니다. 내가 지으려는 성전이 크고 화려하므로 많은 목재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와 같은 요청을 하면서 대가를 후하게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내가 당신의 일꾼들에게 밀가루 4,400킬로리터, 보리 4,400킬로리터, 포도주 440킬로리터, 감람기름 440킬로리터를 주겠습니다.



2:11-16절은 솔로몬의 서신에 대한 후람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우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임을 말합니다. 후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면서 하나님을 세 가지로 묘사합니다.

1)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이방인 후람의 이런 고백은 하나님이 민족주의 신이 아니라 우주의 통치자로서 모든 열방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나타냅니다. 이방인들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거룩한 백성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2) 하나님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어 명철과 총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솔로몬을 위해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22:12)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후람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명철과 지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간구를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이 이방인의 입을 통해 증거되고 있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3)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후람의 말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목적은 성전 건축임을 보여줍니다. 이 선언은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라는 솔로몬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짓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이며 초월적 존재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거룩과 공의로 오늘도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만든 것에 갇혀 있지 않고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행하십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을 깨뜨리는 무리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셨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 꾀를 냅니다. 실로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전쟁터에 옮겨 놓으면 이길 것으로 생각하였다.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전보다 더 심한 패배를 당하고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멋대로 행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자기편이요, 법궤만 있으면 만사형통할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블레셋은 블레셋대로 자기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여호와보다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 이긴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에게 벌을 내리신 것을 몰랐습니다. 법궤가 블레셋에 머무는 일곱 달 동안 블레셋은 철저하게 재난을 당했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마다 그 성들은 독종으로 인하여 엄청난 환난을 당하였습니다. 블레셋은 여호와의 존재와 그의 분노를 뼈에 사무치도록 맛보았다. 그들은 여호와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종교 관습에 따라 최대한의 예의와 정성을 갖추어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 구석에는 블레셋에게 재앙을 내린 것이 우연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끌게 합니다.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소 둘을 붙였을 때 그 수레가 제대로 갈 리가 없습니다. 한 마리는 이쪽으로, 또 다른 한 마리는 저쪽으로 가려고 하다보면 수레는 비틀비틀 가게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두 소들은 송아지를 가진 어미 소이기에 두 송아지를 떼어놓으면 어미 소들은 송아지가 보고 싶어 제대로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법궤를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가는 길에 놓으니 대로로만 가며 자기들의 송아지가 보고 싶어 어미 소들이 울기는 하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곤장 벧세메스로 향하여 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살 때에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상을 섬기며 불순종의 삶을 살 때 법궤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니요 그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쓰인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상자에 불과합니다. 상자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는 것을 이스라엘은 잊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 백성의 안전을 무엇으로도 보장받을 수 없음을 그들은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내십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라지기 쉽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죄를 우습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작은 죄를 지으면서 무감각해집니다. 신앙에 긴장이 사라지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적당히 믿으려고 합니다. 열심내기를 싫어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처럼 그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더불어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씻겨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공간, 생각 속에 머물도록 애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 없이 그저 교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면서 아쉬울 때만 하나님을 찾으며 도우심을 구하지는 않는지요? 내가 왕년에 은혜 받은 것, 주의 일 조금 한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현재의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는 않습니까?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바울을 말씀합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기도와 말씀 가운데 온전히 서 있는지 돌아보며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2) 성전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자리이며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역대기는 페르시아 시대의 위기 역사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서입니다. 당시 유대 공동체는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왕국 회복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종교공동체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백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 중의 하나가 성전이었기에 역대기는 성전 건축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심과 다스리심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실체입니다. 성전건축은 ‘여호와의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위엄’(대상 29:11)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만남의 자리요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처소입니다.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참된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이름을 높입니다. 따라서 교회 건축이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업적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능력과 성공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름만 높여져야 하고 성전에서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져야 합니다.



3)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부귀를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그가 가진 지혜를 과시하여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엄청난 부귀와 영화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쾌락을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지혜와 부귀를 주신 이유는 성건 건축 때문입니다. 왜 성전 건축을 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솔로몬의 지혜와 부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 건축에 바쳐졌고, 이방인 후람과 지혜로운 숙련공 후람 아비도 자신의 재물과 능력과 지혜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성전 건축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목사도 건축위원회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이 귀한 사역에 협력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기쁨으로 참여해야 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처럼 우리의 사역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건강을 주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였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께 복 받은 모습을 보고 이방인인 후람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솔로몬을 그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 다윗왕에게 성전과 궁전을 지을 지혜롭고 영리한 아들을 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한 민족의 신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열방에 선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만유의 주재(29:12)가 되심을 선포하기 위하여 대리통치자인 솔로몬을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히셨습니다.(대상 28:5) 특히 역대기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해 선택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도록 선택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기쁨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의 헌신의 열매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주님 주신 건강으로 열심히 주님의 일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주신 물질을 주님의 사업에 많이 사용하도록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별로 눈에 띄는 재능이나 물질이 없는 것이 여겨집니까? 그래도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한 영적인 파수꾼이 되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캠페인을 통하여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 되심을 확인하고 그분과 기도와 말씀으로 교제를 나누며 일생동안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며 주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