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평강 (빌 4:1-9)

Author
Myung Myung
Date
2007-10-07 16:03
Views
5219
빌 4:1-9  하나님의 평강

때때로 우리의 삶 속에 걱정거리가 생깁니다. 역경에서 좀처럼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아 절망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하였든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에 상관없이 문제는 생깁니다. 다만 믿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문제를 대하는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종종 우리들은 문제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기쁨이 없어지고 불안해집니다. 평안이 없어집니다.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바울은 어떠합니까? 그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감옥 밖에 있는 다른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빌립보서 매장마다 기쁨을 강조합니다.



1장: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 기쁨이라고 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곳에서 자기를 지키는 시위대 병사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여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 동안에 바울을 라이벌로 여기는 일부 신자들이 시기심으로 열심히 전도하였을 때 바울은 분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면서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18)

2장: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기쁨이라고 합니다.

3장: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이 기쁨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바울이 부럽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십니까? 평강을 누리고 있습니까? 평강은 외부적인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성도들은 이‘하나님의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각자의 삶에 잘 적용함으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마지막장을 쓰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하면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을 강도 있게 표현합니다. 이차 전도 여행 중 유럽에 와서 최초로 개척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바울을 도와 주의 일에 함께 수고한 빌립보 교인들, 나중에 주 앞에 섰을 때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도록 사역의 기회를 제공한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이 넘칩니다. 그런데 지금 빌립보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 지방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니아 지방 여인들은 오늘날의 맹렬 여성들과 같이 모든 면에 적극적이고 리더십도 있고 공직생활도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사람도 여자 사업가인 루디아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빌립보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분명합니다. 두 여인들은 한 때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자들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불화가 생겼는데 서로의 자존심이나 고집을 내세우다 보니 화해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두 사람의 반목이 상당 기간 계속되자 교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좋은 향기’라는 의미를 가진 유오디아와 ‘행운’의 의미가 있는 순두게가 서로 다투니 교회 안에 악취가 났습니다. 두 사람이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에 빌립보 교회도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편이 갈려서 서로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면서 그들이 '주 안에'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단순히 의견의 일치를 보라 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겸손을 보일 것을 말합니다. 이제 주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전처럼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애쓰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교회 갈등을 어떻게 대처합니까? 바울은 멍에를 같이 한 자라고 부르는 어떤 신실한 교우에게 두 여인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로 포용하라고 권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함께 힘쓴 부녀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도와 화해시키라고 권면합니다. 이 부녀들은 글레멘드와 바울의 다른 동역자와 마찬가지로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칭찬을 합니다. 글레멘드나 다른 동역자들은 아마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불화로 인하여 큰 상처를 받았거나 교회를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전과 같이 하나가 되어 사역에 힘쓰기를 원하는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바람이 담겨져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권면은 단지 빌립보 교회의 해결책일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비결을 가르칩니다. 그 비결대로 살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 주님과 (동행)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1)



교인들의 다툼으로 인하여 기쁨을 잃어버린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은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있을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 “주 안에서”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7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말까지 고려한다면 “주 안에서”라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오는 셈입니다. “주 안에 서라”(4:1)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4: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7)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는 첫 단계가 주님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요 주님으로 영접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 기도와 말씀과 성도의 교제와 섬김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교회에 다닌 지는 오래되었다 하면서도 믿음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유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만 평강이 있지 예수 밖에서는 참 평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되는 일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만을 의지할 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 (넓은) 마음을 가집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5)



믿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허물에 대하여 관용하기보다 들추어내고 정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관용을 보일 것을 촉구합니다. 용납하기 싫어도 자신을 위하여 용납하라는 말입니다. 사과를 하거나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집니다. 또한 함부로 비판을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비판의 말을 자주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관용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관용이란 말의 어원을 보면 자기는 합법적으로 권리를 가졌으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는 것, 쉽게 성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다른 사람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자기 안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실수가 잘 보이고 남을 자꾸 판단하는 하려는 사람을 보면 많은 경우에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관용이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너그러움이며 부드럽고 점잖은 성품이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태풍은 무서우나 그 가운데 있는 태풍의 눈에는 오히려 구름이 없는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의지할 때 고난 속에서도 태풍의 눈에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평강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강은 우리의 마음에 담게 되어 있기에 마음이 좁으면 평강이 조금 담기고 마음이 넓으면 평강도 풍성하게 담깁니다. 속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속 같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은 속이 좁으면 안 됩니다. 얼마나 넓혀야 합니까?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넓혀야 합니다. 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나와 code가 같은 사람에게는 관용의 정도를 넓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좁히는 식의 이중 잣대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양보하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마음을 넓히는 사람입니다. 뺨 맞은 사람은 그날 밤에 편히 잘 수 있으나 때린 사람은 편히 잘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이웃들에게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관용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신앙과 직접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고 합니다. 주님이 곧 오실 텐데 그런 사소한 감정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얼굴을 붉히며 따지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합니까? 그런 와중에 믿음의 형제나 자매가 상처를 받고 떠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평강 가운데 서기 위하여 이웃과 맺힌 것이 풀어져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성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사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골 3:13,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용서하라”

벧전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날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흔히 생기는 문제 중의 하나가 교우 간의 갈등입니다. 이런 갈등이 있으면 누가 옳으냐 보다는 누구 편을 들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행동하기보다 이해관계나 인정에 이끌리어 갈등에 휘말립니다. 자기편에 있지 않는 사람들을 섭섭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미워하거나 비난합니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교회 생활에 기쁨이 없어지고 활기를 잃게 됩니다. 교회가 어수선하면 가정이나 직장 생활도 잘 풀리지 않게 마련입니다. 이런 갈등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 헤매기 때문이요 일단 먹이를 발견하면 좀처럼 놓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한 사람, 용납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주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관용으로 다른 사람을 용납하면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마음이 평안할 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아직까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 못해 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모습은 현재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지 못한 증거가 됩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성도들은 남을 축복하되 선을 행하는 자에게 뿐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에게도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해야 합니다.



3.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6)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일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사업의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캘리포니아 같으면 지진의 염려 등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신다는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염려라는 말의 어원을 보면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나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니 마음이 갈팡질팡하여 걱정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염려는 하나님과 관계를 반영합니다. 성도들에게도 염려하는 마음이 안 생길 수는 없으나 계속하여 염려하는 것은 믿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염려는 성도들이 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6:25)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7) 염려가 없을 수 없으나 염려하느라 마음을 빼앗기면 평강이 없습니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 대신에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기도/간구/구하는 것 등 비슷한 단어를 세 번이나 나열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자기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험난한 세상에 피난처가 되십니다. 광야 같은 인생에 장막이 되십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최선의 방책이기에 염려하기 전에 주님께 먼저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오면 거기에 위로와 평안과 치료와 안식이 있습니다. 한편 성도들의 기도는 조급함과 불평의 마음이 아닌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자기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도록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 5:4).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살피고 계십니다.”(벧전 5:7)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4.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4:9)



예배를 드려야 할 시간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다른 짓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심령에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다른 형제나 자매에게 거짓말을 하고 악을 행하면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아직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천국백성의 삶이 아니기에 하나님의 평강이 없습니다. 8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8절에 언급된 것들은 바울 당시에 철학자들이 인간에게 필요한 덕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이었습니다. 진실한 것,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것,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인정받는 것, 동기나 자세가 순수한 것, 사랑스러운 것, 칭찬 받을 만한 것들을 언급하며 모든 성도들이 이방인들에게서 좋다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며 거기에다 하나 더 추가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생각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인 말씀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4:9)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믿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문제없이 지내며 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실천이 없으면 진정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는 곧 그리스도의 복음의 교훈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으로 그의 삶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임마누엘의 축복이 임합니다.

시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 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하나님의 평강은 세 가지의 관계가 잘 조화를 이룰 때 얻어집니다.  

1) 각자가 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현재 불안합니까? 초조합니까? 마음이 평안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진정한 평화를 주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진정한 평강을 누리는 길은 주 안에 있습니다. 그럴 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합니다.  

2) 이웃과의 관계: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풉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면 의견이 달라도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있고 서로 다툴 이유도 없습니다. 나의 의견을 주장하며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도와 함께 주의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넓히고 형제와 자매들을 용납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넉넉해지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기쁨이 사라지니 얼굴이 굳어집니다.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합니다. 초조한 마음에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3) 하나님과의 관계: 염려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그럴 때 염려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화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바울은 그런 예수님을 본받았습니다. 저희 모두 바울처럼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의 넓고 깊은 사랑과 용서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들을 갖아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서로 도와주고 세워 주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교회에 항상 넘쳐야 합니다. 주님과 신실한 관계를 가지고 형제자매들과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