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상 주심을 바라보는 신앙 (히 11:24-26)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9-30 17:07
Views
3938
히 11:24-26 상 주심을 바라보는 신앙

  

오늘로서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이 끝납니다. 각 팀이 지난 6개월 동안 162게임을 하였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Boston Red Sox가 American League 동부조 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번 play-off에 진출한 팀들을 보면 시즌 예상과 달리 갑자기 잘하여 올라온 팀은 없습니다. 단기전에는 몇몇 선수들이 반짝할 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전을 할 때는 일시적으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수들 전체가 큰 부상 없이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내야 합니다. 투타에 걸쳐 기초가 충실한 팀이 결국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하려고 애를 쓰십니까? 기초가 든든하면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출애굽의 위업을 이루었고,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대화하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그가 어떻게 든든한 신앙의 기초를 가지고 주님을 일생동안 온전하게 섬길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번 캠페인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면 먼저 우리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먼저 정체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를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세는 어떻게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1.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  

한국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에 온 세대를 통칭하여 1.5세라고 부릅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물어본다면 미국생활을 잘 정착하고 있는 1.5세의 경우 나는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이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생활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1.5세라면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라는 부정적인 답변을 할 것입니다. 정체성이 분명할 때 분명한 사명감을 갖게 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거둡니다. 반면에 정체성이 흐릿할 때 능력만큼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자칫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분명하고도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변하겠습니까?



모세는 어떠하였을까요?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히 11:24, 표준)



·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고 이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히 11:2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아이라는 것은 외모가 아름답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 아기를 죽이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셨을까 하는 질문은 부모들은 해 보았을 것입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모세의 부모는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 중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전부 죽이라는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바로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점점 자라니 울음소리도 커지게 되어 더 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모세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갈대 상자를 구하여 그 안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그곳에 담아 나일 강의 갈대숲에 두었습니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이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건에 개입하십니다. 마침 바로의 공주가 나일 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모세가 들어있는 갈대상자를 발견합니다. 시녀를 시켜 그 상자를 열게 하였을 때 아이가 울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히브리인 중에 또 누가 아이를 버렸구나 하며 그냥 지나쳤으면 모세의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의 딸에게 불쌍한 마음이 들게 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미리암이 다가가서 말을 합니다. “내가 가서 히브리 여자 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공주님을 위해 그 아이를 양육하게 할까요?" 하고 묻자 바로의 딸이 허락합니다. 공주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나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다오. 그렇게 하면, 내가 너에게 삯을 주겠다"고 합니다. 공주의 아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모세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 아이를 키우면서 돈까지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행동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넘치는 보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젖을 떼자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마음에는 바로의 뒤를 이어 애굽의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노예 민족인 히브리인들에게 가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최고로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모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젖을 떼기 전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앙교육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영향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분명히 알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이미 정해주신 것을 겸손히 받아들였습니다. 모세는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화려함과 권세가 있는 애굽 궁정의 삶을 도리어 무시당하고 수치스런 삶과 바꾸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런 자세를 존중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하여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갖고 저와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른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다윗은 시편 138:8절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다윗에게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가 전쟁을 많이 하거나 성전 지을 준비를 열심히 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았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렘 29:11, 표준)



성경적 진리: 정체성의 위기를 해결해야 합니다.

현대인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왜 이 땅에 존재하는지 모르고 방황합니다. 우리들은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택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는 왕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성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사실 포도나무는 나무 자체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나무가 곧바로 뻗는 것도 아니요 재목으로 쓸 만큼 굵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열심히 포도나무를 재배합니까?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 열매는 다른 어떤 나무에 비할 바 없이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열매가 어디서 열립니까? 가지에서 열립니다.

· 가지는 포도나무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 외 다른 아무런 목적이 없습니다.



· 가지들은 그저 매달려 있으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 포도나무는 가지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포도나무는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이 나무가 제대로 자랄까? 밭의 거름상태는 양호한가? 금년에 비가 제대로 올까?’ 하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농부가 알아서 합니다. 가지는 그저 나무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나무에서 가지로 수액이 흘러들어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만 비로소 존재가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 가지는 아무 쓸모없는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가지로 당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로 비유합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듯이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 머물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은 과거명령형을 사용하십니다. 그 의미는 ‘지금 당장 내 안에 거하라.’ 예수 믿었다고 다된 것처럼 나태하거나 신앙생활 주변만 돌지 말고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 가지로서의 당신의 책임은 다만 그리스도(포도나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엄청난 열정과 헌신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가 나옵니다. 어떤 기도를 드리십니까?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8,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 안에 머물고 계십니까? 주님의 말씀이 성도들 안에 살아있습니까? 이 시간 저희 모두에게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입니다.



· 우리들은 포도나무(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정체성(가지)을 갖고 최우선 순위(머무는 것)대로 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날마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를 갖고 다음에 나오는 최우선 순위에 대한 질문의 대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II. 최우선 순위: 내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A. 모세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히 11:26, 표준)



모세는 자기가 누구인지 깨달은 후에 누구나 꿈꾸고 가지고 싶어 하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서의 신분을 포기하였습니다. 바로의 궁정에 머물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집트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으나 포기하고, 대신 자기 백성들과 더불어 광야에서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욕을 받는 것이 모세에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들의 필요에 등을 돌리는 것을 죄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런 결단을 된 것은 장차 받을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귀한 것으로 생각하였다고 하는데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까요? 모세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몰랐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충성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핍박이 진정한 보화라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의회에서 물러 나왔다.” (행 5:41, 표준)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들이 붙잡혀 공회에 끌려왔다가 채찍을 맞고 풀려났습니다. 사도들은 매를 맞아 피를 흘리고 온몸이 쑤시지만 예수의 이름을 인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갔습니다. 사역보다 사역하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사역을 할 때 더 upgrade 되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 모세는 영원의 세계의 관점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큰 그림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상급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에 섰을지라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이끕니다.

  

B. 원리: 예수님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8)



· 예수님은 우리의 최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 “열매를 맺는 것”(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의 비결은 우리가 누구인지(가지)를 알고 그리스도(포도나무) 안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영원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께 인생을 드리면서 이 큰 그림을 계속 바라보며 나간다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 사람들이 때로 우리를 실망시킬 수도 있고 오해하며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운 환경과 어려운 사람들을 대할지라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약속된 상을 이미 받은 것으로서 미리 바라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III. 선택: 내가 생명을 다하여 할 것이 무엇인가?

A. 그림: 모세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히 11:25, 현대인)



· 가장 먼저 모세는 편안한 삶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서 잘만하면 왕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미래는 보장되고 온갖 쾌락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 하였기에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들의 고난을 알면서도 등을 돌리는 것을 죄로 알고 그들과 더불어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보다 자기의 민족과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모세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선택이었습니다.  



거절하고 선택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나를 바로 알고,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인데 그것이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포기할 것은 기꺼이 포기하고, 선택할 것은 기꺼이 선택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며 열매 맺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자신 만을 위한 계획들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을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 하나님을 위하여 내리는 선택만큼 그분과 가까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리는 결단의 행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B. 원리: 예수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 예수님은 당신의 첫 번째 책임이 그분 안에서 “머무는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해 주었습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바로 아는 정체성이 어떤 일을 하려는 의도, 가치관, 일을 하는 동기들과 관련되어 있기에 바른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는 승차권을 따낸 것으로 만족하십니까? 믿음의 초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의 삶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에, 당신의 본질이 바르게 갖추어지고, 뜻 깊은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선을 위한 열매를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성령께서 당신 안에서 다음과 같은 열매들이 맺혀지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제 당신의 정체성과 최우선순위 및 구체적 선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도의 자세를 말씀하셨던 것처럼 본문에도 보니 성도의 자세가 언급됩니다.



IV. 끈기: 나는 어디까지 가려하는가?

A. 모세

“믿음으로 그는,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마치 보는 듯이 바라보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히 11:27, 표준)



· 믿음은 영적 리더십의 필수조건입니다.

· 믿음은 처음 예수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갖고 삶 가운데서 끈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 끈기란  사고방식 (의식)에서 출발하는 한 기능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께서 누구란 것과 당신이 누구란 것에 대한 의식을 갖고 나가면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고후 4장을 보면 바울의 회고가 나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으며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극한 환난 가운데에서도 오뚝이같이 바울은 일어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B. 예수님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시려고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택하셨고 이들로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예수님의 일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을까 염려하는 대신에 주님의 뜻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가치들을 따라 삶 가운데서 최우선순위를 정하며(모세처럼) 그분 안에 머물면서(거하면서) 끝까지 견디어 내십시오.



우리 모두는 현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거절해야 할 것, 택해야 할 것, 큰 재산으로 여겨야 할 것, 내다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삶의 최우선 순위를 바로 알고, 내가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고,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끈기있는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일생동안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거둔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