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힘써 행할찌니라 (대상 28:1-10)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9-16 16:27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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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28:1-10 힘써 행할지니라



지난 3월 Carlsbad City Council에서 있었던 공청회에서 건축허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5월에는 교회 부지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잔금을 다 지불하였습니다. 현재는 세부설계를 진행 중인데 이것도 곧 끝날 예정입니다. 앞으로 건축업자를 선정하고 은행에서 융자를 얻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정을 마치면 교회당 건축에 들어갑니다. 겉으로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건축 준비는 조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교회당 건축에 참여하는 것이 수시로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일생에 기껏해야 한두 번입니다. 주의 전을 건축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칭찬받는 다윗조차 성전 건축에 대한 간절한 소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았습니다. 주의 일이라고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교회당 건축은 부담으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맡기셨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건축이 믿음의 도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는 흥분되는 기회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하여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는 비결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는 이 가을에 우리의 달려온 신앙여정을 한번 돌아보며 신앙적으로 귀한 열매들을 거두기 원합니다. 주님이 지금 나의 신앙생활을 보신다면 어떤 평가를 내리실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는데 과연 주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번 캠페인을 통하여 무슨 특별한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 건축을 앞두고 우리의 기도생활, 말씀생활, 헌신의 삶을 점검해보자는 것입니다. 캠페인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앞으로 몇 주 동안 다루게 될 성경 본문들은 지난 2달 동안 새벽기도 동안에 다루었던 역대상과 역대하의 일부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 지을 준비를 하고 짓는 과정을 다루면서 귀중한 성경적인 원리들을 많이 발견하였는데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않은 교우들과도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입니다. 비록 사울 때부터 왕정제도가 시작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을 주관하십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나라 위 혹은 여호와의 위에 앉았다고 말하거나 성전을 하나님의 왕궁으로 묘사하며 왕국이 여호와께 속하였다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왕국의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출애굽 한지 2년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성막 안에는 십계명이 쓰인 돌판이 담긴 법궤가 있었습니다. 성막 위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즉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상징하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자기는 백향목 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 뒤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성전을 짓겠다는 의견을 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대신 솔로몬을 통하여 짓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때에 성전이 지어지게 됩니다. 성막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길갈, 실로, 기럇여아림, 놉, 기브온, 예루살렘 등 여러 곳으로 옮겨졌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때에 성전은 더 이상 옮길 수 없는 건물로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특히 다윗은 언약궤를 ‘하나님의 발등상’으로 비유합니다. 성전건축으로 더 이상 언약궤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으므로 언약궤가 안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은 모든 방백들을 소집하고 솔로몬을 성전 건축을 주도할 자로 소개하며 솔로몬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을 지으라는 당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지도자와, 왕을 섬기는 지휘관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과 왕자의 재산과 가축을 관리하는 사람과, 환관과, 장군 모든 주요 인사들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특정한 사람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합력하여 일할 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는지 살펴보면서 교회당 건축을 앞둔 저희들에게 적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성전을 지으십니까?

1)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지으십니다.

택한다는 단어가 4절에 3번, 5절에 한번, 6절에 한번 나옵니다.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자기나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유다 지파를 택하시고 유다 지파 중에서 자기 가족을 택하셨으며, 그 형제들 중에서 막내인 자기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주변의 대적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넓히고 나라는 강성하여졌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여러 아들을 주셨는데 그들 중에 솔로몬을 택하여 왕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하셨다고 합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바울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기 전부터 이미 우리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엡 1:3)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니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2)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지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강조한 것은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택하시고 불렀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각자를 행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138:8절에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다윗은 주께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실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합니다. 나의 목적은 내가 원하는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환경에 지배를 받고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낙심을 하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것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택하신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언약의 성취 여부는 전적으로 인간의 순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은 특히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섬길 것을 당부합니다. 백성들에게도 부탁합니다. 너희들은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계속 소유하게 될 것이며 너희 후손에게 이것을 길이길이 물려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열심을 다하여 섬기라고 합니다.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까?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선순위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함이며 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려면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영원히 굳게 세워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네가 여호와를 찾으면 여호와가 너를 만나주실 것이요 네가 여호와를 버리면 여호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이런 권면을 백성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 것은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모범적으로 순종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권면합니다. “주께서 성소가 될 성전을 짓게 하시려고 너를 택하신 사실을 명심하고, 힘을 내어 일을 하여라.” 이 말씀은 지금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는 부르심에 대한 감격과 함께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감당해야 합니다.



3) 공동체에 평강이 있을 때에 지으십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는 하였지만 다윗이 아니었더라면 성전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성전 건축 준비는 다윗이 완벽하게 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가 전쟁에서 이겨 많은 전리품을 얻거나 조공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바치면서 성전 건축을 준비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였으나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성전 건축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였으나 낙심하거나  계속하여 성전 지을 준비를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하는 목표가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다윗이 다른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전쟁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토 확장을 위함입니까?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맹주로 군림하기 위함입니까? 성전은 단순히 건물이 아닙니다. 단지 제사를 드리기 위한 건물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사람인 다윗이 아니라 평강의 사람인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시고 성전을 건축할 자로 선택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솔로몬이란 이름은 shalom과 같은 어원을 가집니다. 솔로몬은 평화, 평강의 의미를 가집니다.  대상 22:9,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다윗이 계속하여 전쟁을 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아직 평화가 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노리는 대적들이 존재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어디 가든지 이기게 하자 비로소 이스라엘에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때에 하나님의 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신 일을 보고도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고 도리어 거부하였을 때 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성전 파괴 예언을 했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방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척하였을 때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성전을 허무는 자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들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스스로 성전을 파괴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이 파괴된 성전을 사흘 만에 일으켜 세운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어떻게 예수님을 말씀을 설명하고 있습니까? 요 2:21,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유대인들이 참 성전 되시는 예수님의 육체를 파괴시켜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그 의미를 알지 못하니 도리어 조롱합니다. 46년 동안 걸쳐 지은 이 으리으리한 성전히 어떻게 부서지며 어떻게 3일 만에 지어질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 자기들의 성전을 허문 꼴이 됩니다. 눈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예언의 말씀을 하신 지 40년 만에 로마의 디도 장군은 성전을 완전히 파괴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3)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히 4:8-9,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구약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정한 안식을 가져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누가 진짜 안식을 가져다줍니까? 히브리어의 여호수아는 헬라어로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정한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요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서두에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문안합니다.

로마서, 고린도전후, 에베소, 빌립보 등등 예외가 없습니다.  



* 공동체적으로는 교회가, 개인적으로는 모든 성도가 성전입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리하라”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하시는 공동체적 장소로 비유가 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교회가 고린도에 있는 다른 신전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전이 됩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각 신자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가 됩니다.  몸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이 “값으로 산 것”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증거 됩니다.  



종합해보면 몸을 성령의 전으로 표현할 때, 공동체적인 면에서 교회 전체를 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고전 3:16; 고후 6:16; 엡 2:21-22) 각 개인에게도 적용하기도 합니다. (고전 6:19-20).  하나님이 우리의 영과 육을 만드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께 속하였고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내주 하는 성령님의 처소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결한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새 언약 시대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무리들을 중심으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도 성령이 부어져서 교회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주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일세기 로마제국에서는 시이저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였기에 핍박을 받고 심지어 순교를 당했습니다. 새 언약 시대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온 우주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드려야 합니다. 특히 왕이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인정하며 그분이 지체들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이란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며 그분과 동행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고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이 땅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 즉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우리들이 어떠한 자세로 교회당 건축에 임해야 합니까?

1)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엡 1:4-5,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용어입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어떤 짐승이 제물로 바쳐지기 전 반드시 그 짐승을 검사합니다. 흠이 발견 되면 하나님께 드리기 부적합한 것이 되어 바칠 수 없습니다. 흠이 없는 것만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는 의미는 신약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만이 성도라는 말은 아닙니다. 죄 없는 사람만 교회에 오라고 한다면 아무도 올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원에 아픈 사람은 오지 말고 건강한 사람만 오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막 2:17)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죄용서 받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죄인이었지만 예수의 보혈로 씻긴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가정생활, 직장생활, 대인관계 이 모든 것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집니다.  



2) 성도들은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다윗은 선택 받은 백성들과 솔로몬에게 아름다운 땅을 누리기 위해 여호와와 그분의 모든 계명을 구하라고 합니다. (28:8,9)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행동이며 우리와 더불어 교제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창 1:26)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그분을 만나 구원을 얻으며 그분을 찾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거절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는 자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자가 주님 보시기에 진실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전 건축을 통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오늘날 예배당이 아닌 진정한 성전이시고 왕이신 예수님께 대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성전의 기능과 의미를 성취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 자원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이 헌신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 자신을 드리는 것을 요구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위장된 헌신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자신을 드리는 참된 헌신이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짓기 전에 먼저 우리가 주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3) 믿음의 공동체에 평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바울이 물어본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전 인줄 알지 못하고 당을 지어 서로 판단하고 비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니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것을 인하여 당을 짓고 반목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가족들 중에 문제가 있을 때 책망을 하기는 하지만 가족에서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며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29:1)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시려는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주님의 전을 짓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서 그분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교회당을 짓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평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지 않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사이에 분열이나 갈등이 없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