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야곱의 축복(2) (창 49장)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9-02 13:25
Views
8264
창 49장 야곱의 축복(2)



하나님께서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같이 주시는 은총이 있습니다. 햇빛과 공기와 물입니다. 공기정화기를 사용하여 좀 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정수기를 사용하여 좀 더 깨끗한 물을 마시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자연 법칙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성적이 좋아지고 열심히 일하는 자는 물질의 복을 받고 자기 몸을 잘 관리하는 자는 일반적으로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유다와 요셉에게 약속하시는 복은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시는 일반적인 은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유다는 형제 중의 찬송이 되고 형제들 가운데 높임을 받는다고 합니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번성하게 됩니다. 강한 자들에게 잠시 괴로움을 당하지만 결국은 이들을 이기고 강한 자가 된다고 합니다. 특히 그가 받는 복은 조상들이 받은 복보다 더 클 것임을 예언합니다. 유다와 요셉의 후손들에게 약속하시는 복을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유다와 요셉과 같은 영광스러운 가문을 이루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요셉과 그 자손에게 약속하시는 복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복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며 영광스런 가문의 조상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끝납니다. 창 49장에서 야곱이 죽습니다. 요셉을 비롯한 야곱의 아들들은 그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합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야곱의 아내인 레아가 이미 묻혀 있는 곳입니다. 50장에는 요셉이 죽어 이집트에 임시로 매장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3장을 보면 요셉의 유언대로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나와 가나안으로 가지고 갑니다.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족장의 역사는 이삭과 야곱을 거쳐 요셉에게서 막을 내립니다. 족장 시대가 끝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후손들과 함께 하시면서 새로운 구속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창 15:13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시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게 될 뿐 아니라 장차 큰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야곱이나 요셉도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영원히 있을 것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것을 계속 암시합니다. 야곱의 유언은 족장시대를 마감하면서 가나안 정착시대를 바라보게 합니다.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기 직전 자기의 열두 아들에게 한 유언이지만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하는 유언이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 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는 장래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예언, 복과 저주 그리고 심판과 약속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예언은 애굽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전제로 합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근거로 자식들을 축복합니다.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 26:3-4,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28:13-14,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야곱은 장남인 르우벤으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예언을 합니다. 열두 아들들을 차례로 축복하는데 그중에도 유다와 요셉에게 더 큰 복을 빌어줍니다.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유다에 대한 축복이 8-12절에, 요셉에 대한 축복이 22-26절까지 비슷한 길이로 나타나는데 이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이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위치를 가지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1) 르우벤(Reuben)

야곱이 르우벤에게 말합니다. 너는 내 장남이요 나의 능력이며 내 정력의 첫 열매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다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장자를 하나님의 소유로 생각하였습니다. 장자가 좋은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야곱은 장자권을 가지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르우벤에 대한 평가가 무엇입니까? 위엄이 있고 능력이 있지만 물의 끓음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물의 끓음 같다는 것은 조급하고 충동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솟아오르는 정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네 아버지를 욕되게 하였습니다. (창 35:22) 빌하는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의 시녀였습니다. 그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의 특권을 상실하였습니다. 광야에서 고라 일당이 모세를 대적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르우벤의 자손들이 합세하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르우벤 지파는 뛰어난 지도자를 내지 못하였으며 갓 지파와 모압에 흡수되어 유명무실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을지라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혈기를 잘 부린다면 사람들에게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크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2) 시므온(Simeon)과 레위(Levi)

장남이 장자권을 갖지 못하면 차남, 삼남으로 기회가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들 또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도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폭발시켰습니다. 하란에 살다가 세겜 지역으로 이사 온 디나가 세겜 성에 놀러갔는데 그성 추장의 아들인 세겜이 디나를 유혹하여 자기 집으로 끌어들인 후 강간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자 하몰은 야곱에게 사돈관계를 맺자고 제안합니다. 들에 나가있던 야곱의 아들들이 디나의 소식을 듣고 심히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복수심으로 변합니다. 그들은 세겜성 남자들이 다 할례를 받으면 자기 동생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세겜 성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삼일쯤 지나 고통이 심할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쳐들어가 그 모든 남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의 행동을 전혀 뉘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건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들이 보인 행동은 단지 복수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라 즉, 시므온과 레위의 성격이 아주  잔인한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남을 공격하고 무자비하게 행동하는 것은 걸림돌이 됩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은 세겜성 사건을 기억하셨기에 그들은 야곱 족속 중에서 흩어지는 저주를 받습니다. 실제로 시므온은 여호수아서를 보면 흩어져서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다만 레위 지파는 각 지파들 사이에 흩어져서 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3) 유다(Judah)

큰아들부터 셋째아들까지 다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있으니 장자권의 기회가 유다에게로 넘어갑니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로서 레아의 소생입니다. 유다는 형제들 중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세겜 성에 일어난 디나의 사건 때에 유다는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형제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려 했을 때, 죽이지 말고 팔자고 제의하여 그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창 37:26-28) 후에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유다의 형제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내려갔을 때 요셉은 그들의 옛날 성격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알고자 하여 자신을 밝히지 않고 시험을 했을 때 유다는 자기를 인질로 삼고, 대신 막내인 베냐민을 놓아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형제를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려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찬양’입니다. 유다는 네 형제들의 찬양을 받을 것이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유다를 괴롭히는 대적들이 있어서 유다를 공격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결과 유다는 형제들의 앞장에 설 것이며 형제들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또한 사자로 비유됩니다. 내 아들 유다는 먹이를 찢고 굴로 들어가 엎드리고 눕는 사자와 같으니 어느 누구도 감히 유다를 건드릴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다 지파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보여줍니다.  메시야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실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유다란 이름의 뜻이‘찬송’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 후손에게 주실 구원의 기쁨을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의미하는 홀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다윗 왕조의 출현을 예언합니다. 유다 지파인 다윗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조를 계승할 것을 말합니다. 언제까지 그렇습니까? “실로가 오시기까지” 혈통적 유다 왕권의 종결과 더불어 영적 유다 왕인 그리스도의 도래를 상징하는 예언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때부터 모든 백성이 그에게 경배하며 복종할 것입니다.  



4) 요셉(Joseph)

구원은 유다 지파를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요셉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좀더 현실적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익한 것들입니다.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안에서 항상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풍성하게 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북쪽 열 지파를 떠나 나라를 둘로 갈라지게 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요셉이 복을 받은 것은 그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줄을 잘 서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을 가지면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나 상한 감정만 치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서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고 풍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생활 습관이 달라지고 감정처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상대방을 용서하며 인간관계가 회복하면서 가정이 치유되고 교회가 회복이 되고 삶의 현장에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요셉이 받은 축복입니다.  



요셉이 받은 축복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가뭄에도 마르지 않습니다.(22절)

팔레스타인 지방은 건기와 우기가 있습니다. 가뭄이 심한 지역이기에 가뭄에 물이 말라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을‘샘 곁의 무성한 가지’로 비유합니다. 나무가 샘 곁에 있으니 물이 풍부합니다.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기에 다른 나무들은 다 말라 죽어도 샘 곁에 심긴 나무는 가지가 담을 넘어갈 정도로 계속 무성합니다. 요셉의 두 아들 중에 더 번성하게 되는 아들이 에브라임인데 그 이름의 뜻도 풍성하다. 야곱은“무성한”이란 단어를 두 번이나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이 요셉 자손에게 풍성하게 임할 것을 말해 줍니다. 무성하게 자라다 보니 그들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실제로 솔로몬 이후 나라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갈려졌을 때 북쪽의 열 지파를 대표한 지파가 에브라임지파인지라 이스라엘은 에브라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복은 일시적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잠시 잘 되는 것 같아도 마를 때가 있습니다. 가뭄이 올 때에는 전부 말라 죽고 오직 샘 곁에 심긴 나무만이 살아남습니다. 샘 곁에 심긴 나무처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것이 요셉의 축복입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하나님께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2) 점점 강성해집니다 (23-24절)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기까지 있기까지 그가 겪은 시련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야곱은 그동안 요셉을 괴롭힌 자들을  '활 쏘는 자'로 부릅니다. 활 쏘는 자들은 세상의 힘 센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공격해왔습니다. 요셉의 배다른 형들은 요셉을 향하여 시기의 화살을 쏘아대다가 나중에는 요셉을 이집트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이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에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쉴 새 없이 욕망의 화살을 쏘아대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요셉을 추행미수죄로 고발하였습니다. 주류 사회에서 minority가 들어와 잘 되면 배가 아픈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요셉이 애굽 사람도 아니면서 바로의 총리가 된 것을 시기하여 그를 노리며 활을 쏘아대는 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고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은 이 강한 자들의 모든 공격을 믿음으로 잘 견뎌냈습니다.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맡겨진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요셉이 강성해진 후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감히 대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을 팔았던 형들도 요셉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조차도 총리가 된 요셉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까지 오른 것은 그가 줄을 잘 섰기 때문이 아닙니다. 머리가 좋고 처세술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샘 곁에 심긴 무성한 나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항상 겸손하였고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전능하시고 이스라엘의 반석이시요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야곱의 전능자의 손'으로부터 나옵니다. 요셉은 바로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범죄하지 않고 견디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잠 8:17-18,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점점 강성해지는 그런 사람을 세상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3)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입니다. (25절)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의 믿음 상태와 상관없이 그와 함께 계시며 계속해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나타나셔서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을 도망쳤을 때 라반이 야곱을 쫓아가자 그날 밤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경고하심으로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 형 에서와 만나기 전에도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심으로 형 에서의 손에서 위험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아무 상관없이 복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야곱과 함께 하사면서 복을 주셨던 하나님이 요셉과 여전히 함께 하시면서 계속해서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하늘의 복과 원천의 복을 약속합니다. 가나안은 사막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때를 따라 내리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농사는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복이 있다는 것은 때를 따라 비가 알맞게 내리고 날씨가 좋은 것을 말합니다. 원천의 복은 샘으로부터 얻는 복을 나타냅니다. 메마른 팔레스타인에서 제때에 비가 오고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은 자녀들이 번성할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알게 되면 내가 가장 어려웠던 때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그때도 나와 함께 하시면서 복을 주셨고 그 모든 과정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결국 그분의 뜻대로 사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시려고 주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은 안 되는 것 같고 안 풀리는 것 같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붙드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때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연단하시는 과정입니다.  일단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신 후에는 우리의 상황에 상관없이 복을 주십니다. 26절은 요셉이 받는 복을 확정적으로 인치는 말씀입니다. 요셉이 받는 복은 '부여조의 축복보다‘ 낫고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요셉에게 한 축복은 수많은 봉우리가 있는 큰 산과 같이 고귀하고 탁월한 축복입니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넉넉함과 풍성함이 요셉과 그의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있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엇입니까?

1)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첫째인 에서 대신 둘째인 야곱을 사랑하시고 그에게 장자권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자식들에게 축복을 할 당시에는 이집트의 총리였던 요셉이 다른 어떤 아들들보다 더 유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이나 므낫세가 아닌 유다의 자손을 통하여 메시야의 약속을 이루기 원하셨습니다. 유다에게 주신  메시야의 약속은 다윗을 통하여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까지 연결이 됩니다.



엡 1:4절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내다보시며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택하셨다는 단어는 문법적으로 과거 일회적인 사건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한번 선택했다가 도중에 여의찮으면 버렸다가 다시 택하거나 하지 않으십니다.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또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은 영원한 효력을 가집니다. 왜냐하면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은 시간을 초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된 것이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에 앉아계신 분들 중에 모태신앙이 있지만 장성하여 예수를 믿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연인 것 같은 사건들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주안에서 신앙생활 하게 된 것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선택하신 결과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복이기에 성도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격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느 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2) 하나님은 믿음에 합당한 반응을 요구하십니다.

야곱의 유언은 열두 아들의 장래에 관한 것으로 축복과 저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예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열두 아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야곱의 입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나타낼 뿐 아니라 예언을 받는 아들들의 행위에 근거하였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받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는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모든 삶을 이미 운명 지워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동적이거나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고후 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그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성도들에게는 죄에 대한 용서 (히 10:17)와 구원 (고전 3:11)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인데 그 행위에 따라서 어떤 성도들은 상급을 받고 어떤 성도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결국 행함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우리 안에 얼마나 활발하게 역사하는가 아니면 그 은혜를 제한하거나 거절하는가를 보여주는 외적인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은사를 제대로 활용하는 충성된 성도들이 되라고 권면하십니다. 자신의 주어진 삶에 대해 충실한 자가 달란트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상급을 얻게 됩니다. 행위에 따라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듣고 상급을 받게 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정죄되어 쫓겨나게 될 자들도 있다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의 일은 미루면 안 됩니다. 주님은 회계하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어진 형편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주님을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면서 주님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맡기십니다. 맡겨진 일을 제대로 감당할 때 우리가 수고한 이상의 상급을 받습니다.



3)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상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말씀의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면 우리의 영혼은 주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바로 서고 건강하면 무슨 일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이 샘물을 멀리한 채 자기 일부터, 자기 집부터, 자기 사업부터 챙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느 순간부터 말씀이 고갈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영혼에 만족이 사라지고 방황합니다. 섬기는 것을 부담으로 생각합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은혜에서 나오지 않고 자기 경험이나 재주에서 나온 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자기 편의대로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말씀의 샘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샘을 가진 사람을 모든 것은 가진 사람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있고 영생을 여는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고 그분과 동행하면서 신앙의 본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은혜에서 나오지 않고 자기 경험이나 재주에서 나온 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자기 편의대로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샘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샘을 가진 사람을 모든 것은 가진 사람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있고 영생을 여는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불평하기 전에 먼저 각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두 지파 중에서 유다와 요셉 자손들을 큰 복을 베푸셨습니다. 유다는 형제의 유익을 위하여 희생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은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남에게 베풀고,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더불어 일하시고 가장 귀한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열두 지파 중에 유다와 요셉의 자손들이 영적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유다 지파에서 갈렙, 옷니엘, 보아스, 모세, 히스기야, 요시야 그리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나왔습니다. 요셉의 자손 중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여호수아, 드보라, 사무엘이 나왔고 므낫세 지파에서는 기드온과 입다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귀한 가문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믿는 사람들조차  땅의 복에 초점을 맞추고 사느라 하늘의 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 세상적인 것을 구하기에 앞서 영적인 것 하나님을 섬기는 데 우선순위를 두라고 하십니다. 빌 4:1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성도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살고 위에서 부어주시는 신령한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과 형제사랑을 통하여 유다와 같이 영적인 장자권을 얻으며 요셉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전능자의 손이 힘입어 주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고 누리시고 나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