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창 46:1-7)

Author
Myung Myung
Date
2007-08-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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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6:1-7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최근에 저희 교회에 오신 가족들 중에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가족들이 여럿 됩니다. 태어나서 자라던 고향, 그동안 뿌리를 내렸던 모든 삶의 터전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이민을 올 때는 나름대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민 오셨습니까? 자신 있게 대답할 분들도 있고 우물쭈물 답변을 꺼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 교육 때문에. 본인이 공부하기 위하여. 돈을 벌기 위하여. 북한에 있는 친지를 방문하기 위하여 이민을 왔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70년 대 한국에서 오신 분들 중에는 남한의 정세가 불안하므로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왔다는 분들도 있고, 독재를 싫어서 미국에 왔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한국에 있을 형편이 못 되어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번 목장에서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으로 올 때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고 온 분들도 있겠고, 가서 부딪쳐 보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믿는 자들은 영원한 본향으로 갈 것이기에 어디서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민자로 살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범사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면 믿음의 조상들 못지않은 성공적인 이민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한국에 그냥 있었어야 하는데 공연히 이민 와서 이 고생을 한다고 후회하십니까? 아니면 처음에는 정착하느라 눈물도 많이 흘리고 땀도 많이 흘렸으나 이제는 삶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자식들도 잘 자라주어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정신없이 살고 있어서 잘 왔는지 못 왔는지 그것조차 생각해 볼 여유가 없으십니까?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이민자는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지금부터 4000년 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것도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자란 지역은 갈대아 우르로서, 바벨론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죄악이 만연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서부터 우상에 둘러싸여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선하거나 믿음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2:1)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민 길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가라.  명하십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아브라함은 말씀 하나를 붙들고 자기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이민의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1) 너는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2)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이 창대해질 것이다

3)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완전히 아브라함 편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더구나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이 계속해서 그의 자손들에게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민을 떠났다면 본문에 나타난 야곱은 왜 이민을 떠났습니까? 오늘 설교의 핵심 질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려면 45장까지 있었던 사건을 잠시 요약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애굽에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요셉은 첫 눈에 형들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의 동생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합니다. 요셉은 여러 모양으로 형들을 시험합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의 소생인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합니다.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성대곡을 합니다. 요셉은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밝힙니다.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자기들 앞에 있는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형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기들이 요셉을 종으로 판 사실을 기억하는 지라 그들은 두려움 속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을 위로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자기가 애굽으로 온 것이 단지 형들이 시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세웠다고 세 번씩이나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와 모든 가족들을 애굽으로 속히 데려오라고 당부합니다. 아직도 기근이 오년이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깜짝 놀라며 처음에는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아버지 야곱에게 다 말해줍니다.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또한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결심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약속대로 이루시려는 하나님. 연약한 야곱의 가족을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키우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따라 야곱과 그 모든 가족은 요셉의 초청을 받고 애굽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이 정착한 후로 100여년 이상 살던 가나안을 떠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갑니다. 가나안 시대가 끝나고 애굽 시대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았을 뿐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습니까? 더구나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나게 된다니 얼마나 흥분이 됩니까? 그런데 야곱은 애굽으로 가면서도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았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유를 가지고 헤브론을 떠난 야곱이 착잡한 마음으로 브엘세바에 도착하였습니다. 브엘세바(Beersheba)는 가나안의 최남단 도시입니다.  ‘브엘세바’라는 이름은 아브라함이 판 우물 때문에 아비멜렉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생겼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맹세하며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과 관련하여「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지어졌습니다. 이곳을 지나가면 광야가 나오고 광야를 지나면 애굽에 이르게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창 21:33)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 26:25) 이제 야곱도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립니다. 특히 그는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립니다.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신 분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애굽에 가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에 내려갔다가 혼이 납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드니 아브라함은 그것을 피하려 애굽으로 내려왔고, 자기 아내 때문에 자기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을 하다 보니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했는데 사라가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이 약속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은 단지 빼앗긴 사라를 찾아오기 위함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낳은 자식, 그리고 그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와야 하는데 사라가 바로의 아내로 남아 있다면 사단의 자식밖에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의 궁에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는 즉시로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바로의 신하들 앞에서 아브라함이 한 거짓말이 들통이 나며 창피를 당합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 생활을 제대로 못할 때 불신자로부터 책망을 듣습니다. 이제 네 아내를 데려가라.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쫓겨납니다. 크게 혼이 난 아브라함은 얼른 자기의 아내와 애굽에서 얻은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이삭도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막으시는 바람에 그랄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그랄에 머물러 농사를 지었더니 백배의 소출을 거두고 목축을 했더니 많은 소와 양이 생겨 이삭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잘됨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메우면서 자기들 땅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삭은 그들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그랄을 떠나 에섹으로 옮겨 우물을 팠으나 블레셋 사람들이 거기까지 좇아와 텃세를 부립니다. 이번에는 싯나로 옮겨 우물을 팝니다. 거기서도 갈등이 있으니 르호봇으로 옮깁니다. 세 번째 옮기고 나서야 블레셋 사람들의 시비가 그쳤습니다.  이삭이 르호봇에 살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굽이 풍요의 땅이라지만 그곳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니 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르호봇에 계속 머물자니 블레셋 사람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삭은 그랄에 머물렀을 때 하나님이 풍성하게 복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랄에서 함께 하셨다면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가나안의 변두리를 떠나 가나안 중심부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야곱인지라 가나안의 경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 우리 조상들에게는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는데 저는 기근을 당한 상황에서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내가 애굽으로 내려갈지라도 조상들과 맺은 언약, 가나안을 주시고 자손들을 복주시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유효합니까?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애굽으로 갈까요 말까요? 야곱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장자의 직분을 얻기 위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였습니다. 하란에서는 외삼촌과 속고 속이는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한 후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고 하여 야곱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많이 드러났던 야곱이었지만 연단을 겪으면서 믿음의 사람, 인내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희생제사를 드린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일이 당신의 뜻이라는 것과 그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야곱이 희생 제사를 드린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예배나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야곱은 몇 년 전 이삭이 보았던 비슷한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시는 말씀의 내용도 비슷합니다. 야곱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릅니다. 사태의 긴급성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막 치려할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며 그의 행동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가라사대’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마르’는 ‘약속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애굽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야곱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그 말씀하시는 내용이 전에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나타나 하신 말씀의 내용과 아주 비슷합니다.



이삭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을 향하여 순종의 발자국을 떼었던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24절) 하시면서 이삭을 격려하십니다.



1) 두려워 말라

브엘세바에 갔다는 자체가 이삭으로서는 큰 모험입니다. 그곳에 아는 사람도 없고 뚜렷한 생계대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흉년으로 인하여 브엘세바에 있는 우물들이 말랐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오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그런 이삭에게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처음부터 믿음이 대단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늘 함께 하시면서 그의 믿음을 키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삭도 지금은 믿음이 연약하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면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겠다고 합니다.



3)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민 일세대로 모든 것이 낯설고 언어의 장벽이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지금은 땀을 흘리고 수고하지만 언젠가 나의 자식들은 미국 땅에서 성공적인 이민자로 살아갈 것이라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자손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자손이 번성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이삭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환상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로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6:3) 요셉을 만나는 일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었으나 약속의 땅을 아주 떠난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두려워말라고 하신 것은 야곱의 이런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 가나안 시대가 끝이 나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것이다. 내가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실 것이며 그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 하시면서 벌써 출애굽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셉이 야곱의 눈을 감길 것이라고 하십니다. ‘눈을 감긴다’는 것이 아버지의 임종 자리를 지킨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을 통하여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뜻은 그의 아들 요셉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삭의 경우와 표현은 다르지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실제로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이민을 갔는데 4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싸움에 나갈 만한 장정이 60만이 되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60만 가정이 생겨났습니다. 남녀노소를 합하면 200만 이상은 족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야곱은 기쁜 마음, 평강의 마음을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복된 이민자의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만난다는 자체는 기쁜 소식입니다. 기근으로 양식이 없는 땅을 떠나 풍요의 땅 애굽으로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복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의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분의 뜻을 물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옛날의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고 확신과 기쁨 속에서 애굽으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워지려는 소원이 있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려는 열망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의 몰두, 쾌락의 추구, 세상적인 생각 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흐트러뜨립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2)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으로 떠나 애굽에서 400년 동안 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지키셨습니다.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400년이 지나서 그들의 자손들이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당신의 뜻대로 정확하게 인도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신지라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인간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지 않으시며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겠습니까?" (민 23:19)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 뜻을 이루며 내가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사 55:11) 130세 된 노인이 정든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애굽을 향하여 내려갑니다.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불안합니까? 심령 가운데 평강이 없습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주님의 뜻이 아니거나 혹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며 확신을 가지라는 사인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문제를 내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실 것이다. 우리의 삶에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다. 마음에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 37:5-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3)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야곱이 요셉과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요셉이 자기를 종으로 판 형들을 용서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자란 요셉의 성숙하지 못했던 행동으로 인하여 형들이 시기하였습니다. 형들은 꼴보기 싫은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았습니다. 요셉이 20여 년 동안 종으로, 죄수로 인생의 바닥을 기는 험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을 품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에 자기에게 몹쓸 짓을 한 형들도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봐 두려워하나 요셉은 도리어 그들을 위로합니다. 형들이 자기를 종으로 파는 악을 행하였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총리의 지위를 이용하여 기근에 허덕이는 자기의 온 가족을 살리고 그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신 이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시기와 갈등으로 막혔던 마음의 문이 화해로 다시 열립니다. 아버지와 자식들, 자식들과 자식들의 관계가 회복이 됩니다. 깨어졌던 인간관계가 회복되니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풍요로운 애굽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사람과 통하고 물질과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 우리를 불러 당신의 자녀 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를 사용하십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교우들, 특히 여러분들이 속한 목장에서 서로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야 형제 사랑을 경험합니다. 공동체가 바로 서려면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며 더 낫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의 죄를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용서해주셨습니다. 저희 모두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을 의지할 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기쁘신 뜻을 이루며 삶 속에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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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장 모 임



1단계: 경배와 찬양 (Worship & Praise)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찬양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2단계: 친숙해지기 (Ice Breaker)

  한 주일의 삶을 돌아보면서 감사하는 내용을 나눕니다. 지난 번 모임에서 기도제목을 점검합니다.



3단계: 말씀 나누기 (Word)

1. 창 46:1-7을 읽습니다.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이 약속:

  1) 두려워 말라;  2)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3)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복된 이민자의 삶을 사는 비결:

1)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2)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3)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들어가기: 이민 왜 왔습니까? 이민 온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누어 봅니다.





* 본문 요약이나 읽은 본문을 통하여 느낀 내용을 나누거나 적용합니다.

1) 애굽으로 행하는 도중에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이유는?





2)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격려하시는 말씀과 앞으로 성취될 예언은 각각 무엇입니까?









3)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나에게 본문이 주는 느낌이나 교훈이나 도전되는 부분이 있으면 나누어 봅니다.





  

4단계: 목표와 계획 세우기

1. 각자의 삶을 나누며 기도의 제목을 (가정, 사업, 교회) 교환합니다.  서로를 위하여 중보기도 합니다.



2. 후원하는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와 헌금을 드립니다.





3. 주변에 전도할 대상에 (불신자나 아직 교회를 정하지 못한 분들) 대한 정보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