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제자입니까? (눅 14:25-35)

Author
Myung Myung
Date
2008-01-24 22:01
Views
6141
눅 14:24-35 제자입니까?



교회에는 제직들이 많습니다. 미국 교회에 비하여 한국교회는 상대적으로 제직이 더 많습니다. 교회에 다닌 지 몇 년이 되면 당연히 제직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분을 안 주면 다른 교회로 가겠다는 사람들조차 있습니다. 제가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에서 얼마 되지 않는 분이 자기를 장로 시켜주면 건축헌금을 내겠다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교회의 일을 열심히 해야할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에 따라 교회 공동체에 충성하는 제직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제직들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주님을 헌신적으로 따라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우리 각자에게 묻습니다. 제자입니까? 참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제직이라고 교회에 필요한 일꾼이라고 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훌륭한 제직이요 일꾼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가 무엇인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를 각자에게 적용함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제자들이 되어 섬기는 가운데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이루어진 교회라는 주님의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거기에는 십자가의 수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길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을 보며 흡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향하여 단지 나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오히려 쫓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요즈음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교인이 떨어지기 십상인 말을 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 때문에 좋은 일이 있을까 혹은 괜찮은 구경거리가 있을까하여 예수님를 따르는 많은 무리보다 자신과 생명을 같이 할 수 있는 참된 제자들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년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를 길러내는 데에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화법을 사용하여 제자가 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미워하지 아니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를 지고 좇지 아니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안들은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받고 복 받고 세상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가? 꼭 그렇게 해서 제자가 되어야만 하는가 마음이 흔들리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교회에서 모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은 후에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기 위하여 교회 밖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교회 안에서 충성 할 뿐 아니라 삶의 현장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제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제자가 되려면 세 가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열두 제자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기와 함께 하는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제자도의 대가는 제직이 되거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치러야 할 구원의 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삶은 결코 떼어놓고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시한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이 무엇입니까?

1) 우선순위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6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자기를 좇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가족들과 심지어 자신까지도 미워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을 미워하라니 말씀의 모순이 아닙니까? 이런 해석의 혼란은 셈어의 관용적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옵니다. 셈어에서는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을 ‘한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누가는 직역을 했지만 마태는 의역을 하였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   부모는 우리를 낳아준 분이고 처자는 현재의 우리의 삶과 함께 하며 행복을 주는 사람들이고 형제 및 자매는 의지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이들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우선순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제자도의 첫 번째 대가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이 가족들을 두고 복음을 전하러 다닐 때 미쳤다고 하여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려 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 마리아를 사랑하고 그에게 순종하여 받들었으나 공생애가 시작된 후로는 더 이상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가족들이 와서 밖에서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예수님은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반문하십니다.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눅 8:21) 하시면서 예수님의 가족을 정의합니다. 육신의 혈통이 주님의 가족이 되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족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자들로 구성되는 영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나라의 가족이 되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요 예수님이 새롭게 정의하신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가족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그의 생명은 꺼져가면서도 사도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을 가장 사랑해야만 합니다. 예수님만이 제자의 모든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렇기에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생명을 다해 주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가 주님의 제자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아침을 주님이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아침을 마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단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무슨 뜻입니까? 베드로가 주님께서 잡히시는 날 밤에 다른 제자들은 혹시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저들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에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른 제자들과 비교하며 장담을 하였습니다. (마 26:33) 주님은 베드로가 한 말을 염두에 두시고 네가 그때 장담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는 네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는 주님의 물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주관하심을 뜻합니다. 자기의 필요만을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거기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삶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말씀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그의 의를 구하라 -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얻으라. 하나님의 뜻이 자기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때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둔 삶입니다. 그리할 때 이 모든 것, 즉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도 가지려고 염려하는 것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 다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신의 신분과 세속적 가치관으로 도전하는 세상의 현실에서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목사보다 일반 성도들이 더 신앙의 도전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날마다 마주치면서 그들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주님이 원하시는 우선순위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단하고 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버리신 예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참된 제자가 됩니다.



2) 십자가의 삶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7절)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제자가 되려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십자가란 예수님 당시에 최고로 잔혹한 형벌의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란 죽음과 고통과 수치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죽으실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너무도 크신 것을 아셨기에 친히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란 예수님을 따르면서 각자가 치러야 할 희생을 가리킵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이익을 많이 보기 위하여 나름대로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까? 하물며 참된 진리와 은혜가 주어지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굳은 각오가 되어있지 않는 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연중에 십자가를 지지는 않고 면류관만 얻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면류관은 이 땅에서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실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도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명령형이 세 개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지금 당장 자기를 부인해야 하고 지금 당장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추잡하거나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정이란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손해요 자신을 잃는 것 같이 여겨지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진정 자기를 찾는 것. 요 12: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시면서 자기 부인의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본받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매일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그것이 예수님의 참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가가 필요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망대의 비유이고 또 하나는 전쟁하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는 것이나 전쟁을 하는 것이 제자가 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망대를 세울 때 자신이 가진 돈이 충분한지 미리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건축부터 시작했다가 완성하지 못하면 망대도 세우지 못하고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 건축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을 하려는 왕이 자신의 군대로 상대와 싸울 수 있는지 미리 따져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면 사절단을 보내어 화친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렇게 않고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다가 이기지 못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군사전략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감정적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삶의 중심에 서서 우리의 모든 삶을 다스리는 제일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삶을 살았다면 그분의 제자인 우리도 마땅히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일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충성스런 삶, 우선순위를 주님께 둔 삶과 더불어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과연 자신이 그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지를 자신의 전 인생을 걸고 미리 헤아려야 합니다. 산에 한번 올라갔다고 왔다고, 무엇인가 뜨거운 것을 경험하였다고 그것이 전부인양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나서게 된다면 나중에 부끄러움과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이 제자로 결단하고 나설 때 신중하기를 당부하십니다.



3) 소유의 포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3절)  



제자도의 세 번째 원리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입니다. 소유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려는 우리를 향하여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물질을 포기하라니 너무 지나친 요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요구는 우선순위를 말하는 첫째 원리와 자기 십자가를 지는 두 번째 원리와 연관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자기의 소유를 버리라는 것도 결국 자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주인 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매 순간의 삶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소유를 문제 삼습니까? 소유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사람의 소유가 그 사람의 삶과 인격, 그리고 능력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최고의 신은 돈입니다. 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라면 그러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해도 힘들겠지만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유를 버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경우 정신이 버쩍 듭니다. 돈 문제는 우리 마음에 실제적인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물질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주님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요 나는 주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물질을 버릴 수 있는 자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 6:21)고 하셨습니다. 제자도는 매일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구체적인 생활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였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짠맛을 잃은 소금은 음식의 맛을 돋우는 조미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음식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의 역할도 못합니다.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어 땅에 버려지고 발에 밟히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제자도의 특징을 잃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아무 쓸데없어 버려진 소금과 같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본문은 소위 ‘값싼 은혜’(cheap grace)로 표현되는 잘못된 신앙을 경계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열두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세기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상황이 다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제자도를 실천하는 방식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제자도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에 우리 모두는 여전히 주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반응하고 그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의 삶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헌신한 자입니다.



제자가 되겠다고 섣불리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로서 부름을 받고서도 핑계만 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된 제자도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실천이 요청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단지 진리와 은혜에만 관심이 있는 정도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인생에 대하여 깊이 숙고한 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가족을 무시하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다만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다짐하기 전에는 결코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명하신다면 나는 그분을 따라 무엇이든지 하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삶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으로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치르는 대가가 크다 할지라도 기꺼이 감당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름뿐인 ‘명목상의 교인(nominal Christian)'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참 제자입니까? 주님은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안수받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제직인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오래 교회를 다녔는지 관록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생명을 걸고 주님을 끝까지 따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정말로 주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위하여 가진 것을 모든 것을 아낌없이 포기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지금도 찾으십니다. 그들과 더불어 일하기 원하십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들의 삶을 통하여 영광받기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21세기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영적인 장자들입니다.



그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면 제자 되는 것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7)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인도함을 구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세워지는 교회는 하나 됨을 위하여 힘쓰는 교회요, 예배에 힘쓰는 교회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힘쓰는 교회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시키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 주는 이번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면서 성령에 대하여 다루겠습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제직이 되기 전에 어떤 일들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면 자연 주님의 마음에 합한 제직들, 귀한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금년 한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참 제자들이 되기를 결단하고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충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