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성탄절의 소망 (이사야 9:6)

Author
Myung Myung
Date
2007-12-23 11:26
Views
5274
이사야 9:6  성탄절의 소망

  

금년 성탄절에 무엇을 선물로 받기 원하십니까?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Mercedes Benz, 다이아몬드 반지, LCD TV? 이런 선물은 받는다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오늘 저희들이 성탄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처음 오신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성탄절에 shopping mall에서 살 수 없는 선물, 세상이 줄 수 없는 선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에 이미 그분의 오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의 구원이 한 아기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아기는 태어나고 아들은 주어진다’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는 전에도 이미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지 700년 후에 한 아기로 세상에 태어나면서 그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지 않고 아들이 주어진다로 표현하였습니다. 즉 태어날 아기는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 속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은혜의 선물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선물은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실 때 그분을 영접한 자들이 받을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그 선물이 무엇인지 알 뿐 아니라 실제로 그 선물을 다 받으시고 누리시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지혜의 선물 (gift of wisdom)

아 정말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 어떤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하면서 이 성탄절에 하나님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십니까? 성경적인 안목을 갖고 싶고,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격려를 원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사야가 언급한 첫 번째 이름은 ‘기묘자’ (Wonderful)입니다. '기묘자'란 '기적', '불가사의한 일', '경이로운 일'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로서 메시야 자신과 그의 하시는 일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경이, 오묘 그 자체임을 나타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지혜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종래에 들어오던 서기관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권세 있는 가르침에 완전히 압도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께서 직접 전하시니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시는 지혜의 말씀은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가슴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기에 그저 ‘놀랍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하신 말씀 뿐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앞으로 있을 재림, 모든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사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동정녀 탄생은 사람들에게 단지 신비감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메시야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러 오신 분이시기에 흠 있는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살던 초대 예루살렘 교인들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에 능력이 있었고 그들의 삶에 주님이 함께 하는 증거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안 믿는 자들이 자기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초대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주님의 지혜로 채워질 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때 삶과 사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모사’ (Counselor)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조언자'라는 의미가 있으며 신약에서 모사에 해당되는 말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돕도록 부름 받은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보혜사로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면서 구원의 길로 가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훌륭한 카운슬러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시고 대언하시며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날 것을 아시고 자기 대신 또 다른 보혜사를 제자들에게 보낸다고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또 다른 보혜사는 바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제는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성령이 시키는 대로 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궁극적으로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지혜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합니까?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2) 능력의 선물(gift of strength)

invincible armada 16세기 말까지 유럽과 대서양을 지배했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무적함대가 영국의 해적 출신 Drake가 이끄는 함대에게 져서 대서양의 제해권을 빼앗기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초석을 세웠습니다. 그러던 대영제국도 최강대국의 바통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인간 세상에 무적이란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더 강한 자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영원토록 무적이신 분이 계십니다. 이사야는 장차 오실 그분을 가리켜 mighty God,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힘이 없고 지친 분들이 계십니까? 스스로 힘으로 헤쳐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까? 이번 성탄절에 정말로 주님의 능력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진로 문제를 놓고 고민하거나, 바닥을 치는 경제상황으로 인하여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인간관계의 상처로 인하여 소외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까? 앞뒤 좌우가 막힌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성도들은 위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분의 능력은 사람들을 승리로 이끕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이 말씀은 메시야의 본질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공자, 맹자, 석가모니, 마호멧과 같은 위대한 인간들 중의 한분이 아닙니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오셔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53:2)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어 ‘엘 샤다이’는 창세기에 6 회, 욥기에 31 회나 사용된 말로서,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과 ‘전능하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샤다이’의 복합어. God Almighty.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들 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분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사무엘 때에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 그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사무엘에게 부탁합니다. 삼상 7:8,“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요청합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며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블레셋 군대에 대하여 하나님은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며 이스라엘에 앞서 대적과 싸우셨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하나님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의를 잃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블레셋사람들을 뒤쫓아 가며 쳤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는 동안에는 블레셋 군대가 감히 이스라엘을 넘볼 수 없을 만큼 블레셋은 그날 철저한 패배를 당하였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내가 무엇인가 해 보겠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가 이루시리라” (잠 3:6)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2-3)  

힘, 용기, 인내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붙들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예수께로 오면 쉬게 하겠다 약속하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사 40:30-31,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3) 안정의 선물(gift of security)

헬라어로 중생이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도 있고 ‘위로부터 난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위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때로 문제가 생깁니다.



불안을 벗어나 좀 더 안정된 삶을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래가 보장된 상황으로 바뀌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사야는 메시야의 이름을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계속하여 사랑하고 아껴 주듯이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능력과 사랑과 권위로 당신의 백성을 영원히 보존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함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를 끈질긴 사랑으로 붙드십니다. 우리를 지켜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지속적으로 채워주십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 때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담대해지고 안심하게 됩니다.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았기에 다윗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시 18:1-2,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하면서 다윗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주님을 느끼고 주님 때문에 담대하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4) 평강의 선물(gift of peace)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자꾸 불안해집니까? 억울한 생각이 듭니까? 수면제가 아니면 잠이 오지 않습니까? 이 성탄절에 조그마한 마음의 평안을 원하십니까?



이사야는 메시야의 이름을 ‘평강의 왕’또는‘평화의 왕’ 으로 부릅니다. 세상의 평화는 금방 왔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화평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형제나 자매를 편견으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과거의 경험을 인하여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의 갈등과 적대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화해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이요 단절과 소외의 상태에서 새로운 생명을 공급하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자녀다운 생활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성도들도 한 몸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거룩함으로 함께 자라가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 시키는 중보자로 오셨기에 주님을 본받는 팔로마한인교회 교우들이 있는 곳에는 화평의 역사, 화목케 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 도처에서 shalom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시 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렘 29:11-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은 물을 꽁꽁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처음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사도 바울도 평강을 위하여 권면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평강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애를 쓴다고 계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shalom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이번 성탄절에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그것을 찾으려고 선물 카탈로그를 뒤적이십니까? 그것을 찾으려고 북적이는 샤핑몰을 헤매십니까? 그렇다면 이번 성탄절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를 계속 가진다면 내년 성탄절도 내후년 성탄절도 헛되이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물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탄절에 성도들이 가지는 소망입니다.



* 주님이 예비하신 선물을 어떻게 받습니까?

1)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받습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과 동행함으로 받습니다.

영접할 뿐 아니라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날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좀더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뜻대로 살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분만이 주시는 선물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혜의 선물, 능력의 선물, 안정의 선물, 평강의 선물을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선물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럴 때 주님의 선물은 이번 성탄절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주어집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이 날이 무엇인지 바로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려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십자가로 다리를 놓으셨기에 우리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사야는 그 나라가 인간의 열심이나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세워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 예비한 선물을 택하신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도 존재합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주님이 다시 오는 날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날마다 즐거워하기 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서 세상에서 살 수 없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선물을 받기 원합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지혜의 선물, 능력의 선물, 안정의 선물, 평강의 선물을 때를 따라 받기 원합니다.  이 귀한 선물을 기꺼이 풍성하게 주기 원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드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