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거듭나야 하겠다(요 3:1-12)

Author
Myung Myung
Date
2008-04-06 13:18
Views
3356
요 3:1-12  거듭나야 하겠다

오늘 설교의 키워드는 ‘거듭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1) “거듭 태어나겠습니다”

지난 1월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대표와 정대철 상임고문이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 및 상임고문단 연석회의에서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당내 갈등으로 인하여 당이 시끄럽습니다. 플래카드는 거듭나겠다고 쓰여 있는데 이들의 표정은 굳어 있습니다.



2) 박신혜 활동 중단…"성인 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한 전초전"

탤런트 박신혜가 아직 아역 탤런트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기 위해 잠시 연예활동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3) 마음의 창 ‘눈’…아름답고 넓은 창으로 거듭나기

대부분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쳐다보게 되는 것이 눈으로 그 사람의 용모와 첫인상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쌍까풀 수술을 하든, 처진 눈꺼풀을 올리든 눈교정을 통해 거듭나서 자신감을 갖자고 합니다.



4) 버려진 땅 난지도의 '거듭나기' 물새들이 몰려드는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난지도였는데 70년대 국토개발 지침에 따라 쓰레기장으로 변하여 사시사철 악취가 가는 열악한 곳이 되어버린 채 3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서울시는 난지도를 공원으로 개발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부동산 중개인은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로 상암 지역이 이미 땅값이 오르긴 했지만 이번 발표로 더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거듭난다’는 말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다시 잡아보자, 연예인은 인기를 다시 누려보자, 의료인은 수술을 통하여 자신감을 다시 찾아보자, 개발하는 사람들은 땅의 가치를 올려보자고 합니다. 거듭남을 주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현재로는 안 된다. 무엇인가 달라져야겠다. 무엇인가 변화를 통하여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갖자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니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은 ‘거듭남’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거듭남’을 사용하신 의도는 세상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거듭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거듭나셨습니까? 예수님은 말씀으로 도전하십니다. “거듭나야 하겠다” 과연 거듭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떻게 거듭나는 것인지, 거듭나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통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 분들은 확신을 가지게 되고 확신은 가졌으나 세파에 시달리면서 영적으로 무뎌져서 거듭난 사람들이 보여주는 열매를 거두지 못한 분들은 믿음을 점검하면서 거듭난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1절)

2장 23절에 보면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1)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엄격한 실천, 특히 모세 5경에 기록되어 있는 레위적 정결을 엄수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일반시민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들로 무시하였습니다. 로마시대에 6천 명 정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뛰어난 율법학자도 있었고 경건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그의 스승 가말리엘도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의 작은 조항까지도 철저히 지키려고 애를 쓰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식에만 치중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가장 많이 받은  그룹이 되었습니다.

2) 유대인의 지도자

유대인의 지도자라 함은 유대인 최고의 의결기구라 할 수 있는 산헤드린 공회의 종신직 멤버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 Sanhedrin 공회원의 숫자가 70명 정도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최고 지도층 인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3) 이스라엘의 선생

니고데모는 성경에 능통한 자인지라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4) 나이가 많고 부자

요한복음 19:39에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밤에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 가져왔을 정도로 부자입니다.



종합해 보면 니고데모는 권력, 명예, 학식, 재산 모두를 갖춘 그야말로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아마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자기 동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그가 행하는 표적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라 인정하기 꺼려했지만 니고데모는 달랐습니다. 예수를 한번 만나 보려고 싶었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밤에 찾아온 이유가 공회원의 신분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밤에 예수님과 깊고도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기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니고데모를 체면이나 주변의 시선을 인하여 밤중에 찾아오는 비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당시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상황에서 더구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러 온다는 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요 종교적 관심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줍니다. 어쨌든 존귀한 유대인의 선생이 갈릴리에서 온 한 시골 선생에게 겸손하게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니고데모로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일생 잊을 수 없는 것이요, 영원히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어두움에 있던 니고데모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생명의 빛을 쪼이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아직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절)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면서 겸손한 자세를 취합니다.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선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찾아온 목적을 말하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진실이지만 특별히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십니다.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지키는 바리새인이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선생인 자기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니고데모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충격적인 말입니까? 수가성 여인에게 거듭나야겠다 하면 그 여인은 지은 죄가 많은 지라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의외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니고데모와 같은 입장이라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사회지도층 인사인 자기가 갈릴리 촌사람에게 수모를 당한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몹시 나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존심이 상하여 그냥 돌아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가 아주 하나님 나라에 아주 못 들어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서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그런데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수가 성 여인처럼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예수님에게 끌립니다. 마음 문이 점차로 열려집니다. 말씀을 통하여 도전을 받고 변화를 경험합니다.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나오는데 왜 다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을 시기하고 비판하고 십자가에 달게 하는 주역을 담당합니까?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에 우리가 알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기에 거듭나게 됩니다.

  

*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요, 영생을 얻는 것, 구원을 얻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영토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은 예수님과 연결시킨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것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하나님의 통치와 그에 따른 영생과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위로부터 난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이런 개념을 알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4절)  

니고데모가 생각하는 '표적'은 귀신이 쫓겨나고 병자를 고침을 받는 기적인 반면에 예수님이 생각하는 '표적'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단의 지배 아래 살던 인간이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는 것이 '표적' 중의 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습니까?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가 장소적인 개념이요 거듭나는 것을 육신적으로 두 번째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예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거듭’으로 번역된 anothen이라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시간적으로는 새롭게, 처음부터; 공간적으로는 위로부터(from above). 따라서 거듭난다는 말은 새롭게 다시 난다는 뜻이 있고 위로부터 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뜻도 있습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뜻을 주님께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고 자연인 상태로는 니고데모와 같은 율법의 선생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조차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 집안은 삼대 째 예수를 믿는데, 나는 제일 큰 교회 교인인데 하는 사실이 우리가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는 동기는 제공하지만 거듭나는 것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듭남을 경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려 거듭나게 됩니다. 이왕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할 바에야 전도서 12:1처럼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하는 그런 인생의 황혼기에야 주님을 영접할 것이 아니라 아직 젊을 때에 시간과 달란트와 정성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5)

니고데모가 거듭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다른 표현을 사용하셔서 설명하십니다.  물과 성령에 같이 언급되는 구절이 에스겔서에 나옵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5-26)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워질 것을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물은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물 뿌림은 우상숭배로 더러워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거의 죄로부터 단절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뜻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강퍅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출애굽 할 때에 바로의 마음이 그랬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굳은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을 성령으로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물 뿌림만으로 부족하니 성령의 역사로 새 영과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에스겔은 이미 600년 전에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사람의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따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의 역사로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표현도 죄의 씻음과 마음의 새롭게 됨으로 약속된 종말론적 사건을 가리키며 그 약속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속적 사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8절)

예수님은 바람과 영의 유사점을 들면서 성령의 활동의 특징을 설명하십니다. 실제로 pneuma라는 단어는 성령, 바람, 호흡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듯 성령도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을 인간이 통제할 수도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영향력은 알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 때문에 잎사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을 통제하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향력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에게 능력이 임하고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위로부터 태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있는 곳에 잎사귀가 흔들리듯이 육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성령의 바람을 인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들 때 이미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증거입니다. 지속적인 성령 충만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하시는 일에 민감하고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선생인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거듭남과 성령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미 이것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지위에 맞는 성경의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그는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아는 줄 알았으나 실상은 무지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아직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결과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열두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삼 년을 같이 다니거나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별로 두드러진 행동이 알려지지 않으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른 어느 제자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겁이 나서 도망쳤지만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빌라도에게 담대하게 요청하여 받은 후 그 시신에다가 향유를 바르며 주님을 장사하는 귀한 일을 하였습니다.



*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롬 6:23. 그러니 우리에게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자연적인 출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운데 영적으로 나는 것을 뜻합니다. 육신적으로 살아있으나 영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주님보시기에 죽은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변화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 거듭남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착하게만 산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준에서 보면 세상적으로 성공한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만났을 때 거듭나지 못하였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거듭날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거듭나게 됩니다. 즉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거듭남이 가능합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구세주로, 우리 각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는 것이요 믿을 때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십니다.



* 거듭남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거듭남의 결과를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 들어간다. 영생을 얻는다. 구원을 얻는다 하며 다양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옮겨갑니다.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롭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종교적인 지식이나 유대인이라는 혈통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교적부나 주소록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구원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깊은 신앙과 영적인 체험을 할 수는 없기에 어린아이가 한발 한발을 떼면서 걸음마를 연습하듯이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 배우기를 힘쓰고 교회와 목장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있는 육의 사람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성령이 주관하시는 영의 사람이 됩니다. 이미 거듭남을 경험하였더라도 세상에 휩쓸리다가 열심과 처음사랑을 잃어버린 분들이 혹 있다면 주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워짐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믿음 생활에서는 왕년에 무엇을 했다고 자랑하는 것보다 믿음의 현재 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믿음의 훈련,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현재 나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랫것으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하늘의 것으로부터 채움 받기를 원하는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남의 의미를 분명히 깨달으시고 확신이 없는 자는 거듭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하는 분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교제를 통하여 훈련되고 준비되어져서 성경에 약속된 풍성한 삶을 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를 전하셔서 함께 기쁨을 나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