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내니 두려워말라(요 6:16-21)

Author
Myung Myung
Date
2008-07-13 13:15
Views
5312
요 6:16-21 내니 두려워 말라

요즈음 LPGA 대회를 보면 참가자 3분의 1정도가 한국계 선수들입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실력도 좋아 지난주까지 삼주 연속 우승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계 남자 선수들도 여자들 같지는 않더라도 금년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골프 선수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운동감각이 있어 체력도 좋아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꾸준한 연습을 바탕으로 실력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습득한 기술이 거의 본능이 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합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서원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다는 간증을 듣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기도한 것이 대단하지만 믿음의 한탕주의를 기대하지 말고 평소부터 우리의 삶을 믿음의 안목으로 보고 믿음을 사용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상황에 부딪칠지라도 자연스럽게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의 믿음의 진도가 상당히 더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표적을 보았으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끔씩 제자들에게 문제를 내시고 그 문제를 믿음으로 풀기 원하십니다. 빈들에서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문제를 내셨던 주님께서 이번에는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서 문제를 내십니다. 제자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오병이어의 표적을 경험하였으면서도 새로 주신 문제를 풀기 위하여 믿음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교회적으로 창립 13주년을 맞이합니다. 교우 각자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고 주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문제를 주신다면 믿음으로 잘 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번 창립주일을 맞이하면서 믿음이 더욱 든든해지고 주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믿음으로 문제를 풀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그중에 7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개를 살펴보았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왕의 신하를 고치고, 38년 된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였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표적이 나옵니다. 표적(sign)이란 용어는 예수의 기적이 그 자체에만 의미와 목적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특히 6장에 나타난 표적들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기적들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유월절 때입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40년 동안 만나를 먹인 사건을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재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만나 즉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걸어서 지나간 것이나 바람과 파도를 다스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안전히 인도하신 사건을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벌어집니다.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게 해주었더니 무리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무리의 관심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계속 자기들 곁에 두기 원합니다. 출애굽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주신 것은 그들의 육신을 배부르게 함도 있었지만 그것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하신 것은 그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고 그분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자신의 능력이 그저 사람들의 욕심이나 채워주려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그릇된 욕망을 가진 무리 때문에 분주하게 움직이셨습니다.  

1) 제자들을 즉시 베에 태워 보냅니다.

제자들의 계산으로는 빈들에서 있던 그 많은 무리를 먹일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로 남자만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았습니다. 제자들은 표적을 보며 감탄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목한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표적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이 무리처럼 예수님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십니다.



2) 빈들에 있던 무리들을 흩으십니다.

광야에서 음식을 배불리 먹은 무리가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 한 것은 예수님의 인격을 본받거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서둘러 그들을 해산시킵니다.  



3) 산으로 기도하러 가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을 뿐 아니라 중요한 때마다 특별기도 시간을 가지시면서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드리는 복종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 때문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무리를 뒤로 한 채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밤이 점점 깊어갑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위기가 발생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를 타고 가는데도 풍랑을 만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항상 형통하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때로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도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한 단계 upgrade 시키십니다. 지금의 위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둡고 풍랑이 일고 예수님이 그들 곁에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 가버나움까지 가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문제를 자기들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오병이어 표적을 시작하실 때 해가 저물고 이미 어둡기 시작하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난 후 배를 타고 가버나움을 향하여 갈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배를 타고 갈 때에 갈릴리 바다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4절에 보면 바람이 거슬러 불어왔기에 제자들이 탄 배는 풍랑에 몹시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목적지에 가기 위하여 노를 젓느라고 몹시 애를 썼습니다. 제자들의 항해는 어두움, 바람, 파도로 인한 고난의 항해였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무엇이라 설명합니까?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은 아직 제자들에게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바다에는 언제나 고난의 바람이 불고 괴로움의 파도가 치게 마련입니다. 살다보면 질병에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리고 돈에 시달릴 때가 있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주권 문제가 만만치 않은 장애물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할지라도 고난을 당하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까? 주께서 배에 계시지 않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주님이 계시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 임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배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배에 오르실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가 높게 일므로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좀처럼 앞으로 나갈 줄을 모릅니다. 갈릴리 어부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이 애를 써서 노를 저었지만 기껏 나아간 곳이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였습니다. 아마 제자들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풍랑이었던 같습니다. 노를 젓는데 온 신경을 쓰느라 예수님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노를 젓는 팔에 힘이 빠지고 두려움이 생깁니다.



* 우리가 한계에 부딪쳤다고 느낄 때가 주님이 일하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주십니까?

1)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시고 곤경에 빠지자 그들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방황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말씀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오십니다.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십니다. 사경은 오전 3시에서 6시 사이로 이른 새벽을 말합니다. 아직 이른 새벽이니 컴컴하여 제대로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편에서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점점 가까이 옵니다.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지? 제자들은 밤 바다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은 풍랑이 일어난 갈릴리 바다를 걸어오셔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세상의 고난이나 어두운 환경을 인하여 놀라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들에 눌려서도 안 됩니다. 바다보다 크신 분이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파도를 다스리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2)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알았다면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이 과잉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다가오셔서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제자들은 두려움이 안도와 기쁨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내니’라는 표현은 영어로 “I am”입니다. '나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3:14 떨기나무 불 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이냐고 모세가 물었을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을 다짐하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항해 과정에도 폭풍 한 가운데서 배는 깨어져가고 물은 들어오고 아무리 노를 저어도 좀처럼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불안한 현실, 요동치는 환경, 불확실한 미래가 우리를 염려하게 합니다. 그럴 때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나다’ 선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시선이 집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주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모든 삶의 공포를 물리칩니다.  



3) 바람을 잠잠케 하십니다.

예수님이 배에 올라타시니 바람이 그칩니다. 이를 보고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얼마 전 있었던 오병이어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고 마가는 설명합니다. 어떻게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 명이상 되는 사람을 어떻게 먹일 수 있으랴 생각하던 제자들이 이번에는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믿지 못하고 도리어 두려워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의 전도 사역에 동참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직 잘 깨닫지 못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지니 눈이 있으나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주님의 음성을 믿음으로 듣지 못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삶에도 예기치 않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그런 상황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던 것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이 더 이상 우리와 육체로 동행하지 않으시지만 성령으로 동행하시며 하늘 보좌 하나님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땅의 여러 가지 시련으로 고통을 당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런 사랑과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붙드는 믿음이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우리를 건집니다.



2)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바다 위로 걸으실 수 있습니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욥 9:8)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셨음을 보이셨습니다. 시 107편을 보면 “폭풍이 잠잠해지고, 물결도 잔잔해진다. 사방이 조용해지니 모두들 기뻐하고, 주님은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다.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그분을 기려라. 장로들이 모인 곳에서 그분을 찬양하여라.” 방금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이 시 107편을 반영한다면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시 107편에서 찬양하는 주님이신 것을 보여줍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예수님인 것을 알자 기쁨으로 예수님을 배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을 삶의 중심에 받아들이고 의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모시어 들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실 때 배는 분명히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르시자마자 예수님과 12명의 제자들이 탄 배가 순식간에 가버나움 해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런 비슷한 일이 사도행전 8장에도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다가갑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빌립의 전도로 내시는 거듭났고 빌립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올 때 성령께서 빌립을 갑자기 다른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신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둡고 풍랑이 심하고 주님이 없는 상태에서 목적지에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의 해답이 바로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은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2) 예수님은 평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9:6에 의하면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3)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시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마 1:23)



우리의 인생 항로에도 예상치 않은 위험이나 문제들이 다양하게 다가옵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 삶의 위기는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한계에 부딪칠 때가 하나님이 도리어 우리를 찾아오는 은혜의 기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다가오십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시지 않지만 성령께서 믿는 자들과 동행하시며 하늘 보좌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애를 쓸 때는 제자들이 탄 배와 같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바랍니다.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홀연히 우리의 문제를 다 거두어 가십니다. 우리의 배에 오르셔서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목적지로 가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들의 믿음이 돋보이기보다는 그들의 부족함,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납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더 감동을 줍니다. 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도 바울은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이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그 사랑이 있었기에 저희 교회를 오늘까지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어떤 문제가 주어질지라도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항해를 주님을 모시고 가는 멋진 항해로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