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말씀을 통한 부흥(느 8-10장)

Author
Myung Myung
Date
2008-11-09 14:48
Views
4006
느 8-10장  말씀을 통한 부흥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십니다. 마르틴 루터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바티칸에서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성당을 건축할 때 재정이 부족하자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모금하는 자들은 들고 다니는 통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예수 안 믿고 죽은 영혼들이 천국에 간다고 선전을 하며 모금을 하였습니다. 행위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루터를 비롯한 많은 신앙인들의 고민이었지만 세속적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중세 캐톨릭 교회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루터가 로마서를 읽는데 1:16,17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롬 3:28,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을 우리가 인정하노라” 성령의 조명 가운데 그 의미가 분명히 깨달아지면서 그 동안 그를 눌러왔던 구원의 문제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타락한 중세교회를 반박하는 95개조의 개혁조항을 Wittenberg 성당에 붙여놓았습니다. 캐톨릭 교회는 루터를 즉시로 파문하였지만 교회를 뒤에 업은 이탈리아의 득세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독일의 제후들의 보호를 받으며 종교개혁을 진행하였습니다. 루터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당시 모든 예배는 라틴어로 진행되고 성경은 라틴어로만 되어 있었기에 일반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만인제사장 설을 주창하며 평신도도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며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후로 성경이 각 나라 말로 번역되어 누구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져야 한다. 이 말은 종교개혁 이래 교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습니다. 참다운 개혁은 제도를 바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 사람들의 의식이 바뀔 때 가능합니다. 말뿐인 개혁, 자기는 변화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민이 오바마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변화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에서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 난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미국민들로 하여금 Bush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는 매케인보다 오바마를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데, 그 원동력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영적 부흥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서의 전반부인 1장부터 6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영적, 정신적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부임할 때에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의하여 파괴된 이래 제대로 복구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고, 유다 지방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는 안정이 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느헤미야는 안팎에서 오는 온갖 방해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백성들과 더불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불과 52일 만에 복원하였습니다. 성벽 공사를 완공한 느헤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폐허였던 예루살렘에는 사람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았으므로 그 성을 지키고 거주할 백성들이 필요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아우인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다스리도록 하였고, 예루살렘에서 봉사할 레위인들을 세웠고 성을 지킬 파수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인구조사를 하여 1차로 귀환했던 사람들의 족보와 숫자, 노비들과 짐승들의 종류와 그 숫자까지 자세히 파악하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성전이 완성이 되고,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성벽도 완성이 되어 든든한 요새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기 전과 같이 제대로 된 성전도 있고 성벽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 된 것입니까? 하나님은 성벽 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가운데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원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바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원하시는 바입니다. 영적으로 폐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일어나는 놀라운 부흥을 살펴보며 그 부흥의 원리를 각자의 삶에 적용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삶에 기쁨이 있고 열매가 풍성한 부흥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느헤미야서 8장부터 10장은 성벽을 다시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나타난 변화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은 크게 율법 낭독(8:1-12), 초막절 준수(8:13-18), 회개와 서약(9:1-10:39) 등 세 단락으로 나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따른 신앙고백이 있고 고백에 따른 언약갱신이 있습니다. 성전과 성벽은 하드웨어에 불과할 뿐이요 그곳에 말씀과 고백과 실천으로 채워져야만 진정한 신앙의 공동체가 됨을 보여줍니다. 성이 다시 지어졌을지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자세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유대 공동체의 진정한 회복은 성전과 성벽의 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토대로 회개 운동, 실천운동을 통하여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이 회복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성벽 봉헌식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일어난 부흥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백성이 부흥의 주체입니다.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것은 그 이룬 것이 크든지 작든지 관계없이 참여한 자들에게 자부심을 줍니다. 성벽 중건 공사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무사히 끝나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자부심이 부흥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부흥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백성들입니다. 세 단락의 시작이 히브리어 원문에는‘모이다’로 시작합니다. 문법적으로 ‘스스로 모여들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느헤미야나 에스라가 일부러 백성들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 편에서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 요즘으로 따진다면 신학교 교수 겸 목사인 에스라를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감독 아래 성벽을 다시 지었습니다. 성전도 있고 성벽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들이 한 일의 의미를 찾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모습으로 살 수 없다면서 진정한 변화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들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성벽 재건을 이루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좀 더 알기 원하여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도록 잘 준비된 영적 지도자 에스라를 찾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백성을 언급할 때 모든 백성을 강조합니다. 모든 백성(1, 5, 6, 9, 11, 12), 모든 사람(2, 3), 뭇 백성(13), 다 깨닫다(8), 다 우는지라(9), 다 초막을 짓고(17) 하면서 부흥 운동에 다함께 참여한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이 언급할 때마다 동사들의 주어가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이 모여(1절),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1절),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3절), 일어서니라(5절),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6절),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9절)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12절)합니다. people power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중의 힘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나갈 때 막강한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2. 말씀이 부흥을 일으킵니다.

영적 각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그저 딱딱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든 삶의 분야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지침, Instruction 입니다. 그 지침을 따라 살아갈 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생 제사를 중요시하였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제사를 드릴 성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시합니다. 제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교회나 개인의 부흥의 첫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 모두 듣습니다.

에스라를 통하여 전해지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만한 회중이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습니다. 높은 자나 낮은 자나 신분의 구별이 없이 다 수문 앞 광장에 몰려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온 백성들 사이에 충만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들어야 합니다. 아파도 들어야 하고 힘들어도 들어야 하고 바빠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믿음을 주고, 능력을 주고,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고, 소망을 줍니다.



2) 진지하게 듣습니다.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여섯 시간이나 율법책을 읽지만 어느 누구도 길다고 지루하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와 분위기가 너무도 진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데 감격하여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상당수는 생애 처음으로 율법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가졌을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심.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입니다. 아마 에스라도 이런 시간을 가지기는 처음일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도 열심히 준비하여 전하고 말씀을 받는 자도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을 때 큰 은혜가 임합니다. 세상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깜박 잊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다가 세상을 깜박 잊을 수 있는 성도들, 은혜의 바다에 풍덩 빠지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겸손하게 받습니다.

그들은 에스라가 말씀을 전하도록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을 준비하였습니다. 그가 강단에 올라서서 율법책을 펴니 모인 회중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에스라에 대한 경의의 보여줄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경의를 보여줍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백성들도 손을 흔들면서 “아멘, 아멘” 외치고 나서는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며 여호와께 경배합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이 에스라가 praise God 하면  일제히 아멘으로 화답하는 장면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애에 이렇게 진한 감동으로 사로잡힌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면서 ‘아멘’하는 것은 설교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 앞에서 드린 그 기도와 찬양을 동의하고 시인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져 감동이 될 때 경의와 확신을 가지고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4)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백성들이 전에는 이사야 53:8절의 말씀과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던 못된 양이었으나 이제는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들려주니 다 깨닫습니다.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니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합니다. 초막을 지으라 하니 초막을 짓고 절기를 지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물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손을 흔들면서 열광하지 않더라도 지금 보이는 열심의 반만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성전이 불타버리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매를 맞고 온갖 고난을 겪은 후에 찬송가 338장의 가사와 같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기보다 평소부터 제대로 신앙생활 하면서 영육 간에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진지한 자세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영생의 말씀이 계시오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하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께 나오고 그 말씀을 통한 위로와 삶의 지혜와 능력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를 일으킵니다.

1)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에스라의 목소리가 아무리 크다 해도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이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율법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는데 대부분의 백성들은 아람어를 사용하였기에 에스라가 낭독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레위인들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강단 위에 13명, 강단 아래 군중들 사이에 13명의 레위인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그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내용을 전달해줄 뿐 아니라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도 해줍니다. 자칫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질서 있게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한 감동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모습,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악 된 자신들의 모습들이 깨달아집니다. 그 동안 자기들과 자기의 조상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떠나서 살아 왔는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인하여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소리 내어 통곡합니다. 광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됩니다. 그들이 보여준 통회와 자복의 역사는 24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모하는 심령에 은혜의 단비를 내리십니다. 만 명이 모이거나 백 명이 모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달라져야겠다, 우리에게 변화가 나타나야겠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말씀을 사모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에 강한 감동을 주십니다.



2)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죄를 고백하고 통회하며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은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으로 흘리는 애통의 눈물이지만 곧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위로하시고 눈물을 손수 닦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인 백성들이 회개하며 통곡하자 총독인 느헤미야,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 그리고 레위 사람들이 진정시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합니다. 이 날이 무슨 날입니까?  레위기 23:24에 의하면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칠월 일일에 나팔이 울려 퍼지고 나팔절이 시작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성회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날은 모든 사람들이 생업을 중지하고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과 승리의 나팔을 불며 즐거워합니다. 느헤미야도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10절) 하면서 백성들을 위로합니다. 오랫동안 율법을 떠나 있었으나 이제 율법을 찾았으니 하나님을 기뻐하고 힘을 얻자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문제가 있고 낙심되는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시 18:1) 죄를 인하여 애통할 때가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며 주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증거입니다.



10절에 보면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살진 것은 고기를 말하고 단 것은 주스와 같은 음료가 말합니다. 12절에는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그 권유대로 음식을 장만할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 곧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 같은(신 16:11) 가난한 이웃들에게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음식을 나누고 모두 함께 여호와의 성일을 지키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함께 나누며 잔치를 벌였습니다. 주일에 모일 때마다 온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함께 기도하고 애통할 때 함께 애통해야 합니다. 잔칫집처럼 떠들썩하고 크게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흥을 경험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3.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1) 초막절을 지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고 나서 이튿날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다시 말하면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와 더불어 별도로 모여 율법을 자세히 연구합니다. 그러다가 초막절에 관한 말씀을 발견합니다. 초막절은 칠월 십오일부터 일주일 동안을 말합니다. 마침 초막절이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초막절 기간 동안 초막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초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하신 것과 동시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것을 기념하였습니다. 이제 은혜를 받고 보니 바벨론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백성들로서 초막절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수아 때로부터 느헤미야 때까지 초막절을 이같이 거국적으로 지킨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후로 거의 천년 가까이 초막절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가나안에 들어와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편안해지니 안락한 집 놓아두고 공연히 나뭇가지 주어다가 초막을 만들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것을 궁상맞게 여겼습니다. 물질 문제가 해결되니 신앙생활이 나태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들의 삶을 비추어보니 오랫동안 초막절을 지키지 않은 것을 깨닫습니다. 시기적으로 초막절을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초막절의 규례를 따라 '즉시로' 나뭇가지를 꺾어다 성 안에 초막을 짓고 거하면서 자신들을 또다시 해방시켜 주시고 고향땅에 정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니 초막절을 안 지키는 것이 당연한 전통처럼 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달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 더욱 중요합니다. 말씀을 깨닫는 대로 즉시 행해야 합니다. 즉시 회개하고, 즉시 기도하고,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부흥이 시작되니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교회에서 성도의 집에서 주의 이름으로 모여 말씀을 배우고 나누는 데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이 깨달아질 뿐 아니라 우리 각자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능력을 받습니다.



2)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에스라는 초막절 7일 동안 매일 율법책을 낭독하였으며 8일째 되는 날에는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한자리에 모여 엄숙하게 폐회 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막절 예식이 7월 21일에 끝나자 백성들은 24일에 다시 모여 금식하며 삼베옷을 입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모든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 선채로 자기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한 결과가 죄의 각성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성도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발견하게 되며 참된 회개 외에는 하나님 앞에 설 소망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그대로 서서 3시간 동안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며 보냈고 그 다음 3시간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율법을 깨닫도록 곁에서 도와주었던 레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부는 단상에 서서 여호와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기도하였으며 일부는 백성들을 향해 다 같이 일어나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을 인도합니다. 그런 후에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하며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조상과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니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반역의 삶을 살 수 없음을 다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백성은 언약을 세워 문서로 남기고 방백들, 레위인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 문서에 인을 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줍니다. 부흥의 물결이 온 이스라엘을 덮습니다. 신앙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신앙생활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 보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부흥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영적 부흥이 필요합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려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득한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회개의 눈물이 마르지는 않았습니까? 신앙생활이 그저 덤덤하지는 않으십니까?



* 본문을 중심으로 정리한 부흥을 위한 전략이 무엇입니까?

1)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2)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 3:16)



3)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4)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초막절은 광야에서 돌아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뿐 아니라 한 해 동안 추수를 마친 후에 거둔 곡식을 저장하였기에 수장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요즈음으로 따진다면 추수감사절에 해당합니다. 불황의 여파가 어느 때보다 심하여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을 느낍니다. 힘들다고 불평하기 전에 우리의 삶에도 부흥을 일어나기를 사모해야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전후하여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체험하고 영적 부흥의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이번 추수감사절을 부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감동과 기쁨이 교회 뿐 아니라 성도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해를 돌아보며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이 계절에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쁨이 충만하며 소망 중에 주님을 바라보면서 불황을 이기고 주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삶의 현장에서 부흥을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