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느 6장)

Author
Myung Myung
Date
2008-11-02 18:06
Views
6413
느헤미야 6장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살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오해나 공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변명한다고 해서 남들이 귀담아 들어주지도 않는 것 같고, 억울하다고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는 것 같고, 마음만 답답해집니다. 요즈음은 인터넷이 어찌나 잘 발달했는지 개인 정보가 쉽게 노출되고 그와 관련된 소문들이 너무도 빨리 퍼집니다. 특정한 사람을 인신공격하는 소위 악플들로 인하여 당사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근거 없는 소문이나 비방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가 또 어려움을 당합니다. 유대 사회 내부에서 생긴 갈등을 해결하고 나니 이제는 또 외부에서 대적들이 공격을 해옵니다.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마귀는 안팎으로 느헤미야를  집요하게 흔들어대며 어떻게든지 성벽 재건공사를 중단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성벽 재건에 열중하는 느헤미야의 결연한 자세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느헤미야가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도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용기를 얻어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마귀는 다시 외부에서 공격을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으로 부임한 첫날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성벽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 하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사 과정을 철저히 계획하고, 자재를 준비하고 백성들에게 성벽을 다시 지어야 하는 취지를 설명하고 그들과 더불어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안팎으로 방해는 있었지만 성벽 재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무너져서 끊어졌던 성벽들이 다 연결이 되었습니다. 이제 문짝만 달면 공사는 끝이 납니다. 거의 다 되었다는 생각으로 느헤미야는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본문에는 다시 한 번 대적자들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호른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무리들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까지 결코 쉬는 법이 없습니다. 산발랏 일당을 격동시켜 느헤미야의 사역을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방해하고자 합니다.  

  

마귀의 방해전략이 무엇입니까?

1) 거짓편지를 이용합니다.

성벽 공사가 완공되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대적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벽 공사를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끈질긴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성벽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또 다른 방해 음모를 꾸밉니다. 느헤미야가 있는 한 자기들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이 기회에 아예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일꾼들이 한 손에 도구, 한 손에 무기를 들고 일하게 하였습니다. 유대인 무리의 반은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병력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이렇듯 철저하게 지키고 있으니 느헤미야만 표적으로 하여 해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유다 사람들의 수비가 허술한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합니다. 오노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20마일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습니다. 산발랏은 오노에 군대를 매복시켜 두었다가 느헤미야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음흉한 의도를 알고 느헤미야는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합니다. 지금 성벽 중건의 큰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일을 중지하고 갈 수 없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이유입니다. 대적자들은 끈질깁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도전해옵니다. 느헤미야가 오지 않자 계속해서 네 번이나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만나자고 합니다.  



2) 거짓 증인을 세웁니다.

신문을 보니 미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후보들을 둘러싼 헛소문들이 많이 퍼진다고 합니다. 오바마는 벌써 대통령이 된 것처럼 취임사를 미리 써 놓았다고 하면서 그가 오만하다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소문 때문에 오바마 측에서는 하와이 주정부가 발부한 출생증명서를 제시하기도 있습니다. 67년에 매케인이 타고 있던 항공모함에서 불이나 해군이 134명이나 죽었는데 매케인이 그 사건의 장본인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도 나돌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소문이 나돌면 당사자들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네 번씩이나 편지를 보내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어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냅니다. 봉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읽어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공개되어 소문이 퍼지기를 바라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방 사람들 중에 벌써 소문이 파다하고, 가스무도 그러는데’ 하면서 소문을 언급하고 가스무라는 거짓 증언으로 등장시켜 느헤미야를 역모의 주인공으로 몰려고 합니다. 즉 느헤미야가 성벽 건축을 계기로 왕이 되려 한다고 모함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를 세워 느헤미야를 왕으로 선전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하니 왕에게 이런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한번 만나서 의논해보자고 요청해옵니다. 느헤미야의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모함입니다. 중상모략은 사단이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경우에 이런 억지가 통합니다. 사람들이 유언비어에 귀가 솔깃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도 거짓 증인들이 많이 왔습니다.(마 26:60)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느헤미야는 짤막한 답장을 보냅니다. “이런 일은 없는 것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이런 일들로 피곤하게 만들어 성벽 재건의 역사를 중단시키려는 산발랏의 의도를 잘 알았기에 만나자는 제의를 거듭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멈출 수 없으므로 내려가지 않겠노라.” 느헤미야에게는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우선순위이므로 다른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맡겨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역경과 시련을 뚫고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이런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3) 거짓 선지자를 세웁니다.

느헤미야가 끝내 오기를 거절하자 이번에는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를 매수, 느헤미야에 대한 거짓 예언을 하게 하여 그를 실족시키려고 합니다. 어느 날부터 스마야가 갑자기 사람들과 왕래를 끊고 꼼짝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단단히 시험이 들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심방을 갔습니다. 너 왜 이렇게 집에만 있느냐? 그랬더니 스마야는 대적들이 보낸 사람들이 오늘 밤에 느헤미야를 죽이러 올 터이니 함께 성전 외소로 들어가 문을 닫고 피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외소는 '성전의 현관으로부터 지성소까지의 부분'을 말합니다. 이 외소는 문과 벽돌로 말미암아 외부와는 차단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신변을 염려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느헤미야를 유인하여 성전에 숨게 함으로 먼저 하나님을 거역하게 만들고, 백성들에게 비겁자로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총독이라는 자가 자기 목숨 구하겠다고 도망을 친다면 백성의 지도자로서 체면이 손상됩니다. 더구나 제사장들만 출입하는 성소로 피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요 그런 자들은 죽게 됩니다. 대하 26장에 보면 나라가 강성해지니까 유다의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져서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제사장 아사랴는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하며 제지하였지만 웃시야가 도리어 화를 내었을 때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그는 급히 성전에서 쫓겨나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로 살았습니다.  



도비야의 계략은 느헤미야가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백성들 앞에서 잘못 처신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나 같은 자가 목숨을 보존하겠다고 성전으로 도망을 가? 나는 안 간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였기에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서에 선지자의 역할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가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렘 1:7)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가야하고 감동을 주시는 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려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돈에 눈이 어두워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발람과 같이 선지자 스마야는 양심을 속이고 지어낸 말을 하며 느헤미야를 유혹합니다. 스마야 외에도 여자 선지자 노야다와 그 외 다른 선지자들도 대적들에게 매수되어 거짓 예언을 하면서 느헤미야를 두렵게 했습니다.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마귀의 계략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위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17장에 보면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남쪽 유다 왕인 여호사밧에게 아람을 함께 치자고 제안합니다. 믿음이 있는 여호사밧은 아람을 치는 것이 합당한지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아합에게 제안합니다. 아합이 이스라엘 선지자 400명을 모아 물어봅니다.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아람과 더불어 싸울까 말까? 이에 그들은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리이다”하며 말합니다. 그럴 때 여호사밧은 이들 외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더 없습니까? 아합이 말하기를 미가야라는 자가 있기는 한데 그 친구는 예언하면서 흉한 말만 합니다.  400명의 선지자들은 아합왕의 눈치만 살피며 듣기 좋은 소리만 하던 아첨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하나님이 감동주시는 말만 하니 악한 아합 왕에게는 항상 부정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부름 받아 나온 미가야가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저희가 왕의 손에 붙인 바 되리이다” 빈정대었습니다. 사실을 말하라 하니 그가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누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 가서 죽게 할꼬 하니 한 영이 나아와 말하기를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니 시드기야라 하는 선지자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면서 여호와의 영이 어떻게 나를 떠나 네게 말씀하더냐? 그때 미가야는 감옥에 끌려가면서 한 마디 합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진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백성들아 다 들을찌어다” 선언합니다.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은 길르앗 라못에 아람과  싸우러 올라갔다가 적군이 우연히 쏜 활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4) 내통하는 자들을 세웁니다.

도비야는 어느 누구보다도 느헤미야에게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유대인들 귀족들 중에 그와 내통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도비야와 편지로 왕래하였습니다. 도비야와 느헤미야를 화친케 하려고 도모한 것이 아니라 오직 도비야 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느헤미야에게 와서 도비야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며, 그의 행위가 선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도비야에게 가서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들에게 대하여 소상히 일러 바쳤습니다. 18절에 나오는 므술람은 느헤미야가 성벽 건축을 하는데 있어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유대인 내에 도비야의 인맥을 언급하는 이유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개건하는 데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성벽재건 공사를 마칩니다.

이렇듯 대적자들은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만들고, 끈질기고 간교하게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리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였지만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 느헤미야는 약 140년 동안 폐허로 있던 성벽을 불과 52일 만에 재건합니다. 충성하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응답과 위로입니다. 공사가 다 마쳤다는 소식이 사방에 알려지자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합니다. 온갖 방해를 하였음에도 성벽 공사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방인들 스스로도 인정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거둔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느헤미야가 대적들에게 한 번도 자신의 무죄함에 대하여 떠든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며 자기에 맡겨진 일에 충실하였을 뿐입니다.



느헤미야를 둘러싼 소문, 대내외적으로 끈질기게 나가오는 위협은 느헤미야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의 집요한 공격에 대하여 느헤미야가 보여준 행동은 성도들이 위기를 당할 때 극복하는 성경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1)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합니다.

산발랏이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내 협상을 제의한 것과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는 헛된 소문을 퍼뜨리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느헤미야에게 만나자고 한 것은 성벽 재건 공사를 중지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억울하고 힘이 빠집니까? 느헤미야는 자기의 입장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며 자기에게 동조해 주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직접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와 소위를 기억하옵소서'(14절). 느헤미야가 자기의 선정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그 어떤 칭찬이나 상급을 염두에 두지 아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듯이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공의에 따라 대적들을 심판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모든 문제를 맡겼습니다. 그러면서“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힘 있게 해달라고 구하되 그 힘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이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의 손에 당신의 힘을 주시어 거룩한 뜻을 이루게 하시며,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도는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게 되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시편 저자들은 노래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니라”(시 37:1)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4-6) 어려우십니까?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2) 사명에 헌신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에 절하지 않은 이유로 평소보다 일곱 배 더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하였으나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는 자기들의 확신을 자기들의 생명과도 바꿀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담대하였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설령 하나님의 뜻이 지금 풀무 불 가운데 던져져 죽는 것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우상에 절하는 구차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나 책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함으로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간음하였을 때는 그가 열심히 블레셋과 전투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부하들이 전투를 벌일 때 다윗은 낮잠을 잤고 남들이 쉬는 저녁 시간에 일어나 목욕을 하던 밧세바를 탐욕스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사명에 대한 헌신은 사단의 유혹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사명에 충실할 때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대적자들의 모함과 거짓 소문에 대해 느헤미야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둘러싼 소문이나 비방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묵묵히 자기의 일만 계속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였기에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를 비워야 합니다. 비워진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선순위에 따라 맡겨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위협이나 핍박 앞에서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키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3)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선지자 스마야가 함께 성소로 가서 피하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그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 하나가 영적인 안목입니다. 이런 영적 안목이 없으면 마귀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갑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든든히 섰기에 거짓 예언에 넘어가지 않고 바른 판단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하고 물러간 후에도 계속 도전해 왔던 마귀인데 하물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공격해 오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문제가 없어. 우리 가정은 항상 행복해. 우리 사업은 번창일로야  물론 이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언제든지 사탄의 방해가 있게 마련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봅니다.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권면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의 인도함을 받고 그를 대적할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말씀에 순종합니다.

스마야의 제안을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성소로 가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총독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 느헤미야의 거룩한 순종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연상하게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 12:24-25)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기꺼이 바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끝임 없이 조여 들어오는 대적들의 위협과 방해 속에서 성벽 중건에 몰두하는 동안 그의 마음은 흔들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주님을 붙들었을 때 52일 만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여전히 마귀의 시험과 유혹은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날마다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어떠한 싸움을 싸웠는지 보아야 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에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고후 4:9,“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보여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초대교인들이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능력을 오늘날 우리의 이웃들, 주님을 모르거나 아직도 신앙생활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리는 이웃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드러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까?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오직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을 보게 하시고 그 사명을 이루는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겸손, 느헤미야가 가진 담대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헌신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높으신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귀의 집요한 공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자기 몸을 드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주 안에서 기도하며 영적인 안목과 담대함을 얻어 맡겨주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