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팀웍의 리더 느헤미야(느 3장)

Author
Myung Myung
Date
2008-09-28 18:08
Views
4506
느 3장 팀웍의 리더 느헤미야



한국에서 핸드볼은 축구나 야구와 달리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 중의 하나입니다. 핸드볼이 좋아서 하기는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암담하기만 합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친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감동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당시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역대 국가대표팀 중 최약체로 평가 받았지만 선수들이 많지 않으니 전력 보강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30이 넘어 은퇴하거나 주부로 있는 노장 선수들까지 불러 모아야 했습니다. 팀을 구성하고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노장선수들과 신진 선수들의 갈등이 있었고, 감독과 선수들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감독 교체, 선수 이탈 등 여러 가지 시련과 곡절이 있었지만 그녀들의 핸드볼에 대한 근성과 자신들의 꿈에 도전하려는 투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노장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묵묵히 땀을 흘리며 본을 보이니 대표팀은 마침내 최고의 팀웍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테네로 향하기는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이 결승까지 올라가리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은 이런 우려와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결승까지 진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핸드볼이 국기인 세계 최강 덴마크에 맞서 연장에, 재연장, 그리고 승부 던지기까지 128분의 마지막 1초까지 투혼을 발휘한 그녀들의 경기는 AP통신 선정 ‘2004 아테네올림픽 10대 명승부전’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단체경기에서 팀웍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팀웍은 신앙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예루살렘 성 재건을 위하여 백성들의 힘을 하나로 모읍니다. 그들은 뛰어난 팀웍을 바탕으로 마침내 성벽 재건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통하여 팀웍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저희의 사역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복습해봅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성벽 재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느헤미야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밑에 있는 사람들을 내몰지 않고, 지속적인 기도와 함께 세밀한 현장조사를 통하여 철저하게 준비를 한 후 일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힘을 모아 일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감동으로 주신 비전을 제시하면서 소집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성벽 재건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고 그 성문들은 다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여기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아닥사스다왕도 나를 도와 성벽 재건 사업을 허락하였고 필요한 자재 사용도 허락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열정에 담긴 말을 들으면서 모인 무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며, 오랜 동안 잊었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성벽 재건의 사명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분명히 깨닫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던 유대인들이  "재건 공사를 시작합시다" 하며 한 마음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결단을 보입니다.



제사장들이 건축을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공사 전체의 큰 그림을 가지고 있고 그 진행 과정을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하듯이 깔끔하게 이끌어갑니다. 성벽 재건 프로젝트는 단순히 무너진 성벽을 다시 짓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라 그 과정에 느헤미야의 깊은 배려를 보게 됩니다. 성벽 재건 공사가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 시작되는데 양문은 성전이 가까운 곳으로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 형제 제사장들이 먼저 이일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양문의 기둥을 놓고 문짝을 달았으며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넬 망대에 이르는 구간에 돌을 쌓아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구간들과는 달리 건축한 것을 성별합니다. 공사를 양문에서 시작한 이유를 알려면 양문의 역할을 알아야 합니다. 희생 제사에 사용되는 양들이 인접한 베데스다 못(요 5:2-9)에서 깨끗이 씻은 후에 양문을 통하여 성전 구역으로 운반되었습니다. 성벽재건 project는 단순한 성 쌓기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을 거룩한 도성으로 구별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버림받고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무기력했던 유대인들이 개혁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남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제사장 가문의 사역을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사업의 종교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공사가 양문에서 시작되어 양문에서 끝이 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다른 문에는 '성별한 후에'라는 말이 없이 그냥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양문에 대해서는‘성별’하였습니다. 성벽 공사가 끝났을 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면서 예루살렘 성 전체에 대한 봉헌식을 거행하였습니다.(느 12:30) 하나님의 선택받는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최우선순위임을 성전재건의 순서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성벽 재건은 양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계의 반대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장은 성벽 재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맡은 관할 구역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각 집안별로 작업량과 장소를 할당하여 그 일을 감당하게 하였는데, 이는 일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의 신앙적인 자세를 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75명의 리더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제사장이 앞장서서 일합니다. 성전에서 가장 천한 일을 담당하는 느디님 사람들이 자기들이 거주하는 성전 망대 주변 지역을 재건합니다. 각 지방의 통치자들 즉 예루살렘 지방, 벧학게렘, 미스바, 벧술, 그일라 지방을 다스리는 자의 아들들도 참여합니다. "금 장색, 향품장사"들과 같이 육체노동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고급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자기의 일들을 잠시 접어둔 채 성벽 재건에 참여합니다. 레위인들과 일반 상인들이 참여합니다. 관리의 아들 르바야는 부와 권력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신할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수고하였습니다. 신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각자에게 할당된 책임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 여성들이 참여합니다.

예루살렘의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인 살룸이 자기 딸들과 함께 성벽을 보수하는데 참여하였습니다.  여성들의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에 여성들이 직접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눅 8장에 보면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와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물질적으로 도운 사람들도 주로 여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남녀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도 경건한 여성들의 수고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합니다.



- 원근각처에서 참여합니다.

성안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성 밖에 거주하는 자들도 이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밖에 사는 자들은 성벽 부근에 사람이 살지 않은 지역에 할당되었습니다. 여리고(2), 드고아(5, 27), 기브온(7), 미스바(7) 사람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속여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던 족속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함께 일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20km 쯤 떨어진 드고아에서 온 평민들도 동편 성벽의 한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합니다.

- ‘그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을 하는 자세는 "그 다음은"이라는 단어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3장에‘이 단어가 28번 나옵니다. 느헤미야는 이 공사를 수행함에 있어서 성벽 공사를 42개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38개 가문에 분담시켰습니다. 한 그룹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고, 그 다음 그룹이 그 다음 부분을 잘 감당하면서 전체가 이루어집니다. 역할을 분담함으로 일을 능률 있게 하고, 책임 의식을 고취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다시 세우는 것은 크고 힘든 일이지만 각 그룹이나 사람이 자기의 몫을 감당하였을 때 가능하였습니다.



- ‘집 맞은 편’

아무리 짓겠다는 열정이 있어도 일할 수 있는 자리에 제대로 배치되어 일을 하지 않으면 노력이 낭비 될 수 있고 일이 재미없으면 그 열정도 시들어지기 마련입니다. 느헤미야는 일을 하기 전에 미리 현장 답사를 통하여 어떻게 사람들을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집에 가까운 곳에 있는 성벽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집 맞은 편,” “집 옆,” “마주 대한 곳”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해당 지역의 거주자들이 자기 지역을 할당하여 성벽 재건 작업을 책임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날마다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성벽이나 무너진 성문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까요? 착잡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집 부근의 성벽을 쌓도록 함으로써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잘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참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기에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무너진 성벽을 인하여 언제 대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건축하는 곳이 집 근처에 있다면 가족들을 보호하기가 쉬울 것이요 또 건축에도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배치하였습니까? 그들은 성벽근처에 집이 없는 지역에 배치하여 일하게 하였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성벽의 북쪽 부분을 담당하였고 사노아 사람들은 힌놈 골짜기의 험난한 지형 위의 성벽을 쌓으며 골짜기 문을 세웠습니다.



* 예루살렘 성벽이 52일 만에 다시 세워질 수 있던 것을 기초로 형통의 비결:

1) 지도자들의 솔선수범

제사장들이 성벽재건 project 중 전략상 가장 중요한 양문과 함메아, 하나넬 망대를 건축하면서 백성들에게 본을 보입니다. 고위공직자의 아들들, 고급직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도 참여하였습니다. 리더는 무슨 일을 하라고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본을 보여줌으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제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 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은 그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알려고 하는 열심, 예수님을 닮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열심, 복음의 진보를 위한 그의 열정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본이 되는 목사나 장로, 본이 되는 집사나 권사, 본이 되는 목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섬기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발적 참여

무너진 성벽을 다시 지으려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육신의 힘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수행하면서 다 지어보았자 느헤미야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지 생각한다면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드고아 귀족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지 실제 성벽재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은 귀족이니 성벽을 짓는 힘든 일을 직접 하기를 꺼렸을지 모릅니다. 권리만 찾을 줄 알았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는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벽재건에 참여한 백성들은 이 성이 제사장들의 성도 느헤미야의 성도 아니요 하나님의 성이요, 우리의 성이라는 의식이 있었기에 힘들지만 성벽 재건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성을 지으면 대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 의식을 가질 때 자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 교회는 담임목사나 어떤 특정인의 교회가 아니라 우리 주님의 교회요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며 섬겨야할 우리 교회라 하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도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출 35:21) 참여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진대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2) 하면서 자원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역할 분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대역사는 분업적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원근각처에 사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성벽 재건에 참여하였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할당된 구역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충실하게 담당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으로서의 ‘나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나의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였지만 온 백성의 힘이 집중되었을 때 성벽 재건 사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가 유대인들과 더불어 성벽재건을 이루었듯이 교회의 사역도 목회자가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엡 4:12에 의하면 목회자의 하는 일이 언급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잘 준비시켜서 성도들로 하여금 섬기는 일을 하도록 사역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성도 개개인의 능력은 미약할지라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나아갈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엡 2:20-22)에서 권면합니다.



4) 열심

느헤미야와 더불어 일한 사람들은 사방에 대적들이 여전히 존재하여 안전을 위협받고 포로에서 귀환하여 아직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던 시절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일부 미온적인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자기가 맡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이 어렵든지 쉽든지를 막론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건축 공사에 참여했습니다. 성벽 서쪽의 망대 부분을 건축한 살룸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릴 정도의 고위 관리였지만 아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랫사람들을 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딸들을 데리고 와 성벽을 쌓는 열심을 보였습니다. 3:20절에는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한 부분'이라고 번역된 말은 '둘째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바룩은 제사장으로서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먼저 한 공사를 끝내고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까지 또 다른 부분을 맡아 일했습니다. 46개 그룹 중 바룩에게만 특히‘힘써’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일했지만 바룩이 남들보다 더욱 열심을 내었다는 뜻입니다. 드고아 사람들도 자기들의 귀족은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자기들은 배당된 공사를 먼저 마치고 다른 부분의 재건에도 참여합니다.(3:27) 므레못(4, 21)과 하나냐(8, 30)와 므술람(4, 30)도 성벽 두 군데를 쌓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일했다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자기의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은 권면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 하나님의 일은 다 귀합니다.

분문은 성읍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시중의 쓰레기와 오물을 실어 나르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분문은 선뜻 나서서 일하기가 꺼려지는 냄새 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와 아들이 그쪽 부분을 담당하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별로 눈에 뜨이지 않는 일, 일을 해도 남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더럽고 하찮게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누군가 카펫을 청소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어지럽혀진 방을 정돈해야 하고 음식을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를 갖다버려야 합니다. 누군가 주보를 접어야 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일을 하고 싶어도 육신의 연약함을 인하여 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큰 것, 작은 것, 더러운 것, 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동전 두 잎을 기뻐하신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십니다.



*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느헤미야가 3장을 기록하면서 대제사장 엘리야십을 비롯한 46개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고 간단하게 쓰지 않고 그 이름들을 일일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것이기에 느헤미야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한 것은 느헤미야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여한 사람들을 다 기억하신다는 것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이 너무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후세에 그들의 이름을 후손들이 볼 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반면에 드고아 귀족의 자손들은 자기의 조상들이 성벽 재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빠진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저와 여러분이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할 때 우리의 행위가 다 기록되어 주님께 평가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충성한 자들에게 상급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교우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원하여 주의 일을 감당하고, 주님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며 자기를 포기하는 자세로 주님의 몸 된 이 팔로마한인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이 교회역사를 보면서 목사와 장로들이 함께 일어나 성전의 기초를 놓고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김집사가 음향시설을 담당하였고, 그 다음은 이집사가 피아노를 봉헌하였고 그 다음은 박집사가 설교단을 봉헌하였고 권사들은 공사기간 중 기도에 전혀 힘을 썼고 소망회원들은 시간시간마다 현장에 나와 교회를 돌보았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거창한 일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기쁨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했는지 주님은 기억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 하나님의 일에도 비협조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드고아  집안의 어떤 유력자들은 공사 책임자들에게 협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협조하다'라는 말은 ‘어깨를 들이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기록된 것은 백성들 모두가 공사를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많은 역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구경꾼으로 남았습니다. 성벽 재건 사역은 느헤미야 개인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은 계속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드고아 귀족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이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인 모습이 우리와 상관없는 단어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52일간의 예루살렘 재건 역사를 통하여 공동체적 참여의 위력을 경험하였습니다. 비록 포로에서 귀환한 별로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이었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얻어진 느헤미야의 영력,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계획, 낙심한 백성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역사 세우기에 동참하자는 느헤미야의 호소,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성을 다시 지음으로서 선민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을 원하는 백성들의 결단과 헌신 등이 합쳐져서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3장에 나타난 성경적인 원리는 리더의 솔선수범, 자발적 참여, 역할 분담, 그리고 열심입니다. 이 원리는 모든 공동체에서 필요한 업무 수행 방법입니다. 이 원리가 우리의 사역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한 마음으로 그들이 가진 달란트와 자원을 합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협동의 유익입니다.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남을 돕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뜨거운 열성을 불어넣습니다.



금년이 가기 전에 Carlsbad 시청에서 최종건축허가가 나올 것입니다. 내년이면 착공을 할 텐데 이 귀한 역사에 한 마음이 되어 참여합시다. 성벽을 재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어깨를 서로 들이대고 참여합시다. 팔로마 공동체의 하나됨의 위력을 보여줍시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역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도로 참여하는 사람들, 물질로 참여하는 사람들, 손과 발을 움직여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그리고 헌신적으로 드리는 모든 수고를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건축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온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팔로마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되어 사역에 동참하면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