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님의 식탁

Author
Myung Myung
Date
2021-11-14 16:34
Views
305

어떤 분이 한경직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그랬더니 한 목사님은 ‘내일 결혼식 주례를 맡았습니다. 오늘 설교 준비를 하고 내일은 주례를 설 예정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겠다는 겁니다.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내일이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생애 마지막 밤인데 예수님은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담담히 이루어 가십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어떠하십니까? 내일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 환영 특별기도회를 갖겠습니까? 평소 먹고 싶던 음식을 실컷 드시겠습니까? 


 


유월절은 유대인 종교력으로 첫 달에 있기에 영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유월절에 새로운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과거의 출애굽 사건만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했습니다. 삼 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 중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상한 자들을 위로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자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어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심령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유함을 얻었듯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마가복음 14장에는 두개의 식탁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차려진 식탁에서 마리아는 손님으로 참석하신 예수님에게 소중히 간직했던 옥합을 깨뜨리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낭비했다고 제자들로부터 책망을 들으며 무안해하는 마리아를 향하여 예수님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14:9) 하시면서 여인이 베푼 좋은 일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는 이내 그 향기가 사라졌지만 여인의 아름다운 행위는 아직도 전해집니다. 주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식탁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어떤 집 다락방에 차려집니다.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가 주님이 축사하심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만찬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모든 성도들이 계속해서 기념해야 하는 성찬이 됩니다. 시몬의 식탁은 여인의 헌신을 기념하는데, 다락방에 있는 식탁은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유월절 식사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성찬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유월절 식사를 준비시키신 예수님(12-16절)  


유월절은 죽음의 천사가 어린양의 피가 발려진 집을 넘어간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니산월, 즉 유대인 종교력으로 1월 14일을 말합니다. 15-21일에는 무교절이 이어집니다(레 23:6). 그러다 보니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하나의 절기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마가가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고 한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식사를 어디에서 해야 할지 예수님께 여쭙니다. 이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십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물동이를 지고 있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자가 물동이를 지고 있는 것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 사람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가다가 어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의 주인에게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면 집주인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으로 안내해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락방’은 지붕 바로 아래에 있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원어의 뜻은 ‘땅 위에 떠 있는 방’입니다. ‘큰’이라고 번역된 ‘메가’는 이 장소가 넓고 큰 공간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집주인은 넓은 다락방을 소유한 것으로 보아서 부유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예수님과 일면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리를 펴고’로 번역된 동사는 ‘자리를 깔다, 침대를 펴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누워서 식사를 하는 관습에 따라 유월절 식사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구체적으로 집주인과 예수님 사이에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준비된 집으로 가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합니다. 날이 ‘저물자’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가십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게 됩니다.


 


배반을 예언하시는 예수님(17-21절)


식사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십니다. 자신이 넘겨질 것을 여러 번 예고하셨지만, 제자에 의해 팔린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팔기 위해 대제사장을 찾아갔던 사실을 아셨지만 유다가 배반할 것이라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유다가 스스로 뉘우치도록 기회를 주시려는 배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배반을 당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유다를 지목하며 그가 나를 배반했다고 하셨다면 다른 제자들이 유다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다른 데로 피신시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근심하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배신자가 자신일까 걱정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이 동사는 ‘몹시 슬퍼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배신당하고 팔려서 넘겨지실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제자들이 몹시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배신자가 아니기를 바라며 ‘나는 아니지요’라고 질문합니다. ‘나는 결단코 아니다’라는 강한 부정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라고 애매하게 대답을 하십니다. 원문에는 과거시제를 사용해 ‘넣은 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릇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함께 식사를 나눈 제자에 의해 배신을 당합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해서 기록된 대로 떠나갈 것이라는 말씀은 자신의 죽음이 이미 구약에 예언된 것이며, 자신은 그 예언대로 행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이십니다. 그런데 인자를 파는 그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을 판 유다가 배신과 행악의 책임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좋았으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유다 스스로 짊어져야 할 죄는 무거운 것입니다. 마가가 유다의 이름을 지목해 기록하지 않은 것은 누구나 이런 시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의 만찬을 제정하시는 예수님(22-26절)


마가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행하신 만찬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원래 유월절 식사를 인도하는 자가 음식이 나오면 먹기 바로 전에 떡을 들고 이렇게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떡은 고난의 떡이니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먹었던 것이로다. 이제 굶주린 자들은 와서 이 떡을 먹을 지어다. 이제 궁핍한 자들은 와서 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지로다.’그리고 모두가 떡을 받을 때까지 침묵 속에서 떡을 나눠 줍니다. 예수님도 비슷하게 행하십니다.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말씀하십니다. ‘축복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기원하는 행위를 나타냅니다. ‘떼어’로 번역된 단어는 ‘깨다, 조각으로 부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는 예수님의 몸을 이 단어가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신 행동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상기시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임을 계시하신 사건이고, 마지막 만찬은 그분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새 언약의 복을 가져다주실 분임을 예고합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떼어 주신 떡이 십자가 위에서 대속적인 언약의 죽임을 당하실 그분의 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잔에 대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고 하십니다. ‘흘리는’으로 번역된 ‘엑케오’는 ‘쏟아 내다, 부어 주다’는 뜻을 가집니다. 직역하면 ‘많은 사람을 위해 쏟아 넣다’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에게 쏟아 부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 이것은 나의 피니라’는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받는 것과 마시는 행위는 주님의 죽음의 효력에 인격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뜻합니다. ‘죄 사함’은 죄인이 죄의 빚에서 해방되는 것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는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대속적 희생이 성취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나누어 주신 포도주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의 피’라는 표현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이 체결될 때 사용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후 그 피를 가지고 제단 위에 뿌리고, 또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피를 뿌리면서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고 선포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됐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시내 산의 언약은 육신적인 이스라엘과 맺었으나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은 새로운 이스라엘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한 지 600년 만에 등장하신 예수님이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하셨고 바울도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5) 하시면서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을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짐승의 피를 기초로 맺어진 옛 언약은 폐기되고 그리스도의 피에 기초한 새 언약 관계가 시작됩니다(렘 31:31-34). 따라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는 유월절 식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나고 다음 식사는 천국에서 있을 것입니다(마 8:11).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마치신 후 찬송을 부르시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지막 기도를 하시기 위해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 성찬의 의미


예수님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자신의 죽음과 연결시키며 그 의미를 가르치십니다. ‘떡’은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찢기실 예수님의 몸을, ‘잔’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시는 ‘언약의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에서 예견된 새로운 언약 갱신을 위한 희생임을 나타냅니다. 


-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락방 집주인에게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물으라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말씀 중에 “내가 내 제자들과”“나의 객실”하시면서 ‘나’가 강조됩니다. “나의 객실”로 부르시면서 예수님이 호스트가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 다락방에서 베풀어진 식탁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식탁이요, 제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식탁이요, 예수님의 몸과 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하는 식탁이었습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날밤에 주님의 식탁이 준비되는 과정을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을 그것이 신앙생활이든 사업이든 학업이든 가정생활이든 주님이 주관하시도록 주님께 우리의 생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하시면 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하시면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주님을 향한 순종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 나귀 주인은 나귀새끼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두 제자가 그 나귀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새끼의 등위에 걸쳐 놓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겉옷을 길에 펴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놓았습니다. 모인 무리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유월절 식사가 준비되기 까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두 제자가 있었고, 물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이 있었고, 자기의 다락방을 유월절 식사 장소로 제공한 집주인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순종과 헌신이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할 때 우리가 미처 생각지 않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것을 드리기 원하십니까?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물질이 있을 때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건강할 때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을 때는 교회와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백성이 참석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만찬을 하시는 중에 열둘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요 13:26). 음식을 직접 찍어 주는 행위는 유대인들에게는 자기 손님에 대한 각별한 우정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님은 유다에게 대하여 호의를 베풀고 사랑을 표시하시지만 유다는 그의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으로부터 한 조각 받고나서 그에게 사탄이 들어갔고 곧 만찬자리를 떠났다고 요한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13:30). 유다가 나가자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식탁에는 택함을 받은 주의 제자들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삼년을 열심히 쫓아다니던 유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성찬식은 예수님을 믿는 새 언약의 백성만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 주님을 기념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찬에 대한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성찬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가져다주는 구원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죽으심의 의의를 기념하는 것이고 그의 구원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성찬을 일 년에 두 번 하든지 그 이상 하든지 성찬이 그저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이 참여하는 성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가 죽으신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그의 죽으심을 전하기를 다짐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나가면서


성만찬은 예수님이 새롭게 만든 행사가 아니라 모세 때부터 지켜오던 유월절 의식에 새롭고도 깊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15에 의하면 예수님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하시면서 제자들과 이러한 친교 나누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하셨습니다.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Exodus 시킨 것을 기념하는 절기에 주님은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바쳐 제2의 Exodus를 준비하셨습니다. 성찬식이 영어로 Eucharist인데 그 의미는 ‘give thanks,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유월절 식사에 사용된 것은 평범한 떡과 포도주인데 주님이 축복하시니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거룩한 떡과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것일지라도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거룩해집니다. 우리가 있는 곳마다 우리가 하는 일마다 거룩해지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합니다. 성찬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영적인 이스라엘이 참여하여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된 성찬의 의미를 깨닫고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예수님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면서 성찬식을 통하여 떡과 잔을 함께 나눔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됨을 깨달으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 아니라 주님께 헌신을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