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계시록의 기둥(3)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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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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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12:4-5, 13-17


1세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시간이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졌습니다. 게다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쓰인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속히 다시 오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경배의 대상이시며, 온 세상의 통치자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박해받는 교회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재림의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겠습니까? 계시록을 떠받치는 세 기둥은 그리스도, 말씀, 교회입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지난 1월부터 시작한 계시록 설교의 대단원을 마치려고 합니다.

1장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위로
계시록은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는 의도로 기록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박해와 고통 속에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승리 안에 초대된 인생들임을 강조합니다. 요한에게 계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기고 구주가 되셔서 심판주로 다스리시며 우주적 교회를 주관하십니다. 요한은 계시록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고 합니다(1:4).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신자들이 누리는 은혜와 평강 그리고 구속의 은총은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촛대 사이에 계신다는 것은 그분이 교회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검, 곧 말씀으로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면서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2-3장 교회를 보살피시는 그리스도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 대한 주님의 칭찬과 책망과 약속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일곱 교회 중에 가장 대조적인 빌라델비아 교회와 라오디게아를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그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문이요, 기도와 봉사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섬길 문입니다. 이 교회가 가진 능력은 크지 않았지만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인내로 순종했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약속은 세 가지입니다. 영적 권위와 능력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시험의 때에 지켜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고 새 이름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이러한 상급은 모든 교회들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충성하고 순종할 때 주님이 약속하신 상급과 하늘의 기쁨이 부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의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미지근한 신앙을 인해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교회를 여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열심을 잃은 교회라도 포기하지 않으시며 인내로 기다려 주십니다. 주님은 그들이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에 있다고 하십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처방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적 만족과 성결함과 영적 안목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안일한 삶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영적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가난한 심령 안에 주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4-5장 보좌에서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 바라보게 된 하늘 보좌의 광경은 캄캄한 밤을 지나는 신자들에게 희망의 불빛과 같았습니다. 요한이 보니 어린양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았고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상징하는 일곱 뿔과 하나님의 일곱 영을 상징하는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양은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려고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어린양만이 봉인을 뗄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천하에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같이(행 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심을 의미합니다(요 14:6). 네 생물과 24 장로들, 만만의 천사들, 모든 피조물이 어린양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온 세상을 구속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 되셨음을 보여 줍니다.

6-9장 환난 속에 있는 교회
인을 뗄수록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세어지는 가운데, 끝까지 믿음을 지켜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명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흰옷 입은 큰 무리’가 등장합니다. 이는 극심한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린양이 이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7:17). 어린양이 일곱째 인을 떼자(8:1) 시작된 반시 동안의 고요함 이후에 금향로를 가진 여덟째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향으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의 기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려 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 올라간 성도들의 기도가 변하여 다시 땅에 쏟아질 때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동역자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일곱 인 재앙에 이어 일곱 나팔 재앙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심판과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은 세상이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10-15장 승리하는 교회
7재앙 시리즈의 초점은 세상에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당하는 세상 속에 있는 교회에도 있습니다. 첫 번째 삽입인 7장에서 교회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확신시키고, 두 번째 삽입인 10-11장에서는 교회가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강조합니다. 여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분 이후로도 수많은 악이 이 땅에서 자행되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에게 “다시 예언해야 하리라”(10:11)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교회가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한 선교 공동체요, 위로와 약속을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장에 언급되는 두 증인 이야기는 환난의 때에 교회가 당할 핍박이 무엇이며, 어떤 자세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갈대를 받아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와 ‘짓밟으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가 불신앙적인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박해받을 것을 암시합니다. 마흔두 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가 당하는 박해와 고통의 기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가 두 증인으로 표현됩니다. 감람나무는 하나님 백성을 뜻하고 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두 증인’(11:3)이라고 부르심으로 그들이 그분의 소유된 백성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두 증인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전 시대에 걸친 주님의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굵은베 옷’은 애곡과 참회의 상징으로, 굵은베 옷을 입고 예언한다는 것은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깬일’은 회개를 촉구하는 기간으로, ‘마흔두 달’과 같은 기간입니다. 이는 교회의 핍박기인 동시에 예언의 기간, 즉 교회의 복음 증거 기간입니다. 두 증인은 입의 불, 즉 말씀의 능력으로 원수를 삼키고, 예언하는 동안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며,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 원하는 대로 여러 재앙으로 땅을 치는 일을 합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권세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줍니다. 두 증인이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으로부터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니 두 증인은 3일 반 만에 다시 살아나서 구름을 타고 승천합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가 사탄의 세력에 의해 무력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성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천국을 유업으로 주시는 약속의 날을 기대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12-13장에는 하나님의 대적자들인 ‘크고 붉은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이 등장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결될 때까지 교회는 사탄과 그의 하수인들의 도전이 있을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인이 해를 입고 있고,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면류관이 씌워져 있습니다. 여자의 발아래 있는 달은 초월적 위엄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열두 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혹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느라 애를 쓰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가 일곱, 뿔이 열인 큰 붉은 용이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고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자가 메시아를 낳았으므로 이 여자가 이스라엘과 연관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여자는 메시아 뿐 아니라 교회도 낳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속성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고 그 제자들도 유대인이었지만,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하는 교회, 즉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여자는 시대를 초월해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이라는 말은 이 아들이 메시아임을 보여 줍니다. 메시아를 죽이려는 용의 계략은 메시아의 승천으로 좌절됩니다. 여자가 천이백육십 일간 광야에 머문 것은 용의 박해로 인한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합니다. 성전 바깥마당이 마흔두 달 동안 보호받지 못한 것처럼, 교회는 외적으로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동시에 성전이 마흔두 달 동안 보호받은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편 미가엘이 이끄는 군대와 용이 이끄는 사탄의 군대가 싸웠는데 사탄의 군대가 패배해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사탄은 땅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 곧 교회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활동 범위가 지상으로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승리한 그리스도와 연결된 지상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여자는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가서 사탄을 피합니다. 사탄이 여자의 뒤에서 물을 강같이 토해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지만, 이번에는 땅이 입을 벌려 물을 삼켜 여자를 보호합니다. 여자를 향한 용의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용은 분노합니다. 그 분노를 인하여 용이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요한은 용이 전쟁을 일으키는 대상을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표현합니다. 이 문구를 번역하면 ‘여자의 씨의 남은 자들’입니다. 창세기 3:15에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여자의 후손’역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남은 자손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앞에서 벌인 용의 행동을 생각할 때 이 전쟁은 대단히 위협적이지만, 구원을 베푸실 하나님으로 인해서 교회는 승리할 것입니다.

13장에서 요한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봅니다. 그 짐승의 머리 일곱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으로 지칭되는 사탄이 그 짐승에게 자신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줍니다. 그 머리 하나가 상해서 죽게 된 것처럼 보였다가 회복되자 온 땅이 놀라며 짐승을 따릅니다. 그 짐승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비방합니다. 그가 성도들과 싸워 이기고, 각 족속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도 얻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짐승의 권세 아래서 그를 경배하지만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땅에서도 짐승이 올라옵니다. 둘째 짐승은 어린양처럼 생겼지만, 용처럼 말합니다. 그 짐승은 이후에 거짓 선지자로 불립니다(16:13; 19:20; 20:10).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권세를 행사하고 그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둘째 짐승은 성도들을 죽이기도 하고, 매매를 못하게 하면서 성도들을 박해합니다. 그리고 불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는 등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마에 친 침을 받은 것처럼(7:3), 짐승을 따르는 자들은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두 증인처럼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14장을 보니 십사만 사천이 어린양과 함께 시온에 서 있는데,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전 역사를 통해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마에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은 이들이 어린양과 하나님의 인침을 받고 그분의 소유가 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이 추수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인자 같은 이’가 예리한 낫을 들고 짐승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들을 거두어들이십니다. 또 다른 천사가 낫을 들고 땅의 포도송이인 하나님을 대적하고 짐승을 경배한 불신자들을 거둬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집니다. 성도의 영원한 안식과 대적들이 당할 안식의 박탈이 대조됩니다. 이것이 핍박과 순교를 감수하면서까지 성도가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15장에서 요한이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습니다. 유리 바다에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절하고, 짐승의 수 666을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죽은 순교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유리 바다에 승리자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이 일 후에 요한이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지성소가 열리는 모습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언약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것을 상징합니다.

19장 혼인잔치에 초대되는 교회
요한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으로 대미를 장식하려는 의도에서 악의 세력들(바벨론, 짐승과 거짓 선지자, 용)이 차례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19장은 궁극적인 승리를 이루신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가 벌이는 잔치를 소개합니다. 천사들의 합창에 이어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환난 중에도 어린양을 끝까지 따르는 자들만이 어린양의 신부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요한은 열린 하늘에서 백마 탄 자, 즉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봅니다. 그분의 이름은 ‘충성’, ‘진실’, ‘하나님의 말씀’이며 공의로 심판하고 싸웁니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군대가 말 탄 자와 주님의 군대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잡혀 유황불 못에 던져지고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에 죽습니다.

20-22장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교회
사탄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지고, 천 년 동안 갇힙니다. 첫째 부활에 속한 자들이 사탄이 사로잡힌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선포합니다. 만약 천 년이 문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천년 왕국을 기다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천년 왕국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사람이 없습니다. 천 년 동안의 사탄의 결박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시기에 사탄이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 순교자들과 죽임 당한 영혼들이 실상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살아 있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이고, 땅에 있는 자들도 영적으로 살아 있어 천 년 동안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첫째 부활은 몸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지금도 살아 있고 영원히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흰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께 심판의 권한을 위임받은 그리스도입니다(요 5:22; 고후 5:10). 요한은 죽은 자들이 그 보좌 앞에 심판받기 위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앞에는 그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단 7:10)들이 퍼져 있고, 또 다른 책인 생명책도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 행위를 사함 받고 구원받지만,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들은 행위로 인해 정죄 받습니다. 바다와 사망과 음부는 죽은 자들을 내주어 심판을 받게 합니다. 그 후에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는데 이것이 곧 둘째 사망입니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 바다는 없어졌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순히 타락 이전의 피조세계의 회복을 넘어 원래의 창조 목적이 성취된 창조의 완성형입니다. 요한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신부로 비유한 것은 그 성이 하나님께 구속받은 교회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그곳에서 자기 백성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고 사망이 없고 애통하거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칭하시면서 “이루었도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모든 고통과 수고가 그치고 성도들이 참된 생명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보여 주신 모든 계시는 참되고 진실하며, 이를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이 속히 오셔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 모든 성도가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소망을 붙잡고 인내로서 연단을 받아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이 목도한 하늘 보좌의 장면은 누가 진정 역사의 주관자이신 가를 보여줍니다. 심판과 재앙의 때에 인침을 받은 하나님 백성과 교회는 잠시 고난을 겪지만 그것을 통과한 이후 천상에서 베풀어진 승리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유리 바다에 선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다(15:3-4). 하늘에 있는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과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할렐루야’를 외칩니다(19:1-10).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성도들을 구원하시며, 자기 종들이 억울하게 흘린 피를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이가 세상을 통치하시며 신부된 교회를 아내로 받아들일 혼인 잔치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교회의 최종 모습은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신부로 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 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도를 신뢰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편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향으로 하나님께 상달되어 그것을 땅에 쏟을 때 재앙과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들과 동역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실은 악의 도전으로 핍박과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던 초대 교회 공동체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만난다고 해도 하늘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심판의 완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심판을 당연시하거나 기뻐하기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인 맞은 자로서 세상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영광과 승리를 같이 누리며 함께 높으신 주님을 찬양하는 그 날을 고대하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도 믿는 자답게 예수님을 보여 주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나가면서
신앙은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무엇을 느끼는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가운데서 무엇을 보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요한과 초대 교회 공동체는 삶의 어느 구석에도 소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여전히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계시록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를 독려하여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끝까지 신실할 것을 격려하는 희망의 책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세상의 종말과 관련된 사건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것과,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용기와 권세를 가지고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수행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오른손이 붙잡는 교회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는 예배자로, 기도자로, 전도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소망 중에 하늘 보좌를 바라보면서 영원한 왕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영적인 안목을 가진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며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