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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기둥(2) -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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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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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계 10:8-11, 14:6, 22:7,16


계시록은 바로 고난의 시대를 응시할 수 있는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계시록의 수신자였던 초대 교회 공동체는 견디기 힘든 시기를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유배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카타쿰으로 피신하거나 정처 없이 유리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들은 상실감, 패배의식, 두려움, 배신감, 그리고 버림받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요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요한에게 계시의 비밀을 보이시고 교회의 운명을 보게 하셨습니다. 열려진 하늘에서 본 광경은 무서운 진노의 그림, 재앙의 메타포, 심판과 죽음의 처절한 장면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백성들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 주심으로써 요한과 교회를 위로와 소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계시록을 떠받치는 세 기둥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말씀, 교회입니다. 오늘은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1장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시록 전체의 서론적 역할을 하는 1장은 두려움과 고난의 시대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고난을 이기고 죽음을 정복하신 주님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는 것과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고 보좌에 앉으신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과 그리고 주님께서 교회와 하나님의 종들을 붙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1은 계시록의 표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속히 일어날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이미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취는 계속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과거 - 현재 - 미래를 아우르며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록의 중심에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3에서는 계시록을 “예언의 말씀”으로 규정하고 이 계시를 읽고 듣고 지킬 때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복은 단순히 종말에 대한 정보를 아는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한 미래의 확실성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들이 누리게 되는 복을 말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로 하여금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알아 소망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1:4-8은 편지의 형식을 가집니다. 이것은 한 목회자가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권면으로 가득한 글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저자의 이름은 요한이고,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요한은 주일에 성령의 감동으로 그가 듣고 본 바를 두루마리에 기록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상징적 이미지를 사용해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주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눈처럼 흰 양털 같은 머리에 불꽃같은 눈을 하셨습니다. 목도한 영광에 압도된 요한은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다고 살아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라고 하시면서 요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계시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장 일곱 교회에 쓰신 편지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비단 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 대해 따끔한 책망과 명령을 하시면서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었으나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2:7)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려 했던 영원한 생명의 완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을 겪고 있었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하십니다. 이기는 자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십니다(2:11). 둘째 사망은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므로 이 말은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외적인 우상숭배의 도전은 잘 견디었으나 은밀하게 다가온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발람의 교훈을 따라가는 목회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라가는 교인들을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만나를 주신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신앙을 지킨 자를 천국 잔치에 초대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흰 돌은 신앙의 순결을 지킨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증표를 의미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선한 일을 하는 교회였지만 영적으로 간음한 상태였습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2:26, 28). 메시아적 통치와 영광에 동참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사실은 죽은 교회라고 하십니다. 이기는 자들은 흰옷을 입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3:5).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말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님의 말씀을 인내로 잘 지켰기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이 앞으로 완성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 가난하면서도 자신들은 부요하다고 착각하였기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내야 할 열심은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보좌에 함께 앉는 은혜를 준다고 약속하십니다(3:21). 각 교회에 보내는 글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11)라는 후렴이 주어집니다. 모든 시대의 교회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귀를 가졌다고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회개한 귀만이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 있습니다.

4~5장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
4장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면, 5장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춥니다. 5장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을 펴고 인을 뗄 자를 찾을 수 없었기에 크게 울었습니다. 그때, 장로 중 한 사람이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므로 그 일곱 인을 떼실 것이라며 요한을 위로했습니다. 예수님이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사랑으로 섬기며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주는 방식으로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유다 지파 혈통에서 오신 다윗과 같은 승리자이시며 왕이십니다. 주님의 승리의 길과 방식은 모든 신자들이 악을 대항하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제시합니다. 우리는 참된 역사의 집행자시며 궁극적인 심판자와 구속자 되시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할 뿐 아니라 그분과 동행해야 합니다.

6~9장 두루마리가 열림
6장에서 인봉되었던 두루마리가 열리면서 7인 재앙을 필두로 7나팔 재앙과 7대접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7재앙 시리즈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로서, 7번째 재앙이 열리는 것으로 다른 재앙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은 점진적인 반복을 따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묘사가 6:12-17, 11:15-18, 14:14-20, 16:17-20, 19:19-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재앙 시리즈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임하는 재앙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합니다. 7재앙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은 반드시 정당한 보응을 받지만, 의인들은 반드시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7인 재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재앙을 관장하시는 분이 어린양이라는 점입니다. 어린양이 심판을 관장하신다는 것은 신자와 교회의 운명이 어린양의 절대적인 보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길을 따라 가는 삶이란 어린양의 보혈로 깨끗이 씻는 것이요 옳은 행실의 세마포 옷을 입는 것입니다. 7인 재앙의 6번째 인과 7번째 인 사이에 7장의 삽입이 존재합니다. 재앙이 쏟아지는 상황을 직면하고 살아야 하는 하나님 백성이 받아야 할 위로와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알려줍니다. 요한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인 침 받은 자의 수가 십사만 사천이라는 음성을 듣습니다(7:4). 여기서 이스라엘은 문자적 의미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영적 이스라엘, 즉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을 먼저 기록하지 않고 유다가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 기록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백성을 가리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유다 지파는 메시아 언약을 받은 지파로, 영적 장자의 직분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모든 자가 인을 받기까지 일하실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이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겪은 환난은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아 겪은 어려움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시기에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을 것이며, 생명의 샘으로 인도해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8장과 9장에서 언급되는 나팔 재앙의 모습은 하나님이 얼마나 맹렬한 기세로 세상을 향해 진노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세상이 성도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에 비치는 세상의 화려함 너머에 있는 슬픔과 좌절,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허무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궁극적인 운명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0~15장 영원한 복음
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7재앙 시리즈 사이에 끼워져 있는 삽입 장면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삽입 부분은 첫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신자의 미래와 운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상이 불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으로 마무리 될 것을 확신케 합니다. 셋째, 고난 받는 주의 공동체에 대한 위로와 소망을 제공합니다. 넷째, 교회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주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계시록 7장이 7인 재앙에 대한 하나의 삽입이었다면, 계시록 10-11장은 7나팔 재앙에 대한 또 하나의 삽입입니다. 7장이 인 맞은 주의 백성들의 총수인 144,000과 하늘의 허다한 무리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면, 10-11장은 이 어두운 시대 가운데서 교회가 가져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기 전에 한 천사가 ‘펴 놓은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등장합니다. 그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고 크게 외치자 일곱 우레가 화답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두루마리의 내용이 온 땅에 크게 선포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5장의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지만, 10장의 두루마리는 펼쳐져 있습니다. 5장의 두루마리는 어린양이 받지만, 10장의 두루마리는 천사의 손에 있습니다. 5장에 등장한 봉인된 두루마리가 계시의 은밀성을 나타낸다면, 10장에 등장하는 열린 두루마리는 계시의 공개성을 암시합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는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22:10). 종말론적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계시가 점점 공개적이 됩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천사가 가지고 있던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시고, 천사는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지만 배에는 쓸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먹으라고 합니다(10:8-10). 음식을 먹으면 배에서 소화가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머리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슴을 통해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능력 있게 다가갑니다. 요한에게 ‘네가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명령이 주어집니다. 그들이 들어가야 하는 세상에서 직면해야 할 상처와 아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만, 주님이 가라고 하시기에 새로운 마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다시 한 번 끌어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말씀은 다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불경건한 세상, 회개를 거부하는 세상에 주의 복음을 들고 다시 나아가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가진 두 증인이 예언합니다(11:3).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이 그들을 죽이지만 3일 반 후에 하나님이 다시 살리십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세상 나라가 주님의 나라가 되어 주님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또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는데 해산이 임박한 여자가 있고, 그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는 큰 붉은 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자는 시대를 초월해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한 해석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고난 받았던 상황을 짐승으로 인해 고난 받는 것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짐승의 가공할 만한 공격 앞에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인내와 믿음입니다(13:10). 계시록이 신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종말론적 환난을 인내하고 이기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신실, 성실, 충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박해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믿으며, 죽도록 충성하며 어린양을 따라야 합니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포합니다(14:6-7). 천사의 메시지는 심판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잠시 후면 이 복음을 들을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 복음을 들을 수 있을 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영원한 복음입니까? 이 땅에서 복음의 메시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생명의 복음이요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선포합니다. 세 번째 천사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은 사람들의 운명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구원과 심판, 천국과 지옥은 우리 눈앞에 닥치게 됩니다. 현재 우리의 선택이 영원을 결정하게 됩니다.

19장 초청하시는 말씀
천사는 요한에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고 합니다(19:9).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 모든 예언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증거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예언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는 거룩한 예복을 입어야만 합니다(마 22:11-14).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예복을 입으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0~22장 증언해야 할 말씀
요한은 주님이 속히 오실 것이며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22:7). 이 말씀이 신실하고 참되며, 속히 이루어질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셨다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즉 구속받은 백성들이 새 예루살렘성에서 은혜와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는 영적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 3:15-17). 그러므로 성도는 그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 내용을 인봉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지금까지 계시된 모든 말씀이 실현될 날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말씀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여전히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들은 계속 자신을 더럽힐 것이고, 의로운 자들은 계속 의를 행하며 거룩한 자들은 계속 거룩할 것이라고 합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은 성령과 교회가 세상을 초대하는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영적으로 목이 마른 자나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누구든지 계시된 말씀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모든 재앙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말씀을 빼면 생명책에서 제하여 버리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제하거나 더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22:20).

* 우리의 자세
-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자기의 사상과 인생의 진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자 그 맛이 꿀같이 달았다고 합니다. ‘꿀같이 달다’는 것은 기쁨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예레미야 선지자도 주의 말씀을 먹었을 때 그 말씀이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렘 15:16).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고 영혼을 살리는 생수입니다. 우리는 영의 양식을 기쁨으로 먹고, 인생의 진리와 가치관을 주님의 뜻대로 새롭게 해야 합니다.
-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처럼(마 13:1-9) 각기 다른 열매를 거둡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기로 결단했다고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이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입에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썼습니다. ‘배에서 썼다’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담고 있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말씀 전체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과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이 질책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자신 소견대로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달게 받은 자는 말씀이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쓰디쓴 고통과 아픔도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면서 고통을 감내하는 자가 진정으로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능력의 말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례함이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세상의 완고함이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세상이 패역함이 우리의 영혼을 분노케 해도 긍휼의 마음으로 세상에 다가가야 합니다. 불타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그 진노를 피하게 되었다고 우쭐댈 것이 아니라, 주님을 버린 자들의 황폐함을 공감하면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삶의 길을 제시해 주어야만 합니다.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 안으로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끝없이 그들을 초대해야만 합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죄가 정죄되고 심판당하는 것으로만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데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16:9). 우리의 할 일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인내와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고,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의 쓴맛과 단맛을 체험한 자들은 생명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나가면서
계시록은 고난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책입니다. 계시록에 무서움을 자아내는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의도는, 악한 세력의 정체를 사실적으로 폭로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그 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와 더불어 악의 종말을 보여 줌으로써 고난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고 살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현실이 바뀌는 것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난 현실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이기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희망의 실체가 되시는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될 때 보이는 것이 절망뿐인 환경을 능히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이루어지는 완전한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말세를 사는 성도들이 가질 바른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만방에 전하는 것입니다. 인내로서 연단을 받고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면서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