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Author
Myung Myung
Date
2022-07-10 15:09
Views
306

지난 6월 24일 금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오늘의 본문을 다루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새벽기도에 참여한 교우들이 많지 않았기에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중에 이번 창립주일에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서를 총정리 할 뿐 아니라 창립주일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에도 도움이 되는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온 교우들이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귀하게 섬기면서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중근동의 거대한 제국이던 페르시아가 그리스 지역으로 지경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1장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180일 동안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 잔치는 그리스 원정을 나가기 전에 왕궁의 세력을 과시하고 충성심을 모으며 전략을 짜기 위한 의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의 잔치가 끝나고 왕궁 후원에서 또 7일 동안 도성 수산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또 다른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6개월 동안 잔치와 7일 간의 추가적인 잔치를 벌이면서 술을 마셨을 것을 생각하면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왕이 술기운에 자신의 자랑스러운 소유물이자 전시품인 왕후 와스디를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거절하였습니다. 그 결과 진노한 왕에 의해 와스디는 폐위가 되면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에스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아하수에로 왕에게 사랑을 받음으로써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왕후로 발탁이 된 아름다운 여인입니다(2:17). 그러나 유다인을 보호하기 위해 수산 도성에서의 살육을 하루 더 연장해 300명을 추가로 죽일 정도로 유다인의 대적을 진멸시키는 무서운 여인으로 변모합니다(9:13). 에스더서에서 역전의 패턴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멸망시키려던 하만은 도리어 자기 가족과 함께 멸망을 당합니다. 유다인 모르드개는 낮은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왕 다음 가는 높은 신분의 소유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운명의 역전들은 잔치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에스더서에는 모두 10개의 잔치가 나옵니다. 그 중에 다섯 번의 큰 잔치가 벌어지는데 그 잔치들 후에는 권력이 이동됩니다.


 


부림절의 기원


유다인들은 하만이 주도한 계략에 휘말려 민족 멸절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상황에 간섭하시니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유다인의 말살 계획을 주도한 하만이 도리어 제거되고 모르드개가 높여졌습니다.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멸절되기로 예정된 아달월 13일에 도리어 대적을 진멸한 후, 14일에 쉬며 모여서 잔치를 베풀고 즐겼습니다. 수산에 사는 유대인들은 아달월 13일과 14일에 대적을 진멸한 후 15일에 잔치가 열렸는데, 유다인들은 이 두 날을 명절로 삼아 서로 예물을 주며 복된 날로 기념했습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각 지방의 모든 유다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이 편지에 모든 일을 기록하고, 원근 각처 모든 유다인이 해마다 아달월 14일과 15일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도록 규례를 세웠습니다. 그날은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함을 얻은 날이며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날임을 확실히 알렸습니다. 이로써 모든 유다인들은 모르드개가 지시한 대로 그 절기를 계속 지키기로 작정했습니다. 부림절은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부르, 곧 제비를 뽑은 일에서 연유한 명칭입니다. 유다인들은 후손들도 그날을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을 제정하는 이유는 나라가 공유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의 절기가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공포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권세를 잡았기에 벌어진 일이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신다는 진리를 명백하게 보여 주는 실례가 됩니다.


 


부림절의 둘째 편지(9:29-32)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부림절에 대한 두 번째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 왕의 나라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보냅니다. 두 번째 편지에 에스더가 개입한 것은 부림절이라는 새로운 절기가 생기는데 에스더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였기에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공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후라는 것만으로 민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의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녀를 통해 민족을 구하셨습니다. 둘째 편지는 모르드개가 보낸 첫 번째 편지를 재확인하고 더 큰 권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에스더를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아비하일의 딸”이라는 표현은 2:15에도 나왔습니다. 그녀의 유다인 신분과 페르샤 왕후 신분이 합쳐진 것입니다. 모르드개도 유다인이라는 것이 다시 언급됩니다. 이는 이들이 유다인임을 확인하면서 그들이 편지에 쓴 내용은 유다인들이 잘 따라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편지는 20-22절에 있는 모르드개의 첫 번째 편지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페르시아의 127개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전달합니다. ‘화평’과 ‘진실’은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보낸 편지의 성격을 드러내 줍니다. 여기에서 화평은 평화, 행복, 안녕을 의미하며, 진리는 권위와 신실을 뜻합니다. 이 편지가 권위 있게 받아들여져야 하며, 이 편지가 규정하고 있는 부림절을 성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글을 썼다는 것과 ‘금식하며 부르짖음’으로 했다는 기록을 많은 학자들은 스가랴 8:19과 연결시킵니다.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는 말씀 속에 나오는 금식들은 모두 모세 오경에서 요구하는 절기와 상관없이 성전의 멸망을 기억하며 한 금식들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그들이 4장에서 자원함으로 금식하고 부르짖은 것처럼 부림절도 자원하여 새로운 절기로 삼을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풀이됩니다. 금식과 부르짖음은 모르드개의 첫 번째 편지에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9:20-22). 이 두 가지는 유다인을 죽이려는 하만의 조서가 반포되었을 때 유다인들이 보인 반응이었습니다(4:1-3). 끔찍했던 죽음의 상황과 위기를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기억하면서 구원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날로 부림일을 지키기를 원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편지를 쓴 것은 왕후 에스더의 권위로 모르드개의 편지를 전적으로 지지하여 유다인들이 부림절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부림절을 아달월 14일과 15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일을 ‘에스더의 금식일’로 지키면서 하만이 멸망당한 날로 기념합니다. 비록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다윗 왕조가 멸망당하여 그 백성은 포로가 되어 끌려왔지만, 바로 이 부림절이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 선포됨으로써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이 확증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온 땅의 주인이시며, 지금도 세상 나라 가운데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존귀해진 모르드개(10:1-3)


에스더서의 마지막 장은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는 제국이 번영했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를 잘 보여 줍니다. 유다인들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왔지만 하나님은 페르시아를 통해 여전히 그들을 지키셨습니다. ‘백이십칠 지방’이 여기에서 “본토와 바다 섬들”로 대체되면서 그의 통치가 먼 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알립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페르시아 왕국의 모든 지역뿐 아니라 바다 건너 섬들에 사는 백성에게도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조공은 페르시아 왕에 대한 충성을 나타냅니다.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아하수에로 왕은 에게 해의 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언급된 섬들은 지중해 연안의 섬들을 의미합니다. 아직까지는 유럽으로 나아가는 해상로를 페르시아가 장악하고 있었기에 주변 여러 섬들에게 조공을 강요했을 것입니다. 세금 징수는 모르드개가 관할했을 것이므로 그의 권세를 보여 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왕의 능력있는 모든 행적”이란 ‘왕이 능력 있게 행한 모든 일’이라기보다는 왕의 권력에 의한 모든 행위나 업적을 의미합니다. 왕의 업적 중에 모르드개를 등용한 것이 큰 치적임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모르드개는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페르시아 제국의 제2인자가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가 모르드개에게 자기의 권세를 맡겼기 때문에 그의 영토와 바다의 섬들에게 조공을 받는 강력한 권세를 유지할 수 있었고,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그 행적이 기록될 정도로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표현은 열왕기에서 왕들을 언급하는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상 15:7). 따라서 이런 표현은 모르드개를 이스라엘 왕과 같은 위치로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3절에 그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나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모르드개를 높였다”는 표현은 ‘왕이 하만의 지위를 높였다'(3:1)는 표현과 동일한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모르드개가 하만을 대치한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10장의 핵심인 모르드개의 행적에 대해 언급합니다. 첫 번째는 그가 유다인으로서 아하수에로 왕 다음 가는 최고 지위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왕의 반지를 가지고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실질적인 통치자였습니다. 두 번째는 그가 유다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형제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가 유다인들의 유익을 추구하며 그의 민족을 안위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아말렉 족속이며 아각의 후손인 하만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유다인 모두가 죽을 수 있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회복할 때 메시아를 보내려고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을 진멸하고자 한 하만의 계획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도전한 시도였습니다.  


 


우리의 자세


-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와 제사에 관한 언급도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에스더서를 성경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더서의 마지막까지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유다인들이 고통과 위험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에스더서에서 가르쳐 주는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구속사와 세속사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런 역사관을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움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인플레, 기후 변화, 남북 통일문제, 우크라이나 문제 등은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야만 제대로 풀릴 것입니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나님이 언젠가 구원하실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지, 현 상황에서 직장을 옮겨도 좋은 지, 자식이 어느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 결정이 우리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나 계시를 분명히 듣고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런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결정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지기에 영적으로 민감한 자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의 기원과 제정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모세 오경에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신학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부림의 목적은 유다인이 전쟁에 승리했다는 데 있지 않고,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9:22)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목숨 건 노력 덕에 유다 민족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멸절하려 한 12월 13일이 오히려 유다인이 원수를 갚고 높임을 받는 날이 되었습니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하나님이 펼치신 최고의 드라마입니다. 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가 절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종말론적 희망의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있을 것이고 죄악된 세상에서 사는 한 우리의 고통과 환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떤 슬픔과 고난도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게 하고 절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가 바로 천국에서 어떤 영광과 명예를 얻을지를 결정합니다. 이것은 복 받기 위해 믿는 이기적 소원이 아닌 신령한 소망입니다(히 11:6). 사도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딤후 4:7-8)라는 말로 그가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살았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 역사는 계속됩니다. 인간이 저지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그분과 함께 부활의 소망을 가집니다. 마지막 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리면서 영원한 부림절을 축하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람답게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모르드개는 왕국의 최고 관리로서 일하면서 동족인 유다인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모든 종족의 복지를 위하여 힘썼습니다. 그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높은 권력에 오른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의 역할은 바로 불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도리어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요 산 위의 도성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위하여 섬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어느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위나 은사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각 영역에서 맡겨진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 경제계, 의학계 등 모든 영역에서 성경적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원리를 세워나갈 때 세상이 기독교인들로 인해 복과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모르드개도 왕에 대한 모반을 고발함으로써 신하로서 왕에 대한 충성을 다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도 모르드개로 인해 국가가 더욱 부강해지는 덕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회 일뿐만 아니라 국가와 직장에도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들로 인해 가는 곳마다 복이 넘치고 그것으로 인해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며 믿음의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에스더서는 유다인을 죽음에서 구원으로 이끈 이 엄청난 일을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어떤 일은 에스더가, 어떤 일은 모르드개가 이끌며 서로 임무를 분배해 협력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세워져 가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함께 해 나가고 기쁨을 나누며 추억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 창립 27주년을 맞이합니다. 지금까지 저희 교회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와 더불어 모든 교우들이 함께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섬기되 더불어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 중에 에스더만큼 권위를 행사한 여인은 없었습니다(9:32). 그녀는 수산성의 추가 도륙을 지시했습니다. 이방 땅에서 왕후의 위치까지 오르고 정치적 영향력도 확보한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없었다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파트너를 이뤄 함께 일하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각자의 역할이 절대 필요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남녀를 만드신 것입니다. 


 


나가면서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십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반면에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건지시고 참된 안식과 기쁨을 주십니다. 지난 27년을 지내는 동안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수고한 교우들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대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어떤 모습으로 섬겨야 할지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서로 격려하며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귀한 사역에 동참할 때 주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건강한 교회가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이루어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세상을 섬기면서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