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비전의 사람 여호수아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7-05 14:08
Views
428

신년 첫 주일에 오늘 본문을 가지고 “새 역사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을 가지고 “비전의 사람 여호수아”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비전의 사람’시리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비전이 족장들을 거쳐 모세에게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이어집니다. 원래 여호수아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의 호세아였는데(민 13:8), 모세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의 ‘여호수아’(예호슈아)로 바꿨습니다(민 13:16). ‘예호슈아’의 단축형은 ‘예수아’입니다. ‘예수아’가 헬라어 ‘예수’에 해당합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과 같이 여호수아 또한 예수님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정복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을 건너 유대 땅에 들어오면서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면서 가나안 땅에 전쟁이 그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을 벌이셨고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4장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여호수아의 사역과 비교하면서 여호수아는 일시적인 안식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안식을 주었다고 합니다.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세 혼자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돕는 사람들을 많이 붙여 주셨습니다. 모세에게는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 그리고 장인인 이드로가 있었습니다.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이 있었고, 리더 70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충실한 수종자인 여호수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주변에 있다 보니 어쩌다가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밑에서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력을 키웠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난 후의 모세, 영적으로 성숙한 모세를 만났고, 그를 40년 동안 섬기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아멜렉과의 전투(출 17:8-16)
아말렉과의 전투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벗어나 처음 치른 것으로 르비딤에서 벌어졌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러다가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모세를 돌 위에 앉히고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잡아주었습니다. 해가 지기까지 그렇게 한 결과 여호수아가 이끄는 민병대 수준의 이스라엘 군대는 강력한 아말렉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 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출 17:14)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끌어 갈 자라는 암시를 주셨습니다. 
- 시내 산에 올라간 여호수아(출 24:12-13)
시내 산에서 언약을 체결한 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계명을 친히 기록하신 돌판을 주실 때 여호수아와 함께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하’로 불렸습니다. 이 단어가 출 33:11과 수 1:1에서는 ‘수종자’로, 민 11:28에서는 ‘섬기는 자’로 번역됐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옆에서 항상 모세를 도왔습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을 여호수아가 다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 회막을 지킨 여호수아(출 33:11) 
여호수아의 깊은 영성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랜 동안 모세를 시중들면서 모세가 기도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회막에서 여호와와 대면했던 모세가 회막을 떠나 자기 장막으로 쉬러간 그 시간에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여호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요 기도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70명을 세움(민 11:16-30)
광야 생활 중 모세는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가기 너무 힘들다고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노인 중에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 70인을 세워 모세의 조력자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11:17) 세움 받은 자들이 모세에게 임한 영을 소유했다는 것은 그들이 모세와 동일한 비전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여호수아도 있었습니다.  
- 정탐꾼 사건(민 13-14장)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정탐꾼을 보낼 것을 요청했습니다. 각 지파별로 한 명씩 총 12명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한 후 돌아와 백성 앞에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 중에 에브라임 지파를 대표한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땅에 젖과 꿀이 흐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크고 견고할 뿐 아니라 아낙 자손까지 살고 있어 도저히 그들을 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자 모세와 아론은 백성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갈렙과 함께 백성들 가운데 서서 자기 옷을 찢으며 외쳤습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 이 반역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출애굽 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정탐한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정탐꾼들과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안목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비전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니 거대한 아낙 자손도 메뚜기처럼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 여호수아의 위임(신 34:9)
모세는 가데스의 므리바 사건으로 인해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써 자신의 공식적인 후계자를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출 31:14-15).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된 것은 혈통에 의한 세습도 아니고, 백성의 여론 조사나 투표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뜻을 반영해 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신 3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 
- 땅의 약속
모세의 죽음은 출애굽 시대가 끝났음을 알립니다. 여호수아서는 한 시대가 끝나고 그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지리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1장은 모세의 죽음으로 인한 과거로부터의 단절보다는 여전히 그의 영향력이 유효함을 언급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처음 하신 명령은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1:2)입니다. 모세의 죽음을 먼저 언급하신 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제부터 수행할 사명이 모세의 사명과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정한 인도자는 여호와시며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1인칭 대명사인 “내가”가 사용되었으며, 모세는 “나의 종”이라고 불립니다. 이스라엘을 2인칭(너희들)으로 부르시면서 보다 친밀한 관계 속으로 끌고 들어오십니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으니 여호수아와 그를 따르는 백성은 의기소침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나라’는 명령은 의지적인 결단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들어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땅’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 속한 땅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로 주시는 땅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1:3). 한 문장에 미완료형과 완료형 동사가 함께 사용됩니다. “밟는”은 미완료형이지만, “주었노니”는 완료형입니다. ‘주었다’가 완료형인 것은 가나안 땅이 언약의 땅으로 ‘이미’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밟는”이 미완료형인 것은 언약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할 일이 “아직”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서는 땅에 대한 약속이 가진 이중적인 성격을 보여 줍니다. 가나안 땅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인 동시에 하나님이 이미 주신 땅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신약성경의 하나님 나라 개념(‘이미’와 ‘아직’)과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의 경계에 대해 창세기 15:18-21과 민수기 34:1-14에서 이미 언급되었는데 여호수아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 땅은 남쪽으로는 신 광야까지, 북쪽으로는 레바논 산맥까지, 동쪽으로는 큰 하수 유브라데 강까지, 서쪽으로는 대해 곧 지중해까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상 이스라엘 백성이 그 지경을 약속하신 대로 다 차지한 적은 없습니다. 다윗 왕 때 그나마 비슷한 지경까지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 경계는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이상적 범위이며, 이스라엘 민족의 순종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꿈을 보여 주시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했습니다. 땅에 대한 약속은 열려 있는 약속입니다. 그 성취의 정도는 백성의 믿음과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 임마누엘의 약속
광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지도자라고는 평생 모세밖에 몰랐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고 낯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인정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가장 큰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아마 여호수아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모세와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자신이 더욱 작아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하셨듯이 여호수아에게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하시며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고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게 하셨듯이,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하심으로 놀라운 능력을 보이시겠다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평생에 이기지 못할 대적은 없다고 하십니다. 여호수아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고 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맞서야 하는 상대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아낙 자손처럼 기골이 장대한 족속도 있었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는 크고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기셨을 뿐 아니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약속의 조건
6-9절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조건을 명시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진입과 수많은 전투를 앞둔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전략이나 무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승리는 그들의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가나안 정복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가나안 정복은 철저하게 믿음의 토대 위에서 싸우는 싸움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과 순종 속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입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여호수아가 수행할 싸움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이 총사령관이 되어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앞으로 치를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단지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천하 만민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율법이 새겨진 돌판을 주셨는데, 여호수아에게는 항상 율법을 가까이 하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율법은 단순히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담고 있는 규정이 아닙니다. ‘토라’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진 동사 ‘야라’는 ‘던지다, 화살을 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토라’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묵상하다’라고 번역된 동사 ‘하가’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소가 풀을 씹고 되새김질 하듯이 말씀을 잘 씹고 소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에 옮길 때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형통’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
1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한 것은 신 34:5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여호수아서 전체에 걸쳐 15번 등장하는데 24:29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세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24:29을 보면 여호수아가 맡겨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죽었을 때 ‘여호와의 종’이라는 칭호가 붙여졌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모세가 가졌던 비전을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 전체가 이 과정을 보여 줍니다. 2장 이후에 나타나는 여호수아의 행동은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 기록된 모세의 행동과 아주 흡사합니다.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지역으로 보냈는데, 여호수아는 여리고로 정탐꾼 2명을 보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바다 가운데 길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건넜는데,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갈라지게 한 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모세가 출애굽 직전에 애굽에서 유월절을 축하했는데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사이에서 여호와를 만났는데, 여호수아는 여리고 근처에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났습니다. 모세가 여호와를 설득해서 이스라엘을 처벌하지 않도록 중재했는데, 여호수아는 아간의 범죄 시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대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하나님의 지팡이를 올려 아말렉을 패배시켰는데, 여호수아는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켜 아이를 패망시켰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을 체결하였는데,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을 체결했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에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별 연설을 했는데,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소집한 후 고별 연설을 행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모세를 본받아 완벽한 후계자가 됐음을 말해 줍니다. 

특히 세겜에서 한 여호수아의 고별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신앙적 결단을 하여 언약을 맺으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24:14) 이 문장에는 네 개의 명령형이 들어 있습니다. “경외하라, 섬기라, 치워버리라, 섬기라.”이를 통하여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도전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 이에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맺는 말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가 이어받은 비전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의 믿음의 고백이 각자의 고백이 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것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심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던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하시며 역사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이행해야 할 ‘비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주님이 주신 비전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각 교회가, 각 개인이 맡은 바 역할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비전을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 꿈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남은 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며 나아가면서, 가정과 사업과 교회의 사역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며 시작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답고 끝이 더욱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