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비전의 사람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6-07 14:23
Views
475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깊이 빠져 살아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대하여 아무 생각 없이 살아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장차 있을 일들을 계시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소문을 들을 때 성도들은 시대의 징조들을 보며 두려워하기보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인내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각자를 향한 주님의 뜻을 깨달아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사도행전 2장을 살펴봅니다. 오순절에 기도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일제히 각 나라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오순절을 맞이하여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몰려든 사람들은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혼란스러워 하는 무리를 향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가 언급됩니다. 베드로는 무리가 각 나라의 언어로 자신들이 들을 수 있게 된 일과 선포된 내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풀이해 줌으로써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의미를 해석해 줍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시고 죽으시는 과정에 눌렸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불안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George Floyd의 죽음을 인해 촉발된 전국 규모의 시위가 겹치면서 2020년이 아직 잘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 생애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요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상황을 인하여 눌리는 자가 아니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처럼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이 주시는 꿈을 꾸면서 기쁨을 회복하고 사명을 회복하며 소망 가운데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의 반박(14-16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니 예루살렘 성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그 술기운에 취하여 두서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 본문에는 베드로의 변화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여종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막 14:66-71). 다른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유대인의 핍박이 두려워 숨었습니다(요 20:19). 하지만 성령 세례는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해졌습니다. 맛디아를 포함한 열한 사도도 함께 섰습니다. 베드로가 연설하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태어나지는 나지는 않았지만 조상의 땅에 돌아와서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현상에 대하여 먼저 설명을 하면서 제자들이 술 취하여 이상한 소리를 주절거린다고 조롱하는 무리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제 삼시 즉 아홉시면 보통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 아침에 술에 취하여 떠들 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이해시키려고 요엘서 2:28-32절을 인용합니다. 베드로가 확신을 가지고 요엘의 예언을 인용한 것은 오신다고 한 메시이 즉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임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하셨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이 구원의 진리를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다고 합니다.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 주심(17-18절)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요엘이 말씀을 전하던 당시 그 땅은 메뚜기 떼로 인해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요엘은 그 상황을 하나님의 경고로 이해했고,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백성이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며, 그 땅에 다시 비가 오고 곡식들이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욜 2:31)이 오기 전에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엘서와 사도행전의 말씀을 비교해봅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행 2:17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부어주리니’
하나님은 요엘을 통하여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어떤 복된 시대가 올 텐데 그때가 오면 남자나 여자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이나 성령을 넘치도록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이사야도 성령 강림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 44:3).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는 복된 시대가 바로 신약 시대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믿는 자들이 단체로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사건입니다. 성령이 보편적으로 임한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기에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임하였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인간이 법적인 죄인이었기 때문에 성령이 부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 아닌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성령을 물처럼 부어주셔서 믿는 자들 안에 신성이 넘쳐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 ‘말세에’
요엘은 ‘그 후에’하나님이 만민에게 영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의 ‘그 후에’를 ‘말세에’로 바꾸어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강조합니다. 말세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날을 가리킵니다. 지금 우리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요엘의 예언에 약속된 성령이 오심으로써 옛 시대와 옛 질서가 끝났으며, 이제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립니다. 누구든지 주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 약속된 시대, 교회에 모든 능력과 역사가 맡겨진 시대가 임한 것입니다.  
- ‘모든 육체에’
구약 시대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시적으로 성령의 부으심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선지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모든 육체’는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성별이나 신분, 나이 등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임할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예언하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남종과 여종은 유대인 가운데서 종의 신분으로 살고 있던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나 나실인과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예외적으로 하나님의 신이 부어졌을 뿐 일반인은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부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신을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주신다고 합니다. ‘남종’과 ‘여종’에 소유격인 ‘내’를 덧붙여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나 상황보다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이후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언의 직무를 받은 증인들이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결국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이방인 선교의 징조로 보고 있습니다.  
- ‘예언, 환상, 꿈’
‘예언’은 특별히 선지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하는 말들을 뜻하지만, 본문에서는 복음 전파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곧 구약의 모든 예언의 초점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이 이제 예언이 되었습니다.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는 표현은 서로 다른 두개의 활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8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라는 말이 요엘서에는 없지만, 누가가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의 결과 예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환상이나 꿈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이 특정인에게 그분의 뜻을 알리는 계시의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성령의 조명 아래 ‘하나님의 큰 일’곧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전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크고 영화로운 날의 도래(19-21절)
하늘의 기사와 땅의 징조들 곧 ‘피와 불과 연기’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동반되었던 현상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현상의 실체이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새 언약 백성을 성전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 강림의 의미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제2의 출애굽, 혹은 영적인 출애굽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단의 종노릇 하던 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고 죄 사함 받으며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해 주십니다. 

누가는 표적과 기사라는 언급을 모세와 관련하여 사용하며(7:36),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설명할 때도 사용합니다(2:22). 게다가 기사와 표적(징조)은 앞으로 사도행전에서 사도와 제자들의 활동과 관련해 계속 등장합니다. 사도와 제자들에게 의해 일어나는 기사와 표적은 요엘이 예언한 종말의 시대, 곧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징표가 됩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라는 표현은 비록 새 시대가 개막되었지만, 아직 그 시대가 완성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성령 강림 사건은 새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탄이지 완성은 아닙니다. 이 종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가 될 것입니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 것”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기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불과 50여일 전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 오후에 해가 가려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어두워진 가운데 유월절 만월이 붉은 핏빛을 띠고 뜨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셨던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욜 2:28)라는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서도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욥 2:32)라는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결론을 내립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닮아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고 말함으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요엘이 예언한 장차 임할 시대의 징조가 바로 성령의 임재입니다. 또한 요엘의 예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보며 회개하라는 요청입니다. 2장 후반부를 보면 베드로는 모인 무리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것이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담대하게 외치니 그 말을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았습니다(행 2:38-29).

비전의 사람
이 시간 성령과 비전을 연결시켜 설교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합니다. 원대한 목표를 표현할 때 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람직한 계획이라도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정해 놓고 비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비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보여주시는 큰 그림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등장합니다. 그들 모두 비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요셉 등 족장들이 그랬으며, 모세와 여호수아 또한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과 열왕들이 그랬으며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에 따라 섬겼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델이신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비전대로 사셨기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도 비전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17절을 읽어볼까요?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환상과 꿈을 ‘비전’이란 단어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갖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도 비전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1)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고난을 겪을 때와 현실의 눈으로는 희망을 볼 수 없을 때 특히 비전이 필요합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코로나 19이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미국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격리, 경기침체, 실업자 양산 등을 일으키면서 유례없는 공포와 불안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미네소타 주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George Floyd가 죽은 것을 계기로 미 전국적으로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시위가 확산되고 그 와중에 약탈도 일어나서 가뜩이나 불황으로 힘든 많은 가게들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인종차별 바이러스가 동시에 퍼지다 보니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전의 사람은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의 내일, 궁극적인 승리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전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비전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우리의 비전 그 자체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매 순간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이 시작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시고 훈련의 장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갔으며, 노예와 죄수의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비전을 이루기까지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당시 세계의 심장부로 이끄셨고, 그들을 중심으로 역전의 드라마를 만드셨습니다. 죄수와 포로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믿음의 사람, 비전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비록 매우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 있었을지라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은 마침내 비전을 이루는 복된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런데 비전을 이루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비전을 이루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십니다. 

2)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믿음의 사람, 비전의 사람은 또한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꿈꾸게 하시고 또한 그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본문은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고 선포합니다. 비전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꿈을 꾸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야망과 구별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이 무엇이라 하든 하나님만 알아주시면 된다는 자세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보여 주신 비전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겁쟁이였던 사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으면서 위대한 비전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역사가 시작되고,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꿈의 크기와 정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로부터 안수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비전을 가지고 그의 삶 전체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과 오늘만 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실 그 너머의 미래와 내일을 내다보게 됩니다. 위대한 삶은 분명한 비전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비전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현재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건강, 재정, 비자문제, 인간관계 등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 힘으로 온전히 우리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에 견고해서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거룩한 비전을 소망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날마다 강건하여져서 성령의 능력으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 후서 4장에서 바울이 말씀했던 것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주님, 언제나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는 주님, 언제나 우리를 악한 곳에 건져내시는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