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오순절을 기다리며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5-24 14:15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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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주일은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은 곡물의 첫 이삭을 바치는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즉 칠칠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오순절에 유대인들은 밀 농사의 수확을 시작하고, 밀로 만든 떡 두 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 23:17). 그러면 초실절은 무엇입니까? 유월절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무교절 일주일  중에 있는 안식일 다음 날입니다. 바로 그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고전 15:23)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키는 부활절은 구약시대 절기로는 초실절에 해당합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을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로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 그의 제자들이 모인 곳에 성령이 강림하자,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전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이 날을 ‘성령강림일’이라고도 합니다. 사실상 초대교회의 창립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일은 오순절, 즉 성령강림일을 맞이하기에 두주에 걸쳐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사도행전의 서두로,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인 8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독립을 가져다주는 회복의 때였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성령의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승천하십니다. 이때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 약속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만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심방하거나 전화로 통화하거나 기도 요청한 글들을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닥친 여러 가지 일들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의 응답을 기다린다는 말이나 글을 대하면서 제 마음이 뜨거워지고 고난을 통하여 믿음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어려움이 우리를 주님께로 초청합니다.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들과 같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성령으로 충만하여 능력을 받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시대의 귀한 증인이요 사명자로 쓰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40일(1-5절) 
사도행전은 누가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데오빌로라는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에게 쓴 글입니다. 이방인으로 추정되는 ‘데오빌로’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또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 즉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한 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누가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양피지 같은 데에 기록하다 보니 두루마리 크기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1권에는 누가복음을 기록하였고 두루마리 2권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은 신약에서 가장 두꺼운 두루마리요 사도행전을 합치면 누가가 쓴 글은 신약 전체의 1/4이나 됩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시고 가르시기 시작하신 때부터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이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으로 행하신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는 예수님 사역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종교당국자들에게 체포된 후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많은 수난을 겪으셨다는 말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40일 동안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다시 나타난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라 함은 지역이나 영토적인 개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재림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영생을 소유하며 살아갑니다. 현재의 삶이 힘들지라도 소망 중에 주님의 위로를 바라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그 큰사랑을 생각하며 찬송을 부를 때 감격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확장되었고, 오늘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구원의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성령으로 세례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의 열매는 인간의 힘이나 노력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 증거에 필요한 모든 능력과 은사를 제공하십니다. 성령의 임재는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주관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전에 한 것입니다(마 3:11). 요한이 베푼 물 세례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상징이었습니다. ‘물 세례’그 자체는 죄 사함을 얻게 할 수 없고, 오직 성령만이 사람들을 회개케 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합니다. 따라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은 성령이 임함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참된 회개의 역사가 곧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세례를 받듯이, 성령 세례는 처음 체험하는 성령 충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물에 잠기는 것처럼 성령 세례는 성령에 사로잡혀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항상 사모해야 하고 또한 충만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임할 성령에 대한 약속은 1:8에서 반복되고,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6-8절)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 받을 것에 대해 말씀하시자 사도들은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해방될 날이 곧 이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눅 19:11). 당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팔레스타인에서 이방인의 세력을 몰아내고 다윗 가문의 자손을 통해 정치적 주권이 회복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구약성경에도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 하나님이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사 32:15). 그런데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기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너희가 알 바”아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와 시간이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한 권한 아래에 있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절은 사도행전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시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증인은 헬라어로 ‘martus’인데, 이는 ‘자기가 보거나 듣거나 아는 바를 그대로 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헬라단어에서 ‘martyr’라는 영어단어가 나왔습니다. martyr는 순교자, 즉 증거하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제자들에게 유대라는 지경을 넘어 땅 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라는 명령은 당시 상황으로 보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적대와 긴장과 분열과 대결의 장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에게‘가라’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궁극적으로 ‘땅 끝까지’가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들이 받게 될 성령의 세례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베푸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될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건을 유대인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파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8절은 또한 사도행전 전체의 지리적 확장에 따른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2:42~8:3은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을 언급하고, 8:4~11:18은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사역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11:19~28:31에서는 땅 끝까지의 사역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교 목표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복음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팔레스타인을 넘어 소아시아, 유럽 그리고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로마는 ‘땅 끝’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승천(9-11절)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성령강림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승천에 해당되는 “올려져 가시니”라는 동사는 ‘위로 취하여진다, 끌어올린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른 어떤 힘에 의해 위로 끌어올려짐을 의미하며 그 힘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지구에서 우주 공간의 다른 곳으로 이동하신 것이 아니라 전혀 차원이 다른 천상의 공간으로 이동하신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에서 “있는데”는 문법적으로 미완료형입니다. 제자들이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 과정을 계속 응시한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도 계속 ‘그 하늘’을 주시하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구름으로 인하여 승천하신 예수님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제자들이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사람’곧 천사들이 나타나 ‘어찌하여 계속 서 있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시 오실 것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예수님의 재림은 초자연적이고 공개적이며 범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계 1:7에 의하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예수님의 재림은 성도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찌른 자들과 이 땅의 모든 족속들도 보게될 것입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셔서 이 땅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마 16:27).  

*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까? 
1)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모세 밑에서 철저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주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400년간 하나님의 음성이 이스라엘에 들리지 않다가 하나님은 세례자 요한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그 400년은 암흑시대 같았는데, 하나님은 쉬신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제대로 전파될 수 있는 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세계 정치, 경제, 문화 판도를 바꾸셔서 택하신 종들이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여건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지난 삼년동안 예수님과 같이 지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사역을 보고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 스스로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성장시키기에는 아직도 부족하였기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다가 한풀 꺾이는 조짐이 보이자 주정부는 stage 2 open 상태를 머지않아 stage 3로 올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문을 닫았던 많은 상점들이 업종에 따라 이미 문을 열었거나 앞으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행 규칙에 따라 문을 열기 전에 새롭게 설치를 하거나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도 드디어 본당 수리를 마쳤고 어제는 총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함께 예배드리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당에 들어오기 전에 발열 검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도 6ft 이상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에 들어오는 입구와 의자에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전면 개방이 되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쓰시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사명자로 쓰임 받도록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2)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의 메시아 왕국관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유대인이 지배하는 지상의 왕국이 수립이 되고 옛날의 신정 정치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실망과 허탈에 빠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때와 기한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이니 그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만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의 징조인 지진, 전쟁, 기근, 사랑이 식어짐, 사람들의 왕래가 빨라짐 등을 볼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가 그날을 예측할 수도 없고 또 안다 하더라도 주님을 맞을 준비가 안 된 자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직접 전도하거나 귀신을 쫓아내며 현장 실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0일 동안에 다시 한 번 복습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철저한 교육과 준비 과정을 거친 후에 성령을 받음으로 그들은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모두 언급됩니다.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부터”(2절) - 공생애 시작
 “고난을 받으신 뒤로”(3절) - 십자가의 죽음
 “자기가 살아 계심을”(3절) - 부활  
 “예수께서 올라가실 때에”(10절) - 승천
 “그대로 오시리라”(11절) - 재림
여기서 ‘아는 것’은 지식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의미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3,6)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격적이며 영적인 관계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과 날마다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닮게 되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3)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전도 전략을 세워야 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소아시아, 그리스를 거쳐 로마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기에 ‘성령행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령의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눅 1:35).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 어렸을 때도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며 나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눅 3:22).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도 사십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셨습니다(눅 4:1). 예수님은 탄생 때부터 사역하시는 동안 철저하게 성령에 인도된 삶을 사셨습니다. 부활하시고 난후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기사와 이적을 많이 행하실 수 있었습니까?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역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 성령님이 대신 오셔서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면서 주님을 전하게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증인의 삶을 살려면 예수님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의미이며, 이는 성령 충만이 증인이 되는 전제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은 1세기를 넘어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부터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후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증인의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선교하는 백성들입니다. 선교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선교하는 성도들이 모인 목장은 친교만 나누는 장소가 아니라 아직 믿지 않거나 교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웃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좋은 전도의 장소가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넓히기 원하십니다. 성도는 ‘성령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모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참여하며 가깝게는 자기 가족에서부터, 친구, 이웃 더 나아가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어 사도행전 1:8의 비전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