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한나의 기도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5-17 14:05
Views
1008

교우들 중에도 가정에서 안타까움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문제들은 아닐지라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거나 억울한 지경에 처하여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아파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파산 직전에 있는 분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엉뚱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길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심령을 쏟아놓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이 커집니다. 그러니 위기를 기회로 삼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무엘서를 시작하는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시대 말기입니다. 사사 시대의 특징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16; 21:25)입니다.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매우 타락하고 혼란과 고난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통치가 바르게 실현되고 질서와 평화와 번영을 위해 선택하신 사람이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출생은 한 가정의 기쁨을 넘어 이스라엘에 기쁨을 주고 이스라엘 역사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사무엘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주일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모세의 부모, 그중에도 그의 어머니 요게벳을 다루었는데, 이번 주일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한나가 고통 가운데서 드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응답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활동이 제약되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간구를 통하여 한나와 같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상황
엘가나가 에브라임 사람으로 소개되는데 이는 그가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역대상 6:22-28이 보여 주듯이 엘가나는 레위 지파 그핫 혹은 고핫 계열의 후손이었습니다. 따라서 엘가나의 아들로 태어나는 사무엘도 레위 지파의 후손이었습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로 ‘은혜를 받은 여자’라는 뜻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로 ‘진주’또는 ‘다산’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결혼한 여자가 아이를 갖지 못하다는 것은 큰 시험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불임에 대한 자책과 설움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한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브닌나의 조롱과 괴롭힘이었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고 사랑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괴로움을 해소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벗겨 주실 수 있는 분이 오직 천지의 주재이시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뿐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결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기도하러 가는데 제사장 엘리가 성전 기둥 옆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는 한 번도 일어섰다는 말이 없습니다. 앉아 있든지 아니면 누워 있습니다. 영적으로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한심한 제사장의 모습을 암시합니다.

* 한나가 드린 기도의 특징 
1) 고통 가운데 드리는 기도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1:11)
성경은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다’(5,6절)는 선언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 것은 한나의 불임이 우연이나 육체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아이가 없다는 안타까움, 그로 인한 브닌나의 격동이 한나를 힘들게 했습니다. 한 남편에 두 아내라는 필연적인 경쟁 구도에서 브닌나가 불임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한나를 평소에 자주 괴롭혔을 것입니다. 브닌나의 괴롭힘은 매년 제사 때 더욱 심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엘가나가 한나에게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보다 갑절로 주고, 갑절의 사랑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혔고, 한나는 큰 슬픔으로 인해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울기만 했습니다. 라헬이 불임으로 있는 동안 야곱이 가졌던 열 명의 아들을 연상시키면서, 엘가나는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며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으로도, 물질의 풍족함으로도 메우지 못하는 한이 한나에게 있었습니다. 한나와 브닌나의 관계는 레아와 라헬의 관계와 비슷했습니다.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았고, 레아는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라헬은 자식이 있는 레아를 투기해 남편 야곱을 찾아가 자신도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습니다(창 30:1). 그러자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라헬과 비슷한 입장이면서도 라헬이 레아를 괴롭힌 것처럼 브닌나를 괴롭히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브닌나로부터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였습니다. 남편이 자기보다 한나를 더 사랑한 것이 마치 한나의 잘못인양 브닌나는 한나에게 증오를 나타냈습니다. 잘못한 게 없이 받는 설움이고 이유 없이 당하는 푸대접입니다. 한나가 당하는 고난은 그녀의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한나의 불완전한 성품을 연단시켜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에게 주어지는 고난이 아니라, 의인에게 주어지는 고난이었습니다. 한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낳기 위한 산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나의 고난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고난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은 것처럼, 한나가 자신의 영혼을 여호와 앞에 쏟아 부었습니다.  

2) 서원하며 드리는 기도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1)
한나는 극심한 괴로움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통곡하며 간구하고 서원합니다. 그녀의 간구는 아들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고, 서원은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다는 것은 그를 철저하게 구별된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나실인 법이 기록된 민수기 6:1~21을 보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 외에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과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규정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세 가지 금지 규정 가운데 한 가지만 언급되지만, 이것만으로도 한나가 그녀의 아들을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지키지도 못할 것을 함부로 서원하지 말라는 것이 일반적인 교훈입니다. 전도서에서도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5:5)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서원이 있는 기도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 믿음과 감사의 마음으로 서원하고 그것에 맞춰 자신을 연단시켜 나가는 것이 영적으로 큰 유익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신속히 실천하라는 전도자의 권면대로, 한나는 아기가 젖떼기를 기다렸다가 사무엘을 데리고 엘리에게로 갔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1:27-28). 한나의 신앙을 단순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여호와께) 구하는 것’으로 인해 아들을 얻게 되었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아들을 드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구나 그 아들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눈물로 보냈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일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경솔히 서원했던 입다는 자신의 딸을 번제로 드렸으나, 한나는 자신의 아들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사무엘은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1:28). 민 30:10-15에 의하면 남편은 아내의 서원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가나는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얻은 첫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한나의 결심과 실행을 지지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엘가나의 배려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가장에 대한 모범을 제시합니다. 그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으로 데려가면서 세 마리의 수소와 한 에바의 곡식 그리고 한 가죽의 포도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은 대략 율법에 규정된 분량의 세배에 해당합니다(민 15:8-10). 엘가나가 많은 제물을 드린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그의 신앙 때문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아들인 사무엘의 평생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믿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3) 제사장의 축복을 받는 기도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17)
한나는 마음의 고통이 너무 심해 마치 속으로 신음하는 것처럼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은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한나를 주목합니다. 그 의자는 권위의 상징으로 비록 엘리가 늙어 예배를 직접 주관하진 못하지만 여전히 예배의 보호자이고 백성들의 재판관(사사)임을 보여 줍니다. 엘리는 입술을 움직이며 조용하게 기도하는 한나를 술에 취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는 엘리의 시력이 약해져서 일어난  오해였습니다. 엘리는 눈이 어두웠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영적인 눈마저 어두웠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들들의 잘못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막상 알았어도 그들을 따끔하게 징계하지 않았습니다(2:22-25). 엘리는 한나에게 언제까지 술에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말해줍니다. 엘리가 그렇게 말한 것은 절기 때 많은 여인들이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취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제가 혹시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해 엘리와 같은 실수를 함으로써 교우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엘리의 지적에 한나는 자기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심정을 쏟아낸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자기에게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마음이 ‘슬픈 여자’이지 ‘악한 여자’는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한 여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벨리알의 여인’입니다. 벨리알은 구약에서 극악한 사람의 의미를 가지고, 신약에서는 사탄이나 적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2:12에 보면 엘리의 두 아들들을 ‘벨리알의 아들들’이라, 즉 행실이 나쁜 자들, 불량자들이라고 합니다. 

오해가 풀린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기원합니다. 이에 한나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비록 영력이 떨어진 제사장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종인 것을 인정하며 엘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받습니다. 한나는 엘리의 축복의 말을 들은 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본문은 인간적으로 부족한 것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영적 권위를 인정할 때 그 인정하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교훈을 제공합니다. 
 
4)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기도
19절에 보면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여기에서‘생각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기억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기억은 단순한 두뇌 활동이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을 수반합니다. 여호와께서 아이를 갖지 못해 고통 가운데 간절히 기도한 한나를 기억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심으로, 즉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한나는 꿈에 그리던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20절) 짓고 나서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쉐무엘’은 ‘그의 이름은 하나님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이름의 첫 번째 자음 ‘쉰’과 두 번째 자음 ‘엠’을 바꾸면 메슈알이 되는데. 이것은 ‘구하여 받은 자’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의미는 메슈알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임으로 고통당하는 한나를 돌보셨고 그녀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가 받은 기쁨은 이전의 모든 고통을 말끔히 잊어버리기에 충분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사를 드릴 만큼 컸습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돌보신 것처럼 우리를 돌보십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그분께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내시며, 성도의 발을 반석 위에 두시고 발걸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그럴 때 성도는 새로운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게 됩니다. 사무엘서 2장에는 한나가 드린 찬양이 있습니다.
 
5) 구한 것 이상으로 받는 기도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21)
하나님은 한나의 서원을 기억하셔서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임신을 허락하시고 사무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엘가나와 한나는 그 후로도 해마다 제사를 드렸고, 계속 사무엘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브닌나라는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혀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한나가 여호와의 전에서 기도할 때부터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한나는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며, 자신의 뿔이 여호와로 인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나 고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에서 쓴 뿌리를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나가 예상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십니다. 
 
한나는 서원한 대로 아이가 젖을 떼면 여호와 앞에 데리고 가서 뵙게 하고 거기서 영원히 있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무엘이 젖을 떼는 때가 되면 그를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회막에 데리고 올라가서 그곳에서 그 아이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그토록 원하던 아들을 얻었지만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 아들을 주저 없이 하나님께 바칩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고, 아쉬울 때는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에서, 한나의 신앙과 헌신은 아주 모범적입니다. 모성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연하게 서원을 이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더 풍성해지는 것이 감사입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아이라고 항상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기억이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이행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한나는 실로의 회막에 있던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김으로 평생토록 나실인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릴 때 인간적으로는 갈등이 전혀 있었을 텐데 서원을 굳게 지킨 한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세 아들과 두 딸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한나는 자신의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은혜를 받은 여자’가 됩니다. 한나는 시골에 거주하던 무명의 불임 여성이었고, 거창한 애국심이나 비전을 품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신앙과 태도로 기도하고 헌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한나는 구약성경 중 성전에 올라가 기도한 유일한 여인, 여호와께 서원하고 또 그 서원을 실천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브닌나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나는 겸손하고 가정적이며, 경건하고 희생적인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자신에 대해 ‘당신의 여종’이라고 네 번이나 밝히고 있는 점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강한 어머니요, 적극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으나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 중에 우리를 돌아보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에는 아름다운 수식어가 필요 없습니다. 장황한 설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주변이 없는 기도라도 모두 들으십니다. 벙어리조차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젖을 떼자 함께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 사무엘의 평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도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몸도, 시간도, 물질도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서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는 기간으로 알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욥처럼 정금같이 아름다운 길이 열립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나와 같이 크고 놀라운 응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