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믿음의 자녀 교육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5-10 14:28
Views
427

우리가 접하는 가장 작은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와 자녀 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부부 간에 도저히 갈등을 감당할 수 없으면 남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와 갈등이 있다고 해서 자녀를 호적에서 빼어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세속화의 과정에서 많은 가정들이 공동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화목하지 못하여 그 가정에 기쁨이 사라지고 그 도가 지나치면 파탄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가정을 이루어야합니까?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합니까? 우리는 삶의 해답을 항상 성경에서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성경에 나오는 바람직한 한 가정을 살펴봅니다. 모세의 가정입니다. 과연 모세의 가정은 본받을 만한 가정입니다. 특히 본문은 모세의 부모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기에 모세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세의 부모의 모습을 통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람직한 부모상을 알고 각자의 삶에 적용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가진 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모가 되고, 아직 자녀가 없거나 기다리시는 분들은 영적인 자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모세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하여 아시던 사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날 때부터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믿음 있는 부모가 모세를 믿음으로 양육하였습니다. 모세의 부모의 모습이 히브리서 11:23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개역성경의 번역을 보면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어를 직역하여 보면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믿음으로 그 부모에 의하여 석 달 동안 숨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았고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모세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한다면 모세는 모태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의 시대적 상황이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17하)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유대지도자들이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없자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말을 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7장을 보면 그런 거짓 고소에 대해 스데반은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이스라엘 조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7-19절은 모세가 출생했을 당시 역사적 배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한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요셉이 있던 애굽에 이민을 온 야곱과 친족들은 칠십 명에 불과하였지만 430년 만에 야곱의 후손들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장정만 60만이 될 정도로 애굽 땅에서 번성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18절)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 받는 꼴을 그냥 보지 못하고 언제나 시기하고 방해하려 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즉위하였다고 합니다. 왕으로서 역대 총리의 이름을 모를 수는 없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애굽을 구한 요셉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상실은 곧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를 의미했습니다. 애굽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던 호의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바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증가해 애굽 사람들보다 강하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애굽의 대적들과 이스라엘이 동조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 새”(19절)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구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계책을 세웠습니다. 히브리인을 노예로 삼고 무거운 노역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노역에도 불구하고 인구 증가세가 멈추지 않자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해산할 때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바로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남자 아이들을 무조건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헤롯왕은 베들레헴 근처에서 예수님이 난 때를 기준하여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은 다 죽이라고 하였던 같이 사건의 정황이 비슷합니다. 나일 강에 던져지는 자기 아들을 지켜보던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20절)
스데반은 출 2:1-10을 기반으로 구약의 전승에 근거해 모세의 유아기를 설명합니다. 애굽 왕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름다운 그 아들을 차마 버릴 수 없었기에 3개월을 숨기고 길렀습니다. 아이가 커지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되었을 때 요게벳은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가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목욕하러 나온 애굽 공주에 의해 발견되고 그녀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라면서 애굽의 학문을 배워 말과 행동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잠 17:6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올바른 관계가 면류관이며 영화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번성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복 주심을 전제로 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한 자손으로 키워야 합니다. 악이 관영한 세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1) 믿음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다 키워 놓았는데, 다 공부 시켜 주었는데, 결혼까지 시켜 놓았는데 자기를 대하는 자식의 행동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숨을 짓는 엄마를 간혹 보게 됩니다. 그런 하소연을 하는 분일수록 자기는 자식을 위하여 온갖 희생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일수록 자식을 믿음으로 키우지는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세속적인 가치관을 심어주었기에 자식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1장 후반에 보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범하는 죄목들을 열거합니다.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1:30). 21가지의 죄목들 가운데 부모를 거역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려면 부모가 먼저 믿음의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의 가정이 세상적으로 볼 때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본받을 만한 가정이 된 것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었거나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대적인 상황은 험악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건한 부모 밑에서 경건한 자손이 나옵니다. 믿음은 좋은 부모가 되게 하고 믿음은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는 원동력이 됩니다.  
 
2) 믿음으로 자녀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출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17상) 하나님이 정하신 때 특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되었을 때에 태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히브리 민족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명대로라면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나일 강에 던져져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난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께서 히브리 민족의 구속을 위하여 모세를 모태에서부터 구별하시고 모세의 성장과정에 개입하셨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모세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까?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에게서 ‘아름다운’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귀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 믿음의 부모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잘 모시려고 이 땅에 온 것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되어 부모의 뜻대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도록 부모에게 위탁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의 계획을 자녀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모세의 부모처럼 자녀에게서 아름다운 것, 즉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가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겼다는 점에 있어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의 낯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함으로 베들레헴 근처의 수많은 사내아이들이 살해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바로의 딸은 그를 모세라고 명명했는데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물에서 모세를 건져내었고 그 구원의 역할을 공교롭게도 바로의 딸에게 맡기셨습니다. 이렇게 건짐을 받은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바로의 속박에서 건져내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됩니다. 모세의 인생여정을 바르게 시작하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의 부모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관점에서 모세를 보았습니다. 모세를 하나님의 택한 사람,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할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였습니다. 바로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바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기에 모세를 살려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살아난 모세는 애굽에서 왕자로서 교육을 잘 받은 후에 40년 광야의 연단을 거치면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믿음의 첫 발자국을 잘 떼었더니 그 가정에 기쁨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를 숨기기는 하였지만 그 석 달 동안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석 달은 그들에게 조바심과 갈등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행여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요? 아이가 칭얼대거나 울려고 하면 아이의 입을 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쉬 조용해, 애굽 사람들이 듣는다.’요게벳은 수없이 속삭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석 달이 되니 아이의 울음소리도 커져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단의 시간이 왔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를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것입니다. 갈대로 바구니를 만들면서 틈새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발랐습니다. 혹시라도 물이 샐까 얼마나 정성껏 역청을 발랐을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모세를 갈대상자에 누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나일 강가 갈대밭에 갈대 상자를 두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첫걸음을 떼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절묘한 때에 절묘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우연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모세가 들어있는 갈대상자가 놓여 있는 곳에 바로의 딸이 나타납니다. 바로의 딸은 갈대상자 안에 있는 모세를 보고 히브리인의 아이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니다. 아버지 바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했는데 그의 딸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살립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기지를 발휘하여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니 바로의 딸은 이를 허락합니다. 그 결과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키우면서 바로의 딸로부터 돈까지 받고 키웁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자기 품안에 앉고 키우면서도 모세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드러내놓고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호와께서 친히 모세를 붙드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됩니다. 히브리 노예가 졸지에 애굽의 왕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사니 하나님이 그의 자녀에게 복을 주십니다. 모세는 궁정에서 왕자로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어린 모세를 안고 젖을 먹일 때마다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 ‘아이구 내 팔자야. 너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구나 어찌하여 이 모진 세상에 태어나 죽지 못하고 사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면서 신세타령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크신 일을 하실 것을 믿었기에 오히려 모세의 믿음을 돕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라 히브리 사람이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다. 비록 지금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모세가 말을 알아듣기 전부터 요게벳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계속하여 깊게 심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나중에 모세가 성년이 되었을 때에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압제 하는 것을 보고 히브리 사람을 보호하려 하여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비록 모세가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났지만 그는 자신을 애굽의 왕자라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 히브리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깊게 새기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4-25). 모세는 믿음으로 태어나고 믿음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이 가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 섬김입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믿는 자들이 서로 섬기라는 가르침 가운데 포함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바로 주님에 대한 순종을 반영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권면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표현되어야 합니다. 신앙 훈련은 교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 신앙훈련의 훌륭한 연습장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대부분의 성도 여러분은 부모가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기도 합니다. 믿음의 시각으로 볼 때 얼마나 경건한 부모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경건한 자식입니까? 외할머니 로이스의 믿음이 엄마 유니게에게 내려가고 유니게의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 내려갔던 것처럼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전수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한 부모를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어버이 공경은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동안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시고 사랑으로 앵욱하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귀한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모세의 부모들처럼 믿음으로 양육하여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 사용하시는 경건한 자손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모세 이야기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라는 인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은 믿음의 부모를 사용하셨습니다. 사탄의 어떤 방해에도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오늘도 신뢰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기려는 자세로 교우들 가정마다 화평과 희락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