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비전의 사람 에스라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8-09 14:06
Views
553

살다보면 침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침체, 경제적인 침체, 감정적인 침체.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적 침체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봄부터 시작된 COVID-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화가 있고 그로 인하여 침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침체에서 벗어나 회복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사적으로 비전의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공동체의 위기를 돌파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비전의 사람 시리즈 9번째로 구약 시대에 마지막으로 개혁을 이끌었던 에스라를 살펴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이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중단된 회복의 불길을 이어갈 사람이 필요했을 때 등장한 사람이 에스라였습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포로 생활은 끝났지만 아직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조국을 위해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있는 상황에서 유다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신앙 공동체로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과연 에스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 일부를 함께 살펴보면서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에스라와 같이 역경을 딛고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성전 재건
고레스 왕은 바벨론 제국을 주전 539년에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점령국에 대한 관대한 포용정책을 전개함으로 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였습니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이 생기기 전까지 유배되었던 포로들을 본토로 귀국시켜 그들의 고유종교와 문화를 활성화시킴으로 그들의 불만을 완화시켰습니다. 이는 제국의 변방을 안정시키는 한편 세금과 공물을 통하여 국가 수입을 증대하려는 정책이었습니다. 이러한 포용 정책은 이스라엘 포로귀환의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스룹바벨이 최초의 귀환자들 49,897명을 이끌고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빼앗아 온 금과 은 기구들과 함께 유대로 돌아왔습니다. 귀환한 자들에 의하여 성전의 기초를 다지는 공사가 시작된 것은 귀환한 지 제2년 이월이었습니다(3:8). 성전 공사가 의욕적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심각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 땅에 살던 자들이 나아와 자기들도 건축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4:1-2). 그러나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앞세운 유다의 지도자들은 고레스의 칙령에 근거하여 성전 건축의 권리가 귀환한 자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 땅의 백성이 건축을 방해하자 성전 재건 공사는 다리오 왕 2년까지 중단되었습니다(4:24). 그 무렵 귀환 공동체는 힘든 때를 지냈습니다. 경제적 곤경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습니다. 진실한 재판이 사라지고, 이웃 간의 사랑이 없어졌으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와 같은 총체적 난국이 무엇보다도 성전 건축을 등한시하고, 개인의 유익만 추구하는 신앙의 나태함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학 1:4-6).  

그런 상황에서 학개는 여호와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시며 만국을 진동시키실 때가 임박했고,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학 2:6-7). 여호외께서 열방의 세력을 멸할 날이 가까웠으며, 다윗의 후손 스룹바벨이 유다 왕국을 회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학 2:22-23). 스가랴 역시 환상 중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내려지며, 유다를 흩어지게 한 열국의 뿔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슥 1:15-21). 확신에 찬 선지자들의 예언에 고무된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는 것이 현재의 모든 고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 믿고,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 건축을 재개했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 관리들이 다리오 왕에게 편지를 보내 성전을 지어도 되는지 문의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과거의 문서들을 조사하다가 고레스의 칙령을 발견했습니다. 다리오는 강 서편, 즉 사마리아와 유대를 포함하여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지중해 사이의 지역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6:1-4).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 서편의 세금 중에서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금과 제물들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청대로 매일 지원하도록 명했습니다(6:8-12). 이와 같은 지원에 힘입어 다리오 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때는 성전이 파괴된 지 약 7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 성전 재건의 신학적 의미
재건된 성전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집결 장소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또 포로 이전 시대의 이스라엘과의 연속성을 나타냅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5:12)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했습니다. 재건된 성전은 역대하 7장에 묘사된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 볼 때, 모든 면에서 규모가 훨씬 작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6:17) 드리면서 성전 봉헌식을 행했습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유다와 베냐민”지파에 한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6장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언급으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옛 누룩을 버리고 자신들을 새롭게 준비하는 무교절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포로로 사로잡혔다가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스스로 구별하여 과거 죄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로 건축해 봉헌한 성전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했습니다. 
 
에스라의 귀환
1-6장에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성전 재건을 다루었다면, 7-10장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재건을 다룹니다.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귀환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7:1에 언급된 ‘이 일’은 바로 앞의 사건, 즉 성전이 완공되고 유월절을 지켰던 일을 가리킵니다. 성전 건축 시기를 주전 515년,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온 시기를 주전 458년으로 본다면, 6장과 7장 사이에 약 57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입니다. 스라야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 대제사장입니다(왕하 25:18). 그렇다면 스라야와 에스라 사이에 적어도 약 12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에스라의 족보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론에게까지 미칩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손입니다.   

이어서 에스라를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 소개합니다. 에스라가 귀환할 때, 율법책을 가지고 오면서 예루살렘 공동체는 토라 중심의 공동체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학자’로 번역된 ‘쏘페르’는 ‘기록자, 서기관’을 뜻하며, ‘율법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에스라가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에스라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밝힙니다. 이것은 두 번째 귀환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는 또한 아닥사스다 왕에게 무슨 부탁을 해도 될 만큼 그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전에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에스라를 포로기 이후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7장은 또한 에스라의 귀환 행렬에 동참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들 가운데는 제사장들, 레위인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차 귀환민들의 역할이 성전 재건이었다면, 2차 귀환민들의 역할은 공동체를 재건하는 일입니다. 약 1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노략하려는 대적들이 매복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주시도록 금식기도하면서 이 모든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 위에 함께하셔서 그들은 4개월 만에 고국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입은 이유를 밝힙니다. 그것은 그가 율법을 연구하며 지키고,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율례’는 율법의 기본적인 규정이나 법령을 의미하고, ‘규례’는 관습에 의해 결정된 규정을 의미합니다. ‘율법과 규례’는 구약성경에서 율법 전체를 의미하는 관용어로 자주 사용됩니다. 경건한 지도자인 에스라는 율법을 통해 유다 공동체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에스라의 사역
에스라 7-10장은 에스라가 자신의 소명에 따라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첫째로, 에스라는 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충실한 페르시아의 관리로서의 직위를 이용했습니다. 왕으로부터 받은 조서를 통해 에스라는 디아스포라로 남아 있는 유대 백성은 누구나 유다로 돌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왕과 바벨론 도에서 얻은 은금과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에 풍성하게 사용하고, 또한 에스라 일행이 도착하는 지역에서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들을 제공하며 제사장들을 비롯해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지 않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개혁을 위해 재판관을 세워 사법 제도를 바르게 세우고,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준행하지 않는 자를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옥에 가두는 행정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방인들과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을 때 누구든지 3일 내에 오지 않으면 재산을 압수하고 모임에서도 추방할 것이라고 엄명했습니다. 에스라는 왕이 위임한 페르시아의 관료로서 가진 법적 권위를 적절하게 활용했습니다(10:5-11). 둘째로, 모든 일을 신앙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제2의 출애굽으로 여기고 전폭적인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적군을 막고 자신들을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지 않고 떠나기를 결심했습니다. 모든 살림살이와 성전에 드릴 기명과 예물을 끌고 유다로 돌아가면서 그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이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고 감사 예물을 드렸습니다. 셋째로, 공동체를 성결하게 했습니다. 에스라가 의도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구별된 모습을 갖고 율법에 충실한 공동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함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 중의 하나가 귀환자들이 이방인들과 결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에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과 단절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근심하며 식음을 전폐한 후에 백성에게 예루살렘에 모일 것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공포했습니다. 모인 무리는 에스라의 말을 듣고 큰 소리로 그가 명령한 대로 마땅히 따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결과 114명이 이방 여인을 내보내기로 합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스라가 백성을 성결하게 하는 제의 개혁을 이루었다면 사회적인 개혁은 느헤미야의 몫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의 건설과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제사 의식을 회복함으로 종교적인 순수함을 얻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건설을 통한 공동체를 회복하고, 양극화의 해소를 통한 연대감 획득 등의 사회 개혁의 바탕 위에 토라-성전 공동체의 건설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이 개혁은 유다가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독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으로 독립된 종교 공동체로서 다른 공동체와 철저한 배타성을 갖는 정체성을 갖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에스라-느헤미야의 개혁은 유다 사회를 토라-성전 중심의 사회로 만들어서 장차 유대교와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고레스는 포로로 있던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조서를 내릴 뿐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약탈한 성전의 기물들을 돌려주었습니다. 이는 애굽 백성들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소유를 주었던 사건들을 연상케 합니다. 성전의 기물들을 꺼내도록 명령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역사적 주권과 섭리를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유다로 돌아온 자들은 폐허로 남아 있는 땅에서 생존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학 1,2장). 성전을 건축한 뒤에도 강 서편 사람들은 아하수에로 왕과 아닥사스다 왕에게 호소하여 유다로 하여금 성벽을 건축하지 못하게 계속 방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나 성벽 재건에 필요한 재물을 제공하셨고, 제사에 동원돼야 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노래하는 자들까지 준비해주셨습니다. 또한 어려운 시기에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셨고, 또 에스라의 통곡(9:3)과 느헤미야의 눈물의 기도(느 1:4)을 들으셨습니다. 한 시대를 평정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이방인 왕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지금도 세상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 절대적인 주권이 교회의 필요를 날마다 채우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결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모든 위협으로부터 지키십니다. 

에스라로부터 얻는 교훈
에스라처럼 이 세상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할까요?
- 말씀의 사람 
에스라는 대제사장 가문출신이지만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곳에서 출세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갖춘 학자가 되었습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늘 말씀을 가까이하도록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 권력자인 페르시아 왕에게 총애를 받는 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로 결정하고는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백성에게 가르침으로써 내면의 성전을 짓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공동체에게 모세의 율법은 제사 의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경 낭독은 제사와 함께 귀환 공동체의 종교 의식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8장을 보면 회개(느 9장)와 이로 말미암은 개혁의 결단(느 10장)을 한 의식에서 성경이 공개적으로 낭독되었습니다. 당시의 율법의 낭독은 지금 생각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낭독이 아니고 청중의 귀에 ‘의미 있게 들려주는’설교의 수준이었습니다. 느 8:7-8에 보면 레위인들이 청중이 율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의미를 해설해주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말씀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세상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강조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거쳐서 유대교의 기원이 됐으며, 기독교를 위해서는 성서 해석의 출발점을 제공했습니다. 
- 기도의 사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주셨다면, 에스라에게 파괴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벽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에스라서 9-10장은 예루살렘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과 율법의 순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인 제사장과 레위 사람마저 이방 백성과 통혼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방백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에스라는 기가 막혀 속옷과 겉옷을 찢으며 극심한 슬픔에 잠겨 앉아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여호와께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9:6-15에 기록된 에스라의 기도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하나됨: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리’라고 지칭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을 예루살렘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모세 시대에 형성되고 주전 586년에 망해버린 과거 이스라엘 공동체의 연속이라는 점도 부각시킵니다. 자신이 죄인들과 하나됨 같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과거, 현재, 미래도 하나라고 합니다.
- 고백: 현존하는 예루살렘 공동체뿐 아니라, 과거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와 허물까지 낱낱이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은 과거의 죄 때문이며 아직도 백성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기도 속에 죄에 대한 고백을 가장 주요 요소로 부각시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에스라와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 변화에 대한 결단: 에스라는 주님의 백성들에게 회개와 함께 결단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시더라도 다시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할 말이 없다고 고백합니다(9:10). 그러면서도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조상의 죄를 반복하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명을 주신 사실을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기대합니다. 
 
에스라가 성전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고 그 앞에 모였습니다(10:1-4). 주목할 것은 에스라가 회개 운동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에스라는 말보다 행동으로 백성에게 본을 보이는 진정한 지도자였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 여호하난의 방에 들어가서 밤새 금식하며 중보기도를 한 후 백성을 예루살렘에 불러 모았습니다(10:6). 성전 앞 광장에 모인 회중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에스라의 제안을 따를 것을 다짐했습니다. 에스라의 금식과 중보 기도가 다시 한 번 효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나가면서
신약까지 고려하면 구속사는 아직 진행형이지만 구약만을 본다면 선민에 관한 최후의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내용은 구약 역사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습니다. 구속사 전체로 볼 때 에스라, 느헤미야의 역사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허리’에 해당합니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선민의 역사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임을 예시합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개혁의 완전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여 줍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두 사람의 개혁 목표를 율법 및 성전 공동체의 건설에 두고 있습니다. 유대 공동체는 에스라서의 종교 개혁에서 시작해 느헤미야서의 율법 공동체 형성을 통해 개혁을 완성하게 됩니다. 에스라서의 주제는 성전과 제사 의식의 회복입니다. 귀환 공동체가 시행한 성전에 대한 헌신, 율법에의 순종, 절기의 철저한 준수 등은 모두 포로 전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그렇게도 원하셨던 것들인데 에스라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방인 아내를 내보내기로 한 에스라의 결정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친 조치로 보이지만, 새롭게 시작된 공동체가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던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은 자들에게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자질인 순결을 배우게 하셨던 값진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는 자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세상의 명예와 성공을 좇는 삶이 아니라, 에스라처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거슬러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도 말씀 충만해야 하고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힘써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회개를 동반하며 온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라 시대와 다를 바 없는 힘든 때를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각자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개혁의 주역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라와 같이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여 하나님의 비전에 따라 새 역사에 역동적으로 참여할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