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비전의 사람 다윗

Author
Myung Myung
Date
2020-07-26 14:23
Views
414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가운데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왕 중의 왕이라 불릴 만큼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나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40년 간 나라를 잘 통치하면서 400년간 지속된 다윗 왕조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또한 음악과 시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 시편 150편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이 썼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비전의 사람 시리즈 7번째로 다윗을 나단의 신탁과 연관 지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의 즉위  
다윗 당시는 가나안뿐만 아니라 중근동 지방이 비교적 조용했습니다. 앗수르는 중흥기의 초기 단계에 있어서 서쪽으로 확장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 제국은 다윗보다 약 1세기 후에 살만에셀 3세 때 가장 번성하였습니다. 애굽도 제3중간기로서 외부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의 많은 작은 나라들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다윗의 통치 하에 이 지역의 강자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였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도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여 북으로는 유브라데 강과 남으로는 애굽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되면서,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땅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사 시대를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이웃은 점차 소규모 도시 국가 형태를 탈피해 연합국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런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도 한 국가로서 견고하게 서려면 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어 유다의 후손 가운데 왕을 세우시겠다는 것은 창세기부터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기들이 이웃 나라들과 같이 되기 위해 왕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훈련시켜 약속의 땅에 정착시킨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과 같이 되고 싶어 한 것입니다. 왕을 구하는 동기가 잘못된 것이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호세아의 입을 통하여 그렇게 왕이 된 사울에 대하여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왕은 유다 자손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따라서 구속사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 낳은 베레스의 계보, 곧 보아스와 이새, 그리고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룻기는 창세기와 사무엘서를 잇는 역할을 하며, 사무엘서의 이야기가 다윗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사무엘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그들의 후손 가운데 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창세기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사울이 이방 왕과 같은 왕을 열망하는 백성들에 의해 세워지고 사울 자신이 그러한 모습으로 바뀌니, 하나님은 그에게 주신 왕권을 회수하여 다윗에게 넘겨줍니다. 히브리어 ‘킷세’는 ‘의자’또는 ‘보좌’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무엘 기자는 ‘킷세’라는 단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합니다. 삼상 1:9에서 제사장 겸 사사 엘리가 늙고 몸이 비대하며 영적 분별력이 없는 모습으로 킷세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삼상 4장을 보면 엘리는 블레셋과의 전쟁에 법궤를 보내 놓고 킷세에 앉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에 지고 두 아들이 죽고 법궤마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엘리는 킷세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엘리가 죽는 순간부터 그가 앉았던 이스라엘의 통치를 상징하는 의자 또는 보좌는 공석이 되었습니다. 엘리의 뒤를 이어 사무엘이 사사로 사역했지만 킷세에 앉았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울이 40년 동안 왕으로 있었지만 사울 또한 킷세에 앉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그 킷세에 앉게 됩니다(삼하 3:10). 

나단의 신탁(다윗 언약)
- 다윗의 성전 건축 제안(7:1-3)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셔서 주위 모든 대적을 멸하시고 그를 평안히 살게 하시며,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하는 소원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합니다.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궁궐에 ‘거주’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텐트에서 임시로 계신다는 점을 송구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거주’하실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나단은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라고 하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사울 왕조를 계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이고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새로운 왕조를 창설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창시자에게는 합법성과 정통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아직은‘다윗의 성’인 예루살렘의 왕에 불과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예루살렘은 취약했습니다. 당시 지방에는 실로와 기브온 등에 중요한 성전들이 있었습니다. 후일 왕위에 오른 솔로몬도 기브온 성전을 찾아가 번제를 드릴 정도였습니다. 비록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중앙 성소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통해 왕권의 합법성과 정통성을 보장받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 다윗을 위해 행하신 일들(7:4-9)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나단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신탁의 형식으로 나단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은 ‘이동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다’로 번역한 히브리 단어 ‘할라크’는 ‘걸어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동’을 원하셨고 그 누구에게도 ‘거주’할 집을 지으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광야의 성막인 회막에서, 그리고 백성을 인도하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도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너’와 ‘나’가 여러 차례 등장하여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대답은 물론‘아니다’입니다. 그 질문의 초점은 성전을 짓느냐, 짓지 않느냐가 아니라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성전을 짓느냐에 있습니다. 11절에 여호와의 의도가 분명히 나옵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세 번째는 경제적 이유와 종교적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경우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채무를 청산하기 위하여 두로 왕 히람에게 20성읍을 양도하였습니다(왕상 9:11). 만약 다윗이 성전 건축을 했다면 백성은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했을 것이고 부역으로 강제 노동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종교적 이유로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면 상대적으로 지방 성소들이 약화되기 때문에 지방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반대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조를 처음 세우는 시점에서 다윗이 이러한 반대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셨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다윗의 성전 건축 제안을 거절하셨지만 그런 마음을 가진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을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내 종’(5,8)으로, 이스라엘을 ‘내 백성’(7,8,10,11)으로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양을 치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 함께하셨고 그의 모든 원수를 멸하신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서든 미리 정하신 한곳에 거하게 하시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하시며, 악한 자들이 해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의 안정된 통치는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다윗을 위해 행하실 일들(7:10-17)  
‘집’이라는 단어가 삼하 7장에 모두 열다섯 번 사용됩니다. 그 ‘집’은 문맥에 따라 왕국(1,2), 성전(5,6,7,12), 왕조(11,16,19,25,26,27,29), 가족(18)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과 여호와, 그리고 성전(집)과 왕조(집)를 대비시키면서 여호와의 주도권을 11절 하반부에서 결정적으로 부각시킵니다. 또한 ‘집을 짓는다’고 할 때 다윗의 행위는 ‘건축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5절), 여호와의 행위는 ‘창조하다’혹은 ‘만들다’는 뜻의 ‘아사’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여호와의 창조적 행동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다윗의 당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까지 넘어가는 ‘영원한’약속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구체적으로 ‘후손’과 ‘보좌’(키쎄)를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후손’은 구체적으로 ‘솔로몬’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네 몸에서 날 자식”으로 언급되며,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고 합니다. 사실 ‘후손’과 ‘보좌’는 왕권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 요소입니다. ‘왕의 후손’에게는 ‘보좌’가 있어야 하며, ‘후손’은 있어도 ‘보좌’가 없다면 그는 더 이상 왕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과 다윗 후손의 관계는 ‘부자 관계’로 언급됩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이리하여 다윗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며, 언약 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윗의 후손들과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시며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후손이 범죄할 때 징계는 있겠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완전히 거두시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무조건적인 언약이란 언약에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이 당사자들에 의해 파기되어도, 그 후손을 통하여 계속 관계를 유지해간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까지 나단을 통해 주신 말씀을 요약해서 선포하십니다. 다윗 언약은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 그리고 다윗의 왕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세 가지를 ‘영원히’보전하시고 ‘영원히’견고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점에서 나단의 신탁, 즉 다윗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다윗 왕조를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헤세드)에서 나온 것인데 이 ‘헤세드’라는 히브리 단어는 여호와의 절대적 자유와 그가 선택한 백성을 향한 그의 지극한 관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이 담긴 약속입니다. 다윗은 그 비전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성전 건축 준비 
- ‘많은 피와 큰 전쟁’의 의미 (대상 22:6-10)
삼하 7:7과 대상 17:6과 달리 대상 22:8에서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를 언급합니다. 다윗이 많은 피를 흘렸고 큰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많은 피를 흘린 죄 때문에 성전 건축에 부적격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왕상 8:18에서 다윗이 성전 건축할 마음을 품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좋게 보셨다고 합니다. 또한 솔로몬이 히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 아버지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을 그의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라고 말합니다(왕상 5:3). 이어서 ‘내(솔로몬)게 여호와께서 사방에 태평(안식)을 주셔서, 이제 내가 전을 건축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하는 것은 그가 단지 피를 많이 흘려서가 아니라, 다윗 때에 아직도 이스라엘에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행한 전쟁은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전쟁은 부정적으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으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니다. 다윗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가져오고, 다윗이 가져온 ‘안식’을 누리는 솔로몬이 그 토대 위에 성전을 짓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고, 솔로몬이 그 준비된 것을 바탕으로 성전 건축을 완성하게 됩니다. 
- 성전 건축 위임(대상 22장)
역대상 11장부터 20장까지는 사울에 이어 왕이 된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점점 강성해져서 어디를 가든지 승리를 맛보고 대내외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든든히 세우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2장부터 29장까지 성전건축을 준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 기틀을 세우는 것과 성전 건축 준비를 연결하는 고리가 21장에 언급된 인구조사 사건입니다. 나라가 점점 강성해지자 교만하게 된 다윗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당시의 인구조사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장정을 계수함으로 병력을 점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군사력을 더 의지하려는 다윗의 처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범죄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인구 조사를 함으로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나입니다. 이 불쌍한 백성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가족을 벌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소서’(대상 21:17). 하나님은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것과 다윗이 죄를 뉘우치는 것을 보시면서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단을 쌓으라고 선지자 갓을 통하여 명령하셨습니다.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 때문에 비록 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는 비극적인 결과가 야기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전 건축이 솔로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역대기에 언급된 다윗의 유일한 범죄인 인구조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윗이 지은 죄마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제단을 쌓은 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모리아 산이요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이 성전을 짓지 못할지라도 실망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합니다. 아들 솔로몬에게 ‘안식’(평안)를 가져다주는 전쟁뿐 아니라, 성전을 짓는 석수들과 엄청난 양의 자재들을 준비합니다. 14절에서 다윗이 성전 건축을 ‘환난 중에’준비했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다윗이 어려운 형편 가운데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 건축은 엄청난 일인데 아직 어리고 유약한 솔로몬이 감당하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방백들을 불러 솔로몬을 도와 성건 건축을 반드시 완수하도록 부탁합니다. 다윗은 정치적 준비(대적을 제압하고 안식을 가져오는 것), 경제적 준비(일꾼과 자재들을 준비), 국민적 합의(모든 사람들에게 솔로몬을 도울 것을 부탁)등 모든 것을 마친 후에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맡깁니다. 이와 같이 모든 준비는 다윗이 하지만, 그 열매는 솔로몬이 거둡니다. 이런 다윗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남깁니다.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삼하 7장은 사무엘서 전체의 정점이며 구약 전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물론 완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세를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시킨 다윗은 하나님 백성의 왕에 합당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장차 자기 후손 가운데 오실 메시아의 그림자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솔로몬도 참된 왕이 아님을 열왕기는 보여 줍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참된 성전인 하늘의 성전이 임할 때 참된 여호와의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참된 왕,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기다리게 됩니다. 나단의 신탁에 담긴 모든 약속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성전 건축은 ‘아들’에게 허락되고 안식도 그때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이 일차적으로는 솔로몬에게 해당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참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신 예수님을 기대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가리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4:18). 다윗의 언약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히브리서의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는 말은 결국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히 1:5). 즉 예수 그리스도는 삼하 7장이 바라본 다윗의 후손으로서, 주님의 선택된 자요, 임마누엘이시며,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 이시요,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평화의 나라를 가져오시며, 주님의 아들이시며, 성전인 교회를 짓는 이시요, 새 왕조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분이십니다. 그의 보좌는 영원히 세워질 것입니다. 

다윗을 통해 본 비전의 사람의 자세 
대상 22장을 보면 다윗은 솔로몬을 불러 성전 건축을 위임하며, 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조건을 일러주는데 그 조건은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성경적인 자세를 제공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모든 일에 형통함을 입고 성전 건축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했습니다.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대상 29:19). 셋째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개인적으로 당부하는 말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말과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1:7) 마지막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대상 29장에서 다윗이 보여준 헌신과 그가 드린 감사 기도는 하나님을 위한 헌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헌신은 자신들의 소망이 만유의 머리되신 주님 앞에 있고 모든 것들이 주님의 손에서 오며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럴 때 물질에 대한 청지기적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음을 믿고 자원해서 섬겨야 합니다.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는 헌신은 부담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자원하는 헌신은 모두에게 기쁨을 가져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못하게 된 것을 인하여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여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했습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께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어떤 형편과 처지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며 자원함으로 섬기면서 다윗과 같이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체험하시는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