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

Author
Myung Myung
Date
2020-11-08 20:17
Views
412

교회에서 헌금을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헌금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헌금을 자기 주머니에서 자기 돈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낸 헌금으로 목회자의 생활비를 충당하거나 교회 운영을 위한 경상비를 댄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선교헌금이나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으로 전용하여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경적인 헌금관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헌신했는가는 그가 어떤 직분을 가졌고 어떤 업적으로 가졌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바른 헌금 생활은 건전한 신앙생활의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입니다. 헌금은 사람을 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헌금을 드린다면 자기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드린다고 할 때 헌금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헌신의 표현입니다. 


 


본문은 빌립보교회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도움과 후원에 대한 바울의 감사와 함께 마지막 문안 인사와 축복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을 후원했던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로부터 칭찬을 듣고 그들의 헌신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로마 성도들로부터 문안 인사를 받습니다. 그 결과 그들 모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확진되는 어려운 시기에 있지만 빌립보 교회와 같이 마음을 다한 헌신을 통하여 섬기는 자들도 기쁘고 섬김을 받는 자들도 기뻐하고 궁극적으로 그 헌신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후원에 대한 칭찬(14-16절)  


바울은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워지지 않는 극단적인 궁핍과 모든 필요가 넘치도록 채워지는 극단적인 풍부를 포함한 모든 상황에서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다시 말하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능력을 받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나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다는 그의 말이 혹시 빌립보 교우들이 보낸 선물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그다지 감사할 것 없다는 식으로 잘못 전달되면 곤란하기 때문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잘하였도다’에서 ‘잘’이라는 부사는 ‘아름답게’, ‘멋지게’, ‘선하게’등의 뜻을 가집니다. 이는 영적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도의 진정성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후원이 바울의 형편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선물을 보내 준 것을 자신의 괴로움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괴로움’으로 번역된 단어는 ‘핍박’, ‘고통’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나 선교 사역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어려움들이라기보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상황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우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헌금을 보낸 것을 바울은 자기의 괴로움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이 호칭은 빌립보인들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 아닌 빌립보에 살던 로마 시민들이 자신들을 부르던 품격 높은 호칭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자존감을 높여 주면서 빌립보 성도들이 보여 준 재정적 후원과 헌신에 대해 감사와 기쁨을 표합니다. “너희도 알거니와”는 의미상으로‘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빌립보 성도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게도냐를 떠날 때’는 2차 선교 여행 때에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많은 핍박과 환난을 당하여 부득불 그곳을 떠나 아덴으로 내려간 것을 의미합니다(행 17:1-15). 그 어려움 중에 바울을 재정적으로 후권한 교회는 오직 빌립보 교회뿐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주고받는 일’은 상거래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로서 수입, 지출에 관한 회계를 뜻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전했고, 빌립보 성도들은 그 보답으로 바울을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개척 초기에 신앙이 크게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열심히 바울을 도왔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바울의 선교를 재정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심지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에도 헌금을 보내 힘껏 바울을 도왔습니다. ‘참여하다’는 동사는 ‘동업자로 사업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기에게 대하여 선교 지원을 한 것이 단지 자기를 도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후원이 자신에게는 동역의 의미였음을 알려줍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함께 선교 사역에 동참한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바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고받는”일은 복음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입니다.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면 말씀을 받은 자들은 주의 종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고 교회가 지속적으로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재정적인 부담을 져야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바울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 사역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한 섬김은 한 번의 이벤트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작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참여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후원의 영적인 의미(17-18절)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17절)


바울은 자기가 받은 선물들을 언급하는 것이 또 다른 선물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내가 선물에 마음이 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물’로 번역된 단어는 빌립보 성도들의 재정적 지원이나 헌금을 뜻합니다.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등의 표현들은 당시에 많이 사용하던 상업 용어들입니다. ‘유익하도록’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거래 계좌를 개설하도록’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그의 복음 사역에 참여한 것을 마치 ‘거래 계좌’를 개설한 것처럼 표현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그에게 ‘투자’한 것으로 여기기를 바라면서, 복음 전파에 참여한 그들에게 ‘풍성한 열매’로 맺히기를 원합니다. ‘풍성한’이라는 현재분사는 ‘증가하다, 많아지다’라는 뜻으로 투자한 자산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매’로 번역된 단어는 투자로 얻게 되는 ‘이익 배당금’을 뜻합니다. 바울이 그런 용어들을 사용한 의도는 무엇입니까?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전도의 열매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역에 빌립보 교인들이 후원을 했습니다. 투자를 해서 그 대가로 배당금이 많아지는 것과 같이 바울의 복음 사역을 후원함으로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어카운트에 크레딧이 많아지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땅에서의 물질적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장차 하늘나라에서도 풍부한 배당을 받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상급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에서 “내게는 모든 것이 있다”는 ‘모든 것에 대한 나의 영수증이 여기 있다’라는 뜻으로 빌립보 교인들이 보낸 것을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풍부하다’는 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보여 준 사랑과 관대함이 그의 필요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차고 넘칠 정도였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18절)


여러 상업 용어들을 사용해 복음 전파에 동참한 빌립보교회를 칭찬하던 바울은 이제 구약의 제의적인 용어로 그들을 칭찬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에게 보낸 헌금은 사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로 제물을 수식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향기로운 제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입니다. ‘향기로운 제물’이란 표현은 노아의 제사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창 8:21). 하나님의 백성이 바친 제물의 향기를 흠향함으로써 기쁨을 누리시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용어이며,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향기가 올라갔습니다. 짐승의 고기가 불에 타면서 나는 냄새가 제사의 절정입니다. 바울은 헌금이 바로 그 향기라고 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금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제물도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제물을 드린 자체만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는 행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을 돕기 위하여 드려지는 헌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이라고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여 바울을 도왔는데 하나님은 그의 풍성한 가운데서 빌립보 교인들의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넘치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형편이 어렵다고 불평하거나 주눅이 들어 비굴해져서는 안 됩니다. 형편이 풀린다고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맡겨진 일은 능력 있게 처리하는데 유독 돈 문제에 약해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사는 지라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환경을 넘어서서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쓸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19-20절)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


19절은 빌립보 교회도 자신처럼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바울의 간구내용입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여기서‘나의’라는 소유격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에게 헌금을 보내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녀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 주시는지 말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즉 ‘영광스럽고도 놀라운 방법으로’채워 주십니다. “영광 가운데”라고 말한 이유는 빌립보 성도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이 더욱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이유는 빌립보 성도들이 그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풍성한 삶이 복음의 진보에 쓰이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역사를 보고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풍성한 대로”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성하시기에,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채워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이십니다(고전 1:5). 바울은 ‘채우시리라’는 미래형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미래에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결국 바울의 삶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요 빌립보 성도들의 영적, 물질적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 주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고,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영생의 삶을 주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서신의 본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문안(21-23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21절)


바울은 빌립보교회 지도자들과 돕는 자들을 향해 문안하라고 지시합니다. 21절의 ‘성도’가 헬라어 성경에는 ‘모든 성도’(every saint)로 되어 있습니다. ‘성도 각각’에게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22절의 “모든 성도들”은 바울이 갇혀있던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감옥 안에서 행한 바울의 사역에 대한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 안부를 전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이사 집 사람들’이란 황제의 직계 가족이나 친족을 의미하기보다는, 군인들과 성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들었습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는 것을 계기로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황제의 집 안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바울을 감옥으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로마 황제의 집에 있는 감옥도 선교지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23절)


바울은 축도로 빌립보서를 마무리 짓습니다. 축도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성도의 삶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들과 함께’있기를 간구하지 않고 “너희 심령에”있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령’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내면적 인간의 심령이란 뜻합니다. 여기의 “너희”는 복수고, ‘심령’은 단수로 쓰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한 심령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도록 간구합니다. 바울을 바울 되게 한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이고(고전 15:10), 빌립보 성도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한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1:2에서 ‘은혜와 평강’을 빌었던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과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빌립보서는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삶을 살려면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후원하며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사역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헌신을 기뻐하고 칭찬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고 선포했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통하여 빌립보 교우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빌립보서를 읽은 교우들은 큰 위로를 받으며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 그 섬김은 하나님 보시기에 향기로운 제물이 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쁨을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1) 나눔으로 복음에 동참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황제 숭배가 강한 빌립보 도시에서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전한 일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바울을 위해 헌금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헌신하게 하여 합력하여 헌금하고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섬기게 하고 합력하여 기도함으로 바울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베푸시는 복과 영광에 동참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기꺼이 교회와 주님의 사역을 위한 괴로움에도 동참하여,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고 후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섬김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을 섬기는 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이뤄 가는 복음의 풍성함을 깊이 체험하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말과 혀로만 이웃을 사랑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수고와 헌신이 없다면 그 사랑은 거짓입니다. 또 사랑은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돼야 합니다. 우리는 나누고 베풀며 복음 사역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복음의 동역자로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헌금은 하늘 구좌에 쌓입니다. 하늘 구좌에만 쌓이고 이 땅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 구좌가 넉넉하면 이 땅의 삶도 넉넉해지고 평안이 있습니다.  


 


2) 드림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후원은 동역자인 바울을 풍족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헌금을 ‘제물’로 언급합니다. ‘제물’은 구약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정체성,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헌금’이 그 역할을 합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새 시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님이 여신 새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과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헌금은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제물 자체보다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더 중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헌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헌금을 기뻐하십니다. 헌금이 제대로 사용될 때 복음의 진보가 있고 영혼이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 위하는 삶이라면 기쁨의 샘이 금방 말라 버리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기쁨의 생수가 흘러넘칠 것입니다. 


 


상급: 주 안에서 풍성히 채워지는 기쁨


바울은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풍성한 삶은 많은 재산을 소유할 때가 아니라 풍성히 채우시는 하나님과 동행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한 것은 눈에 보이는 재물이 아니라, 복음의 진보를 위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드리며 나눈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아낌없이 나누고 계속 베풀 때, 우리는 날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형편이 괜찮아서 섬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중에도 섬길 수 있는 이유는, 드리고 섬기고 베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쓸 것을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놀랍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풍성한 복의 통로로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가면서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저희 교회가 더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활기가 넘치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상처받은 자들이 치유를 받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는 성도들이 많아지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가정이 회복되고 삶의 문제들이 주님의 은혜로 풀려지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이 교우들의 삶을 보며 예수님을 믿고 싶어지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능력 주심, 하나님의 복 주심을 믿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만족을 누리기 바랍니다. 성도 간에 교제를 회복함으로 기쁨이 충만하고 받은 은혜를 인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하늘나라의 ACCOUNT에 많은 CREDIT을 쌓으실 뿐 아니라 이 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자신과 동행하고 협력했던 빌립보교회와 성도들을 칭찬하고 축복하며 문안한 것처럼, 우리도 그동안 함께 했던 교회와 성도들을 칭찬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며 교제할 때에 우리의 삶과 사역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심령에 함께하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모두의 심령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