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역동적으로 섬기는 교회

Author
Myung Myung
Date
2021-01-03 14:26
Views
510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축년(辛丑年)은 육십간지 중 38번째 해로, 신(辛)은 흰색을 뜻하기 때문에‘흰소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신년 첫 주일입니다. 작년 한 해의 우리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며 믿음으로 새해를 설계하고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 가운데 일어나고 이루어집니다.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창조의 섭리를 벗어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있고 그 뜻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COVID-19 사태를 인하여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환경에 눌려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작년에는 ‘새 역사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교회’라는 표어에 걸맞은 역동적인 사역이 모든 분야에 걸쳐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찬양, 미디어, 재정, 안내, 방역, 목장을 맡은 분들이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선교후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서 San Telmo 지역과 멕시깔리 장신대를 잘 도울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분들이 정성껏 헌금을 하셔서 재정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침수로 인해 피해를 겪었던 본당 재건축을 거의 1년 반 가까이 걸려 잘 마치고 함께 예배를 드릴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변종 바이러스까지 발생하여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이 보편화되어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온라인으로 예배, 기도모임, 성경공부, 교제 등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침체되기 쉬운 상황에서 신년도 표어에‘역동적’이란 단어를 다시 넣었습니다. 그래서 금년 표어는 ‘주님과 동행하며 역동적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신년도에 팔로마한인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하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교회 리더들이 목회자와 한 마음이 되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거둘 수 있을까요? 그래서 아름다운 섬김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삶의 본받기 위해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새해에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주후 2세기경 교부 파피아스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이 순교한 후 로마에서 베드로를 도와 사역하며 마가복음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보다는 활동중심의 사역을 강조합니다. 특히 끊임없이 움직이며 바쁘게 다니시는 종, 사람들을 섬기고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줌으로써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분량이 짧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일주일, 즉 그분의 십자가 고난에 집중해서 6장 분량을 할애한 것도 특징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에 직면해 있었기에 그들이 고난을 잘 감당할 때 주 안에서 승리와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1:1은 마가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정리해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보통 문장을 구성하려면 주어와 동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절에는 동사가 없으니 문장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1절은 마가복음 전체의 제목이 될 수도 있고 특별한 선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헬라어 원전에 기록된 순서로 말한다면 예수는 시작이요, 복음이며,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네 개의 단어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먼저 개인적인 이름인 예수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생긴 죄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중보자 역할을 감당하려면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이 되고, 인간 편에서는 인간이 될 수 있는 분, 즉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인 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예수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그가 자라난 곳의 이름을 따서 나사렛 예수라 불렀습니다.  여호수아, 예수아, 호세아처럼 같은 어원을 가진 이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을 가진다고 다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진정한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의 정체성


- 시작 


마가복음은 ‘시작’이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시작이라 함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처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창 1:1에서 ‘태초에’라고 번역된 ‘베레쉬트’에 해당하는 단어로, 첫 창조와 예수님을 왕으로 하는 나라의 시작을 이어 줍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세상을 시작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이 새로운 세계의 시작임을 알립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셔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향이 갈릴리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는 것이 용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심으로 예수님은 전략적으로 갈릴리에서 그 주변 지역으로 물러나십니다. 갈릴리 주변 지역으로 확장된 사역을 통해 예수님은 이방 사역의 문을 새롭게 여십니다. 예수님은 벳새다, 빌립보 가이사랴를 거쳐 갈릴리 가운데로 지나가셔서 유대와 베레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구체적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이 여정에서 자신이 받으실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며 제자도의 핵심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고난 받아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은 ‘종으로 오신 메시아’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부활로 이어져 새로운 삶의 문을 여는 시작이 됩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 신앙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 복음 


헬라어 원문에는 '예수의 복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주격으로 보면 ‘예수께서 전하신 혹은 가르치신 복음’이 되고, 목적격으로 보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됩니다. ‘유앙겔리온’이란 헬라어는 ‘복음’, 즉 ‘좋은 소식’입니다. 당시 ‘복음’은 황제 숭배와 관련된 용어였습니다. 황제의 은혜, 새 시대의 출범, 전쟁에서의 승리, 새로운 황제의 탄생이나 등극과 같은 소식을 선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로마는 군사적인 파워와 정치 경제적인 번영을 근거로 로마황제를 세상의 구원자로 신격화하면서 황제 숭배를 조장하고 정당화했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에서 마가는 진정한 복음은 로마 황제가 가져다 준 평화와 번영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구약에도 복음이 언급됩니다. 바벨론 포로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종말론적인 해방과 구속을 알리는 복된 좋은 소식 혹은 아름다운 소식을 가리킵니다(사 61:1). 결론적으로 복음은 예수님이 시작하신, 혹은 가르치신 복음이기도 하고,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공적인 title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누가 기름 부음을 받습니까? 왕, 제사장,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취임하거나 사역에 임할 때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분이 바로 왕,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로 오신 대제사장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행하신 선지자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라고 밝힙니다.  


 


- 하나님의 아들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세상의 구원자요 신적인 권위를 가진 로마의 황제를 칭송할 때 사용하는 정치적이고 제의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을 구원할 자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막 15:39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장면을 목격한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규정하면서 시작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 계실 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온 것을 기록합니다(1:11; 9:7).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유일한 사람이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이 아니고 이방인 백부장이라는 것은 충격적인 아이러니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자도 


마가복음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 메시지는 제자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3년의 공생애 기간을 지내면서 예수님을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에 대해 오해도 했고 때로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겼고, 어떤 제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에 그들은 모두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 이 말씀은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무엇을 추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당장 부인해야 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당장 져야 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갈릴리에서 구체적인 사역으로 옮겨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뜻을 아실 뿐 아니라, 종으로서 온전히 실천하는 순종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사역하시면서 그들에게 제자도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그 제자도를 몸소 보여주십니다. 그 정점이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 부활에 관해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예고하십니다. 제자도가 십자가와 부활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수난 메시지와 관련되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의 핵심 구절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45절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은 세 번째로 자신이 당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동적으로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능동적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전진하십니다. 그런데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이 가시는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영광의 자리를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 그 좌우편 자리를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당하는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광이라는 말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는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이 땅에서 누리기 원하는 세속적인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잔과 세례’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음’을 뜻합니다. 참 제자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입니다.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진 자들에게만 영광이 주어질 것이요 고난과 수치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영광이 주어집니다.


 


영광의 자리를 구한 야고보와 요한 때문에 나머지 제자들이 두 사람들에게 분노합니다. 그들 역시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잘못된 동기로 예수님을 따랐음을 보여줍니다. 야고보 형제 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수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참된 제자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의 집권자들은 권세를 누립니다. 이방인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서 그들의 힘을 행사하는 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통치 방식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제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가치 세계를 정면으로 도전하는 가르침을 제시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세상 속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원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통용될 수 없음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궁극적인 섬김의 본보기로서 자신을 제시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것은 세상적 가치관에 붙들려 있는 제자들이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대속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비록 예수님의 죽음이 가지는 대속적 성격까지 본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분의 삶을 본보기로 삼아 따라가야만 합니다. 


 


세상의 삶의 원리는 이기적인 욕망을 위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이지만 천국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자기를 가장 작게 여기는 자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큰 사람은 섬기는 자입니다.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은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세상적으로 볼 때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을 섬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위하여 가는 예루살렘을 가는 마지막 길에서 예수님이 전하신 마지막 가르침은 바로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33년이란 길지 않은 생애를 사셨지만 누구보다도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지셨습니다. 섬기러 왔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겸손이 가장 위대한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주님을 닮기 원한다면 우리 또한 다른 형제나 자매를 섬겨야 합니다. 먼저 가정에서 그런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권면했습니다(엡 5:24) 즉 자발적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 삶의 현장에서 섬겨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 주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섬기시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승천하시는 주님으로부터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체험을 한 후에 주님의 본을 따라 목숨 바쳐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주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고 무엇을 하셨고 어떠한 마음으로 섬기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새 역사의 시작이시고, 복음 그 자체이시고,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고 기도와 예배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섬김의 든든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을 아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 섬겨야 합니다.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함, 눈물을 흘리며 영혼을 사랑함,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인내함, 온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성실함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종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 역사가 이루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만이 유일한 구원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식은 가슴을 늘 다시 뛰게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종말의 때가 이미 임했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5).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당신을 믿어야 한다고 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주시라는 복된 소식을 우리 또한 사람들에게 외쳐야 합니다. 온 세상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웃들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세상의 왕이요 심판자로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과 같이 다시 오실 주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우리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을 우리가 필요할 때 도움을 베푸시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 충분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오셨을 때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1:11). 복음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께 경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COVID-19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신년도 교회 표어가 “주님과 동행하며 역동적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에 따라 세 가지 기도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게 하소서, 주님의 능력으로 섬기게 하소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이 때를 따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각자의 삶, 가정, 사업, 섬김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 가장 가까이는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주님을 대하듯 우리의 이웃을 대하여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며 아름다운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모든 교우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생명보다 사명을 귀하게 여기는 열정으로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며,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온 교우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말과 행실을 통한 복음 증거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상급을 하늘과 이 땅에서 크게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화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섬기며 거둔 열매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