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주의 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Author
Myung Myung
Date
2020-12-27 14:11
Views
631

다사다난했던 2020년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지금 2020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해를 돌아볼 때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반면에 가장 아쉬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top news를 꼽으라 한다면 당연히 COVID-19의 출현일 것입니다. COVID-19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며 어려운 때를 지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잘 견뎌왔습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백신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 있습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지만 오늘 우리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점검하고자 베드로 후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를 쓰게 된 동기는 교회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단들은 공개적으로 욕하고 비방하기보다 은밀하게 복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믿음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당시에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3:4)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다시 온다고 하였는데 몇 십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은 없으니 그런 허황된 것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들은 재림을 부인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내세에 대한 소망도 없으니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며 다른 사람들까지 실족시켰습니다. 그런 자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오늘날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말론적 신앙이 무엇입니까? 끝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언제나 다시 오실 주님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의 권면을 기억하면서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열매를 가지고, 평강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재림 지연의 이유(8-9절)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된다고 여기면서 과연 재림이 있는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면서 시편 90편의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차원이 다르므로 하나님의 때를 우리의 기준으로 늦다, 이르다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도할 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때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한 가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사도 바울도 베드로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원한다는 말은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림의 시기를 늦추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멸망치 않고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데 그 의도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재림이 없다고 하며 예수님 믿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는 하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 악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무서운 심판과 함께 임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의 시대가 끝이 나는지라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심판을 통하여 악을 제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십니다. 


 


사람들은 말세 또는 종말이라는 말에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종말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거나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해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어느 시점을 정해 놓고 그때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하며 사람들을 불안케 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취합니다. 베드로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은 재림에 대한 약속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기들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4:43-44). 베드로도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라고 경고합니다. 주의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요 심판의 날입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고, 예기치 못한 가운데 올 것이라고 합니다. 주의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째,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입니다. 하늘은 땅과 함께 피조 세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둘째,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물질은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를 가리킵니다. 셋째,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땅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모든 삶과 비밀들이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심판의 날은 불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악이 관영하던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땅을 심판하셨는데 노아 때보다 더 패역한 마지막 때에는 불로 하늘과 땅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불타기 위해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고 하셨습니다. 재림의 시기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그때 예수님은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전쟁이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박해를 많이 받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등불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시느냐가 아니라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받느냐는 것입니다. 주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10-13절)


베드로는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불에 타 없어지는데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에 넣어도 타지 않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누가 불에 넣어도 타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옷의 색깔도 변하지 않고 불탄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최후의 불 심판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믿음이요 그 믿음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베드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권면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1을 보면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 기도, 말씀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종말론 세미나도 좋고 종말론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지 생각하며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는 말에서 하나님의 날이 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지닌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기대합니다. ‘간절히 사모하라’로 번역된 단어는 ‘재촉하다, 앞당기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한 심령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재림이 늦어지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성결의 삶을 힘쓸 때에 주님의 재림을 앞당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섭리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반응이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마 6:10)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종말에 관한 예언 중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성도들의 순종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의 심판에 대해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라고 합니다. 인간이 지혜와 능력을 총동원하여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다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종말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문자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심판 중에서도 안전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 만물의 오묘한 질서와 관계를 다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온 후 그것들이 심각하게 망가졌고 오염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창조의 선함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온전히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새롭게 창조하시리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처음 세상에는 악이 관영하였으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죄가 주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만이 있게 됩니다.  


  


주 앞에서 나타나기를 힘쓰라(14-18절)


-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14절) 


재림을 준비하는 삶이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4가지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을 점과 흠이라고 했습니다(벧후 2:13). 점도 없도 흠도 없어야 한다는 말은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과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무엇이든 온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얻은 구속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벧전 1:19).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은 자들로서(1:1)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럴 때 주 앞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서게 됩니다. 그럴 때 주저하거나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평강 가운데 설 수 있을 것입니다.  


 


-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15절)


베드로는 주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셔서 오래 참으신다고 했습니다.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인한 재림의 지연이 오히려 은혜롭고 온전한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백성이 구원받기를 소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재차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더 이상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가르침이 믿을 만한 것임을 바울의 편지를 언급함으로써 확증합니다. 바울을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바울의 교훈에 대해 “그 받은 지혜대로”라고 표현함으로써 교훈의 신적 기원을 암시합니다. 바울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아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주님의 재림이나 말세를 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글 중에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었다고 합니다. ‘무식한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모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인본적으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굳세지 못한 자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아 어떤 가르침을 들을 때 쉽게 속아서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억지로 푼다’는 말은 하나님의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거부하거나 왜곡하는 자들의 결국은 멸망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거짓해석하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미혹할 때에 가출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를 탈영하고,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악한 영의 조종을 받는 자들이 그와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교회사를 볼 때 많은 거짓 선생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능력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종교를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신앙의 열매를 거두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하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문의하여 미혹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17절)


세 번째로 베드로는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베드로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당시의 형편을 잘 이해하고 알려 주었기에 독자들은 많은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무법하다’는 법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법과 습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와 법의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는 말은 굳게 섰다고 자만하다가 유혹에 이끌려 넘어짐으로 진리에서 이탈할 것을 경고하면서 자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 가라(18절)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미혹하는 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믿는 자들을 유혹해 그 영혼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성도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악한 간계를 깨뜨리고 진리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엡 6:10-11).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더욱 힘써 많은 영혼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며,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거룩한 영적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COVID-19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면서 서로 대면하는 것을 제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어 교제하고 격력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경건의 훈련을 쌓아야겠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려고 힘을 쓸 때,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점차로 예수님을 본받게 되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며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더라도 평강 가운데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약속중의 하나입니다. 재림은 앞으로 반드시 일어날 사건입니다. 한때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재림의 시기를 안다고 하면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재림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재림에 대한 말씀에 거부반응을 보인다면 이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권면은 종말을 준비하는 바른 자세와 사명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길이 참으시는 것과 같이 성도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따로 없습니다. 날마다 말씀 가운데 자신을 세우고, 자신 앞에 놓인 길을 거룩함과 평강 가운데 부지런히 걸어가야 합니다.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에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남아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사탄의 궤계와 공격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싸움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뜨거운 사랑과 복음의 열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남긴 권면을 되새기며 2021년 새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새해에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갖고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역동적으로 감당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