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헤쎄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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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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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룻 2:1-23


진해에서 직장 생활 할 때 동방유량이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콩을 짜서 기름을 만드는 회사인데 트럭으로 콩을 실어 나르다 보니 공장으로 가는 길에 콩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낙네들이 그릇을 가지고 와서 길 주변에 앉아 콩을 주워 담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본문을 보니 룻이 이삭을 줍습니다. 이삭줍기는 추수가 아니라 추수하다가 밭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양이 많을 수 없습니다. 이삭 줍는 일은 최하층민이 하는 일입니다. 이삭을 줍다가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삭줍기와 같은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과연 함께하시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때에도 하나님은 성도와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가장 큰 복입니다. 흉년으로 인해 모압으로 갔던 나오미의 가정이 하나님의 징계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며느리 룻과 함께 다시 언약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의 품으로 되돌아 온 나오미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선택된 보아스가 어떻게 쓰임 받는지 그로 인하여 나오미의 가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헤쎄드를 체험하며 회복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언제나 의지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회복을 경험하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는 헤쎄드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아스와 룻과의 만남(1-7절)
2장은 룻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보아스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는 것은 엘리멜렉과 언약적 형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나오미 집안의 기업을 무를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유력한 자’는 히브리어로 ‘용사’또는 ‘재물이 많은 자’의 뜻을 가지므로, 보아스는 베들레헴에서 재력과 명성이 있는 유지로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재산권이 남자에게 있었기에 과부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에 왔지만 가난한 과부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룻은 걱정만 하며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해 주신다고 착각합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룻은 믿음의 여인이지만 동시에 시어머니의 권위에 순복하는 여인입니다. 시어머니에게 밭에 나가 이삭을 줍게 해 달라고 허락을 구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추수 때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곡식 단을 남겨두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방 여인이었기에 누군가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이삭을 줍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하면서 자기에게 은혜 베풀 사람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삭을 주우러 밭에 나간 룻이 ‘우연히’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습니다. ‘우연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일이 맞아 떨어지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에 우연은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룻이 일하는 곳에 옵니다. 일꾼들이 추수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온 것입니다. ‘마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히네’는 우리말의 ‘짠’하고 비슷한데, 장면이 바뀌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질 때 쓰는 말입니다. 밭에 도착한 보아스가 추수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인사합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날 때마다 인사를 어떻게 했는지 성경에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룻기에 인사말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점은 보아스의 사람됨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밭에 있던 사람들은 보아스의 일꾼들입니다. 보아스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을 보면, 평소 일꾼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꾼들도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축복합니다. 보아스가 일꾼들을 하나씩 둘러보다가 낯선 여인을 보자 “이는 누구의 소녀냐”라고 묻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다 알았던 모양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어떤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속한 가족, 부족, 사는 지방 등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 관계 속에서 그 사람을 이해했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속해 있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보아스의 질문은 ‘이는 누구에게 속해있는 여자이냐’라는 뜻입니다. 일꾼 책임자가 보아스에게 룻이 성실한 여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고, 사환이 룻을 칭찬하고 그 결과 보아스가 룻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아스의 배려(8-16절)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보아스가 룻에게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자기 밭에서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함께 있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크’는 룻이 시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1:14)는 구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룻은 매일 다른 밭을 전전하면서 이삭 좀 줍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라 지시했고, 룻에게는 일하는 동안 목마를 때에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룻이 보아스에게 자신은 이방 여인이라 말하며, 호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보아스가 대답합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보아스가 룻의 행실에 대해서 그녀가 베들레헴에 온 날부터 계속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행실이란 룻이 남편을 잃은 후에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부모와 고향을 떠나 이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것입니다. 베들레헴이 모압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기에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2절은 2장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보아스는 룻에게 여호와로부터의 보답과 온전한 상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상’은 ‘품삯’과 같은 의미로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고국을 떠나서 유다 베들레헴에 온 것을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러 온 것이라고 합니다. ‘날개’는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품는 것처럼 보호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실제로 룻에게 헤쎄드를 행하고 있습니다. 룻은 진심으로 감격해서 말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베풂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면서 계속적으로 그렇게 해 달라는 소망이 담긴 말입니다.

보아스의 관대함과 자상함은 점심식사 자리에서도 나타납니다. 보아스는 룻을 식사에 참여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떡을 소스에 찍어먹으라는 자상한 말까지 해줍니다. 식탁에서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았던 자가 룻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는데, 룻이 배부르게 먹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보아스를 중심으로 일꾼들이 함께 둘러앉아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은 곡식이 없어 베들레헴을 떠난 1장의 상황과는 정반대입니다. 이 식탁 공동체야말로 베들레헴에 다시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상징합니다. 룻이 식사 때 남긴 음식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나오미에게 드리면서 베들레헴의 풍요가 나오미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보여줍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룻도 이삭을 줍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젊은 일꾼들을 따로 불러서 룻이 이삭을 줍는데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일꾼들에게 보리 한 다발에서 일부러 보리를 뽑아서 땅에 떨어뜨려 룻이 주울 수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저절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룻을 책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책망’이라는 말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뜻합니다. 과부이면서 동시에 이방 여인이요 또한 형편이 어려운 룻의 인격을 존중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나오미와 룻: 새로운 소망(17-23절)
2장의 전체적인 구성은 룻과 나오미의 대화 장면에서 시작해, 다시 룻과 나오미의 대화 장면으로 마칩니다. 그 가운데에는 들판에서의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룻이 아침부터 점심 무렵까지 쉬지 않고 이삭을 주웠고,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 다시 저녁까지 이삭을 주웠습니다. 이삭을 ‘떠는 것’은 타작용 도구를 이용해 곡식알을 떠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어 룻이 이삭을 타작했더니 보리 한 에바 정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매일 거두던 만나가 하루에 10분의 1 에바였으니(출 16:16,36) 룻이 거둔 양은 성인 10일치 양식에 해당합니다. 룻이 타작한 보리를 자루에 넣어서 머리에 이고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벼웠을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먹을 양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룻이 나오미에게 주운 것을 보이고 점심 식사 때 자신이 배불리 먹고 남긴 것도 내어 드립니다. 나오미는 룻에게‘오늘 어디서 주웠느냐’‘어디서 일을 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사실 이 두 질문은 하나의 질문입니다. 예상치 못한 풍성한 은혜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을 돌본 그 사람을 축복합니다.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돌보다’라는 말은 인정해 주고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2:10에도 나왔습니다. 룻이 보아스가 자기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에 감격해서 한 말인데, 나오미도 그 단어를 사용합니다. 타향살이 10여년에 남편 잃고 자식 잃고 홀로 된 시어머니와 이방 여인 과부 며느리를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룻은 자기를 돌본 자가 ‘보아스’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룻의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보아스가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또한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기업을 무를 자(고엘)이라는 개념이 성경에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됩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 중에 땅을 팔게 되면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대신 사서 돌려줄 수 있습니다. 이때의 친족을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그 땅을 하나님께서 그 가족에게 주신 것이므로 다른 가족이나 이방인에게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속에 존재합니다(레 25:24-34).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스스로 종으로 팔리는 경우입니다. 이때에도 친족 중에서 팔린 값을 갚고 그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친족을 고엘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죽은 자의 친족 중에서 복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그 친족을 고엘이라고 합니다(신 19:6,12; 민 35:19이하) 혼자 헤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고엘의 등장은 큰 희망을 줍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며 룻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고엘이었습니다. 2장에는 ‘모압 여인 룻’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룻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보아스를 우리의 친족이라고 합니다. 즉, 보아스가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친족만이 아니라 룻의 친족도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희망이 없던 이방 여인 룻에게 헤쎄드를 베푸십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기에게 추수가 끝날 때까지 젊은 일꾼들과 가까이 있으라고 했다고 말합니다. 함께 있으라고 한 보아스의 말은 나오미와 룻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가까이 있으라’로 번역된 ‘다바크’가 또 나옵니다. 룻의 특징인 끈질김, 집요함, 신실함을 잘 표현합니다. 룻의 말을 들은 나오미는 룻에게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일러 주었습니다. 룻은 나오미가 일러 준 대로 보아스의 젊은 여자 일꾼들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룻이 보아스와 “보리 추수 시작할 때”(1:22)부터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즉 초실절이 지난 어느 때부터 오순절까지였습니다. 룻에게 은혜를 베푼 자가 보아스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나오미는 이때부터 보아스에게 기업을 무르게 할 계획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욕심에 이끌려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라는 표현에서 나오미의 신중함과 인내가 돋보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도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헤쎄드의 삶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에서 ‘은혜’로 번역된 단어가 ‘헤쎄드’입니다. ‘은혜’의 의미는 전혀 법적인 의무가 없는 상태에서 받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조건이 주어지지 않고 오직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과 긍휼함이 있어서 베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헤쎄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실 때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할 때 모두 사용됩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에 떨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구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그때까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복이 오직 여호와의 은총(헤쎄드)였다고 고백했습니다(창 32:10). 여호와께서 요셉에게 인자(헤쎄드)를 베푸셨기에 간수장이 요셉에게 호의를 보였습니다(창 39:21).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이웃사랑이요 헤쎄드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룻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까지 온 것이나 보아스가 룻에게 배려한 것은 다 헤세드의 실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헤쎄드를 행하는 삶을 통해 사랑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나오미와 룻이 가장 어려웠던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나오미나 룻과 같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율법의 마침이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헤쎄드의 실행을 잘 보여줍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동족인 친구에게만 도움을 제공했는데, 예수님은 네가 헤쎄드를 베풀어 그의 친구가 되라고 적극적인 섬김을 가르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만이 헤쎄드의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샬롬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자세
- 하나님의 섭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가정에 하나님은 풍성한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언약의 땅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보아스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룻이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보아스가 자신의 밭으로 나와 룻을 발견했습니다. 룻에 대해 질문하는 보아스에게 일꾼 책임자는 룻을 칭찬했습니다. 롯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나오미는 하나님이 보아스를 통해 자신의 가정에 복 주실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이며 기업 무를 자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이제 다른 사람의 밭으로 가지 말 것과 다른 남자들을 만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는 장차 자신들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될 수 있는 보아스에 대한 배려였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행위를 차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순응하며 그 뜻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룻은 자신을 기다렸을 시어머니께 남겨 온 음식과 주운 곡식을 내어 드렸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가정을 위해서 은혜를 베풀되, 한 번이 아니라 추수를 마치기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를 했습니다. 나오미는 이런 보아스를 향해 축복했습니다. 섬김의 삶은 하늘의 복을 받는 길입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많은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살다 보니 다른 사람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그렇습니다. 섬김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섬기려는 마음입니다. 섬김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섬김의 마음이 넉넉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나눌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것이 많으니 나누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눌 때 더 풍성해집니다. 섬김과 나눔의 삶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섬김과 나눔이 풍성한 교회가 행복합니다. 그 나눔이 사회 속으로 흘러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나가면서
하나님은 룻의 믿음과 선한 행실을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바라고 시어머니를 따라온 룻을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참된 회복자이십니다. 나오미의 가정을 온전하게 회복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도 온전하게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친족 곧 고엘이며 다윗의 예표이자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때로 고난을 지날 때 있지만, 낙심하지 않고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 아니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 전체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나눔의 마음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베푸신 은혜 감사하면서 받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 시대의 보아스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