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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루살렘에 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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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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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11:1-36



경남 거창군에 위치한 거창고등학교의 교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 1:7)입니다. 그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지만 교육의 1차 목표를 ‘대학 보내기’가 아니라 ‘사람 만들기’에 중점을 두고, 경쟁에서 이기는 삶보다는 남과 더불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치관을 가질 것을 강조합니다. 이 학교와 관련되어 유명한 것은 ‘직업선택 10계명’입니다. 이 계명에는 1956년부터 20년간 거창고등학교 교장을 맡았던 전영창 선생의 철학과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직업선택 10계명’을 얼핏 보면 성공의 지침이 아니라 실패의 지침 같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11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자손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직업 선택 10계명’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계기로 귀환 공동체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율법 낭독, 회개와 신앙고백, 언약갱신으로 이어지는 개혁이 백성을 중심이 되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누가 거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그들이 선정되는 과정을 통해 누가 주의 일에 참여하는지 어떻게 참여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헌신의 삶을 점검하기 원합니다.

백성의 예루살렘 거주(1-2절)
느헤미야 11장은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의 목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귀환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로서,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마리아나 유대 주변 민족들과 달리 합법적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하고 백성 가운데 제비뽑기를 통해 10분의 1을 선발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게 합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민 26:55-56). 제비뽑기를 통해 선발된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야 합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바쳐진 성으로 성별되었음을 의미합니다(사 48:2; 단 9:24).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십일조처럼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소유로 드린 백성이 거주하는 거룩한 성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 1:3과 7:4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1:3).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7:4). 예루살렘은 거주 인구도 적고 가옥도 부족해 사람들이 살기에 불편한 것이 많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당시 예루살렘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거주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나라의 수도이며 성전이 있다는 상징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살기에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여전히 대적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방비 태세를 철저히 했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성의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 거주민의 수를 늘리기 위한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까요?

남은 백성이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을 남도록 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 모두 예루살렘에 살고 싶어 했기에 십분의 일만 제비를 뽑은 것일까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11장 전체해석이 달라집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지 백년 가까이 지났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대부분 백성이 예루살렘에 살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 의사에 반해 제비에 뽑혔다면 그들의 불만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왜 그것을 뽑았느냐고 하면서 식구들은 제비를 뽑은 가장을 원망했을 것이고, 안 뽑힌 사람들은 운이 좋아 안 뽑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본문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종려주일과 부활절 때문에, 그리고 제가 총회임원회가 있어서 캐나다에 다녀오는 바람에 느헤미야 설교를 삼주 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복습할 겸 8장부터 10장까지 요약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느헤미야가 정치적, 행정적 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성벽 공사를 52일 만에 마치고 7월 1일이 되었을 때 백성이 나팔절에 참석하기 위해 수문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백성이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읽어 주기를 자발적으로 요청했다는 점입니다. 성벽 완성을 계기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 이들이 영적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나무 강단에 서서 백성에게 율법책을 낭독했습니다. 백성은 에스라가 율법책을 펼 때 자리에서 일어나고 여호와를 송축할 때 손을 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 레위인들이 율법의 뜻을 해석해 주자 말씀을 깨닫게 된 백성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다 울었습니다. 이때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에게 ‘오늘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8:10)라고 위로했습니다. 이에 모든 백성이 함께 먹고 마시고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이튿날 백성의 족장, 제사장, 레위 사람들이 율법을 더 알고자 하여 에스라에게 왔다가 초막절 절기에 대해 알게 되자 백성에게 이를 공포했습니다. 백성들은 즉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세우고 그곳에 거하면서 초막절을 제대로 지켰습니다. 이틀 후인 24일에 백성이 모여 금식하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3시간은 율법을 낭독했고 정오까지 3시간은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백성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동안 레위 사람들은 강단에 올라서서 여호와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백성이 영적으로 새로워지도록 인도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지키신 의로우신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출애굽부터 그때까지 역사를 떠올리고, 거듭되는 불순종에도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셨음을 고백했습니다. 백성은 당시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인정했습니다.

10장을 보면 귀환 공동체가 언약을 맺는 데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인장을 찍는 일에 레위 사람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이 앞장섰습니다.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그리고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언약에 참여하고 인장을 찍었고, 남은 백성도 함께 언약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지키기로 맹세하면서, 자녀를 이방인들과 결혼시키지 않고 안식일, 성일, 안식년을 지키고 모든 빚을 탕감하기로 맹세했습니다. 또한 성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을 바치기로 스스로 정했습니다. 여호와의 제단에 사를 나무를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바치고, 토지소산 맏물과 과목의 첫 열매와 맏아들과 가축들의 첫 새끼와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의 전을 섬기겠다고 맹세했습니다. 8~10장까지 살펴본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는 어떻습니까? 모두가 은혜 충만, 말씀 충만, 감사 충만이었습니다. 그들 모두 영적으로 뜨겁고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11장을 보아야 합니다. 다시 1절로 돌아가 봅니다. 백성 모두 열악한 예루살렘에 거주하기 싫어하니까 할 수 없이 제비뽑아 그중의 십분의 일을 뽑았겠습니까? 아니면 모두 예루살렘에 거주하겠다고 자원하니까 그중에서 십분의 일만 뽑았겠습니까? ‘자원하는 자’는 남성 복수형으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도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기를 결심했습니다. ‘복을 빌었느니라’온 백성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자원한 자들의 헌신을 높이 사서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의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의 정착한 자들의 목록은 예루살렘이 재건된 후 백성들이 어떻게 분포돼 살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11장의 목록은 역대상 9장의 목록과 거의 일치합니다. 정착자의 총수는 느헤미야 11장에 비해 역대상 9장에서 약간 증가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느헤미야 11장보다 역대상 13장이 후대에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정착한 자를 11장에서 유다와 베냐민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역대상 9장에서는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므낫세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자기 성읍에 거주한 사람들(3절)
제비뽑아 10분의 1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성읍에 거주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반 백성도 있었지만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도 있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의 의미는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레위인들의 시중을 드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스 8:20). 에스라는 그들을 성전사역자로 소개합니다(스 7:24). 전통적으로 여호수아 9:23,27을 근거로, 이들이 성전에서 물과 땔감뿐 아니라 다른 필요 물품들을 조달하는 노예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느디님 사람들이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 이어 나오는 것은 그들이 레위 사람들을 보조하는 성전 사역자임을 말해 줍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4-9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지방의 지도자들 중에는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만 언급된 이유는 이들이 귀환 공동체의 주된 구성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2:16; 스 1:15; 4:1). 이 부분의 평행본문이라 할 수 있는 역대상 9:3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들도 예루살렘에 거주했다고 언급합니다.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이 아다야를 비롯해 모두 468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용사였습니다. ‘용사’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일’은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군대를 뜻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이들은 단순히 그곳에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직화된 군대처럼 예루살렘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베레스는 유다가 다말에게서 낳은 쌍둥이 아들 중 형입니다(창 38:37-30). 아다야가 베레스 자손이었는데, 역대상 9:4에서는 ‘우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베냐민 자손 중에는 살루와 갑베와 살래를 비롯한 928명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그들의 감독, 곧 최고 행정 책임자는 요엘이고, 버금 곧 두 번째 책임자는 유다였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의 한 부분을 다스렸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10-18절)
예루살렘에 거주한 제사장들은 여다야와 야긴과 스라야와 아다야를 비롯해 모두 822명이었습니다. 아다야와 같이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던 제사장들의 족장, 곧 지도자들 242명도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 경비를 위해 섬긴 제사장 아맛새를 포함한 128명의 제사장들도 큰 용사가 되어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7:3). 여기에서 ‘큰 용사’는 6절에서 언급된 ‘용사’보다 더 강한 군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그 가운데 삽디엘이 감독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스마야를 비롯해서 성전 바깥의 일을 맡은 삽브대와 요사밧이 레위 사람들의 족장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삽브대와 요사밧은 에스라와 함께 귀환 공동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깨닫게 하고 율법을 기초로 백성의 잘못된 관습을 개혁했습니다(8:7). 그들이 맡은 ‘전 바깥의 일’은 성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성전 건물을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위해 자금과 십일조를 받는 일을 의미합니다(10:37-39). 기도할 때 감사의 말씀을 인도하는 맛다냐와 두 번째 책임자인 박부갸와 여두둔의 증손 압다도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모두 284명의 레위 사람들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했습니다.

성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19-24절)
성 문지기들은 악굽과 달몬을 비롯해 172명이 예루살렘에 거주했고, 시하와 기스바 같은 느디님 사람들도 거주했습니다. 또한 노래하는 자들도 거주했는데, 아삽의 자손 중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들의 감독이 되었고, 성전 일을 맡아서 레위 사람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밖에 거주한 자들(25-36절)
이 부분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의 베냐민 자손들 중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로 한 10분의 1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어느 마을에 거주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줍니다. 유다 자손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유다의 여러 지방에 거주했습니다. 유다의 최남단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으로 베냐민 지파의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힌놈의 골짜기에 이르는 지역에 장막을 치고 거주했습니다(수 15:8). 여기서 ‘장막을 쳤다’는 표현은 광야 시대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계승하고 회복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베냐민의 남은 자손들도 게바를 비롯해서 그 주변 지역에 거주했으며, 유다에 있던 일부 레위 사람들과도 함께 거주했습니다.

우리의 자세
- 주의 일을 자원해야 합니다
먼저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여 예루살렘에 정착한 후에, 백성은 추첨을 통해 10분의 1이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대로 문맥을 보면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에 들어가 살기를 자원했습니다. 자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제비뽑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정말 하기 싫었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고 싶은데 그들 중에서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세우셨다는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섬기는 자세가 다르고 열매가 달라집니다. 십일조는 물질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일을 할 때 베푸신 은혜 감사하며 자원하는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살게 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헌신하기를 요구 받는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마음을 다해 헌신하고 있습니까?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억하면서 즐거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결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면목이 있을 것입니다.
-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10분의 1이 뽑혔을 때 남은 백성이 어떻게 했습니까? 왜 내 이름이 빠졌어 하며 기분나빠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하고 싶지만 뽑히지 않았을지라도 뽑힌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자를 뽑을 때 선거를 하게 됩니다. 뽑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지라도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세울 때 자기가 안 뽑혔다고 섭섭해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보다 선택받은 자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계속해서 기도해주고 축복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그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성도는 언제나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잠 27:21) 언제나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을 황폐케 하는 말들 즉 원망, 불평, 비방, 멸시, 조롱, 더러운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 은혜를 충만히 체험해야 합니다
성벽 재건을 마친 후에 유다 공동체는 영적 회복을 갈망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지침입니다. 유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며 새해 첫날을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 백성으로의 회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싶어 했으며, 말씀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말씀을 깨달았을 때는 언제라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씀이 주는 감동으로 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오랜만에 초막절을 제대로 지켰습니다. 진정한 개혁에는 말씀과 고백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귀환 공동체의 회개는 언약 갱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참된 개혁을 위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보여준 진한 은혜 체험, 그로 인한 넘치는 기쁨과 아름다운 헌신의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우리 모두 은혜를 체험하기를 사모하며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생활이 업그레이드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나가면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지킬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앞장섰고, 그다음은 제비 뽑힌 10분의 1 백성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기에 열악한 거주환경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주를 자원했습니다. 다른 백성들은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오늘날도 주의 일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왕이면 자원해서 그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때로 힘들고 척박한 환경이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 편하고 평범하게 사는 삶을 뒤로하고 희생을 자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빅토리아 방문 중 수요일에 Duncan에 있는 원주민 교회를 방문해서 선교 물품을 전달했고 원주민 거주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원주민 거주 지역을 reserve라 부르고, 원주민들을 First Nations라고 부릅니다. Duncan 지역에도 5500명의 원주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1800년대 중반부터 캐나다 정부에서 기숙학교를 세워 5살이 되면 부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어린아이들을 학교로 데려와 서양 교육을 시키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말살하려했습니다. 그 학교 안에서는 온갖 만행이 벌어져서 많은 여자아이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무조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 학교가 1996년까지 존재했습니다. 나중에 캐나다 수상이 정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했지만 100년 이상 지속된 만행으로 인한 원주민들의 트라우마가 너무 컸다고 합니다. 기숙학교를 카톨릭 교회가 주도했고 적지 않은 개신교 교회들도 참여했기에 원주민들의 교회에 대한 반감이 아주 심하다고 합니다. 원주민의 실태는 자살, 매춘, 재소, 수과 마약 중독, 분노와 폭력, 고독과 소외라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Cowichan Grace Church는 한국에서 온 조용완선교사님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보통 전해지지 않은 종족을 미전도종족으로 분류하는데 캐나다 원주민들은 오전도민족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잘못 전달된 복음으로 원주민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Grace 교회에서 처음에 십자가를 세우기만 하면 부수었는데, 나중에는 원주민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세우게 했더니 더 이상 부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 선교사님은 열악한 환경에서 20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데 원주민 지도자 양성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자원해서 섬기고 있는데 지금도 동역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주의 일을 자원할 뿐 아니라,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보다 사명을 더 소중히 여겼던 사도 바울처럼 열정적으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며 훗날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다고 칭찬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