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거국적인 언약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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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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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10:1-39


이스라엘 역사의 축소판이 사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먹고 살만하니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사사를 세워 그들을 건져주십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니 그들은 이전보다 더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이런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니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에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7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첫 번째 귀환자들을 이끌었고 그들은 2차 성전을 지었습니다. 에스라가 두 번째 귀환자들을 이끌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세 번째 귀환자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때 140년 동안 무너져 있던 성벽을 불과 52일 만에 재건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성전 건축과 성벽 재건이 끝난 상황에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8~10장에서 율법 낭독, 회개와 신앙고백, 언약갱신을 차례로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진정한 개혁에는 말씀과 고백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을 이끈 주체가 ‘백성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참여할 때 의미 있고 진정한 신앙개혁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는 언약 갱신이라는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갱신의 거룩한 욕구가 있을 때 신앙의 진보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결단이 우리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신앙생활 뿐 아니라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고 참된 개혁을 위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느헤미야, 제사장, 레위인들의 인봉(1-13절)
언약을 준행하기로 맹세한 이스라엘 자손이 공동체적인 결단을 했습니다. 총독과 제사장과 성전 책임자들이 먼저 나섰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이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0장 전반부에 인(印)친 자들, 즉 언약을 준행하기로 굳게 맹세하고 서명한 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1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서명을 했고 이어서 시드기야가 서명을 했는데 그들은 행정 책임들입니다. 2~8절에는 21명의 제사장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 명단을 에스라 2장, 느헤미야 7,12장의 귀환자 명단들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이름들이 가문의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1차 귀환 때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로서 12:1-7에도 언급됩니다. 제사장들의 명단에 이어서 9~13절에는 17명의 레위 사람들의 명단이 소개됩니다. 예수아를 비롯해 여기에 이름이 소개된 레위 사람들은 대부분 8~9장에서 율법 낭독이나 해설 그리고 기도와 찬양을 인도한 사람들입니다(8:7; 9:4-5). 여기 소개된 레위 사람들의 이름은 제사장들의 경우와 달리 대부분 개인의 이름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의 인봉(14-27절)
14~27절에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등장합니다. “백성의 우두머리”라는 표현은 집안의 대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민 25:4). 모든 사람이 다 서명을 할 수 없으니, 각 부분의 지도자 84명이 대표적으로 서명을 한 것입니다. 즉, 백성의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대로 순종하며 살기로 서약을 한 것입니다. 바로스를 포함해 19절까지 소개되는 이름들은 1차 귀환자들의 명단에 기록된 이름들과 동일합니다. 제사장들의 이름과 같이 가문별 지도자들의 이름일 것입니다. 나머지 지도자들의 이름은 귀환자 명단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일부는 성벽 건축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에서 발견됩니다(3:23, 30).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이름들은 1차 귀환 이후 돌아온 가문들일 것입니다.

거국적인 언약식 동참(28-29절)
이렇게 지도자들이 앞장 선 결과 어떤 일이 뒤따랐습니까? 28절에 언급된 ‘그 남은 백성’은 비록 서약서에 인을 치지는 않았으나 역시 언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백성들을 말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이란 성소의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아내와 그 자녀들까지도 함께했습니다.​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는 언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결과적으로 언약 갱신에 귀환 공동체 모두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절교했습니다. ‘이방 사람’을 직역하면 ‘그 땅 사람들’이 됩니다. ‘그 땅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들이 유다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이방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방인들로부터 스스로 분리함으로 거룩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귀환 공동체는 형제 귀족들, 즉 지도자들을 따라 저주를 통한 맹세 의식을 진행합니다. 말씀 집회를 통해 감동을 받고 결단한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다짐을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는 서약식을 거행합니다. 여기에서 “저주로 맹세하기를”이라는 말은 언약 문서의 내용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겠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준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내용을 문서로 남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서원이기에 결코 번복되거나 파기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의 당사자이자 보증인이십니다. 그래서 백성과의 약속을 지키시며 백성으로 하여금 약속을 지키게 하십니다.

구체적인 맹세의 내용(30-39절)
맹세에 동참한 이스라엘 자손이 어떤 결단을 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이방 사람들과의 통혼 금지(30절)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언약 공동체의 ‘정체성’확립이 시급했기에 이방 민족과의 결혼 문제가 먼저 나옵니다. ‘이 땅 백성’은 이스라엘 자손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그 땅에 살던 거주민, 즉 암몬, 모압, 사마리아, 에돔 같은 이방 족속과 사마리아 혼합족속을 의미합니다(스 3:3; 6:21). 그들은 성전과 성벽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앗수르에 의해 먼저 망한 북이스라엘이 이방인과의 강제적인 통혼으로 혼혈민족이 되어 그 정체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마리아 인들을 이방인 취급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 백성마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한다면 민족의 정통성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에 혈통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종교적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들과의 통혼을 금지한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 안식일과 안식년 준수(31절)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두 번째로 한 맹세는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 안식일이나 다른 성일에는 주변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또한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이면 땅을 쉬게 하고 채무자의 빚을 면제해 주겠다고 맹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시고 그날을 복 주셨습니다(창 2:3). 하나님께서 안식의 원리를 강조하시기 위해 십계명의 4계명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그리고 광야에서 만나를 주실 때 6일째 되는 날은 다음 날 먹을 양식을 포함해 두 배로 주심으로 안식일 실천을 실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년 규례를 명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정기적인 휴경(休耕)을 통해 땅과 그 땅의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재물의 탐욕에서 벗어나 안식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안식년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벨론 포로기 70년 동안 유다 땅이 강제로 안식을 누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대하 36:21). 신약 시대에는 ‘주일’이 안식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막 2:28)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즉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에 예배와 교제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적절히 쉬어야 몸이 회복되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쉼이 없는 일을 하면 영혼이 메마르게 되고 황폐해집니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애써야 합니다.
- 성전 기능 회복 지원(32-34절)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유지를 위한 의무를 감당하지 않았기에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과 성전 관련 제반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십일조에 의존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떠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13:10). 이에 귀환 공동체의 모든 지도자와 백성은 성전 운영과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드리기로 다짐합니다.
“...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32절)
“우리가 또 스스로 ... 정하기를”을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주었다’입니다. 이 규례가 율법에서 규정된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것임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백성을 가리킵니다. 성소는 시간이 지나면 정기적인 보수가 필요하며 그 안에서 사용되는 기물이나 장작, 향, 기름 등도 계속 보충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물품들은 성전세를 걷어 충당했는데, 하나님은 이를 ‘생명의 속전’이라 부르셨습니다(출 30:11-12).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만 20세 이상 된 자는 반 세겔을 성소에 납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귀환 공동체가 스스로 규례를 정해 해마다 삼분 일 세겔을 내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33절은 성전세가 어떤 용도로 쓰이는 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안식일마다 새로 만들어 떡 상위에 올리는 진설병을 만들고, 고운 밀가루와 기름으로 매일 드리는 소제와 어린양으로 매일 드리는 번제를 드리는데 쓰입니다. 또한 안식일과 초하루, 곧 매달 첫째 날에 사용될 제물을 마련하는데 쓰입니다. 그리고 성물, 곧 성물의 보상을 위한 속건제 제물과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 제물을 마련하고 성전의 유지와 보수에 필요한 경비로 쓰입니다.
“...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34절)
성전세를 드리겠다고 결의한 이스라엘 자손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을 제비 뽑아서 각기 종족별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성전에 바치는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나무’를 직역하면 ‘나무 봉헌물’입니다. 나무는 모세 오경에 언급되지 않는 봉헌물입니다. 레위기 6:12-13에 따르면 제사장은 제단 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하고, 아침마다 그 불에 나무를 태워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여기에 사용될 나무를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본래 나무를 조달하는 것은 기브온 사람들의 의무였지만(수 9:27),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나무를 구하기 어려운 황폐한 환경 가운데서 이러한 규례를 만든 것은 율법대로 준행하려는 귀환 공동체의 의지를 보여 줍니다.
- 첫 소산 드림(35~36절)
“해마다 우리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귀환 공동체는 해마다 땅의 첫 소산, 즉 토지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성전에 드리기로 서약합니다. ‘소산의 맏물’은 처음 익은 열매, 첫 이삭을 가리키는 말로 수확물 전체를 대표합니다. 따라서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전 소유를 바치는 것의 상징적 행위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고백입니다. 맏물과 첫 열매는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쳐야 했습니다(출 23:19, 34:26, 민 18:12-13, 신 26:1-11).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장자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초태생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출 13:1-16, 레 27:26-27) 이렇게 맏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은 생명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장자를 제사장에게 바친다는 것은 속전을 지불함으로써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은 희생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들은 장자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기로 서약합니다(출 34:19-20; 민 18:15-18).
- 십일조 드림(37-39절)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37절)
이스라엘 자손은 또한 각종 처음 산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와 성전 방에 두고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처음 익은 밀의 가루”는 35절에 언급된 첫 열매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최상품 밀가루를 의미합니다. 30절에 언급된 제사장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으니 이는 제사장 그룹 전체를 총칭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 그 레위 사람들과 함께 아론 자손의 제사장이 있을 것이다’가 됩니다. 제사장이 함께 있음으로 그들의 몫을 알게 하여 어떤 오해도 발생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모든 백성은 그의 소산의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드리고, 레위인은 다시 십일조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39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지이며,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환난을 당한 것은 성전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섬기지 않고 성전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성전세와 헌물의 규례를 행하기로 서약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성전과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잘 섬기겠다는 서약은 이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강력한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약한 내용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의 자세
이스라엘 자손의 달라진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가 어떤 도전을 받습니까?
- 영적 각성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율법을 들으며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총독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 같은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지도자들이 율법을 준행하기로 서약하고 인을 치자 온 백성이 동참했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이제부터 하나님 백성답게 살고 싶다’는 거룩한 욕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은 어느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직 우리가 정신이 온전하여 사리를 판단할 수 있을 때, 손과 발을 움직여 섬길 수 있을 때 주님을 위해 살려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하기를 다짐할 때 부흥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구체적인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적인 결단은 삶의 방식이 구체적으로 바뀌는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결단은 했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백성이 처음 난 것,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율법에 규정되지 않은 성전세까지 드린다고 한 것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예물을 드리거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떤 자세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가 채워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다른 모든 만물도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드려야 합니다. 재물이나 시간 드리기를 아까워하거나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것이 무엇이든지 적은 것이라 해도 감사함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거룩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특히 우리가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 십일조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자주 듣습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인 신앙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를 하는 것에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더욱 중요한 것은 정의와 긍휼과 신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도 잘못이지만, 십일조를 무시하는 태도 또한 바르지 않습니다. 동시에 십일조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긍휼과 신실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일조를 단지 자기 소득에서 10분의 1을 내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세금 떼기 전 십일조가 맞는가 아니면 세금 떼고 난 후 십일조가 맞는가 하는 논쟁을 벌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권면했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10분의 9는 내 것이 아닙니다. 예물 드림의 근본정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회복, 하나님의 전을 향한 열심의 회복, 십일조의 회복은 일맥상통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십일조 정신이 지금 교회에서도 필요합니다.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역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교회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제반 비용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그 관점에서 요즈음 각자의 헌금생활을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바칠 것을 제대로 바치고 있습니까?

나가면서
언약 갱신은 역사적으로 여호수아 때와 요시아 왕 시대에도 있었습니다(수 24장; 왕하 22~23장). 나라의 멸망과 70년간의 포로 생활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가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행한 언약 갱신은 귀환 공동체의 정체성 확립과 그들의 미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지도자들과 백성이 함께 율법 규정을 준행하기로 자발적으로 맹세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자발적인 결단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롬 13:11). 시대의 흐름을 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알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결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텐데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신 대제사장이라는 사실(히 9장),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교제 곧 예배라는 사실(롬 12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새언약 백성으로서 살기를 결단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온 세상에 드러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