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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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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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6:1-19


살다보면 어처구니없는 오해나 공격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변명한다고 해서 남들이 귀담아 들어주지도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어디에 하소연 할 데도 없는 것 같고, 마음만 답답해지며 그러다 보면 깊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성전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벽 재건 과정에서 안팎으로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습니다. 느헤미야서 4장에서 산발랏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성벽 중건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롱하고 위협을 가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느헤미야의 탁월한 리더십 아래에서 성벽은 순조롭게 지어져 갔습니다. 그랬더니 5장에서 이스라엘 내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다 백성 내에서 빈부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건하는 데에 또 한 차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온 백성이 다 힘을 모아도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 쉽지 않은 판국에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불만을 터뜨리며 자칫하면 공동체에 분열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으나 느헤미야는 갈등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습니다. 안팎으로 계속 문제는 있었지만 백성들을 독려하며 성벽 중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무너져서 끊어졌던 성벽들이 다 연결이 되었습니다. 성문의 문짝을 달기만 하면 공사가 마무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허물어져 있던 성벽이 깨끗하게 보수된다는 생각을 하며 느헤미야는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문을 달고 나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이 어려워지기에 대적들은 어떻게 하든 공사를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대적자들은 이미 2:19에서 언급된 자들인데, 호론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었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더 집요해지고 악랄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사명을 감당한 느헤미야의 모습을 살펴보며 느헤미야처럼 지혜와 용기를 얻어 맡겨진 일에 끝까지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짓편지를 이용합니다(1-4절)
느헤미야를 제거하려는 대적들의 1차 계획이 산발랏과 아라비아 사람 게셈에 의해 실행되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오노 평지의 한 촌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오노 평지는 예루살렘 북서쪽 20마일 지점인 유다 지역 북서쪽 끝 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11:35; 스 2:33). 돌아온 포로들이 정착했던 가장 서쪽 지역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제의에 대한 불순한 동기를 직감하고 성벽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으니 만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제의를 3번이나 더 전했지만 느헤미야는 그때마다 거절했습니다. 계속해서 요청을 받으면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한데 느헤미야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사탄은 방해를 합니다. 주위의 사람들,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와 같이 다가오는 사탄의 유혹을 분별할 줄 아는 영안과 그것을 담대히 물리칠 수 있는 신앙의 용기를 함께 가져야 합니다.

거짓 증인을 세웁니다(5-9절)
그냥 만나자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은 산발랏은 전략을 바꾸어 종자의 손에 봉인하지 않은 편지를 느헤미야에게 보냈습니다. 편지가 봉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전달 과정에서 누구나 읽어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방 중에 소문이 퍼져있고 가스무도 말하는데,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하고 있으며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스무는 게셈의 아라비아식 이름입니다. 이전에도 르훔과 심새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아닥사스다 왕에 대한 반역으로 몰아세워서 막은 적이 있었습니다(스 4:7-23). 산발랏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느헤미야를 반역자로 몰아간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또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를 세워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페르시아의 왕이 알게 될 것이니 이 일에 대해 함께 만나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내세워 왕이 됨을 선포하는 적이 있기는 합니다. 사무엘상 9~10장과 16장에서 사무엘이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기사, 사무엘하 7장에서 나단의 신탁 기사, 열왕기하 9장에서 엘리사가 예후를 세우는 기사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모함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런 억지가 통합니다. 사람들이 유언비어에 귀가 솔깃해지기 때문입니다. 남을 모해하는 것은 사탄이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도 거짓 증인들이 많이 왔습니다(마 26:60).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주장이 자신과 백성을 두렵게 만들어 성벽 건축을 중단하게 하려는 음모임을 알아차리고 그런 일은 없고 모두 산발랏이 지어낸 일이라며 만나자는 제안을 여전히 거절했습니다. “이제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느헤미야는 다시 짧게 기도했습니다. 그는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지만, 오직 여호와만이 이 상황을 진정으로 해결하실 수 있음을 알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과 기도의 결실이 바로 그의 힘이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세웁니다(10-14절)
두 번째 계략마저 실패한 적들은 새로운 계략을 꾸몄습니다. 도비야와 산발랏은 이번에는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를 매수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 하여 그를 실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스마야가 갑자기 사람들과 왕래를 끊고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가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성전의 외소에 자유롭게 출입하고 예언도 했다는 점에서 스마야는 제사장이면서 예언도 하는 자였을지 모릅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대적들이 밤에 그를 죽이러 올 것이니 성전 외소로 함께 피해 문을 닫고 숨자고 제안했습니다. 외소는 ‘성전의 현관으로부터 지성소까지의 부분’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의 신변을 염려하는 듯하나 실상은 느헤미야를 유인하여 성전에 숨게 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만들고, 백성들에게 비겁자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두 가지 이유로 스마야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첫째는 총독이라는 느헤미야의 사회적 위치로 보아 도망하는 것은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제사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18:7에 의하면 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사사로이 행동하지 않는 느헤미야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말을 듣고 성소에 들어갔다면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백성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더 이상 유다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벽 공사도 물론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느헤미야는 스마야의 예언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거짓으로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이 예레미야 1:7에 언급됩니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가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여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스마야는 돈에 눈이 어두워 양심을 속이고 지어낸 말을 하며 형제를 유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스마야 외에도 여자 선지자 노야다와 그 외 다른 선지자들도 산발랏 일당에 매수되어 거짓 예언을 하면서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방 대적들뿐 아니라 이에 동조한 공동체 내부의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심판이 하나님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신 32:35; 시 94:1; 롬 12:19)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계략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선지자로 위장하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만들고, 끈질기고 간교하게 느헤미야를 곤경에 빠뜨리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시험하고 물러간 후에도 계속 도전해 왔던 마귀인데 하물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공격해 오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문제가 없어. 우리 가정은 항상 행복해. 내가 손을 대는 것마다 다 잘되. 우리 사업은 번창일로야. 물론 이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언제든지 사탄의 방해가 있게 마련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엿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권면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그의 인도함을 받고 그를 대적할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벽 공사의 완공과 잘못된 유착 관계(15-19절)
대적들의 온갖 훼방과 모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52일 만인 엘룰월 25일에 끝났습니다. 엘룰월은 히브리 달력으로 여섯 번째 달로, 양력으로 8,9월에 해당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성벽 건축을 허락받은 지 6개월도 안 되어 완성한 것입니다. 파괴된 성벽으로 인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느헤미야의 간절한 마음과(1:3; 2:17)과 건기 덕분에 빠른 시일 안에 성벽을 재건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이 성벽 완공 소식을 듣고 다 두려워하며 크게 낙담한 이유는 하나님이 유다 족속을 도와 그 일을 이루신 것을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대적은 애초에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고 위협했는데 정작 두려워 떨게 된 사람들은 대적 자신들이었습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드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역사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크게 낙담하였다’는 것은 자기들이 초라하게 느껴졌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온갖 사악한 방법을 다 동원했는데도 예루살렘 성벽이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평안과 용기를 주시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며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주십니다(창 35:5). 하나님은 백성을 아끼고 거룩한 성읍을 사랑한 느헤미야의 마음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17-19절은 15-16절에 바로 이어지는 연대기적 기술은 아닙니다. 성벽 건축 기간 중에 있었던 또 다른 방해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로 번역된 단어는 ‘그날들 동안’이라는 의미로, 52일의 공사 기간을 의미합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 기간의 기록 가운데 언급하지 못했던 대적들을 회고하면서 도비야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유다 귀족들을 언급합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비웃고 훼방하는 한편 유다의 영향력 있는 가문과 교류하면서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3:4,30). 유다 귀족들과 결혼을 통해 친족 관계를 맺었습니다. 도비야 자신은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아들 여호하난을 므술람의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도비야를 사위로 삼은 스가냐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한 아라의 자손이고(7:10; 스 2:5) 동문지기이며, 그의 아들은 성벽 건축에도 참여했습니다(3:29). 므술람은 베레갸의 아들로 제사장이며, 어문과 옛문을 재건했습니다(3:30). 도비야와 유다 귀족들이 주고받은 편지들로 인해 느헤미야의 대적자들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비야의 인맥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었는지 간접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도비야와 동맹을 맺은 유다 사람들은 느헤미야 앞에서 도비야의 선행을 계속 말하면서 암묵적으로 그를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가했으며, 도비야에게 가서는 느헤미야의 말을 전해주며 느헤미야를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유다 족속이 교활한 도비야를 받아 준 것은 나중에 결국 문젯거리가 됩니다.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이제 ‘성 안에’세력 잡은 사람들의 태도와 삶의 방식이 개혁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느헤미야의 비전이 단지 성벽 재건이었다면 느헤미야서는 6장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되려면 그들의 개혁이 필요했기에 7장부터 13장까지는 느헤미야가 본격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우리의 자세
대적자들의 집요한 공격에 대해 느헤미야는 어떤 본을 보여 주었습니까?
-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사용하실 때 먼저 감동을 주셔서 헌신하게 하십니다. 감동과 헌신의 가시적인 증거가 기도로 나타납니다. 스가랴와 학개가 그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거나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감동 받을 수 없고, 기도 없이 능력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성문 문짝을 달기만 하면 되는 시점이 되자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를 유혹하고 두렵게 만들어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흔들리도록 하려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계략을 눈치 채고 이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억울함을 당할 때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니라”(시 37:1).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4-6). “이제 내 손을 힘입게 하옵소서”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에게 힘을 주셔서 거룩한 뜻을 이루게 하시며,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 안에서 계획한 일이 방해를 받거나 잘 안 될 때 안타까워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문제가 기도제목이 되고 있습니까? 언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이 오노 평지의 한 촌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를 거절하자 그들은 세 번이나 더 사람을 보냈습니다. 느헤미야가 거절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스마야가 느헤미야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그 밤에 적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니 하나님의 전으로 함께 도망가서 성소 안에 들어가 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외소에 숨는 죄를 범하면서까지 목숨을 구하지 않겠다며 했습니다. 그가 속지 않은 이유는 처음부터 스마야의 중심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아니면 총독이라도 성전 외소에 들어갈 자격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대적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예언과 사람들이 하는 거짓 예언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간음한 때는 그가 열심히 블레셋과 전투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부하들은 열심히 전투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낮잠을 잤습니다. 사명에 대한 헌신은 사탄의 유혹을 사전에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의 사명에 온 힘을 기울일 때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습니다. 대적들의 모함과 거짓소문에 대해 느헤미야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에 낙심치 않고 묵묵히 맡겨진 일을 수행했습니다. 유다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동참했을 때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 중건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진실한 신앙과 삶을 소유한 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모함과 비방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지키며 겸손하게 충성을 다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떤 위협이나 핍박 앞에서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가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진 지 70년 만에 재건되었고, 성벽은 그로부터 70년이 더 지난 후에야 재건되었습니다. 두 역사 모두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이뤄졌습니다. 성벽 공사가 52일 만에 끝났을 때, 주위의 모든 대적들은 두려움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대적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을 조롱하며 협박하기도 했고, 기습 공격, 암살, 모함을 시도했습니다. 또 선지자들을 매수해서 거짓 예언으로 느헤미야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유다 귀족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도비야를 통해 느헤미야를 회유하거나 편지로 위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적들이 ‘두렵게 하여’성벽 건축을 중단시키려고 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한 느헤미야와 백성이 성벽 건축을 완성하자 오히려 대적들이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항한 인간의 헛된 노력과 하나님의 승리를 잘 보여 줍니다. 느헤미야의 겸손, 느헤미야가 가진 담대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헌신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높으신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귀의 집요한 공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파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자기 몸을 드려 돌아가셨습니다. 사명을 충실히 감당한 예수님을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이름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하셨습니다(빌 2:9). 바로 그분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주님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베푸신 은혜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기도하며 지혜와 분별력과 능력을 얻어 맡기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신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