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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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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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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느 4:1-23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일 때였습니다. 숫자나 장비로 볼 때 미국의 민병대는 영국군에 비해 절대 열세였기에 전면전을 벌여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민병대는 계속 밀렸고 이대로 가다가는 영국에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전선을 관찰하던 어떤 민병대 지휘관이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국군 장교는 일반 사병들과 달리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군과 싸울 때 모두에게 총을 쏘지 말고 장교들만 골라서 쏘라고 하였습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민병대와 싸움을 벌인 영국군 부대들마다 장교들이 집중 사격을 받아 많이 죽었습니다. 영국군은 군대의 숫자도 많았고 화력도 압도적이었지만 지휘계통이 무너지니 제대로 싸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영국군은 패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에 빠졌던 민병대였지만 상황을 분석하고 잘 대처한 리더의 말을 들었을 때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자의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뜻하는 두 개의 글자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중국의 현인들도 위기는 “감춰진 기회”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으실 때 다른 문을 열어 두신다”는 서양 격언과도 상통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나 인생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당시에는 앞이 캄캄하고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이제와 보니 그 문제들은 대부분 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의 위기를 잘 견디면 도리어 위기 속에 감춰진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유다 사람들은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본토로 귀환해서 대적의 방해 속에서도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은 여전히 훼파된 상태로 있어서 유다 백성은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대적들은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것을 계기로 유다가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아하수에로 왕 통치 초기에 시작했던 예루살렘 성벽 증축 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설득으로 유다 백성이 이 역사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고는 성벽 재건에 열정적으로 동참했습니다. 그러자 호론 사람 산발랏을 중심으로 대적들이 일어나 성벽 공사를 방해했습니다. 자칫하면 예루살렘 재건 공사가 또다시 중단되거나 지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대적들의 끊임없는 위협과 방해를 어떻게 극복하고 성벽 재건을 수행했는지 살펴보면서 위기에 대처하는 비결을 찾고 각자의 삶에 적용하면서 인생 승리를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비웃는 대적들(1-3절)
느헤미야 당시에 예루살렘 사면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유다 북쪽에는 산발랏과 사마리아인들, 동쪽에는 암몬 사람 도비야, 남쪽에는 아라비아 사람들, 그리고 서쪽에는 블레셋에 속한 아스돗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오기 전까지 성벽 재건을 방해하려는 대적들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온 후로 성벽 재건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적들이 크게 분노했습니다. ‘분노하다’라는 동사는 감정의 동요를 동반한 분노를 나타냅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벽 건축이 산발랏에게 극도의 위기감과 두려움을 주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는 형제들과 군대 앞에서 유다 사람들을 조롱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도비야와 함께 그를 돕기로 한 자들이며, 그의 군대는 사마리아 총독으로서 거느리는 병사들이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라고 하면서 5개의 질문을 연속적으로 던졌습니다.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말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힘이 없는 자들이 지금 무모한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는 유다 백성의 힘으로 성벽 복원을 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제사를 드리려는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빈정댐입니다.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지난 백 년 동안에도 못한 일을 이제 와서 한다고 하니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는 말은 흙무더기가 돌로 회복될 수 없듯이 성벽 재건이 불가능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산발랏의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도비야가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곁에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능력도 없는 것들이 성벽을 짓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부실공사가 분명해. 금방 무너질 거야. 주변에 있던 무리들이 그 말을 들으면서 함께 웃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함께 소리 내어 웃지만 속으로는 그들 모두 무엇인가 불안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로 대응하는 느헤미야(4-6절)
대적들은 유다 백성들의 미약한 능력이나 이루어야 할 사역의 방대함은 보았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가진 능력이 어떠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함부로 떠들었습니다. 그들의 조롱은 느헤미야와 유다인들을 향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대적이 하는 비웃음이나 모욕은 참기 어려웠지만 느헤미야는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함께 일하고 있는 유다인들은 얼마 전까지 자기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논쟁이 있을 때 종종 대화로 풀려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의 조종을 받는 자들의 목표는 문제해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적의 목표는 느헤미야의 제거와 성벽 공사의 중단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방식의 대화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방해하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적대자들의 조롱과 허위 사실에 기초한 협박에 기도로 대응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그의 기도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가 혼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놓고 함께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과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느헤미야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는 유다 사람들에 대한 대적들의 ‘업신여김’에 대해 벌을 내리심으로 그들이 ‘노략거리’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이 기도는 저주의 시편들(시 35, 69, 109)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분께 도전하는 대적들에게 분노하며 그들의 멸망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주를 노하시게’등의 표현을 한 것은 개인적으로 비방을 당하여 기분 나빠서 드리는 것이라기보다 대적들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복수하려기보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믿고 그분께 맡겼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 근거는 멀리 아브라함까지 올라갑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하신 약속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했습니다. 대적의 조롱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유다 사람들은 공사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해 일을 했습니다. 성벽공사는 한쪽에서부터 진행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42개 구간에서 동시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벽전체가 연결되고 지금은 예정한 높이의 절반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위협에 낙담하는 백성들(7-12절)
예루살렘 성벽의 허물어진 틈이 메워져 간다는 소식을 듣고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해서 아라비아 사람들, 암몬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이 심히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다 사람들을 치고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해서 성벽 완공을 무산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에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에 그들은 파수꾼을 세워 주야로 방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수들의 끈질긴 심리전과 공격의 위협이 먹혀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참 이상해서 부정적인 말에 더 잘 미혹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는 무너진 성읍을 보면서 빨리 재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니 무너진 성읍이 더 크게 보이면서 도저히 자기들의 힘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백성들 중에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는 비관론이 퍼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흙덩이가 너무 많고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지쳐서 성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흙덩이가 없었습니까? 성을 쌓는 것이 힘든지 몰랐습니까? 그러나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니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적들은 쳐들어와서 유다인들을 죽이고 공사를 그치게 하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대적들의 근처에 거하던 유다 사람들, 곧 예루살렘 외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대적들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던 유다 사람들은 성을 쌓는 사람들에게 공사를 중단하고 자기들에게 와 달라고 애타게 요청했습니다. “와야 하리라”를 직역하면 ‘너희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가 됩니다. 이는 긴급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적은 인원을 가지고 성벽 주위에 쌓인 돌이 섞인 흙무더기를 쉴 새 없이 날라야 했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 성은 언덕에 위치하였기에 험난한 지형에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공사를 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도전을 듣고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공사가 힘이 들고 또한 쉽게 끝날 것 같지 않고, 대적들이 언제 공격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위협에 대처하는 느헤미야(13-20절)
느헤미야가 얼마나 기도하고 열심히 준비하면서 시작한 공사였습니까? 그렇지만 백성들이 크게 동요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전세를 뒤집은 민병대 지휘관과 같이 느헤미야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첫째는 대적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먼저 든든한 방어태세를 갖췄습니다.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을 종족별로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적의 시야에 노출되는 낮고 넓은 곳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중무장한 군대가 배치되었다는 것을 일부러 보여줌으로써 이쪽의 경계태세를 보여주고 상대방의 기세를 꺾으려고 했습니다. 둘째로, 유다 사람들을 돌아보고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독려했습니다.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들을 위하여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사용한 어휘들은 과거에 적들과 싸워 승리한 조상들과 그들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의 승리를 떠올리게 합니다(출 14:13-14; 신 8:18). 그리고 백성들에게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울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는 것을 보면서 원수들은 자기들의 작전이 노출된 것을 알고 공격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전에 대적들이 성전 건축 계획을 좌절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성벽 건축을 방해하는 대적들의 계획이 좌절된 것입니다(스 4:5). 느헤미야의 전략이 먹혀든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자기가 세운 전략이 좋아서 적이 침공 계획을 포기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꾀를 폐하셨”기 때문이라고 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위협적인 분위기가 수그러들자 백성들은 다시 성에 돌아와 공사를 재개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이 침공계획을 포기한 것을 알고도 경계태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체계적으로 적들의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16절에 ‘내 수하 사람들’로 번역된 단어를 직역하면 ‘내 젊은이들’이라는 뜻으로, 느헤미야를 돕는 임무를 담당하는 수비대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성벽 건축에 참여한 유다 백성과는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의 절반은 성벽 건축에 동참했고, 나머지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갖추어 무리를 보호했습니다. 민장들은 성벽 방어를 위해 종족을 따라 조직된 군대의 지도자들로, 성벽 재건과 예루살렘 방어 체계를 지휘했습니다. 긴급 상황에 발생한 경우에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성벽 재건에 참여한 백성의 가족들을 뒤에서 돌보는 임무도 담당했을 것입니다. 짐을 나르는 자는 흙무더기 가운데서 불탄 돌 같은 성벽의 잔해를 치우거나 성 안팎의 건축 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맡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한 손으로는 일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돌을 날리는 무기를 잡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공사가 각 구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까닭에 대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방어해야 할 범위가 넓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이 공격해 오는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성안의 백성에게 신속하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자기 곁에 나팔 부는 자를 두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이 친히 싸우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성벽 재건을 위한 자신들의 전쟁이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임을 강조한 것입니다(출 14:14; 신 1:30; 대하 32:8).

본을 보이는 느헤미야(21-23절)
느헤미야가 앞장서서 본을 보임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느헤미야 자신은 물론 그의 형제들과 측근들까지 모두 성벽 재건에 동참했습니다. 느헤미야의 부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틀 때까지 창을 잡았습니다. 그는 성 밖에 있던 지도자들에게 종자들이 함께 예루살렘 성안에서 자도록 했습니다. 이는 대적들의 기습에 대한 대비, 성의 안전, 노동력 확보를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의 측근에 있는 수비대까지도 적의 기습에 대비해서 잠을 잘 때도 옷을 벗지 않았고, 물을 길으러 갈 때조차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본을 보이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는 리더십을 보였다면, 성벽 재건은 온전히 시행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솔선수범은 공동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고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위기 속에서 느헤미야가 보여준 대응책은 무엇입니까?
-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원수들이 조롱하고 위협한 결과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지만 느헤미야는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백성이 적의 위협 때문에 두려움에 떨 때에도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원수들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싸우실 것이라고 하며 격려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바울도 에베소서 6:18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이 하나님 백성을 비웃고 성도의 헌신을 조롱하는 자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존감과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함으로써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일을 수행할 때 예상치 못한 난관이나 훼방을 만나면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옮은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대처 방안과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현실적 대책을 세우는 것을 세속적인 타협으로 간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위협에 대하여 철저한 대책을 세웠습니다. 한편으로 일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성을 지켰습니다. 느헤미야가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을 보면서 대적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좌절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대비하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셨으며, 그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요 17:21).
- 행동으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지도자로서 앞장서 백성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백성과 함께 일했습니다. 백성들이 방해와 위협 속에서도 한마음이 되어 일을 재개한 것은 느헤미야의 동기를 부여하는 말과 더불어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신실한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하는 동안 희생적으로 함께하며 짐을 나누었습니다. 느헤미야 자신도 성 안에서 백성들과 함께 잤을 뿐 아니라 옷을 벗지 않고 지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모범을 보이는 리더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사랑과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삶의 현장에서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나가면서
조롱, 위협, 두려움, 곤고함. 지금부터 2400여 년 전에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그 단어들은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문제로 둘러싸인 답답한 현실을 인하여 고민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하는 일이 힘들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낙담이 되고 그냥 주저앉고 싶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다르고 대처하는 행동이 다릅니다. 육신의 눈은 문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상황을 전적으로 바꾸시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을 주셔서 두려워 떠는 성도들을 평안케 하십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모든 문제의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위기의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백성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세웠습니다. 한손에 연장을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들면서 일을 계속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싸우시리라고 하며 백성을 격려할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며 리더로서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 군사입니다. 날마다 영적전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힘들지만 각자에게 주신 사명 끝까지, 담대하게, 그리고 함께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